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특집-굿바이 2010> ①해 넘기는 정치권 의혹

새 해 떠야 어두운 그림자 걷힐까

한화·태광·C&그룹 정·관계 로비의혹 제자리걸음
시동 건 청목회 입법 로비 수사 결말은 ‘다음편에’
불법사찰 배후엔 누가?…국정조사·특검까지 갈까

2010년이 저물고 있다. 세종시 정국으로 시작된 올 한해는 6월 지방선거와 7월 재보선, 각 당의 전당대회 등 유난히 선거가 많았던 해다. 천안함·연평도 사태로 남북 사이에 찬바람이 불었고, G20 정상회의 개최로 전 세계의 시선을 한몸에 받기도 했다. 정치권은 다사다난했다. 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과 정치권과 관련된 각종 검찰 수사로 한시도 편할 날이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의혹들 중 일부는 해를 넘길 것으로 보인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다. 하지만 잠시 시선에서 멀어졌을 뿐 ‘현재진행형’인 사안들이 상당하다. 그리고 이 중 여의도에서 시작됐거나, 여의도를 향해 몰아치던 의혹들은 해를 넘길 기세다.

정치권을 겨냥한 의혹 중 대부분은 검찰발 사정태풍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한파보다 한 발 앞서 여의도를 찾은 기업들의 정·관계 로비 의혹 수사가 그것이다.

검찰이 공을 들이고 있는 한화·태광·C&그룹의 비자금 조성 의혹 수사에 정치권이 얽혔다. 수사가 ‘비자금 조성’에서 ‘비자금의 사용처’에 대한 것으로 초점을 옮겨가자 정·관계 로비 의혹이 고개를 내민 것. 재계를 시작점으로 한 사정태풍이 여의도를 향해 몰아치게 된 것이다.

검찰발 사정 칼바람
비자금 살생부 풀릴까


태광그룹의 정·관계 로비 의혹은 케이블TV업체 큐릭스 인수 과정에서 불거져 나왔다. 태광그룹이 큐릭스 인수를 위해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에 걸친 3~4년간 방송통신위에 로비를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관련, 전·현 정권 핵심 인사들이 관련자로 지목되고 있다.

진성호 한나라당 의원은 “(태광그룹 사건은)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가 (김대중 정부의) 문화부 장관을 했던 시절, 또 (노무현 정부의) 양정철 전 청와대 비서관이 방송정책을 관장했을 때 의혹의 싹이 트지 않았느냐”고 전 정권 핵심 인사들의 태광그룹 정·관계 로비 의혹을 제기했다.

실제 정계 일각에서는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이 전 정권 실세와 486 인사들과 두터운 친분을 나눴다는 말이 흘러나오며 민주당을 바짝 긴장케 했다.

반면 박지원 원내대표는 태광 로비의 배후로 ‘밀양라인’을 지목했다. 그는 “태광그룹 사건을 제보한 사람이 ‘방송법 시행령 개정이 태광그룹을 위한 맞춤형 개정’이었다고 하는데, 당시 방송법 시행령 개정에 관계된 사람들이 전부 ‘밀양라인’”이라며 경남 밀양 출신 정·관계 인사들을 정조준했다.

하지만 검찰이 이호진 회장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 태광그룹이 그룹 차원에서 수년 동안 관리해 온 것으로 보이는 정·관계 인사 100여 명의 명단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여의도에 드리워졌던 ‘살생부 공포’는 제자리에서 주춤거리고 있다. 당장이라도 여의도에 칼끝을 드리울 것 같았지만 검찰이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C&그룹 수사도 마찬가지다. 검찰 수사에서 자금력이 취약했던 C&중공업이 전남도 조선업에 진출하게 된 경위와 금융권에서 지원받은 1조3000억원대의 대출이 상당부분 부당하게 이뤄진 점 등 정·관계 로비를 의심할 수 있는 부분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C&그룹이 정·관계 로비용으로 제공한 법인카드를 받았거나 로비 명단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전·현 정권 인사들이 이니셜로 전해졌으며, 검찰이 2008년 임병석 회장이 한나라당 의원들을 만나 금융권 대출 청탁을 한 단서를 일부 확보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검찰 스스로도 C&그룹 수사와 관련, “정거장일 뿐 종착역이 아니다”라고 강조했음에도 ‘종착역’으로 갈 티켓은 얻지 못하고 있다. 임 회장이 검찰 수사에서 완강하게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검찰이 기업들의 비자금 수사를 넘어 정·관계 로비의혹까지 겨냥하면서 이들과 직·간접적으로 인연을 맺었던 정치인들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등 흉흉한 소문이 날로 살을 더해갔지만 개점휴업 상태인 검찰을 보니 결국 ‘용두사미’로 끝나는 거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청목회 입법 로비
후원금의 진실은 무엇?

