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스러진 달 (34) 권총 탈취

일본서 의기투합…계획대로 ‘척척’

소설가 황천우는 지금까지 역사소설 집필에 주력해왔다. 역사의 중요성,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알고 또 미래를 올바르게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 과정에서 ‘팩션’이란 장르를 만들어냈다. 팩트와 픽션, 즉 사실과 소설을 혼합하여 교육과 흥미의 일거양득을 노리기 위함이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의심의 끈을 놓지 않은 사건을 들추어냈다. 필자는 그 사건을 현대사 최고의 미스터리라 칭함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1974년 광복절 행사 중 발생했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다.

새벽 2시 무렵 정동일이 어둠 속에서 오사카 미나미 경찰서 다까즈 파출소를 주시하고 있었다. 지난 저녁 무렵 활발하게 움직였던 파출소 내부의 움직임이 자정이 가까워지자 뜸해지기 시작했고 두 시경이 되자 적막감이 돌 정도로 한산했다.

그를 살피며 품속에서 검정색 마스크를 꺼내 쓰고 저만치 앞에, 역시 어둠속에서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차주선에게 손짓으로 신호를 보내고 서서히 파출소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저녁 무렵 오사카 외곽 한적한 곳에 위치한 음식점 밀실에서 정동일이 차주선을 만났다. 이제 일본에서의 일을 서서히 정리해야 할 시점에서 최종 점검할 요량으로 동일의 요청에 의해 이루어진 회합이었다.

“문석원의 심리상태는 문제없습니까?”

“얼마나 심하게 다루었든지 오줌까지 지렸다 합니다. 그 일로 풀은 죽었지만 앞으로 진행될 사건에 대해 체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모양입니다.”


동일이 가볍게 혀를 찼다.

“그렇다고 의지까지 꺾어버린 건 아니겠지요?”

“지금 그 부분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속적으로 정신 교육을 강화하고 또 스스로 비자를 발급받도록 했습니다.”

“비자야 제 손에서 처리하면 될 일이고. 그러면 이제는 권총만 준비하면 되겠습니다.”

“그 문제로 즉 총기 문제 때문에 저 역시 정 팀장을 만나보아야겠다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무슨 사유로…”

“그 일을 문석원에게 맡겨 보고픈 생각입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문석원의 정신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는 차원에서 직접 권총을 구하도록 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동일이 잠시 침묵을 지켰다 가볍게 고개 저었다.

“문제 있습니까?”

“두 가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말씀주시겠습니까?”

“먼저 문석원의 정신교육이 확고하게 이루어지지 않았을 경우입니다. 그런 경우 권총 탈취를 기회로 스스로 일을 망칠 수도 있습니다. 즉 그 과정에서 일부러 검거되어 사건에서 완전히 벗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주선이 가볍게 신음을 내뱉었다.

“다음은 문석원이 정말로 일에 대한 확신을 지니고 있을 경우입니다. 그런 경우라도 그 친구가 자력으로 권총을 탈취할 수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직접 경찰서 혹은 파출소에 들어가서 탈취해야 하는데 그 친구에게 그게 가능하겠느냐 이겁니다. 아울러…”

“말씀하시지요.”

“차 사장, 우리가 원하는 건 프로가 아닙니다. 그저 일시적인 꼭두각시를 원할 뿐이지요.”

“하긴 그렇지요. 행여나 정말로 프로라면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 알 수 없지요.”


“당연합니다. 그런 연유로 지금의 상태, 그저 객기만 앞세우는 20대 초반의 좀 덜 떨어진 상태를 유지함이 가장 이롭지요.”

“그러면 어떻게 처리하렵니까?”

“제가 움직여야지요.”

“정 팀장께서?”

주선이 마치 이외라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왜요, 그러면 안 되겠습니까?”


“그게 아니라 뭐 그런 일까지…”

동일이 잠시 침묵을 지켰다.

“차 사장, 지금 이 일은 대한민국의 운명을 떠나서 사장님과 제 운명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겁니다.”

주선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이 사건에서 총기의 출처가 어디인가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그러면 어디서…”

“차 사장께서 저를 좀 도와주셔야겠습니다.”

“그야 이를 말입니까.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당연히 도와드려야지요. 오히려 제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이었건만.”

차주선이 송구스럽다는 듯이 자신의 손을 마주잡고 비벼댔다.

“네 일 내 일이 어디 있습니까. 여하튼 일전에 말씀하셨듯이 쇠뿔도 단김에 뽑으랬다고 이 자리를 파하고장소를 한번 물색해보지요.”

차주선이 잠시 그 말의 의미를 생각하더니 호탕하게 웃었다.

“어디로 정하려 합니까?”

“오사카에서 찾아보아야겠지요?”

파출소 잠입 총기 탈취 성공
의문점 남는 납치의 전말은?

“굳이 오사카에서 취하려는 데에는 그 사유가 있습니까?”

