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친일 행적’ 김무성 부친 동상 추적

꽁꽁 감춰놓고 “보여줄 수 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신상미 기자 =  한국이 해방된 지 70년이 지났지만 친일반민족행위자에 대한 단죄가 이뤄지지 않았고 친일과 식민지배의 잔재가 여전히 남아있다. 친일에 대한 대가로 누렸던 지위와 권력이 해방 후에도 그대로 유지되면서 후손에 의해 친일행적이 부인되거나 왜곡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부친 김용주가 그런 경우다.  
 

김용주(1905∼1985, 창시명 金田龍周, 가네다 류슈)의 ‘친일 행적’이 속속 발굴되는 가운데, 김용주의 청동 전신상 등 각종 ‘찬양시설’이 광주 전방공장과 서울 안암동 용문고등학교 등지에 있는 것을 <일요시사>가 단독으로 확인했다.

전범기업 자리
1986년 세워져

전남 광주의 전방(구 전남방직) 공장 내에 있는 김용주의 동상은 비문으로 볼 때, 김씨의 사후 1년 뒤인 1986년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동상은 전방공장 정문 입구 옆 넓은 잔디밭에 위치해 있는 대형 전신상이다. 해당 동상에 대해 광주시민들도 아는 이들이 많지 않아 그동안 적극적으로 문제 제기해오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전방은 1935년 전범기업 가네보(鐘淵)공업의 전남공장이 그 모태다. 해방이 되자, 일본인들이 놓고 간 공장설비를 미군정이 인수했다가 1953년 ‘적산’(적의 재산이라는 의미)으로 김형남(후에 숭실대 초대총장)과 김용주가 함께 불하받은 것이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엔지니어였던 김형남이 자본을 가진 김용주에게 방직공장을 인수하도록 설득한 것이다. 1961년 8월 두 사람은 이 적산 공장을 전남방직과 일신방직으로 분할해 나눠가졌다.

일제강점기 가네보 공장은 평균 연령 12.8세에 불과한 어린 여공들이 하루 12시간씩 강제노동에 시달리던 곳이었다. 작업반장의 폭언과 폭행, 굶주림에 시달리며 일을 해야 했고 성폭력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해방 후에도 방직공장은 시골에서 올라온 어린 여성들이 열악한 노동환경 하에서 하루 2교대로 12시간씩 일하는 작업장으로 악명 높았다.


현재 전방의 명예회장은 김창성(84)씨로 김무성 대표의 큰 형이다. 광주 전방공장은 현재는 가동되지 않고 있다. 중고자동차 매매단지와 대형 물류센터가 임차해 있다. 지난해 광복절을 하루 앞둔 8월14일, 지역의 시민단체 회원 및 학생들이 광주 내 일제강점기 유적을 답사하면서 공장 정문 안쪽에 조성돼 있는 동상을 보기 위해 공장을 방문했다. 정문으로 들어서자 불과 2∼3분 사이에 안에서 전방 유니폼을 입은 남자 8명이 나와 일행을 가로막았다.

당시 현장에 있던 시민단체 관계자는 “연락을 받은 듯 갑자기 남자들이 뛰쳐나왔다. ‘나가라’며 우리 일행을 밀쳤다. ‘경찰을 불러라’ ‘사진촬영을 하지 마라’면서 실랑이를 벌였다”고 밝혔다. 일행 중 한 명이 “학생들을 데리고 역사기행을 다닌다. 동상이 있어서 보러왔다”고 양해를 구하자 “안 된다. 돌아가라”며 강하게 제지했다.

이 관계자는 “실제로 안에 가동되는 공장은 없고 담양 등 타 지역으로 이전해갔다. 유통센터와 중고자동차 매매단지로 들어가는 진입로일 뿐인데 삼엄하더라”고 덧붙였다. 
 

현장엔 역사해설사, 학생들과 교사, 해당 시민단체의 성인 회원 등이 있었다. 다음날인 15일, 김 대표는 부친의 전기 <강을 건너는 산>을 발표했다. 평소에도 김씨의 동상 앞 잔디밭에 서 있으면 전방직원들이 나와 사진촬영을 저지하고, 카메라를 뺏는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고 한다. 김용주에 대해 친일파 논란이 거세지면서 전방 측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용주 전신상 광주 전방공장 존재
지역 시민단체 방문했다가 문전박대

김용주 찬양시설은 포항 영흥초등학교와 서울 용문고등학교에도 존재한다. 영흥초등학교는 1911년 설립됐으나, 1936년 3월 김용주가 인수해 설립자 변경 인가를 받았다. 이 학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졸업한 학교이기도 하다.

영흥초는 지난 2011년, 개교 100주년을 맞아 김용주의 흉상 제막식을 가졌다. 이 자리엔 설립자 가족을 대표해 김 대표가 참석했다. 민족문제연구소(이하 연구소)가 <아사히신문> 조선판에 게재된 김용주의 전투비행기 헌납 기명광고를 새롭게 발굴해 기자회견을 하는 등 친일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해 10월 말, 김 대표가 영흥초를 방문하기도 했다.


