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지경세태> 화장하는 초딩들 천태만상

초등생 맞아? 앳된 얼굴에 덕지덕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재필 기자 =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여성의 화장은 사람을 변화시켜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한다. 꾸밈을 통해 전보다 더 아름다워지려는 노력은 나이를 떠나 여성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시대가 발전할수록 화장에 대한 관심은 세대가 앞당겨져 초등학생들까지 확산됐다.

초등학교 하교시간에 길을 지나다 보면 간간히 손거울을 꺼내 얼굴을 살피는 여학생들을 발견할 수 있다. 색이 들어간 립밤을 꺼내 바르는 학생들도 보인다. 도드라지지는 않지만 초등학생들도 얼굴꾸밈에 신경을 쓰는 모양새다. “요즘 아이들은 발육이 빠르다”는 말처럼 화장에 대한 관심 역시 빠르게 시작되고 있다.

화장영상 인기
직접 찍기도

과거부터 지금까지 10대 여학생들의 화장이야기는 계속해서 불거져 나오고 기성세대들은 민낯이 가장 아름답다며 10대들의 꾸밈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유행과 개성이라는 코드가 확실하게 자리 잡은 지금 아이들은 자신을 돋보이기 위한 꾸밈에 여념이 없다. 유튜브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에 들어가 10대 화장이라고 검색을 하면 다양한 결과가 나온다.

화장법도 다양하다. 기초 화장법부터 시작해 투명메이크업, 청순메이크업 등 가지각색의 화장법이 준비되어 있다. 이 못지않게 초등학생 화장영상들도 많다. 인기 영상들은 조회수가 평균 4만∼5만 정도로 높다. 화장에 대한 초등학생들의 관심을 보여주는 셈이다.

이젠 초등학생도 화장을 하는 시대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중·고등학생들처럼 티가 나게 하지는 않지만 기본적인 꾸밈을 한다는 이야기다. 이에 일각에서는 어디까지를 화장으로 말해야 하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폼 클렌징 및 BB크림을 바르는 것을 가지고 화장이라 말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화장품 브랜드들은 주 고객층이 20대가 아닌 10대를 위한 제품을 내놓고 있다. 업계가 따로 제품을 만든다는 것은 그만큼 해당 제품에서 매출이 뒷받침을 해주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10대 화장품 시장은 5년 전부터 매년 20% 이상씩 성장해 연 2000억원 이상의 규모로 커졌다고 한다.

이는 10대의 화장품 소비욕구가 사회적으로 표출이 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최근엔 김새론, 김소현과 같은 10대 배우들을 화장품 모델로 선정해 모방심리를 이용한 마케팅을 펼치기도 했다.

아이들 필수 아이템 색조화장품 ‘틴트’
계속 성장…걸리버 된 10대 화장품 시장

지난 달 27일, 서울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아이들을 인솔하고 나오는 교사에게 통해 여학생들이 화장을 얼마나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했다. 교사는 A씨는 “학교 안에서는 티가 나게 하지는 않는다”며 “틴트나 립밤정도 바르고 다니는 아이들이 있다”고 답했다.

주로 몇 학년부터 화장을 하냐는 질문에는 “빠르면 4학년부터 주로 고학년이 되면서 시작하는 것 같다”고 답했다. 틴트는 입술에 바르는 것으로, 일정 시간동안 해당 색이 나도록 해준다. 액체로 된 워터틴트와 젤 형식으로 만들어진 젤틴트가 있다.

28일에는 다른 지역 초등학교 관계자를 찾아가 학생들이 어느 정도 화장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의 답변을 얻었다. 그는 “한 두 그룹 정도로 적다. 주말에 돌아다니면 그때 좀 눈에 보이게 화장을 할 정도지 우리 학교 아이들은 평소 화장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이들 화장은 학부모들의 케어여부에 따라 다를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초등학생들의 화장품 사용에 관한 견해를 학부모들에게 물었다. 학부모들 마다 반응은 제 각각으로 달랐다. 특히 화장품 사용에 대한 견해가 갈렸다. 한 학부모는 “초등학생이 화장을 하지는 않는다. 한다면 중·고등학생들이 할 것”이라며 “아이와 어울리는 친구들을 보면 화장하는 아이들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화장품을 사준 적도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곁에 있던 학부모는 이에 생각보다 많다. 눈에 띄게는 안하지만 학교에서 학부형 생활을 하다보면 보이기 시작 한다고 반박했다. 이어 “화장의 범위를 어디까지 정하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많이 잡으면 틴트가지는 80%정도가 사용하고 있다”고도 했다.

