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면전환용 5·14 석탄일 특사 시나리오

궁지 몰린 대통령 '대사면 카드' 만지작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석가탄신일 특별사면 가능성이 점쳐지기 시작했다. 난국을 타개하려는 정부의 의중과 내심 경제인 석방을 원하는 재계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다면 충분히 예상해 봄직한 시나리오다. 민감한 사안인 만큼 실행 여부는 아직 불명확하지만 매력적인 히든카드라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특별사면은 특정 범죄인에 대한 형벌 집행을 면제하거나 유죄선고의 효력을 상실시키는 대통령의 조치를 뜻한다. 대통령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일반사면과 달리 특사에 대해서는 독자적으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역대 대통령들은 ‘국민 화합’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특사를 단행했다. 주로 연말·연초, 국경일 등 특정 시기에 맞춰 특사 조치를 취한 게 관례. 다만 특사에 대한 반감을 고려해 최근에는 이전보다 횟수가 현격히 줄어든 모습이다.

노무현 8차례
이명박 7차례

특사를 단행했던 역대 정권들 사이에는 시기상 공통점이 존재한다. 대통령 집권 말기에 접어들면 여지없이 특사 카드를 뽑았다는 점이다. 표면상 국민화합이라는 대전제를 앞세우지만 임기가 끝나기 전에 정치적 부담을 털고 가기 위한 수단으로 특사를 활용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7년 12월 실시한 특사 명단에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이름을 올렸다. 2002년 12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임기 말 특별사면에선 거물급 경제인들이 대거 혜택을 받았다.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 김선홍 전 기아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분식회계 사건에 연루됐던 대우그룹 임원들이 이 부류에 포함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승인한 마지막 특사에는 김대중 정부 인사, 노 전 대통령 측 인사, 이명박 전 대통령의 측근 등 여러 정·재계 인사들이 포함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임기 말 파이시티 인허가와 관련해 8억원을 받은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47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천신일 세중 회장 등에 대한 특사를 단행했다.

사면초가 박근혜 세번째 특별사면 주목
총선 참패·책임론 분위기 반전용 거론

집권 4년차에 접어든 박근혜 대통령은 어떨까. 박 대통령이 가장 최근에 특사 조치를 꺼내든 건 광복절을 앞둔 지난해 8월이었다. 이 무렵 법무부는 사면심사위원회 회의를 열고 사면 기준 및 대상자 명단을 정리했다. 박 대통령이 광복절을 약 한 달 앞둔 시점에서 특사 대상 및 범위에 대한 검토를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일단 박 대통령이 특사를 최대한 자제했다는 점은 이견의 여지가 없다. 김영삼(9차례), 김대중(8차례), 노무현(8차례), 이명박(7차례) 등 전임 대통령들이 10차례 가까이 특사를 시행한 것과 달리 박 대통령은 지금껏 단 두 번만 특사 카드를 꺼내들었다. 무분별한 특사를 고려치 않겠다던 대통령 후보 시절의 약속만큼은 충실히 지킨 셈이다.

당분간 별다른 특사 조치는 없을 거라고 예상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선 직후인 2017년 연말이나 2018년 신년, 2018년 차기 대통령 취임 등을 계기로 특사 가능성을 미뤄 짐작할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때 아닌 특사 가능성이 최근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내달 14일 석가탄신일을 기점으로 대규모 특사가 단행될 수 있다는 일종의 추측이다. 물론 석가탄신일 특사가 이뤄지더라도 그리 문제될 건 없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5년 5월15일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원자였던 강금원씨를 비롯한 경제인 31명이 석가탄신일 특사로 풀려난 전례도 있다.
 