김 대표의 큰누나이자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모친인 김문희(87)씨가 이사장으로 있는 용문학원에도 김용주의 대형 초상화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 안암동 소재의 용문학원은 용문중학교와 용문고등학교를 함께 운영 중인 학교법인이다.

1986년 용문고 본관 뒷편에 ‘해촌기념관’이라고 이름 붙인 강당을 준공했는데, 이 강당 내 무대 우측에 김용주의 대형 초상화가 걸려 있다. 해촌은 김용주의 호다.

보러 갔는데… 
직원들이 막아

김용주의 친일 행적은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다. 김씨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수산업, 해운업, 무역업 분야에서 활동했다. 김씨의 친일행위는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라 매우 자발적이며 적극적인 면모를 띤다.

김씨는 경상북도 도회의원, 국민총력경상북도수산연맹 이사, 국민총력경상북도연맹 평의원,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 및 경상북도지부 상임이사·사업부장 등을 역임했다. 배우자 방씨는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의 고모이며, <친일인명사전> 등 각종 친일파 명단에서 이름이 확인되는 호남 출신 갑부 현준호(1889∼1950)와 사돈을 맺었다.

해방 후엔 대한해운공사 사장, 주일본공사, 전남방직 사장 겸 신한제분 회장, 민주당 국회의원, 신한해운 회장, 한국경영자총협회 초대회장, 동해제강 사장 등을 지냈다.

지난해 9월17일 연구소 측은 기자회견을 열어 김용주의 친일행위에 대한 새로운 증거자료를 공개한 바 있다. 연구소는 김용주가 고위직에 있는 동안 ‘애국기 헌납운동’을 선전했다면서 <아사히신문> 국내판 1944년 7월9일자에 실린 일본어 기명 광고를 공개했다. 김용주는 또 같은 신문 국내판 1943년 9월8일자에 “대망의 징병제 실시, 지금이야말로 정벌하라! 반도의 청소년…”이라는 내용의 일본어 기명 광고를 실어 조선청년들의 징병제 참여를 촉구하기도 했다.  

당시 연구소 측은 기자회견에 앞서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기본적으로 연좌제에 반대하지만 친일행위자의 후손이나 연고자가 ①친일인물에 대한 기념사업을 하는 경우 ②친일행적을 부인 또는 왜곡하는 경우 ③친일청산운동을 방해하는 경우는 예외로 한다”고 밝혔다. 김 대표 측의 대응이 이 세 가지를 모두 충족시키고 있다는 것이 연구소의 판단이었다.
 

연구소 관계자는 “김용주가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면서 “김 대표가 공당의 대표로서, 공공연한 대권 행보자로서 선친의 친일행적과 관련 명확한 입장을 밝히고 그간의 행태에 대해 국민 앞에 사죄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지난해 10월27일에 반박 보도자료를 내고 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가 신뢰성이 떨어진다며 <동아일보> <조선일보> 기사를 근거로 부친이 ‘치안유지법’을 위반하고 조선인 학교를 세우는 등 애국자였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치안유지법 위반이 사실이라면 도의원에 선출될 수 없다. 동아·조선일보에 실린 인사는 동명이인이다. 김용주가 1920년대에 문화운동에 관계한 것은 맞다. 그러나 그 경력이 1940년대까지 일관되게 유지된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국무총리실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가 지난 2011년 일본정부로부터 직접 건네받은 ‘조선인 공탁기록’에도 김용주의 친일행위가 명백히 드러나 있다.


영흥초·용문고에도…
대형 흉상·초상화 전시 
 

기록에 따르면, 일제 말기, 일본정부가 전쟁 수행을 독려하기 위해 전투기, 조선, 군수물자 등을 생산한 전범기업 주식을 일본과 조선의 유력자를 대상으로 판매한 사실이 확인된다.  당시 일제의 전쟁 승리를 의심치 않았던 친일파들이 투자 목적과 충성심을 앞세워 가장 적극적으로 매입했다. 화신백화점 사장 박흥식이 총 51만7504엔어치를 매입, 최고액을 기록했다. 명성황후 친척 민규식이 46만8200엔, 김용주의 사돈인 현준호가 9만3425엔으로 그 다음을 이었다.