립밤은 기본
아이라인까지

또 자녀에게 화장품을 사주기도 했다며 요즘은 입술에 바르는 틴트까지는 괜찮다고 했다. 다른 지역의 학부형은 가끔 학교를 지나가다 보면 아이라인을 한 아이도 보여 깜짝 놀라곤 한다며 아이들이 아이라인까지 하는 것은 심한 것 같다고도 했다.

158명의 여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지난 5월 형지엘리트에서 SNS를 통해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이 중 ‘언제부터 화장을 시작했는가’라는 항목을 보면 중학교 1학년이 34%로 제일 많았고 중학교 2학년이 24% 그 다음으로 초등학교 고학년이 21%로 파악됐다. 5명 중 1명꼴로 초등학교 시절부터 화장을 한 셈이다.

그렇다면 초등학생들은 어떤 화장품들을 선호할까. 서울 5개 지역의 화장품 매장(아리따움, 네이처리퍼블릭, 스킨푸드, 올리브영)에 물어 봤다. 매장에선 공통적으로 “학생들이 혼자 사가는 경우는 없고 부모님과 와서 사간다”며 학생들에겐 부담스러운 가격이라는 의견을 보였다.
 

구매하는 비율은 매장의 위치에 따라 달랐다. 초등학교에서 거리가 떨어져있는 매장은 10명 중 2명, 학교 근처에 있는 매장은 10명 중 7명이 사간다고 답했다. 주로 사가는 물건으로는 BB크림, 틴트, 부드러운 라인류, 핸드크림, 썬크림이 있으며 립밤, 틴트가 제일 많이 나가고 있다고 했다. 파우더도 사가냐는 질문에 많으면 한달에 4명 정도가 사간다는 답변과 함께 기름종이 파우더를 많이 사간다고.

한 매장에서는 다이소도 화장품을 팔고 있으니 한번 알아보라는 말을 했다. 가격이 부담스러운 학생들이 이용하려 한다는 것. 하지만 알아본 결과 다이소는 지난 2011년 이후로 초등학생들에게 화장품을 판매하지 않았다.

매장에서 판매되는 화장품이 성인 피부를 대상으로 만들어져 피부가 약한 아이들이 사용하면 문제가 생길까봐 판매를 하지 않는다는 입장. 초등학생에게 화장품을 판매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적 조치가 없더라도 자체적으로 통제하고 있다는 답변을 얻을 수 있었다. 한편 초등학생들에게 제일 위험하다고 지적되어 오던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판매하는 화장품은 발견할 수 없었다.

부모님과 매장서 구매…선물 받기도
좀 노는 불량아? “요즘은 다 그래”

학부모와 10대 여학생들의 화장에 대한 갈등은 오랜 시간 지속되어 왔다. 시간이 지난 지금은 학부모측의 입장이 많이 관대해진 편으로 파악된다. 성동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 B씨는 아이들이 화장품을 학교에 가지고 올 경우 압수를 하기 도 한 적이 있지만 학부모의 요청으로 돌려준 적이 종종 있다고 했다.

학부모 측에서 자녀의 화장을 지도·관리하고 있다며 자녀에게 화장품을 돌려주라고 했다는 것. 초등학생 조카에게 화장품을 선물해 주기도 한다는 주민도 있었다. 그는 요즘 여학생들에게 기본적인 화장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말했다.

