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가본 ‘2008 국감 현장’③ 거물급 누구 누구 나오나?

18대 국회 첫 국정감사 준비가 한창이다. 이번 국감은 이명박정부로써 맞는 첫 국감인데다 10년 만에 여야가 바뀐 상태로 치러진다는 점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예고하고 있다. 전운은 이미 감돌고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국감을 맞는 자세가 다른 탓이다. 한나라당은 참여정부의 마지막 1년을 파헤치겠다는 목적을 가진 데 비해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 6개월 캐내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에 따라 누구를 증인으로 채택하느냐가 국감의 최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이번 국감은 밝혀내야 할 민감한 사안이 많은 만큼 그와 관련된 증인들의 면면도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번 국감의 화두로 떠오를 만한 인물들을 예측해봤다.

거물들 ‘속살’ 들춰보니‘물’ 제대로 벌컥벌컥?

이번 국감에 채택된 증인들을 살펴보면 국감을 통해 얻으려는 목적이 다른 만큼 여야에 따라 확연히 구분된다.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의 실정을 밝혀내기 위해 정책 혼란 책임자와 권력형 친인척 비리자 등을 주요 증인으로 채택해 둔 상태다. 이에 반해 한나라당은 참여정부의 실세와 관료를 증인으로 채택하고 지난 정부의 실책을 따지겠다고 벼르고 있다.
 
경제정책 실패 책임자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
민주당이 이번 국감을 대비해 구성한 ‘공기업 낙하산 인사와 국정파탄 3인방 특별 테스크포스(TF)팀’이 겨냥한 3인 중  한명은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다.
강 장관은 특히 경제와 관련된 상임위에 거의 모두 증인으로 나설 것으로 보여 국감 최다출연자 중 한명으로 꼽히고 있다. 이유는 민주당이 강 장관을 ‘경제정책 실패 책임자’와 ‘공기업 사유화 관련 정부 관계자’로 분류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강 장관에 집중포화를 던지는 까닭은 이명박 정부에게 국민들이 가장 기대했던 경제살리기가 이뤄지기는 커녕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제에 대한 책임을 물으려는 데 있다.
실제로 강 장관의 경제관과 정책들은 끊임없이 도마에 오르며 국민들의 원성을 샀다. 부자를 더욱 부자로 만드는 정책을 양산한다는 비난을 받으며 경제위기의 주요 책임자라는 오명을 받기도 했다.
상황이 여기까지 이르자 사회 곳곳에서 강 장관의 경질 목소리가 거세기도 했다. 지난 7월에는 중앙대 총장과 서울대 교수 등 경제, 경영학자 1백18명이 강 장관의 경질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시민단체 경실련도 강 장관이 총체적 경제위기를 초래했다며 경질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처럼 경제위기의 책임자로 집중 공격을 받고 있는 강 장관을 증인으로 채택한 민주당은 고환율, 고물가, 민생파탄에 대한 원인과 책임을 묻고 미국발 금융위기의 파장과 대책에 대해서도 함께 추궁할 계획이다. 또 공기업 민영화와 고환율로 인한 중소기업의 피해 등과 관련해 지식경제위에서도 강 장관을 증인으로 채택할 예정이다.
강 장관과 관련한 증인으로는 ‘대리경질’ 논란을 불렀던 최중경 전 기재부 차관을 비롯, 전광우 금융위원장, 이성태 한은 총재, 민유성 산업은행장, 청와대 김중수 전 경제수석 및 박병원 현 경제수석 등이 출석할 예정이다.