검찰은 기업의 정·관계 로비 의혹 뿐 아니라 ‘청목회’의 국회 입법 로비 의혹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는 정치권도 예의주시하고 있는 사건이다. 청목회가 청원경찰법 개정과 관련, 여야 의원 수십명에게 후원금 로비를 벌였다는 것이 주된 내용인 만큼 검찰 조사에 따라 파장이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나느냐 ‘태풍이 찻잔을 벗어나느냐’가 판가름 나기 때문이다.

검찰은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간 기업 관련 수사와는 달리 청목회 사건에서는 초고강도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은 수사 대상에 오른 국회의원들에 대한 계좌 추적을 완료한데 이어 국회의원 10여 명의 후원회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이 국회 회기 중 대대적으로 현역 국회의원의 후원회 사무실 등을 동시에 압수수색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러나 정치권을 의식한 듯 압수수색 후 브리핑까지 열어 “압수수색을 했다고 해서 반드시 수사 대상이라는 뜻은 아니”라며 “이미 많은 사람이 클리어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검찰은 후원금 수수에 대가성이 뚜렷할 경우 정치자금법 위반 말고도 뇌물죄 적용을 검토하는 등 강력한 처벌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초고강도 수사에 대해 정치권의 불만이 팽배하다. “국회의원 턱밑에 칼이 들어왔다” “검찰이 사법권을 함부로 휘두른다면 그 칼은 국민에게 무서운 무기가 된다”며 검찰 수사를 비판하고 있는 것.

청목회 사건도 사건이지만 ‘후속탄’을 염려한 탓이다. 지난 2004년 ‘오세훈 선거법’으로 소액 후원금 제도가 생긴 후 이번 사건과 같이 기업, 협회 인사들이 개인 명의로 후원금을 낸 사례가 적지 않다. 부인, 친지, 친척 등 측근들을 통해 소액 후원금을 전달해 그 출처를 명확히 알 수 없는 경우도 상당하다.

결국, 청목회 사건이 어떻게 흘러가느냐에 따라 농협 불법 정치 후원금 수사 등 후속 사건의 방향도 정해지게 된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달이 가기 전 청목회로부터 후원금을 받은 의원들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한다는 계획이다. 13일 한나라당 권경석 의원을 시작으로 유정현·조진형 의원과 자유선진당 이명수 의원, 민주당 최규식·강기정 의원 등에 대해 소환 조사를 끝낸다는 것.

불법사찰 배후
빅브라더를 찾아라

그러나 청목회 입법 로비에 대한 논란 속에 해를 넘겨서야 사건이 마무리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 밖에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이명박 대통령의 ‘후원자’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에 대한 수사도 남아있다.


정치권이 이를 갈고 있는 의혹도 있다.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이다.

이 사건에 대한 검찰 조사는 이미 마무리됐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지난 8월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과 김충곤 점검 1팀장을 구속 기소하고, 원충연 전 조사관을 불구속 기소했으며 이들의 불법 사찰을 ‘이 전 지원관의 과잉 충성에 의한 독단적 행동’으로 결론지었다.

서울중앙지법은 이 전 지원관에게 징역 1년6월, 김 팀장에게 징역 1년2월, 원 전 사무관에게 징역 10월을 선고, 민간인 불법사찰과 관련된 공소사실 모두를 유죄로 인정했다. 그러나 청와대 등 윗선의 개입 여부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정치권이 주목하는 것은 이 부분이다. ‘청와대 대포폰’ ‘BH 지시사항’ 등으로 의혹을 키우며 청와대를 겨냥하고 있는 것.

정치권에 대한 전방위 사찰 의혹도 몸집을 키우고 있다. 폭로가 터져 나올 때마다 불법사찰 대상이 늘어 야권 인사들은 물론 친이계 핵심 인사나 친박계 관계자들, 심지어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한 사찰 의혹까지 제기된 상태다.

민주당은 청와대 불법사찰, 대포폰에 대한 국정조사와 특검을 요구하고 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민간인을 사찰하고, 정적을 감시하고 양심적인 민주인사를 탄압하는 것은 그 어떤 논리로도 정당화 될 수가 없다”며 “청와대 불법사찰 전모를 밝히기 위한 국정조사를 수용하라”고 촉구했다.


당내에서는 이 대통령이 불법사찰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돼 있다면 대통령직을 걸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차영 대변인은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도청 사건을 은폐하려다가 결국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도청도 도청이지만 대통령이 사실을 은폐하고 불법을 저지르는 것은 결코 용서할 수 없다. 그런데 청와대는 한 달이 지나도록 이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며 한껏 날을 세웠다.

정치권에 대한 전방위 사찰이 진행됐는지, 그 배후에 선 것이 정말 청와대인지…. 의혹은 해를 넘겨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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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