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가본 ‘2008 국감 현장’ ②재계의 야릇한 분위기

2008 국정감사 시즌이다. 10월6일부터 20일간 이어질 국감을 앞두고 여의도는 지금 ‘긴장 모드’다. 여야는 이미 국감 체제로 전환된 지 오래다. 상임위별로 증인 채택 등을 놓고 ‘힘겨루기’가 한창이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국감 이슈는 단연 국감장에 누가 불려올까다. 그중에서도 기업 CEO, 특히 재벌그룹 총수의 출석은 초미의 관심사다. 각기 다른 예민한 사안으로 여론의 도마에 오른 기업들이 10월만 다가오면 바짝 긴장하는 이유다. 하지만 올해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긴장은커녕 여유마저 흐른다. 왜 이렇게 달라졌을까. 국감을 앞둔 재계 분위기를 살펴봤다.

‘비즈니스 프렌들리’국감장서 통할까

10월만 되면 재계는 긴장한다. 코앞에 닥친 국정감사 때문이다. 해마다 단골 표적이 됐던 재계는 올해도 ‘뜨거운 감자’로 분류된다.
특히 검찰의 대대적 사정 기류에 휩싸인 기업은 노심초사하고 있다. 현재로선 수사 선상에 오른 기업들이 국감 도마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
검찰은 MB정권 출범 이후부터 ‘대기업 비리척결’을 목표로 대대적인 수사와 보이지 않는 내사를 벌이고 있다. 당장 얘기가 나온 기업만 수십 곳에 달한다.
‘P그룹, K그룹, I그룹, H그룹, D그룹, A그룹, T사, K사….’
또 LG가 구본호, 두산가 박중원씨, 한국도자기가 김영집, 현대가 정일선씨 등 재벌가 로열패밀리들도 검찰의 전방위 압박을 받고 있다. 여기저기서 첩보를 수집한 검찰은 내사를 거쳐 표적에 바짝 다가선 상황이다. 검찰 안팎에서 거론되는 ‘살생부’에 이름이 올라간 기업으로선 국감이란 또 한 번의 파고에 맞닥트린 셈이다.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모 그룹 관계자는 “안 그래도 사정기관 내사로 초긴장 상태인데, 국감까지 겹쳐서 죽을 맛”이라며 “수사가 완전 종결되지도 않았는데 검찰에서 조사를 받고 국감에서 또다시 집요한 추궁에 시달리는 게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그룹 관계자도 “정·관계뿐만 아니라 재계도 ‘국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며 “오너의 신변에 위기감이 감지, 그룹 전체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번엔 뭔가 다르다. 여야는 각 상임위별로 증인 채택을 놓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지만, 재계는 예외인 분위기다. 여야를 막론하고 ‘호출’은 물론 쟁점 자체를 꺼리는 눈치까지 엿보인다. 정치권과 재계의 서먹서먹한 관계가 다시 회복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한나라당은 MB정부의 ‘비즈니스 프렌들리’정책을 그대로 국감에 반영할 태세다. ‘친기업’기류가 한나라당에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것. 자칫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표방하는 MB정부의 친기업 정책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경제 활성화를 위한 본격적인 비즈니스 프렌들리 입법 활동에 나설 것”이라며 “기업들의 투자와 고용 등을 이끌어 내야 경기를 살릴 수 있는 만큼 금융개혁, 기업 투자유인, 감세법안 처리 등을 정기국회 중점 과제로 삼겠다”고 말한 바 있다.
민주당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사정기관에 오르내리는 기업을 괜히 건드렸다가 ‘긁어 부스럼’이 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실제 검찰의 타깃 대부분이 전 정권이나 전전 정권에서 특혜설이 나돈 기업들이다. 이른바 ‘친노 기업’을 정조준한 형국. ‘친 DJ 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검찰 내부에서 대검 중수부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등이 주축으로 김대중 정부에서 노무현 정부까지 지난 10년 동안 불거진 각종 비리와 특혜 의혹 정보를 전면 재검토하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여기엔 L씨, K씨 등 전 정권 실세들이 연루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 관계자는 “기업에 대한 무차별적인 국감을 가급적 자제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며 “다만 정책감사가 목적이라면 실무임원을 부르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는 등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만 최소 범위에서 검토가 이뤄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국감 시즌을 맞았지만 재계의 공기도 예전 같지 않다. 과거 국감 시즌만 되면 기업의 총수나 CEO 등 관련 인사들의 증인 채택을 두고 분주하게 움직였던 것과 달리 차분한 모습이다. 때마다 국감을 앞두고 정재계에 나돌던 여의도발 재벌그룹 총수 살생부도 보이지 않는다.
재계가 이렇게 여유로운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검찰 수사가 지지부진하다. 재벌그룹과 재벌가를 향한 검찰의 수사가 MB취임 이후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이렇다 할 성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재벌그룹이 검찰 수사와 국감에 자신만만한 이유다.
재계 관계자는 “검찰이 친노 기업을 중심으로 무차별적 저인망식 수사에 나서고 있지만 변죽만 울리고 있다”며 “수사가 계속 확대되면서 ‘기획사정’ ‘보복 수사’란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정치권은 이번 국감에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서민경제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첫째도 서민경제, 둘째도 서민경제, 셋째도 서민경제”란 게 정부와 여야의 이구동성이다. 기업 대신 경제부처의 고초가 예상되는 대목이다. 한발 더나가 정치권은 ‘기업 잡는’걸림돌 제거에 나설 수도 있다. 과도한 금융규제 등이 그것이다.
대기업의 법인세 인하 등 규제 완화와 감세를 약속한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는 “이번 국감에서 쟁점이 될 부분은 과거 10년 간 반 시장, 반 기업 법안이 어떤 영향을 미쳐왔는지 여부와 좌편향 법안의 개선”이라고 밝혔다. 같은당 김용태 의원도 “우리의 금융규제는 미국이 아닌 일본이나 유럽과 비교해도 과도하다”며 “금융선진화 방안은 미국 스탠더드가 아니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한국의 금융경쟁력을 확보하자는 것”고 강조했다.
특히 노회찬·심상정·임종인·김현미 전 의원 등이 이번 국감에서 빠진 것도 재계엔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4·9 총선에서 낙선한 이들은 17대 국회 때 ‘기업 저격수’로 명성을 날렸다. 재계에 대한 국감이 ‘김빠진 맥주’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는 까닭이다.
민노당 관계자는 “재계를 밀고 당기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무슨 국감에서 쓴소리를 할 수 있겠냐”며 “증인 신청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다만 초선의원들의 각오는 남다르다. 이번 국감이 초선의원들에게 처음인 점을 감안하면 굵직한 치적을 만들기 위해
 


