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시-저축은행-건설사 삼각 커넥션 의혹

눈뜨고 날린 금싸라기 땅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용인시에서 이해하기 힘든 토지 사기 논란이 불거졌다. 건설사는 물론 금융사, 지자체까지 연루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어딘지 모르게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다. 도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지난 2014년 용인시는 신봉2지구 도시개발사업 추진을 결정했다. 수지구 신봉동 402-1번지 일원에 약 42만㎡ 규모로 주거지 및 도시기반시설을 조성하는 게 주된 골자. 신봉2지구 도시개발이 완료되면 인근 지역은 7000세대를 아우르는 대단위 계획주거단지로 탈바꿈하게 된다. 다만 산155번지(1만1714㎡)에서 불거진 의혹은 쉽사리 지나치기 힘든 사안이다.

멀쩡한 땅에
토사 불법투기

신봉2지구의 핵심 위치에 자리한 산155번지는 4년 전까지 양성옥씨와 그의 부인인 김경미씨의 소유지였다. 하지만 신봉2지구 개발사업이 수립되기 직전인 2012년에 양씨는 산155번지의 소유권을 포기해야만 했다. 현재 이 땅의 주인은 모아저축은행. 그러나 양씨 부부가 주목하는 건 산155번지를 소유한 모아저축은행이 아닌 일레븐건설이다.

주택건설 및 분양 시행업체인 일레븐건설은 용인시를 거점으로 그간 대형 건설사들과 시공 계약을 맺고 분양사업을 진행해왔다. 건설업계서는 손꼽히는 ‘디벨로퍼(부동산 개발 및 시행업체)’로 손꼽힌다.

일레븐건설과 양씨 부부가 엮인 건 지난 2004년 12월부터였다. 당시 일레븐건설은 인근 건설현장서 나온 토사를 산155번지에 투기하는 기막힌 행태를 벌였다.


덤프트럭을 통해 옮겨진 토사는 순식간에 산155번지 일대 약 9000㎡의 면적에 7∼8미터 높이의 야산을 만들었다. 양씨 부부가 이 사실을 알게 된 2005년 9월에는 준공하면서 쌓았던 축대, 길, 철대문이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일레븐건설이 연루됐다는 대략적인 정황은 2007년이 돼서야 겨우 드러났지만 현재까지도 일레븐건설은 당시 상황에 대해 별다른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일레븐건설 관계자는 “시일이 많이 흘러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기 힘든 상태”라며 말을 아꼈다.

 

그렇다면 왜 일레븐건설은 납득하기 힘든 일을 벌인 걸까.

일단 산155번지의 입지적 특성을 감안해볼 필요가 있다. 일레븐건설은 1990년대 후반부터 신봉2지구 일대의 토지를 다량 매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신봉지구단위계획도를 통해서 여실히 드러난다. 다만 신봉2지구의 핵심이 되는 산155번지를 손에 넣는 건 실패했다. 향후 시행될 개발사업을 감안하면 신봉2지구 한 가운데 위치한 산155번지는 반드시 필요한 토지였다.

엇갈리는 진술
진짜 내막은?

흥미로운 점은 용인시가 피해자(양씨 부부)의 손을 들어주기보다 가해자(일레븐건설)의 입장을 대변했다는 사실이다. 용인시가 보여준 행정 처리 과정이 이를 뒷받침한다.

산155번지 일대에 일레븐건설이 토사를 불법 투기한 사실을 알게 된 양씨 부부는 용인시에 지속적으로 민원을 제기했다. 하지만 용인시는 2008년이 돼서야 용인경찰서에 고발했고 이마저도 보여주기에 불과했다. 심지어 불법 행위자가 일레븐건설이라는 사실은 중간에 누락됐고 용인경찰서는 행위자 불분명을 이유로 고발장을 반송한다.


승복하지 못한 양씨 부부는 일레븐건설을 추가 고발했다. 엉뚱하게도 이번에는 약 9000㎡에 달했던 토사 불법 투기 면적이 2000㎡으로 80% 가량 축소 기재됐고 이 진술을 토대로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원상복구돼 투기면적을 알 수 없다”는 진술이 받아들여진 까닭이다. 그러나 현장 취재 결과, 11년이 흐른 지금도 산155번지 일대는 불법 투기된 토사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상태였다.

