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 전쟁…국민들‘뿔’났다 (3) 가공식품의 위험 바로 알기

멜라민이 함유된 중국산 분유의 불똥이 식품업계 전반으로 퍼지고 있다. 이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은 어린이들이 즐겨먹는 과자에서 줄줄이 멜라민이 검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지난 2006년 KBS에서 과자의 위험성에 대해 방송한 이후 일어난 ‘과자파동’ 만큼이나 그 파급력이 커지고 있다. 특히 믿었던 유명 식품사의 과자에서까지 멜라민이 발견되면서 충격은 더욱 깊어만 간다. 그리고 이는 가공식품 전반의 위험성으로 번지고 있어 소비자들의 불안감이 날로 커지고 있다. ‘뭘 먹고 살아야 하나’란 한숨 섞인 탄식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지금의 세태를 조명했다.

“제2, 제3의 과자파동 또 터질 수 있다”

멜라민 파동으로 세계가 시끌시끌하다. 중국산 분유에서 그칠 줄 알았던 이번 파동은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먹는 과자, 커피 등으로 번지면서 공포감을 조성하고 있다.
이처럼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먹거리 파동은 잊을 만하면 터져 나와 장을 보는 주부들의 손길을 주춤하게 만든다. 특히 이번 멜라민 파동은 어린이들이 즐겨먹는 과자 등 가공식품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는 점에서 부모의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만들고 있다.

지난 2006년 과자파동
다시 한번 일어날 조짐
아이들이 즐겨 먹는 과자에 건강을 해칠 수 있는 성분이 들어있다는 결과가 나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6년 일어난 ‘과자파동’으로 어린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가슴을 쓸어내린 바 있다.
2년 전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과자파동의 시초는 KBS ‘추적60분’이 과자의 위험성에 대한 내용을 공개하면서부터다.
당시 이 프로그램은 과자 속에 들어가는 색소, 방부제, 조미료와 같은 첨가물이 아토피를 악화시키는 요인이라는 것을 보여줬다. 이 방송에서는 과자로 인해 아토피가 더욱 악화됐다고 말하는 환자들이 직접 나와 인터뷰를 하는 장면이 나와 국민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특히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아이들에게 먹였던 과자들이 위험한 식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공장에서 만들어진 과자를 먹이지 말자는 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이 결과로 과자매출이 급감하는 현상과 ‘홈 메이드 쿠키 열풍’이 함께 불기도 했다. ‘내 아이가 먹을 것은 내 손으로 만들자’는 구호아래 과자 만들기 교실 등이 우후죽순 생기고 과자 굽기에 필요한 오븐이 불티나게 팔리기도 했다.
또 잊혀졌던 한과 등의 과자와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은 떡 등의 간식거리가 인기몰이를 하기도 했다.
이 같은 현상에 기름을 부은 것은 책 한 권이었다. 이 책의 저자는 과자 회사에서 16년간 근무하다가 과자의 위험성을 직접 체험한 뒤 직장을 그만두고 과자공장의 비밀을 공개한 안병수 소장(후델식품건강연구소)이다.
그는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이라는 저서를 통해 위험천만한 과자와 가공식품의 위험성을 파헤쳤다. 이 책은 가공식품이 아이의 몸을 망칠 뿐만 아니라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 청소년 범죄 등의 정신장애를 일으키고, 선천성 장애아 출산의 원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또 식품회사 이익과 소비자 이익이란 운명적인 엇박자 사이에서 우리와 우리아이들의 먹을거리를 지켜낼 수 있는 것은 결국 소비자뿐이란 사실을 기억해내야 한다고 강변하기도 했다.
당시 과자파동과 함께 소비자들의 불안감을 극에 달하게 했던 내용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중국 발 멜라민 파동으로 2년 전 ‘과자파동’ 다시 일어날 조짐
건강 해치는 식품첨가물 들어있는 가공식품 또 한번 집중조명

▲ 세기의 최고 걸작 ‘라면’ = 인스턴트의 가장 큰 문제는 여러 종류의 첨가물을 한꺼번에 섭취하도록 고안된 점이다. 라면의 원료는 열처리 과정을 거친 ‘흰 밀가루’와 ‘첨가물’이다. 라면에 쓰이는 고열처리된 탄수화물은 입자가 작고 성글어서 소화흡수가 비정상적으로 빠르다. 혈당치를 급속히 증가시켜 우리 몸의 인슐린 분비 세포에 타격을 가하는 것이다.
▲ 식품이 아닌 식품인 ‘정크푸드, 스낵’ = 영양가는 없으면서 적은 양으로도 혈당치를 급상승시키고 공복감을 해소시키는 정크푸드. 이런 식품을 지속적으로 탐닉하면 결국 혈당 관리시스템에 빨간 불이 켜지고 만다.
 