총수 부르나” 여야 상임위 기업별 쟁점 논의 ‘실종’

여권, 친기업 정책 반영… 야권, “긁어 부스럼 될라”
재계가 느긋한 이유
검찰 수사 ‘지지부진’
국감, 서민경제에 초점
기업 저격수’부재

‘폭로형태’로 진행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치인들이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차기 확고한 기반을 만드는 데는 사회적 이슈 양성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 재계를 관리 감독하는 사정기관의 ‘컨트롤타워’격인 정무위원회를 중심으로 몇몇 초선의원들은 기업들의 숨은 문제점을 찾기 위해 혈안이다.
설사 총수나 CEO 등 기업 인사가 국감 증인으로 채택되더라도 증인석에 앉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해외출장이나 건강상의 사유로 불출석할 게 뻔하다 관측이다. 이는 기업인들이 국감 출석을 피하기 위해 이용했던 전형적인 수법. 잠시 자리를 피한 뒤 상황이 정리된 후 돌아올 요량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국감에 불려갈 기업 인사가 예전에 비해 많이 줄어 한결 홀가분한 입장”이라며 “여야 협상 과정에서 기업인이 증인으로 채택됐다 하더라도 굵직한 인사들은 매번 단골손님으로 등장한 인물이고, 현재 찬반 논란이 가열되고 있어 해당 기업의 움직임은 거의 없다”고 전했다.
그렇다고 ‘해볼 테면 해봐라’식의 재계라도 마냥 손 놓고 기다릴 수만은 없는 일. ‘국감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해 자체 안테나를 여의도에 맞추는 등 철저한 대비책을 강구하고 있다. 만에 하나 있을 수 있는 사고(?)에 대비해 저마다 정보력을 총동원하고 있는 것.
국내 굴지의 기업마다 직원을 붙여 정보 수집 활동을 벌이는가 하면 각 의원들의 미세한 움직임 하나하나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의원실 탐색은 기본. 의원 측 진영의 숨은 실세들을 찾아내기 위한 정보전도 뜨겁다. 흡사 정보기관의 첩보활동을 방불케 한다. 대기업이 검찰·경찰·국정원 등 수사·정보 인력을 대거 영입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재계 관계자는 “재벌그룹들의 힘은 안테나의 높이, 즉 정보력에서 비롯된다”며 “국감 전부터 마무리 될 때까지 사전 정보수집을 통해 국감의 표적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별도로 파악해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9월 재계는 온갖 ‘괴담’으로 떠들썩했다. 10월로 접어들었지만 기업들은 아직 상황을 주시하며 바짝 엎드려 있다. ‘9월 괴담’이 국감을 타고 10월까지 이어질지 시선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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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