국민신문고에 진정도 해봤지만 용인시는 “준공처리된 산지전용허가지가 붕괴돼 토사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민원”이라며 국민신문고에 허위 사실을 보고했다. 이 모든 과정은 김씨가 보유하고 있던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해당 내용을 토대로 용인시에 당시 정황을 문의했지만 뚜렷한 대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용인시 산림과 관계자는 “오래 전 일이라 자세한 내용을 파악하기 힘들다”며 “적법한 절차에 따른 민원 처리였다고 생각하지만 확실히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답했다.

[일레븐건설] 남의 땅에 군침
[모아저축은행] 해결사 노릇
[용인시] 피해 호소에 팔짱만

한술 더 떠 용인시는 납득하기 힘든 이유를 내세워 양씨 부부를 극단으로 내몰기에 이른다. 양씨 부부가 1998년에 산155번지에서 두 차례에 걸쳐 이행했던 준공완료를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무효화시키고 나선 것이다.

통상 산지를 대지로 바꾸기 위해서는 준공허가가 필수다. 준공허가가 떨어지면 전용허가를 거쳐 지목변경이 가능하다. 양씨 부부는 1998년 3월과 6월에 자신의 소유한 산155번지(1/4 지분)과 368-2번지를 합쳐 준공을 완료한 후 건축허가명의까지 취득했다.

이는 산지였던 산155번지와 잡종지였던 368-2번지가 상업용도로 개발 가능토록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산155번지의 나머지 구역은 당시 이 땅의 소유주였던 권씨를 통해 준공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어쩐 영문인지 용인시는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을 무시한 채 2008년에 해당 토지에 대한 산림형질변경허가를 취소했다. 사실상 대지였던 땅을 산지로 되돌려놓은 결정이었다. 용인시가 내세운 취소의 사유는 적지복구예치비(인허가시 내는 세금) 미납. 1997년에 내야 했던 2668만8020원의 적지복구예치비를 2008년까지 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확인 결과 양씨 부부는 적지복구예치비를 냈다는 영수증을 가지고 있었다. 영수증에는 당시 김씨가 소유한 산155번지 지분의 1/4을 제외한 나머지를 가지고 있던 권씨의 이름이 기재돼 있다. 권씨는 준공 완료 후 예치했던 2668만8020원을 절차에 따라 1998년 3월에 환급받았다. 산155번지 일부와 368-2번지에 대해서는 김씨가 서울보증보험에 해당 금액을 납부하고 준공을 완료했다.

만약 용인시의 주장대로라면 산림형질변경허가 과정에서 적지복구예치금을 외상한 상태로 건축허가를 받았다는 엉뚱한 공식이 성립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인시는 10년간 양씨 부부에게 별다른 문제제기조차 하지 않았다.

더욱이 용인시는 산림형질변경허가 취소 결정을 4년이 지나도록 양씨 부부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양씨 부부가 이 사실을 알게 된 건 산155번지의 소유권이 모아저축은행으로 넘어간 2013년 무렵이었다.

미심쩍은 흔적
커지는 의혹


토사 불법 투기건 및 산림형질변경허가 취소는 결과적으로 양씨 부부의 재산권 방어에 중차대한 결함으로 작용했다. 추후 산155번지를 잃게 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런 와중에 등장한 모아저축은행은 국면을 한층 복잡하게 만들었다.

지난 2001년 양씨 부부는 산155번지의 소유권을 경매 낙찰을 통해 취득한 전례가 있다. 이 과정에서 양씨 부부는 수십억원대 금전적 손해를 입었는데 이 무렵 도움의 손길을 내민 곳이 모아저축은행이다.