다만 시기상 석가탄신일에 맞춰 특별사면이 이뤄질 경우 여론몰이용 결정이라는 비난을 피하긴 힘들다. 총선 참패를 수습하기 위한 임시방편이라는 시선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13일 거행된 20대 총선에서 정부와 여당은 참담한 성적표를 곱씹어야 했다. 새누리당은 과반 확보는 고사하고 원내 제1당의 지위마저 더불어민주당에게 빼앗겼다. 최대 200석까지 확보할 수 있다고 예상했기에 충격은 더 컸다. 선거 개입 논란까지 감수하며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을 지원한 것을 감안하면 뼈아픈 결과다. 일각에서는 총선 참패의 화살표를 박 대통령에게 돌리는 분위기다. 친박계로 분류되는 이한구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이 낙하산 공천을 거듭했다는 게 주된 요지다.

난국 타개하고자
히든카드 꺼내나

당장 정치권에서는 박 대통령이 총선 이후 남은 임기동안 레임덕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는 성급한 예측마저 쏟아내고 있다. 총선의 후폭풍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라도 박 대통령과 집권 여당은 일종의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런 시점에서 전환점이 될 수 있는 사안이 특사 카드다.

석가탄신일 특사가 결정되면 어떤 인물들이 명단에 포함될 것인가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핵심은 경제인들의 특사 대상 포함 여부이다. 특사가 이뤄지더라도 법정 형기를 마치지 않은 기업인을 포함할 지 미지수지만 국민 대통합과 경제 살리기라는 대명제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 입장에서는 반길만하다.
 

통상 가석방을 위해서는 형법 72조에 따라 징역 또는 금고형을 받은 이들 중에 무기의 경우 20년, 유기의 경우 형기의 3분의 1을 넘긴 모범수형자여야 한다. 박 대통령 취임 이후 한때 형기 90% 이상을 채운 경우에만 사면이 가능하도록 상향 조정됐지만 법무부는 이를 다시 기존 80% 수준으로 낮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 기준이 필요충분조건은 아닌데다 경제인 특사가 경제 전반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만약 특사가 이뤄지면 이재현 CJ 회장, 최재원 SK 부회장, 구본상 전 LIG넥스원 부회장 등의 이름이 오르내릴 가능성을 생각해 봄직 하다. 형기를 거의 채웠거나 건강상의 문제가 부각된 경우가 대다수다.

최재원 부회장은 지난해 광복절 특사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형인 최태원 회장의 사면을 지켜봐야만 했다. 당시 최 회장은 징역 4년 중 2년6개월가량을 복역했고, 최 부회장은 3년6개월 중 2년3개월가량을 복역한 상태였다. 재벌 총수와 가족이 이렇게 오래 수감된 적이 드물고 형기를 거의 채웠다는 점에서 특사가 이뤄지면 가장 먼저 풀려날 가능성이 크다.

2012년 10월 사기성 기업어음(CP) 발행 혐의로 구속된 구본상 전 부회장은 징역 4년형을 받고 3년 6개월 넘게 수감 중이다. 형기를 채운 것만 따지면 최 부회장보다 더욱 유리한 고지를 점한다.

법조계 관계자는 “최 부회장이나 구 전 부회장의 경우 지난해 광복절 사면부터 꾸준히 사면 여부에 관심이 쏠린 인물”이라며 “엄격한 심사기준이 적용되지만 여러 차례 두 사람의 사면이 좌절된 만큼 특사가 결정되면 가장 유력할 것으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기업 비리혐의로 기소된 이재현 회장은 지난해 12월 파기환송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으며, 현재 대법원에 재상고 후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다만 이 회장은 신장이식수술 부작용과 유전병 등으로 구속집행정지 상태로 서울대병원서 입원치료를 받고 있다. 항간에서는 형 집행을 따르지 않기 위한 꼼수쯤으로 의심하지만 병세가 완연하다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1000억원대 배임 행위라는 비슷한 혐의를 받았지만 감형 판결을 받았던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의 사례를 감안하면 동정론까지 더해진다.

