한나라당-청와대 ‘불안한 동거’ 내막

벌써부터 ‘딴지’ 걸면 남은 2년 어떡하라고?

김대중(DJ) 정권 4년차인 2001년 DJ는 당시 여당인 민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한동 국무총리를 유임시켰다. 여당은 ‘DJP 공조’가 파기되자 자민련 몫인 이 총리의 해임을 거세게 요구했지만 DJ는 당의 요구를 일축하고 이 총리를 유임시켰다. 이 때문에 당시 김근태 최고위원은 이 총리 유임을 주도한 동교동계 해체를 주장했다. 노무현 정권 집권 4년차인 2006년에도 인사 문제를 둘러싼 당청 갈등이 불거졌다. 그해 3월 이해찬 총리의 ‘3·1절 골프 파동’이 불거지자 야당인 한나라당보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에서 이 총리의 사퇴를 요구해 관철시켰다. 당시 노 대통령은 같은 해 7월 김병준 당시 대통령 정책실장을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장관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논문 이중게재 의혹에 직면한 김 부총리는 여당의 반대를 버티지 못하고 낙마했다. 한 달 뒤 노  전대통령 최측근인 문재인 전 민정수석의 법무부장관 기용설이 흘러나오자 여당은 또 반발했다.

‘당·청 갈등’ 결국은 대통령 인사 문제
청 “보온병에 한 방 맞았다” 한 “거수기 못해”

장관(급) 인사는 대통령 고유 권한이다. MB정부 들어 여당이 청와대 결정, 특히 대통령 고유권한인 인사 관련해 정면으로 반기를 든 경우는 없었다. 한나라당 지도부가 지난 10일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에게 사퇴를 촉구한 것이 여당발 ‘거사(擧事)’로 규정되는 건 그 때문이다.

‘靑이 당 입장 고려 안한다’
4·27 재보선 앞두고 폭발

하지만 이는 그만큼 여당 의원들이 최근 정 후보자 내정을 둘러싼 민심 이반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친박계 의원들뿐 아니라 다수의 친이계 의원들도 고개를 가로젓는 상황이었다. 중립 성향의 한 의원은 “지역구에 내려가 지난 열흘 간 민심을 체감한 의원들이 적극적으로 부정적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안다”라고 전했다.

여권 내에서는 ‘청와대가 당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묵은 감정도 쌓여 있었다. 정두언 최고위원은 “청와대는 아무 생각 없이 (인사를) 하지만 이런 일이 당에 엄청난 피해를 준다”면서 “선거가 점점 눈앞에 다가오니 어쩔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번 사태가 선거를 앞둔 여당 의원들의 위기의식이 반영된 것이라는 판단에도 무게가 실린다. 이번 거사가 석 달 후에 있을 ‘4·27 재보선’과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둔 행위라는 것이다.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자칫 야당이 대대적 공세를 가할 빌미를 제공하면 ‘민심이 더 악화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당 일각에서 “청와대에 끌려 다니거나 ‘거수기’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할 경우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치명타를 입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수도권 특히 서울지역 출신 한나라당 의원들의 불안감은 더욱 심각하다.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서울시 25개 구청장 선거구 중 21곳에서 패했는데 현 지역 민심은 지방선거 때보다 더 악화됐다는 판단이다. 이 같은 민심이 한나라당 지도부가 청와대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게 된 결정적 배경이라는 것이다. 한나라당 한 당직자는 “이런 상황이라면 대통령과 맞서는 모습을 연출하는 것이 (당선에) 도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08년 이후 MB정부 발탁 인사의 인사청문회 낙마율은 11.6%로 노무현 정부의 3.4%에 비해 세 배 이상 높다. MB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총리·장관·헌법재판관·검찰총장 등에 대한 인사청문 요청안은 총 60건이다. 이 중 인사청문회를 통과 못하고 낙마한 인사는 정 후보자 포함 8명이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MB정부가 ‘일 잘한 정부’라는 소리는 들을지 몰라도 ‘인사 참 못한 정부’로 기억될 것”이라는 자조 섞인 말을 했다. MB는 인사 때 ‘일머리’를 가장 중시한다. 개인적으로 능력을 잘 알거나 한번 써 본 사람 중 능력 있다 생각되는 사람에게 중책을 맡기는 일이 잦다. 도덕성이 좀 떨어지더라도 일 잘하면 쓴다는 게 ‘MB스타일’이다. ‘회전문 인사’라는 지적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다.

인사(人事)는 만사(萬事)?
인사(人事)가 망사(亡事)?