치장에 크게 관심이 없어도 친구들과 쉽게 어울리기 위해서는 신경을 써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아이들이 화장을 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예전엔 화장을 하는 학생들은 좀 노는 학생들 취급을 받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초등학생들이 계속해서 화장을 하는 것에 여전히 우려를 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특히 화장품 사용으로 인한 부작용을 걱정하는 측면이 컸다. 기존의 제품들이 성인 피부를 대상으로 만들어졌고 색조화장품 같은 경우에는 인체에 유해한 중금속들이 들어있어 무분별한 사용은 위험하다는 주장이다. 화장품은 음식이나 약처럼 먹는 것이 아닌, 피부를 통해 흡수되는 것이라 심각할 정도의 부작용을 일으키는 경우는 드물다.

매장에 아이들
파우더도 불티

하지만 화장품에 함유된 화학물질 등으로 인한 가려움, 피부염 등이 일어날 수 있다. 10대 화장이 여드름에 관여한다는 말도 있다. 대한여드름학회에 따르면 여드름은 피지의 과다 생성으로 발생된다. 이에 색조화장을 하거나 깨끗하게 화장을 지우지 않는다면 잔여물이 모공을 막아 여드름을 유발할 우려가 높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초등학생들이 아닌 사춘기 시절의 청소년들에게 일어나는데 현대에 들어 사춘기가 앞당겨지며 12세 이하에서도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서대헌 서울대학병원 교수는 “성인과 달리 청소년의 피부는 피지분비가 많아 화장을 하는 것이 좋지 않다”며 “어린 나이부터 화학물질로 이뤄진 화장품을 바르면 피부를 자극해 피부손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지난 4월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는 어린이, 청소년들의 무분별한 화장품 사용을 방지하고 연령대별로 화장품 사용에 관한 내용을 안내하기 위해 ‘소중한 내 피부를 위한 똑똑한 화장품 사용법’ 책자를 전국 초·중·고등학교에 배포했다. 굳이 사용한다면 발생할 문제를 미연에 방지한다는 취지에서다. 책자에는 화장품 구입 요령, 안전하게 사용하는 법, 부작용 사례 등을 담았다.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지금의 청소년들은 자신만의 개성도 강하고 표현할 줄 아는 프리틴(preteen)이라 기성세대와 다르다는 말. 프리틴은 정신적으로 청소년기와 다를 바 없이 조숙한 면모를 보이는 초등학교 4~6학년 사이(10~12세)의 학생들을 지칭하는 단어다.


업계가 10대를 겨냥한 마케팅을 펼치는 이유도 이 세대의 화장품에 대한 활발한 소비욕구 때문이다. 성동구의 초등학교 관계자는 "아이들 입장에서 보면 화장은 자기 개성의 표출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지금 세대에 화장은 탈선을 하거나 학업에 지장을 주는 것이 아닌 친구들과 공유하고 즐기는 방법이 생기는 것으로 보인다고도 했다. 초등학생의 화장이 일반화가 되고 있어 막기보다는 부모가 자녀들에게 올바른 화장 지도가 필요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몇 년 전부터 국내에 외모지상주의라는 말이 떠돌고 있다. 외모에 우선적인 가치를 두고, 외모와 상관없는 사항에서도 외모를 우선적으로 적용하는 관점을 말한다. 첫인상, 보기도 좋은 떡 등 외견의 미추를 따지는 것은 시기를 막론하고 있어 왔으나 현대에 들어 심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있다.

취업과 같이 생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부분에도 여성의 경우 성형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 연예인들의 활동 장면, 웹툰 등 아이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대중매체에서도 잘 생기거나 못생긴 모습이 부각돼 대조된다. 일부 콘텐츠의 경우는 주인공일수록 예쁜 모습으로 나온다. 또 기본적으로 화장을 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지난 2014년 숙명여대학원 석사 김미지의 ‘초등학생들의 화장품 사용 실태 및 구매행동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아이들이 화장을 하는 이유로 연예인 등 일정 대상의 모습을 보며 따라하려는 모방심리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여드름 주범
사용주의 필요

화장품을 사용하는 이유에 대한 조사를 보면 ▲예뻐 보이기 위해서 ▲친구들이 사용하기 때문에 ▲나의 개성을 강조하기 위해 ▲호기심 때문에 ▲피부당김 등의 이유로(어쩔 수 없이) 사용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대중매체를 접하기 쉽고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업계의 마케팅의 영향도 크다는 점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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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