“어차피 문석원과 연계시키고자 한다면 오사카 지역이 알맞습니다. 다른 곳에서 일을 벌이면 오해의 소지를 남길 수 있습니다.”

“저는 그 반대로 생각했습니다만. 결국 그렇군요.”

“그래서 한번 차 사장과 함께 이곳에서 장소를 물색해보려 합니다.”

주선이 고개를 끄덕여 동조를 표했다. 이어 의기투합된 두 사람이 곧바로 자리를 파하고 차주선의 차에 올랐다.

“어디로 방향을 잡을까요?”

“문석원이 거주하는 곳이 오사카의 동쪽이니만큼 남쪽으로 방향을 잡아보지요.”

주선이 남쪽을 되뇌며 액셀을 밟았다.

“가급적이면 혼란한 곳 보다 한산한 곳이 좋을 터인데.”

“오히려 그 반대 아닙니까. 혼란한 틈을 타서.”

주선이 순간적으로 동일을 향해 고개 돌렸다.

“혼란스러우면 자신의 총기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되지요. 행여나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니까요.”

주선이 슬그머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살피던 동일이 갑자기 무슨 생각이 일어났는지 한 방향을 주시하며 그리 차를 몰도록 주문했다.

“깜박했습니다. 마침 적당한 파출소가 있는데 그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어디입니까?”

“다까즈 파출소라고, 일전에 일이 있어 들러봤는데 괜찮을 듯합니다. 일단 가서 한번 관찰해봅시다.”

주선이 동일이 일러주는 방향으로 핸들을 틀어 가기를 잠시 후 한적한 곳에 아담한 파출소가 시선에 들어왔다.

두 사람이 승용차 안에서 파출소와 주변 정경을 훑어보았다. 주변에 여러 가구가 배치되어 있건만 공허한 느낌이 들 정도로 한산해 보였다.

“역시 정 팀장의 안목에 감탄할 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잠입해서 권총을 탈취할 계획입니까?”

“이제 사장님과 함께 구상해봐야겠지요.”

동일이 파출소 후문으로 접근했을 시점에 주선이 당당하게 파출소 앞문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어 근무 중인 경찰관 두 명과 다정하게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살피던 동일이 품에서 만능열쇠를 꺼내 조심스럽게 문을 땄다.

발소리를 죽여 앞으로 나아가기를 잠시 저만치 앞에서 경찰들과 담소를 나누는 주선과 시선이 마주쳤다. 잠시 눈빛을 교환하고는 동일이 다시 파출소 내 당직실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칠흑의 어두움 속에서 숨소리만 흐릿하게 들리고 있었다.

이미 여러 번의 관찰을 통해 파출소 저녁 근무가 2인 2교대로 진행된다는 사실 그리고 전반 근무조는 열 두 시 이후 당직실에서 취침에 들어간다는 사실 역시 알고 있었던 터였다. 하여 그 틈을 노리기로 하였고 행여나 근무조들이 인기척을 느낄까봐 주선으로 하여금 그들의 시선을 끌기로 했던 터였다.

당직실의 문을 닫은 동일이 볼펜처럼 생긴 초소형 손전등을 손으로 가리고 켜서 바닥을 향하도록 했다. 손바닥 사이로 흘러나오는 빛에 희미하게나마 방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었다. 멀지 않은 다다미에 두 사람이 누워 있었고 그들 바로 가까이에 있는 옷걸이에 권총 두 정이 사이좋게 걸려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흡사 뱀처럼 미끄러지듯이 다가선 동일이 걸려 있는 두 자루의 권총집을 풀어 역시 미끄러지듯이 방을 벗어나서는 문을 닫았다. 밖으로 나서자 주선이 아직도 경찰들과 즐거운 표정으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주선에게 눈짓을 주면서 신속하게 파출소를 벗어나 차로 이동했다. 오래지 않아 주선도 소기의 임무를 완수하고 차로 돌아왔다.

“천천히 움직이지요.”

동일의 제안에 주선이 이동할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멍하니 동일을 주시했다.

“정말 대단합니다. 어떻게 이리 쉽게 파출소에서 권총을 한 자루도 아닌 두 자루씩이나 훔쳐낼 수 있습니까?”

동일이 손에 들려 있는 권총을 미리 준비해간 가방에 넣으면서 미소를 건넸다.

“사실 이런 일은 우리에게는 그야말로 일도 아닙니다.”

“하긴, 그러니까 백주에 도쿄 한복판에서 윤대중도 그렇게 감쪽같이 납치할 수 있었겠지요.”

“허허, 차 사장께서 너무 비약하십니다.”

“그러면 아닙니까? 윤대중을 납치한 일이 대한민국 중앙정보부의 작품이 아니라는 말입니까? 특히 정 팀장께서….”

주선이 은근히 목소리를 높이자 동일이 방금 나온 파출소를 주시했다.

“그렇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아니라고도 말씀 못 드립니다.”

동일이 말을 마치고 야릇한 미소를 짓자 주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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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