김씨는 당시에 모아저축은행 회장과 직접 대면했고 산155번지를 담보로 감정가는 200억원, 대출은 120억원까지 가능하다는 대답을 얻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과적으로는 50억원(2006년 1월)과 1년 후 10억원까지 총합 60억원을 대출받았다. 이후 6년 간 매월 6500만원씩 도합 50억원의 이자를 모아저축은행에 납부했다.

그러나 2011년 말 양씨 부부는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보유 현금 고갈로 6개월분의 이자를 연체하게 된 것이다. 다급했던 양씨 부부는 용인시 기흥구 신갈동 237번지 토지를 24억원에 매각했다는 매매계약서를 모아저축은행 실무자에게 보여주며 매매대금을 받자마자 연체이자를 완납하겠다고 거듭 표명했다. 모아저축은행의 임원이자 해당 업무 실무자였던 박모씨 역시 긍정적인 검토를 약속했다는 게 김씨의 주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양씨 부부에게 납득하기 힘든 일이 벌어진다. 긍정적인 검토를 약속한 지 3일 후 모아저축은행이 돌연 산155번지와 신갈동 237번지 등을 공동담보를 잡아 경매에 넘긴 것이다. 이로써 사전 계약했던 신갈동 237번지의 매매계약이 파기됐고 채무 변제의 길도 막혀버렸다.

공교롭게도 모아저축은행이 경매에 넘긴 산155번지의 낙찰자는 모아저축은행 자신이었다. 이전까지 대지로 인정받던 산155번지는 산지로 평가돼 시가의 1/6에 불과한 61억원으로 감정이 이뤄졌다. 이후 김씨에 대한 대출채권액과 맞아떨어지는 63억원에 산155번지에 단독 입찰한 모아저축은행은 2012년 6월에 유찰 없이 1차 경매기일에 낙찰받았다. 결과적으로 김씨는 63억원에 불과했던 땅에 6년에 걸쳐 50억원의 이자만 쏟아 부은 채 소유권을 상실한 셈이다.


김씨는 “대지로 감정 받아 법원에서 경매 낙찰받았던 산155번지가 다시 산지로 둔갑할 때까지 어떤 언질도 받지 못했다”며 “이 땅이 대지가 아닌 산지로 60억원대 가치였다면 50억원이나 6년간 이자까지 내면서 가지고 있을 이유가 있겠나.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고 주장했다.

대지가 산지로? 이상한 토지변경
대출금 압박하더니 직접 낙찰

현재 모아저축은행은 낙찰받은 산155번지를 4년째 되팔지 않고 있다. 산155번지를 처분하고자 수차례에 걸쳐 매각공고를 냈지만 무위에 그쳤다는 게 모아저축은행의 설명이다. 그사이 매각가격은 60억원에서 80억원으로 30% 이상 올랐다. 그만큼 새 주인 찾기는 더 힘들어졌다.

공교롭게도 현장 확인 결과 산155번지 일대에는 유치권 설정을 암시하는 듯한 10여 곳의 가건물이 곳곳에 방치돼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심지어 산155번지의 전 소유주였던 양씨 부부가 준공비용 보전을 이유로 설치한 가건물에 대해서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모아저축은행이 시기를 봐서 산155번지를 일레븐건설에 넘기려 한다고 김씨가 해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60억 땅에
이자만 50억

그러나 모아저축은행은 양씨 부부의 주장에 대해 강하게 반박하고 있다. 당시 양씨 부부는 대출금에 대한 이자조차 감당하지 못했고 은행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경매를 밟았다는 게 주된 요지다. 산155번지가 산지인 만큼 해당 지목에 다른 감정을 거쳤고 양씨 부부가 말하는 무언의 의혹에 대해서는 대꾸할 가치조차 없다는 입장이다.

모아저축은행 여신처리팀 관계자는 “당시 양씨 부부는 모아저축은행에서 대출을 받고서도 이자를 6개월간 내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산155번지의 소유권을 잃게 된 직접적인 이유가 됐다”며 “모아저축은행은 분명히 적법한 절차를 거쳐 모든 과정을 완료했다. 벌써 4년이 넘은 이 일을 지금에 와서 문제시 삼는 이유를 도통 알 수 없다”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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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