정동기 전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도 청와대의 도덕적 잣대가 국민적 기준과 얼마나 다른지 여실히 보여줬다. 정 전 후보자가 7개월 동안 로펌에서 약 7억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민심은 등을 돌렸지만 청와대는 “세금을 다 냈기에 문제될 게 없다”(홍상표 홍보수석)고 말했다. 민정라인 핵심 관계자는 “사회적 관행에 비춰볼 때 과도한 액수는 아니다”라고 했다. 문제는 이처럼 도덕성 검증 기준이 점차 느슨해지는 것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청와대 내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같은 모습이 계속 연출되는 한 청와대는 앞으로도 도덕성에 대한 ‘국민 눈높이’를 맞추는 데 실패할 것이다.

한나라당이 ‘정동기 자진 사퇴’ 입장을 발표하던 시각 청와대에서는 MB가 주재하는 수석비서관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정진석 정무수석은 회의가 끝날 무렵 “급하게 연락을 달라”고 메모를 남긴 원희룡 한나라당 사무총장과 통화가 이뤄졌다. 정 수석은 통화에서 최고위원회의 결과를 ‘통보’받았다. 깜짝 놀란 정 수석이 MB에게 보고했으나 MB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MB의 표정은 매우 굳어 있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보온병’ 맞고 당황한 靑
 한나라‘유감 밝힌 靑’에 유감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MB가 보고 받고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래서 우리도 무슨 말도 입장도 내놓을 수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한 관계자는 “대통령에게 ‘어떻게 할까요’라고 차마 묻기도 힘들 정도로 무거운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 대통령의 굳은 표정은 이날 청와대의 복잡한 심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김희정 청와대 대변인도 지난 10일 ‘청와대는 당의 결정을 언제 알았느냐’는 질문에 “최고위원회의가 끝나고 연락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그나마 정 수석이 당으로부터 뒤늦게 전화를 받았을 뿐 다른 관계자들은 언론에 보도가 나간 뒤에도 “무슨 소리냐”고 되물을 정도로 상황을 알지 못했다. 정권 초기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집권 4년차 증후군 ‘MB 레임덕’ 시발점?
여권 내 힘겨루기 시작? 찻잔 속의 태풍?

청와대는 이날 한나라당이 사퇴 촉구 입장을 발표한 지 6시간이 흐른 뒤 “한나라당이 의견을 밝힌 절차와 방식에 유감”이라는 첫 입장을 밝힐 정도로 경황이 없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오늘이 MB집권 4년차 처지를 상징하는 하루로 기록될까 두렵다”고 말했다. 한 청와대 행정관은 “정권의 가장 중요한 협력자는 여당”이라며 “그런 여당이 대통령이 어려워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신들의 이익만 앞세운다면 정권은 한쪽 팔다리가 없어진 셈이다. 그게 레임덕 아니고 뭐냐”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한나라당 지도부는 청와대의 ‘절차와 방식이 대단히 유감스럽다’라는 논평과 관련해 “청와대가 언제 당과 사전 조율했는가”라며 “청와대가 인사를 마음대로 했으니 당은 당대로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인사는 “정 후보 사퇴문제는 결국 청와대가 자초한 것인데 청와대의 어제 대응은 좀 미숙했다”고 말했다.

당의 정동기 후보 자진 사퇴 주장에 대해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는 ‘신중하지 못한 결정이었다’며 공개적으로 절차상 문제점을 제기해 여당 내 갈등으로 번지기도 했다. 그러나 김 원내대표의 문제 제기에 대해 핵심 당직자는 “사퇴촉구 과정에서 청와대와 사전조율이 충분치 않았다는 점을 인정한다”면서도 “정 후보 문제로 여론이 급박하게 돌아가던 상황에서 중국 출장을 갔던 김 원내대표가 지도부 결정 과정을 놓고 뒤늦게 공개적으로 문제 삼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당·청 간의 갈등은 ‘봉합’ 내지 ‘숨고르기’ 수순에 돌입한 분위기다. 치열했던 공방은 일단락됐다.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는 지난 11일 신년 기자회견을 마친 뒤 기자들의 ‘인사 검증 관련자에 책임 물어야 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전혀 문책할 일이 아니다”라고 물러섰다. 안 대표는 또 당초 연설문에 포함됐던 ‘(정부를)견제할 것은 제대로 견제하겠다’는 내용을 뺐다. 그 이유를 묻는 기자들에게 “당·정·청이 협의해 잘 해나갈 것이다”라며 에둘러 넘겼다.

‘정동기 사퇴’ 당내 파열음
사그러들 태풍?


‘당·청 관계’의 문제는 이제부터다. 앞으로 갈등과 봉합 양상이 반복되겠지만 경우에 따라 당·청 갈등의 파열음은 더욱 커질 수도 있다. 심지어 그로 인해 ‘분당’이라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하게 될 수도 있다. 이번 사태의 원인이 진정 친이계 내부 갈등이라면 앞으로 파장과 그 후유증은 클 것으로 보인다. 파장이 일시적으로 봉합될 수는 있지만 근원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내부 갈등은 언제고 다시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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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