김 대표의 부친 김용주도 전범기업 니혼고주파중공업의 주식 7500엔을 매입한 것이 확인됐다. 이외에도 1204명의 친일반민족행위자가 포함돼 있었다. 당시 호남은행 현준호 일가를 비롯해 두산그룹 창업자 박승직, 경성방직(현 경방) 및 삼양사(현 삼양그룹) 설립자 김연수, 배우 이지아씨의 조부인 김순흥, 대한국민항공사(대한항공 전신) 설립자 신용욱, 명성황후 민씨 일족, 유명 사립대 설립자 등 현재 확인 가능한 500여명 중 사회 유력자 집안이 대거 포함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투자한 전범기업들은 2차 대전 당시 조선인 동포들을 끌고가 강제노역시키던 기업들로, 당시에도 조선인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동안 전국 곳곳에서 일제 잔재 청산 작업의 일환으로 친일파 동상이 철거되고 일본식 지명이 변경되거나 친일파 묘가 이장됐다. 김 대표 본인에게 연좌제를 지울 수는 없으나 김용주의 친일행적이 명백한 만큼 공공재인 학교와 주주들이 주인인 주식회사 내에 있는 찬양시설은 철거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 광주전남지역 시민사회계의 대체적 반응이다. 앞으로 광주전남지역의 시민단체는 김용주의 동상을 시민들에게 널리 알리고 동상 철거를 적극적으로 의제화 해 나갈 예정이다.    

민족문제연구소
친일행적 확인


이지훈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 사무국장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친일반민족 행위를 했던 인사들의 찬양시설이 전국 도처에 세워져 있다”며 “후세에 좀더 투명한 역사를 가르치기 위해선 이러한 친일 찬양시설을 없애는 것이 중요하지만 이 시설이 어떻게 현재까지 서 있게 됐는지 안내문이나 단죄비를 세워서 올바른 역사교육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shi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친일파 찬양시설 철거 사례      

‘일제잔재지우기운동’이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면서 친일파 찬양시설이 철거되는 예도 부쩍 늘고 있다. 서울 관악구 소재 광신고교는 지난 2001년 12월 이 학교의 설립자 겸 초대 재단 이사장을 지낸 친일파 박흥식의 동상을 철거했다.

박흥식의 아들 박병석씨가 이사장을 맡고 있음에도 동문회의 건의를 수용하는 형식을 빌려 동상이 철거됐다. 이에 앞서 민족문제연구소 관악동작지부 회원 등은 학교 앞에서 박흥식의 동상 철거를 요구하며 수개월 동안 시위를 벌였다. 학교 측은 고심 끝에 동상을 철거키로 결정하고 이같은 사실을 연구소 측에 알린 후 그해 말 철거했다.

지난 2000년 7월엔 서울 중앙여고가 일제 말기 제자를 정신대에 내보낸 황신덕씨의 동상을 철거한 바 있다. 지난 2005년 전북 전주종합경기장 정문에 걸렸던 수당문 현판이 철거됐다. 수당은 경성방직(현 경방) 사장 김연수의 호로, 경기장 건립 당시 김연수가 기부금을 내면서 현판이 걸리게 됐다. 경방은 조선 농민에게 헐값에 사들인 면화로 조선주둔군의 군복 천을 생산해 엄청난 이득을 챙겼다. 1939년엔 만주국 심양 근처 소가둔에 남만방적을 설립, 1943년부터 ‘관동군’ 군복 천 생산을 개시했다.    

광주에선 시민단체들의 오랜 문제제기를 통해 광주중외공원에 세워져 있던 친일인사 안용백의 흉상을 지난 2013년에 철거했다. 안용백은 조선총독부에서 일하면서 내선일체와 황국신민화 정책을 찬양하는 사설을 쓰고 창씨개명에 앞장선 인물이다. 지난 2014년엔 광주 서구 백일로가 ‘학생독립로’로 명칭이 변경됐다. 지난 삼일절엔 백일초등학교가 성진초등학교로 개명됐다. 간도특설대 장교 출신 친일파 김백일의 이름을 딴 지명과 학교 이름을 변경한 것이다.

2013년엔 강원도 춘천과 정선군에 이범익 전 강원도지사의 단죄비가 각각 설치됐다. 단죄비는 그의 친일행각을 꾸짖는 내용을 새긴 것으로 공적비와 나란히 세워졌다. 이범익 단죄문설치추진위원회는 단죄문에서 “조선시대 관리인들의 공덕비를 모아 놓은 이 비석군에 일제강점기 대표 친일파인 이범익의 비석이 포함된 것은 잘못됐다”며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강원도민의 뜻을 모아 광복 68주년을 기념해 단죄문을 세웠다”고 기록했다.

1929∼1935년까지 강원도지사를 지낸 이범익은 조선총독부 정책을 앞장서서 선전해 훈장과 포상을 받았다. 특히 1938년 9월 항일 무장세력과 민간인 172명을 무참히 살해하고 수많은 사람을 체포·고문한 부대인 간도특설대 창설을 제안하는 등 악명이 높았다. 지난해 7월엔 경기 군포시 산본2동 능안공원 내 친일작가 이무영의 작품비가 철거됐다. 이무영은 친일파 청산을 헐뜯거나 친일파를 시대의 희생양으로 묘사한 글을 여러 편 남겼다.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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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