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신상미 기자 = 붉은색 단색화로 유명한 베르나르 오베르텡의 첫 전시가 리안갤러리에서 오는 4월23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는 그의 대표작인 레드 페인팅 시리즈, ‘Tableau feu’ 연작, 조각으로 구성된다. 특히 붉은색과 불의 요소로 대표되는 오베르텡의 작품세계를 회고한다.
오베르텡(Bernard Aubertin, 1934 ∼ 2015)은 1960년대 독일의 아방가르드 예술단체인 제로그룹(ZERO Group)에 속했다. 제로그룹은 빛, 구조, 율동과 같은 비물질성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이며 컨버스 표면을 찢거나 불태우는 등 파괴적인 행동을 가함으로써 새롭고 혁신적인 회화를 추구했다. 오베르텡은 회화의 표면 위에 드러나는 색상, 재료의 물질성과 순수성을 강조하는 방식을 추구했다.
파괴적인 행동
1958년부터 선보인 오베르텡의 레드 모노크롬 회화는 60여년에 이르는 작가의 긴 여정을 대표하는 작업이다. 그는 단색을 통해 온전한 물질성과 정신성을 구현하고자 했다. 오베르텡에게 모노크롬 회화는 선, 형태, 구조 같은 구상적 요소를 철저히 무력화시키며 진정한 회화의 본질을 드러내는 유일무이한 세계였다.
또 단색은 색채의 절대적 가치를 유지시키는 것으로 모노크롬 회화를 통해 이 가치가 완전히 실현된다고 여겼다. 이 점에서 색상을 선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였다. 이렇게 선택된 색이 바로 붉은색이다. 그는 “붉은색은 자체에 내재된 빛을 통해 추상적 감정을 극명하게 불러 일으킨다”고 언급했다. 붉은색은 그에게 색상만으로 절대적 가치를 드러낼 뿐 아니라 회화에 대한 순수정신을 고스란히 머금은 색채였다.
오베르텡의 첫 번째 모노크롬 회화는 화판 위에 나사와 고리볼트를 박고 붉은색을 가득 칠한 ‘Tableau clous’ 연작이다. 그는 그리드 형식으로 나열된 못, 나사, 아이볼트, 스푼, 포크 같은 일상 재료들을 사용함으로써 에너지를 발산하는 새로운 화면을 창조해 냈다.
불의 요소로 대표되는 작품세계 회고
단색 통해 온전한 물질·정신성 구현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대표작인 ‘Tableau clous’(1971)에서 보듯 합판 위에 일련의 순서로 나열된 못은 빨간색으로 뒤덮였다. 이 과정에 발생한 물감 덩어리의 흔적과 각 못에 드리워진 그림자로 인해 평면성에 내재된 혁신적 화면과 강렬한 에너지가 표출된다. ‘Fait au tube’(2014) 연작은 붉은색 물감을 짜낸 물리적 흔적을 그대로 살림으로써 유연한 화면 변화를 드러낸다.
‘불’은 붉은색만큼이나 작가의 세계를 드러내는 중요한 요소다. 오베르텡은 생전에 바이올린, 책과 같은 일상적 오브제나 금속 표면 위에 일정하게 꼽힌 성냥에 불을 피우고, 화염 이후 남은 잔재와 흔적을 그대로 이용한 퍼포먼스 성향이 강한 추상작업을 선보였다. 이 과정에서 오베르텡은 불의 파괴적 속성이 ‘창조’와 ‘부활’을 내포하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1층 전시공간에 있는 ‘Tableau feu’(2009) 중 알루미늄 패널 1개는 성냥을 꼽기 위해 구멍을 뚫은 상태다. 또 다른 하나는 불을 피운 후 그을려진 흔적을 고스란히 남긴 것으로, 물질과 비물질 성향이 동시에 공존하고 있다.
창조·부활 내포
오베르텡은 색상에 대해 끝없이 연구하며 100개의 색상 레이어 혹은 60개의 레이어를 시도하며 색상 전개의 엄격성을 보여줬다. 오베르텡은 이러한 화면을 통해 관람자가 만나는 작업이 자신의 회화적 실현이 완전히 끝난 상태가 아니라 언제든 다시 시작해 수행적 태도를 반복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존재하는 표면으로 보여지길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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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오베르텡은?]
1934년 프랑스 출생. 2015년 독일에서 타계했다. 니스 근현대미술관, 루드비히 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세인트 폴 마그 재단 미술관, 파리 바스틸 디자인센터, 브레시아 베라델리 재단 등 다양한 미술관 그룹전시에 초대됐다. 그의 작품이 파리 퐁피두 센터,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 루드비히 미술관, 리옹 현대미술관, 독일 쿤스트 팔라스트 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다.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