촛불집회 폭력진압 규명 어청수 경찰청장
어청수 경찰청장 역시 이번 국감 증인 중 화제의 인물로 낙점됐다. 민주당은 이번 국감에서도 어 청장의 해임을 촉구할 것으로 보인다.
어 청장은 민주당뿐만 아니라 종교계와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는 등 위기의 순간들이 끊이지 않고 닥치고 있다. 어 청장을 코너로 몰아붙인 가장 큰 요인은 촛불집회자들에 대한 폭력진압이다. 물대포와 물감대포까지 사용하며 촛불집회를 폭력이 난무하는 집회로 만들었다는 비난을 받았던 어 청장은 촛불집회가 잦아든 지금까지도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최근에는 ‘유모차부대’에 대한 수사가 이어지는 것을 두고 여성단체에서 어 청장의 해임을 촉구하는 성명을 내 어 청장을 몰아세웠다.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여성단체는 지난달 24일 공동 성명을 내고 “이명박 정부와 어청수 경찰청장의 공권력 남용 행위를 강력히 비판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불교계의 어 청장 사퇴요구까지 겹치는 등 어 청장에 대한 문제는 이명박 정부의 주된 골칫거리 중 하나였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각종 사안에 대한 책임을 추궁할 예정이다.
먼저 민주당은 미국산 쇠고기로 인해 촉발된 촛불집회 및 폭력진압에 대한 책임을 규명할 예정이다. 또 민간인 불법 사찰의 책임도 함께 묻겠다는 계획이다.
민주당은 ‘5공회기 공안정국, 인권탄압’과 ‘방송 장악, 인터넷 통제’와 관련해 어 청장을 증인 요구 명단에 올리고 위의 사안들을 따지겠다고 벼르고 있다.
어 청장과 관련한 증인으로 김석기 서울경찰청장, 한진희 전 서울경찰청장, 김성호 국정원장 등 8인을 선정했다. 또 안진걸 광우병대책회의 국장, 이나래 서울대 학생(촛불집회 구타 피해자)을 참고인으로 선정했다.

방송장악 음모 의혹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정부의 방송장악을 위해 낙하산 인사자로 거론되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도 국감의 주요 증인 중 한명이다.
최 위원장은 ‘이명박 대리인’이란 의혹을 받을 만큼 언론장악을 위한 음모로 보이는 각종 사안에 이름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특히 한국방송의 새 사장 선임을 둘러싼 파문의 핵심 인물로 떠오르면서 그 의혹은 더욱 짙어졌다. 최 위원장이 청와대 대통령실장과 한국방송 전직 임원들을 망라해 한국방송 문제에 관한 ‘7인 비밀회동’을 주도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선시절 이명박 캠프 방송총괄본부장을 맡았던 구본홍씨가 YTN 사장으로 내정되고 특보를 지낸 정국록씨가 아리랑 TV 사장에 내정되면서 언론장악의 의혹은 겉잡을 수 없이 깊어졌다. 게다가 최 위원장이 청와대의 내각 교체 물밑 작업에 관여하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면서 언론장악을 위한 하수인이라는 오명은 최 위원장을 줄곧 압박해 왔다.
민주당은 이와 관련해 최 위원장을 비롯, 신재민 문화부 2차관, 구본홍 YTN 사장, 이몽룡 스카이라이프 사장, 양휘부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 이병순 KBS 사장 등을 핵심 증인으로 선정했다.