형기 거의 채운
경제인들 물망

재계에서는 특사 여부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재벌 총수가 사면될 시 즉각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SK그룹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광복절 당시 특사 명단 포함 여부를 두고 이름이 오르내린 재계 인사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필두로 구본상 전 LIG넥스원 부회장, 구본엽 전 LIG건설 부사장 등이었다. 그러나 재벌 총수 사면 폭은 그리 크지 않았고 최태원 회장을 제외한 대다수는 특사에 포함되지 못했다.


광복절 특별사면 대상에 최태원 회장의 이름이 포함됐다는 사실이 알려졌던 지난해 8월13일 SK그룹 관련주들은 일제히 뛰어올랐다. SK이노베이션(6%), SK하이닉스(3%), SK(2%) 등 당일 SK관련주 가운데 SK텔레콤(-1.38%)을 제외한 모든 계열사 주가가 올랐다.
 

SK그룹 관련주들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이 이어진 것은 당연했다. 큰 결단이 필요한 대규모 인수합병과 글로벌 진출 등 굵직한 경영 의사 판단에 속도가 붙을 것이란 관측도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최 회장이 복역 중이던 2년7개월간 M&A시장에서 번번이 쓴맛을 봐야 했던 것과 비교하면 천지차이였다.

한다면…서민 생계형범죄 집중 
회장님도 명단 포함 여부 주목

문제는 경제사범의 특사 포함 여부는 상당히 민감한 사안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이 취한 엄청난 폭리 규모는 서민들이 평생을 일해도 모으기 힘든 천문학적인 액수임이 분명하고 특사를 받을 때는 그만큼의 반대 여론을 감내해야 한다.

그렇다고 이들에게 무작정 법의 잣대를 내세우기란 그리 쉽지 않다. 경우에 따라 이들의 허물을 덮어줘야 할 필요성마저 부각되기 때문이다. 일단 경제사범 사면은 경제 전반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필요악으로 비춰지곤 한다. 게다가 당초 계획했던 올해 국내총생산(GDP) 3%대 성장 목표는 사실상 물 건너갔고 목표치 하향조정이 계속되고 있다. 

결국 현재 처한 위기를 슬기롭게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기업의 역량이 극대화되어야 함은 자명한 사실이다. 더욱이 서민경제 살리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정부의 의중이 명확히 부각되기 위해서라도 기업의 현실을 일정 부분 이해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 


사면 한다면…
즉각적인 효과

재계 관계자는 “가석방요건을 갖추었다면 기업인이라고 역차별을 받아서는 안된다”면서 “대내외 리스크가 커진 이럴 때일수록 기업인에 기업경영에 매진하고 경제를 살릴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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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뒤통수로 다시 꼬인 한·미·일

