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대국민 사기극을 벌인 폭스바겐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소비자를 기만한 것도 모자라 정부의 지침마저 철저히 무시했던 정황이 연이어 드러나는 형국이다. 진정성이 결여된 폭스바겐의 행태 때문에 애꿎은 소비자들만 발을 동동 굴러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폭스바겐 배출가스 조작 사태는 지난해 10월 환경부가 차량 배출가스 재순환장치(EGR)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면서 불거졌다. 당시 환경부는 티구안 유로5 차량 등에서 일정조건에 이르렀을 경우 EGR 장치가 고의적으로 작동 중단되도록 조작(임의설정)됐다고 결론 내렸다. EGR 작동이 중단되는 조건은 급가속 및 에어컨 가동, 핸들조작 여부 등이다.
개선명령 뭉개
이들 조건은 실내인증 과정에서는 작동하지 않는 기능들이다. 이 점에 주목해 환경부는 폭스바겐이 처음부터 주행연비를 높일 의도를 갖고 실내인증기준만 통과되도록 EGR 장치를 조작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후 환경부는 폭스바겐 코리아에 리콜을 명령하면서 계획서에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조작했다는 ‘임의설정’ 문구를 삽입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이를 폭스바겐이 계속 거절하면서 리콜은 차질을 빚었고 폭스바겐이 제출한 리콜계획안은 벌써 3차례나 반려됐다.
이런 상황에서 폭스바겐의 고의적인 배출가스 조작 혐의를 뒷받침하는 또 다른 증거가 드러나면서 파장이 더욱 커지고 있다. 폭스바겐이 5년 전 환경부로부터 배출가스 과다 배출이 적발돼 개선 요구를 받았지만 이를 무시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지난 15일, 서울중앙지검 형사5부(부장 최기식)에 따르면 2011년에 환경부는 폭스바겐코리아에 경유차의 질소산화물(NOx) 과다배출 원인과 개선 방안을 제출하라고 요구했지만 폭스바겐 측은 이를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교롭게도 폭스바겐과 함께 환경부로부터 지적 받은 나머지 5개 업체는 요구사항을 충실히 이행해 대조를 이뤘다.
이틀 전 폭스바겐코리아의 임원인 윤모씨를 참고인 신분으로 불렀던 검찰은 이날 다시 윤씨를 불러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했다. 폭스바겐이 배출가스 관련 문제점을 지적받은 후 개선하지 않은 경위를 파악하고자 했던 조치였다. 검찰은 폭스바겐의 독일 본사 관계자까지 국내로 건너와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했으면서도 원인과 개선방안 제출을 미루고 이행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소비자 무시 이어 정부도 농락
버티면 된다…허점 파고든 배짱
검찰은 폭스바겐에 사기죄 적용을 검토 중이다. 폭스바겐이 판매 과정에서 ‘고연비·친환경’을 언급하며 ‘클린디젤’ 차량이라고 소비자들에게 광고한 사실은 명백한 사기 행위에 해당한다는 게 핵심이다. 차량의 결함을 알면서도 이를 설명하지 않았다면 ‘부작위에 의한 기망’으로 해석할 수 있는 사안이다.
이 같은 판단은 대법원 판례에 따른 것이다. 대법원은 “거래에 있어 중요한 사항에 관한 구체적 사실을 신의성실의 의무에 비춰 비난받을 정도의 방법으로 허위 고지했다면 사기죄의 기망행위에 해당한다”는 판례를 세운 뒤 관련 사건에 적용해왔다. 다만 폭스바겐 책임자들이 자사 차량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는지 여부를 먼저 규명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혐의 적용 문제는 뒤로 미룬 상태다.
폭스바겐이 미온적 태도를 보이는 사이에 사태는 더욱 확산되고 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폭스바겐의 부정행위 혐의가 추가로 밝혀진 까닭이다. 배출가스 저감장치 조작혐의에 이어 검찰조사로 드러난 부정행위는 미인증 차량 판매(5만여대), 연비시험성적서(48건) 및 배출가스·소음인증 성적서 위조(43건) 등이다. 검찰은 차량을 급하게 팔기 위해 인증을 받아야 될 것을 받지 않거나 다른 차량의 시험성적서를 조작해 제출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우에 따라 폭스바겐 책임자에게 사문서 변조 및 변조 사문서 행사,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를 적용 가능하다. 대기환경보전법과 소음·진동관리법 위반 혐의 역시 의심받긴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스바겐은 진정성 있는 사죄를 하지 않고 있다. 배출가스 저감장치 조작 사실이 밝혀진 후 신문광고, 인터뷰, 국정감사 등을 통해 사과의 뜻을 전했지만 검찰수사 결과에 대해서는 별다른 입장 표명이 없는 상태다. 이렇다 보니 리콜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으며 구체적인 보상계획도 아직까지 세워지지 않았다.
최악의 경우 폭스바겐에게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질 수도 있다. 대기환경보전법 등 관련법에 임의설정에 대한 뚜렷한 제재 방안이 없기 때문이다. 환경부가 임의설정 혐의로 과징금 부과 조치를 내린 폭스바겐 차량만 12만5522대(15개 차종)에 달하지만 관련법에 임의설정 위반에 대한 과징금 상한선이 차종당 10억원으로 제한돼 총액은 141억원에 불과하다. 리콜 명령을 지키지 않았을 경우 이를 제재할 수 있는 방안도 없다. 폭스바겐이 배짱을 부릴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배째라”
업계 관계자는 “전 세계에서 같은 혐의로 추궁당하는 폭스바겐은 피해자 구제와 배상에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입할 예정인데 유독 국내에서는 고자세를 취한다”며 “느슨한 처벌 수위를 이용한다고 해석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