가공식품의 무서운 실체
각종 생활습관병 만들어
▲ 충치는 빙산의 일각 ‘캔디’ = 캔디에 들어 있는 설탕과 정제물엿은 당 대사 기능에 엄청난 해악을 끼친다. 경화시킨 유지와 첨가물을 동시에 섭취하면 그 유해성은 더욱 커진다. 캔디야말로 영양분이 전혀 없는 정제당 70%와 향료, 색소, 유화제, 가소제, 향 보조제 등 첨가물 30%가 주원료다. 오직 문제 있는 물질로만 이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입 청소에 가려진 껌의 진짜 모습= 껌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화학물질이 들어있다. 합성물질인 껌베이스와 일반식품에 비해 향료사용 비율은 10배를 넘는다. 껌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하나에 0.1g이나 들어가는 향료다. 향료는 ppt(1조분의 1)단위에서도 활성화하는데 체중 50kg인 사람이 껌 하나를 씹으면 향료의 체내 농도는 무려 2백만ppt에 이른다.
▲ 양의 탈 쓴 이리 ‘아이스크림’ = 물과 기름을 섞어 만드는 아이스크림에 반드시 필요한 유화제는 발암물질을 비롯한 각종 유해성분을 체액에 섞이도록 돕는다. 당류와 지방질 원료가 다량 사용된다는 점도 치명적이다. 향료와 색소, 안정제, 인공감미료 등 유해 첨가물 투성이기 때문이다.
▲ 아메리칸 사료 ‘패스트푸드’ = 패스트푸드의 문제는 첨가물이란 것과 높은 지방 함량 때문에 생기는 고칼로리 등 두 가지다. 하지만 고칼로리보다 더욱 해로운 것은 튀김과정에서 함유되는 트랜스지방산이다.
▲ 허울 좋은 너울 ‘가공치즈와 버터’ = 물성을 좋게 하기 위해 유화제를 넣고 맛을 위해 조미료나 향료를 넣고, 거기에 색소와 보존료까지 넣은 가공치즈. 가공치즈에는 조미료와 향, 색소, 보존료 등 첨가물 투성이다.
▲가장 위험한 것 ‘햄과 소시지’= 햄과 소시지는 바로 ‘아질산나트륨’이 들어 있다. 아질산나트륨이 육류라면 반드시 ‘아민’ 성분과 결합해 니트로사민을 만드는 게 문제다. 동물실험에 따르면 니트로사민 0.3마이크로그램을 단 한번 투여했더니, 간암이나 폐암이 유발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노란 우유 ‘가공유’= 붕어빵에 붕어가 없듯 바나나 우유에도 바나나는 없다. 그 깊숙한 바나나 맛을 내는 수백 가지의 화학물질, 향료 속에 뇌 활동을 왜곡하는 물질, 호르몬 교란 물질, 알레르기 유발 물질들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는 모른다. 단맛은 액상과당과 백설탕으로, 노란색은 치자황색소로, 바나나 맛은 바나나 향으로 낸다. 일본 ‘식품첨가물평가일람’은 치자황색소를 ‘위험등급 3급’첨가물로 분류한다.
▲액체사탕 ‘청량음료’ = 콜라의 유해성이 두려워 사이다를 대신 선택했다면 이는 ‘호랑이를 피하기 위해 늑대 굴로 들어서는 격’이다. 액상과당, 탄산가스, 인산, 향료 등을 주원료로 하는 청량음료가 비만의 원인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인산 성분이 아이들의 정신건강까지 위협하는 행동 독리학상의 물질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고가의 청량음료 ‘드링크류’ = 피로회복제로 알고 있는 드링크 제품은 정제당과 향료로 맛을 내고 각성물질이나 방부제와 같은 해로운 성분을 첨가해 만든 고가의 청량음료일 뿐이다. 드링크류의 경우 카페인 못지 않게 안식향산나트륨이 문제다. 개를 대상으로, 체중 1㎏당 인식향산나트륨 1g씩을 매일 투여했더니 운동이 불가능해지고 간질성 경련을 일으키더니 2백50일만에 죽음에 이르는 것이 확인됐다.
이처럼 안병수 소장은 자신이 직접 체험했던 각종 가공식품의 위험성을 고발해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책에서 밝힌 가공식품의 위험성은 하루 종일 가공식품에 노출되어 있는 많은 이들을 긴장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잊혀졌던 과자의 위험성, 멜라민 파동으로 다시 불거져
세계적인 식품업체 제품도 위험해 소비자 불안감 커져

그러나 이 같은 파동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금세 잊어버리는 우리 사회의 특성은 과자파동에도 어김없이 발휘됐다.
또 그해 제과업체들이 과자에 들어간 식품 첨가물이 아토피성 피부염을 유발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KBS ‘추적 60분’의 보도와 관련, 제과업체가 공동으로 KBS를 상대로 수백원대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면서 과자파동은 주춤했다.
당시 롯데·오리온·크라운·해태 등 4개 제과업체가 “아토피의 정확한 원인이 규명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KBS가 마치 과자 속 첨가물을 아토피 피부염의 주범인 것처럼 보도함으로써 천문학적인 손실을 일으켰다”며 과자파동의 책임을 물었다.

세계적 식품업체도 못 믿어
“뭘 믿고 사먹어야 되나?”
그 후 많은 이들은 일상적으로 먹는 과자 등 가공식품의 위험성에 대해 잊어버렸다. 물론 업체들이 트렌스지방 등의 첨가물이 적게 들어간 제품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며 자사의 제품의 안정성에 대해 홍보한 것도 안심하고 과자를 먹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소비자들은 공장에서 만들어진 과자를 섭취함으로써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것에 무감각해졌다.
그런 상황에서 최근 맞이한 멜라민 파동이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특히 세계적인 유명식품회사에서 만든 과자에서까지 멜라민이 검출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 충격은 헤아릴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다국적 식품업체인 나비스코푸드가 중국에서 생산한 리츠 샌드위치 크래커 치즈에서 멜라민이 검출됐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수  많은 가공식품 중 뭘 믿고 먹어야 하나’라는 고민은 더욱 커지고 있다.
그리고 가공식품의 종류와 식품첨가물이 증가하면 증가할수록 제2, 제3의 식품파동은 계속해서 벌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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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