트럼프 뒤통수로 다시 꼬인 한·미·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불확실성의 시대에 가장 확실하다고 굳게 믿었던 관계에서 파열음이 나오고 있다. 새 정부 초기부터 보이기 시작한 적신호가 이제 눈 돌릴 수 없을 정도로 커진 모습이다. 어디서부터 균열이 시작된 걸까? 우리나라 외교는 한미동맹을 배경으로 진행됐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꾀한 때도 있지만 대체로 한·미 혹은 한·미·일 관계가 우선시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나라와 미국이 삐걱거리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고 있다. 상수였는데 변수됐나 지난 12일 미국 이민 당국에 체포·구금됐던 한국인 근로자 316명이 귀국했다. 이번에 구금된 한국인은 총 317명으로 남성 307명, 여성 10명이다. 이 가운데 1명은 잔류를 택했다. 지난 4일, 미국 이민 당국의 불법체류 및 고용 전격 단속에서 체포돼 포크스턴 구금시설 등에 억류된 지 8일 만이다. 이들은 미국 조지아주 엘러벨의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중에 체포·구금됐다. 문제 해결을 위해 조현 외교부 장관이 미국을 급히 방문했다. 당초 이들은 지난 10일(현지시각)에 전세기를 타고 출국할 예정이었지만 ‘미국 측 사정’으로 지연됐다. 외교부는 이번에 체포·구금된 한국인이 향후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미국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현 외교부 장관은 마코 루비오 미 국무부 장관에게 이들이 신체적 속박 없이 신속히 귀국하고 향후 미국에 재입국하는 데 불이익이 없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미국 측으로부터 긍정적인 답을 받았다고 한다. 체포·구금된 한국인이 미국을 떠나는 방식을 두고 우리나라와 미국 간의 이견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자진 출국’을, 미국은 ‘추방’을 언급한 것이다. 자진 출국 방식으로 귀국하면 향후 ‘5년 입국 제한’ 등의 불이익이 없다. 반면 추방 명령으로 미국을 떠나면 영구적으로 기록이 남아 최대 10년간 미국에 들어갈 수 없다. 지난 8일 크리스티 놈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이 이번 사안과 관련해 “법대로 하고 있다. 그들은 추방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출국 형태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다행히 미국 측과 조율이 이뤄지면서 자진 출국 형태로 귀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루비오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도 이재명 대통령과 도출한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있고, 이 사안에 대한 한국인의 민감성을 이해하고 있다. 특히 미국 경제·제조업 부흥을 위한 한국의 투자와 역할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 야 “700조원 줬는데도?”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측이 원하는 바대로 가능한 한 이뤄질 수 있도록 신속히 협의하고 조치할 것을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의 노력으로 상황이 봉합되는 모양새지만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의 후폭풍이 상당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인 체포·구금 과정에서 드러난 미국 이민 당국의 모습을 두고 동맹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는 말이 나왔다. 실제로 미국 측은 한국인 체포 과정에서 수갑을 채웠고, 이들을 환경이 열악한 수용소에 구금했다. 야권에서 ‘외교 참사’가 일어났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6일,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 이후 내놓은 논평에서 “이재명정부는 700조원 선물 보따리를 미국에 안겼지만 회담은 공동성명조차 발표하지 못한 채 끝났다”며 “그 결과가 고스란히 현대차-LG 합작 공장 단속 사태로 돌아왔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면서 “국민 사이에서는 실컷 투자해 주고 뒤통수 맞은 것 아니냐는 분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700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약속해 놓고도 국민의 안전도, 기업 경쟁력 확보도 실패한 것이 이재명정부의 실용 외교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우리나라는 관세 협상, 한미 정상회담 등을 통해 미국에 5000억달러(약 700조원)를 투자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도 지난 6일 페이스북에 글을 썼다. 수갑 채우고 수용소 넣고 장 대표는 “이번 사태는 단순한 불법체류자 단속을 넘어 앞으로 미국 내 한국 기업 현장과 교민 사회 전반으로 피해가 확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사안”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수많은 한국 기업이 미국 전역에서 공장을 건설하고 투자를 확대하는 상황에서 근로자들이 무더기로 체포되는 일이 되풀이된다면 국가적 차원의 리스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는 이 같은 사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미국 측과 방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조 장관은 루비오 장관 등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사태의 재발 방지책과 대미 투자 한국 기업 관계자들의 비자 문제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 장관은 유사 사례 재발 방지를 위해 새로운 비자 카테고리를 만드는 등 다양한 방안 논의를 위한 ‘한미 외교부-국무부 워킹그룹’ 신설을 제의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한미 관계 차원에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미 관계가 순탄하게 흘러가고 있지 않다는 신호로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 직후부터 관세 등을 무기로 전 세계를 흔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동맹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된 바 있다. ‘삐걱거림’은 이정부 출범 초기부터 감지됐다. 