뉴타운 허위공약 오세훈 서울시장
민주당은 ‘뉴타운 허위공약’과 관련해 오세훈 서울 시장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지난 4·9 총선 이후 뉴타운 공약은 끊임없는 논쟁대상이었다. 결국 법정 소송으로까지 비화되면서 점차 복잡해지는 양상을 띄었다.
민주당이 뉴타운 공약과 관련해 한나라당 정몽준 의원과 오 시장 등을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고발했고 이에 대해 한나라당이 ‘정치공세’라며 반발하는 등 한동안 정치권의 뇌관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오 시장은 기자설명회를 열고 정치권에 소모적 논쟁의 종결을 촉구했다. 오 시장은 “작금의 논란은 정치공세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면서 “협소한 이해관계에 사로잡힌 일부 정치권의 왈가왈부에 좌고우면하지 않겠다. 이것으로 소모적인 뉴타운 논쟁을 끝내자”고 정치권에 자제를 요청한 바 있다.
현재 뉴타운공약과 관련한 수사는 계속 진행 중이다. 지난 달 20일에는 이와 관련해 정 의원과 오 시장이 검찰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았다. 이날 정 의원은 “동작에 뉴타운 세우는 것을 도와달라고 하자 오 시장이 고개를 끄덕여 약속이라 생각했다”고 답변했고 오 시장은 “동작 뉴타운은 1~3차 뉴타운이 끝난 후에나 검토할 수 있다는 원론적인 대답을 했으며 예의 차원에서 고개를 끄덕인 것을 정 의원 측에서 잘못 해석한 것 같다”고 답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은 이에 대해 지난달 23일 성명서를 내고 “두 주인공이 대국민 사과는커녕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것을 보면 집권여당의 최고위원이나 서울시장으로서 자격이 있는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며 “정몽준 최고위원이나 오세훈 시장은 뉴타운 사기극에 대한 비열한 짜맞추기를 중단하고 사과하라”고 전하며 국감에 앞서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은 뉴타운 허위공약 사건과 관련해 오 시장과 정 위원 등 8명을 증인으로 채택한 상태다.

‘친구 게이트’ 주인공 장경작 롯데호텔 사장
‘제2롯데월드’와 관련된 사안도 국감의 주요 이슈로 떠오를 전망이다. 이와 관련된 증인 중 한명은 ‘친구게이트’의 주인공 장경작 롯데호텔 사장이다.
민주당은 제2롯데월드 건축 허용 움직임을 계기로 이명박 정부와 롯데그룹간의 유착 의혹을 제기해 왔다.
특히 장 사장이 이 대통령과 고려대 경영학과 동기동창이고 대통령 취임에 맞춰 롯데 측이 총괄사장직을 신설해 장 사장을 전진배치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한 근거로 이 대통령이 인수위 시절 작은 청와대로 불릴 정도로 롯데호텔을 애용한 점이나 취임 후 외국 주요 인사 숙소와 정부 행사를 롯데호텔이 거의 독점하고 있는 점을 내세웠다.
민주당 이재명 부대변인은 “제2롯데월드 허용은 국민과 국가안보대신 친구와 재벌을 선택하는 것이고 재벌 특혜를 넘어 국가권력을 사유화하는 폭거”라고 비난하며 유착의혹을 확고히 했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이번 국감을 통해 친구게이트의 실체를 본격적으로 파헤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장 사장뿐만 아니라 오세훈 서울시장, 김효수 서울시 주택국장 등과 이계훈 공군참모총장 내정자 등 공군관계자들을 증인으로 신청할 예정이다.

‘사위게이트’의 주인공 조현범 한국타이어 부사장
이명박 대통령의 셋째 사위인 조현범 한국타이어 부사장도 이번 국감에서 주목받는 인물이다. 이른바 ‘사위 게이트’의 주인공이기도 한 조 부사장은 ‘코스닥시장 주가조작 의혹사건’과 관련해 검찰의 내사를 받고 있다.
조 부사장은 지난해 8월 한국도자기 3세인 김영집 전 엔디코프 대표와 아남그룹 창업주 손자인 나성균 네오위즈 대표, 장홍선 극동유화그룹 회장의 아들 장선우씨 등과 함께 코스닥기업 코디너스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32억원의 평가차익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조 부사장은 재벌 2, 3세와 함께 주식투자로 재산을 불려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해 9월에는 LG가 3세인 구본호 래드캅투어 회장과 동일철강의 제3자 배정 유상증가에 참여하려다 금융감독원의 제지로 실패하기도 했다.
민주당은 국감에 앞서 지난달 24일 조 부사장의 주가조작 혐의 등과 관련해 권력형 비리 척결 차원에서 특검을 도입해야 한다며 여당의 협조를 요구한 상태다. 이에 따라 국감에서 조 부사장에 대한 추궁이 거셀 것으로 예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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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