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보는 정운호 사건' 게이트 열 키맨들

정 대표 석방 위해 10명이 뛰었다

[일요시사 경제팀] 김성수 기자 = 정운호 사건이 종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게이트로 관통하는 의혹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자고 일어나면 하나씩 생길 정도다. 다소 복잡한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는 정운호 사건을 게이트의 열쇠를 쥐고 있는 핵심 키맨들로 쉽게 풀어봤다.

정운호 수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검찰이 뒤지는 것은 로비 의혹이다. 어느 선까지 정 대표의 인맥이 닿았는지가 관건. 검은 돈줄을 캐는 게 급선무다.

의심의 눈초리는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에 쏠린다. 유력 용의자이기 때문에 당연하다. 다만 혼자 했을 리 없다. 누군가 뒤에 있거나 도왔다. 바로 사건의 ‘키맨’들이다. 이들에 따라 법조계, 나아가 정관계가 뒤집어질 만한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 수도 닫힐 수도 있다.

그렇다면 게이트를 열 열쇠를 쥔 사람들은 누구일까. 검찰의 칼끝은 정 대표를 겨누고 있다. 일단 각종 의혹으로 단단히 옭아맨 모양새. 큰 줄기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고, 줄줄이 딸린 가지들부터 하나하나 쳐낼 요량으로 보인다. 그 첫 가지가 정 대표의 법률대리를 맡은 최유정 변호사다.

[의혹의 몸통]
[최유정 변호사]

검찰은 최 변호사를 이번 의혹의 ‘몸통’으로 보고 있다. 정 대표는 지난해 10월 100억원대 해외 원정 도박을 벌인 혐의로 구속됐다.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징역 1년 실형이 선고된 정 대표는 보석을 목적으로 최 변호사를 법률대리인으로 선임했다. 최 변호사는 자신이 부장판사 출신이란 점을 이용, 정 대표로부터 50억원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판사에게 부탁해 보석이 되도록 해주겠다’는 얘기가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정 대표는 항소심에서 4개월 감형됐지만, 보석 허가를 얻어내는데 실패하자 최 변호사를 추궁하기 시작했다. 최 변호사는 30억원을 되돌려 줬으나 나머지 20억원의 반환 문제를 놓고도 다툼을 벌였다. 결국 구치소 접견장에서 사단이 났다. 두 사람은 수임료를 놓고 격렬한 시비를 벌였고, 급기야 정 대표가 최 변호사를 폭행까지 했다. 정 대표의 구명로비를 비롯해 전관예우를 악용한 대형 법조비리 사건으로 부각되는 순간이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지난 12일 최 변호사를 구속했다. 수임료를 부당한 용도로 받은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다. 검찰은 최 변호사가 정 대표의 구명로비를 벌였는지, 벌였다면 접촉한 인물들이 누구인지 등에 대해 면밀한 조사를 벌이고 있다.

[또 다른 줄기]
[송창수 전 대표]

조 변호사와 함께 눈여겨봐야 할 인물은 송창수 전 이숨투자자문 대표다. 최 변호사를 정 대표에게 소개한 게 바로 송 전 대표다. 정 대표와 송 전 대표는 같이 서울구치소에서 복역하다 알게 됐다.
 

앞서 송 전 대표도 최 변호사에게 변론을 맡겼다. 인연은 2013년 인베스트컴패니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송 전 대표는 피해가 100억원대에 달하는 사기, 유사수신,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1심은 징역 4년. 송 전 대표는 최 변호사에게 항소심을 맡겼다. 그 결과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하지만 선고 당일 이숨투자자문을 설립하고 1300억원이 넘는 투자금을 끌어모아 사기 행각을 벌인 혐의 등으로 다시 구속, 지난달 1심에서 징역 13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일파만파’ 구명로비 수사 급물살
어느 선까지 입김 들어갔나 관건

최 변호사는 이숨 사건도 수임했다. 송 전 대표는 2건의 재판 수임료로 최 변호사에게 50억원을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도 정 대표의 구명 로비와 비슷한 혐의가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최 변호사가 수임료를 어디에 썼는지 집중 추적하고 있다.


[전관 영향력? ]
[홍만표 변호사]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도 핵심 키맨으로 꼽힌다. 홍 변호사는 최 변호사에 앞서 정 대표의 변호를 맡았다. 모두 무혐의를 이끌어낸 장본인. 정 대표는 2013년 400억원대의 도박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았지만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고, 검찰은 2차례나 무혐의로 결정했다. 홍 변호사 역할이 컸다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정 대표의 100억원대 도박 혐의도 홍 변호사가 수임했지만, 중간에 최 변호사로 법률대리인이 교체됐다.