미국 백악관은 이재명 대통령 당선과 관련해 처음 내놓은 메시지에서 중국을 언급해 ‘이례적’이라는 말을 들었다. 백악관은 지난 6월3일 한국 대선 결과에 대한 언론의 질문에 “한미동맹은 철통같이 유지된다”면서도 “한국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진행했지만 미국은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개입과 영향력 행사에 대해서는 여전히 우려하며 반대한다”고 말했다. 백악관의 메시지를 두고 이정부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행사 견제, 실용 외교를 표방하는 이 대통령이 중국과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는 압박 등 다양한 해석이 이어졌다. 당시 미국은 중국과 관세를 두고 이른바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었다. 시간이 가면서 다소 소강상태가 되긴 했지만 갈등의 골은 여전히 남아 있다. 분위기만 화기애애? 관세 협상이나 한미 정상회담을 두고도 여전히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협상 시한으로 정한 날짜를 하루 앞두고 미국과 타결을 이뤄냈다. 당초 한미FTA로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의 관세는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0’이었기에 타격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한을 통해 언급한 상호 관세 25%를 15%로 낮추는 데는 합의했지만 과정은 난항을 거듭했다. 루비오 장관의 방한이 취소되는가 하면 ‘한미 2+2 통상 협의’를 앞두고 미국 측의 취소로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이 발길을 돌리는 일도 벌어졌다. 일본이 먼저 관세 협상을 마무리하면서 기준이 생기고 시간에 쫓기는 등 여의치 않은 상황이 지속됐다. 결국 미국과의 관세 협상은 일본과 비슷한 수준에서 정리됐고 동시에 천문학적인 수준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이때도 관세 협상 결과를 두고 이견이 나타났다. 우리 정부 측은 쌀, 소고기 등 농산물 개방은 없다고 주장했던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전면 개방을 말했다. 또 대미 투자의 방식에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보였다. 이견은 한미 정상회담을 거치고도 조율되지 않은 모양새다. 미국 측은 관세 협상 타결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대통령의 방미를 언급했고 실제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정상회담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앞에 두고 면박을 주는 등의 돌발 행동을 보인 바 있어 우려가 제기됐지만 무난하게 마무리됐다는 평을 받았다. 문제는 명문화된 결과가 없다는 점이다. 지난달 25일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진행했지만 공동합의문은 발표하지 않았다. 역대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정상회담 이후 공동성명을 통해 동맹의 성과와 협력 의제를 문서화해 왔다. 당선 메시지에 중국 언급 정상회담 합의문도 없어 당시 공동합의문이 나오지 않은 데 대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제기될 정도였다. 정상회담에서 각종 현안을 폭넓게 논의했지만 구체적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결과였다. 특히 자동차 관세가 확정되지 않으면서 업계는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 관세 협상에서 자동차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으로 타결했지만 문서로 명시되지 않은 것이다. 안보 문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한미 정상회담 이후인 지난달 28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동발표문이 항상 있는 것은 아니”라며 “정상 간 논의 내용은 상당 부분 생중계됐고 나머지는 언론 브리핑을 통해 양국 국민에게 효과적으로 설명했다”고 말했다. 위 안보실장은 “문건을 만들어내기까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많은 공감대가 있었다. 그런 공감대를 바탕으로 추가 협의를 하면 마무리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나온 조 장관의 발언은 조금 더 구체적이었다. 그는 “투자 부문에서 국민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어 수용하지 않았다”며 공동합의문이 발표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말했다. 이어 “미일 간 합의문 내용을 보면 왜 우리가 협상을 지연해 가면서까지 안을 만들고 있는지 이해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일본은 관세 협상에서 제조업·항공우주·농업·에너지·자동차 등 분야에서 미국에 시장을 개방하고 5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는 내용의 합의를 진행했다. 또 합의 불이행 시 미국이 관세를 재조정할 수 있다는 조항이 담긴 것으로 알려지면서 ‘굴욕 협상’이라는 말도 나왔다. 조 장관은 “일본의 타결 협상안을 보면 우리가 비슷한 협상안을 받아들인다고 할 때 여러 문제점이 많다”며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분명히 하며 협상을 강하게 하다 보니 합의가 지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품목 관세가 부과될 때 최혜국 대우가 불확실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현재로서는 그렇다”고 인정했다. 불확실성 해소될까?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에 자리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타국을 대하는 방식은 이제 변수를 넘어 상수가 되는 모양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가 한미 관계를 더 흔들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