핵심 브로커·로비스트 보니…
검은 돈줄부터 캐는 게 급선무

홍 변호사는 특별수사에 정통한 검찰 고위직(검사장) 출신으로 ‘전관’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정 대표의 무혐의와 검찰 구형량을 축소하는 데 개입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곧 홍 변호사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할 예정. 일단 홍 변호사가 2013년까지 90억원대의 소득을 신고했는데, 이후 소득을 줄여 신고한 사실을 확인한 상태다.

[수사 피해 잠적한]
[브로커 두 이씨 ]

이번 사건엔 전문 브로커가 등장한다. 이모씨와 또 다른 이모씨가 주인공. 모두 판도라 상자 열쇠를 쥔 인물로 꼽힌다.

먼저 이숨투자자문 이사로 재직했던 40대 이씨는 최 변호사와 사실혼 관계로 알려졌다. 조세포탈과 사기, 밀수·밀항 등 여러 차례의 범죄 전력이 있는 이씨는 구치소에서 송 대표를 알게 됐고, 송 대표가 재판을 받자 최 변호사를 이어줬다. 당시 “동거녀인데 직업이 판사”라 소개했다고 한다.
 

이씨는 정 대표와 최 변호사간 폭행 사건이 불거졌을 때 최 변호사를 대리해 정 대표를 경찰에 고소하기도 했다. 당시에도 ‘최 변호사의 남편 자격’으로 고소장을 접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50대 이씨는 법조 브로커로, 정 대표에게 고교 동문인 홍 변호사를 소개한 인물이다. 평소 전 청와대 비서관, 현직 검사 등과의 인맥을 과시했고, 정 대표의 첫 항소심 재판장이었던 L부장판사와 저녁 자리를 갖고 정 대표의 구명을 청탁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네이처리퍼블릭의 서울메트로 입점 로비 의혹도 있다.

두 이씨는 현재 연락을 끊고 잠적한 상태다. 검찰은 사라진 2명의 소재를 추적하고 있다. 이들이 정 대표 사건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가 게이트의 핵심이다.

[정운호 도운]
[로비스트 3인방]

2명의 이씨 말고도 정 대표를 위해 뛴 사람들은 또 있다. 언론인 박모씨, 의사 이모 원장, 사업가 한모씨 등이다. 이들도 정 대표 사건에 얽혀 있다. 검찰은 이들이 두 변호사와 어떤 관계를 맺고 움직였는지 확인 중이다.


주간지 등 언론사를 운영하는 박씨는 정재계는 물론 연예계에도 상당한 인맥을 구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는 경찰의 정 대표 도박 수사 당시 사건 무마에 나섰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박씨가 정 대표와 경찰 사이에서 연결고리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박씨는 코스닥 투자사기 등 혐의로 구속, 지난 1월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성형외과 의사인 이 원장도 정 대표의 구명 로비를 시도한 의심을 받고 있다. 브로커 이씨와 상당히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이 원장은 L부장판사와 인연이 있는 한 지방법원의 부장판사에게 선처의 뜻을 전해달라는 청탁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사정기관 안팎에선 이 원장이 성형외과를 매개체로 형성한 연예인 인맥을 로비에 사용하지 않았겠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한씨는 정 대표의 사업을 도운 브로커다. 정씨에게서 수천만원을 받고 네이처리퍼블릭이 군대에 들어갈 수 있도록 군 관계자들을 상대로 로비를 벌인 혐의로 지난 6일 구속됐다. 또 네이처리퍼블릭의 롯데면세점 입점 로비 의혹에도 연결돼 있다.

[도박사건 무마]
[경찰관 2명]

정 대표가 2013년 400억원대 도박 수사를 받을 때 경찰관 2명이 움직인 정황도 포착됐다. 당시 정 대표는 불기소로 검찰에 송치돼 무혐의를 받아냈다.

L씨 등 현직 경찰간부 2명은 도박사건 무마 대가로 정 대표에 상가 운영권 등 이권 제공을 요구하고, 특정 회사에 투자를 권유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들은 정 대표 측에게 “수사 무마에 힘써줄 테니 지인 회사로 납품 이권을 달라”고 요구했다가 꼬리가 잡혔다. 검찰은 경찰과 정 대표, 네이처리퍼블릭 관계자들 간 ‘거래’를 확인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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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