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절 터를 찾아서... ①합천 영암사지

모산재 기암절벽 아래 신비로운 절터

삼국시대부터 고려 때까지 융성한 불교는 많은 문화유산을 남겼다. 하지만 숭유 억불의 기치를 내건 조선이 들어서면서 많은 절집이 사라지는 비운을 겪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절집이 있는 반면, 한 시대를 풍미한 절집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절터도 있다.

상상력 자극하는 우리나라 손꼽히는 절터
일정한 간격의 쐐기돌, 튼튼한 영삼사지 석축

경남 합천 영암사지(사적 제131호)는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절터다. 영암사지의 든든한 배경이 되는 모산재는 기우제를 지내던 정상의 무지개 터에 사계절 물이 고여 신령스러운 바위산이란 뜻으로 영암산, 묘하게 생겼다고 묘산이라 부른다. 이름에 산이나 봉이 아니라 고개를 뜻하는 ‘재’가 붙어 특이하다. 석축 아래에서 보면 모산재와 영암사지가 잘 어울린다.

영암사지는 신비롭고 비밀이 가득한 절터다. 절집의 창건 내용은 전혀 없고, 내력에 대한 기록만 일부 남았다. 영암사적연국사자광지탑비에는 고려 현종 때(1014년) 적연선사가 지금의 가회면인 가수현에서 83세로 입적했다는 내용이 나오고, 강원 양양의 선림원지에서 출토된 홍각선사비 조각에 ‘영암사’라는 이름도 보인다.

자세한 기록 없는
비밀스런 절터

금오산 자락에 세워진 선봉사 대각국사비에는 천태종 5대 사찰로 원주 거돈사, 진주 지곡사, 해주 신광사, 여주 고달사, 가수현 영암사가 기록됐다. 문헌에 남은 기록은 조선 고종 때(1872년) 제작된 삼가현지도에 ‘영암사고지’란 글자와 탑이 표시된 것이 유일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같이 유명한 지리지에도 영암사의 흔적이 없어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영암사지를 차례로 둘러보자. 모산재 기암절벽을 품은 영암사지의 풍경은 커다란 석축이 한몫을 한다. 1984년부터 다섯 차례 발굴 조사를 거쳐 금당 터와 서금당 터, 중문 터, 회랑 터 등이 발견되었다. 회랑 터는 경주 불국사나 황룡사지, 익산 미륵사지처럼 왕실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절집이었음을 알려주는 단서다. 석축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독특한 돌이 박혔는데, 불국사 석축이나 석굴암에 있는 쐐기돌처럼 석축이 무너지지 않게 한다.

금당 터의 석축도 특이하다. ‘ㅜ’형으로 가운데가 튀어나오게 석축을 쌓고, 이 부분에 쌍사자 석등이 앉아 있다. 또 튀어나온 석축 사이로 금당에 오르는 돌계단을 양옆에 놓았는데, 돌을 휘게 깎은 뒤 디딤돌 형태로 만들기 위해 다시 깎았다. 돌을 떡 주무르듯 한 선현의 지혜와 공력이 돋보인다. 석축 위에 금당 기단을 쌓고 목재로 건물을 지었겠지만, 지금은 돌로 만든 기단과 주춧돌이 남았을 뿐이다.

기단에 다양하고 아름다운 문양을 새겼는데, 금당을 돌아보며 하나씩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자르지 않은 식빵처럼 생긴 ‘안상’ 문양, 앞면과 좌우 양면에 각각 다른 사자 문양이 있다. 언뜻 보면 위엄 있는 모습이지만, 어떤 사자는 삽살개를 닮아 귀엽다. 금당으로 오르는 계단 난간에는 사람 머리가 달린 상상의 새(가릉빈가)가 새겨져 있다.

영암사지를 대표하는 유물은 석축에 당당하게 선 쌍사자 석등(보물 제353호)이다. 우리나라에 남은 쌍사자 석등은 모두 5기다. 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 국립광주박물관에 있는 광양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 합천 영암사지 쌍사자 석등이 통일신라 작품으로 손꼽힌다. 영암사지 쌍사자 석등은 꼬리가 아름다운 사자 2마리가 마주 보며 화사석을 받치고 있다. 작지만 다부진 사자 형상 사이로 영암사지 삼층석탑(보물 제480호)이 보인다. 사자상 위아래로 아름다운 연꽃이 조각되었고, 불을 밝히는 화사석에 사천왕상이, 석등을 받치는 팔각 지대석에 동물 문양이 새겨졌으니 석등의 문양을 하나씩 살펴보자.

대표 유물
쌍사자 석등

금당 터 뒤쪽에는 서금당 터가 있다. 건물 터 좌우로 영암사의 사격(寺格)을 높인 승려의 탑비인 듯한 귀부 2기가 보인다. 아쉽게도 비의 주인공이나 내력을 알 수 있는 비문이 적힌 비신은 사라졌다. 합천 영암사지 귀부는 보물 제489호로 지정되었다. 

합천은 백제 의자왕의 공격을 받아 김춘추의 사위 김품석이 목숨을 잃는 등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대야성을 품은 고장이다. 어쩌면 신라가 나라의 안전을 염원하기 위해 연 절집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영암사지의 든든한 배경이 되는 황매산은 5월 초면 철쭉이 흐드러지게 피어 많은 여행객을 불러 모은다.


황매산은 정상 아래까지 차가 들어갈 수 있다. 주차장에 이르면 드넓은 억새밭이 지척이고, 황매산 능선이 손에 잡힐 듯하다. 언뜻 제주의 오름을 닮은 억새밭 능선에 10분이면 닿는다. 능선에 오르면 황매산 정상까지 목재 데크와 계단이 차례로 이어진다. 능선 너머가 경남 산청군으로, 지리산의 능선이 장쾌하다. 합천 허굴산이 볼록 솟았고, 앞모습과 현저하게 다른 모산재의 뒷모습도 보인다.

합천호를 지나 용주면에 이르면 합천영상테마파크가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근대에 이르는 한국의 풍경을 그대로 옮겨놓은 곳이다. 경교장, 조선총독부, 원구단, 일제의 적산 가옥과 경성 거리, 종로 거리 등 낯익은 풍경이 이어진다. 드라마 〈빛과 그림자〉 〈서울 1945〉 〈각시탈〉, 영화 〈써니〉 〈전우치〉 〈암살〉 〈동주〉 〈오빠생각〉 등을 이곳에서 촬영했다.

용주면에 영상테마파크가 있다면, 해인사가 깃든 가야면에는 대장경테마파크가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해인사 장경판전과 세계기록유산인 고려대장경판 및 제경판을 주제로 전시하는 대장경천년관, 애니메이션 〈천년의 마음〉 5D 영상을 상영하는 대장경빛소리관으로 구성된다.

합천에는 영암사지보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문화유산이 전시된 곳이 있다. 가야국 연맹체인 다라국 유물을 볼 수 있는 합천박물관이다. 다라국은 400년 전후 광개토대왕의 남정 여파로 붕괴된 금관가야 일부가 옮겨 온 것으로 알려진다. 박물관은 다라문화실, 다라역사실, 합천역사실로 나뉘며, 1층에는 발굴 체험과 다라국 의상 입어보기 등을 할 수 있는 어린이체험실이 있다.

다라문화실에는 옥전 고분군에서 출토된 갑옷, 투구, 말갖춤, 무기류 등 부장품과 화려한 금제 귀고리, 용봉문양고리자루큰칼, 독특한 컵형 토기, 활발한 교류의 증거인 로만 그라스 등이 전시된다. 다라역사실에는 옥전 고분군 M3호분 덧널무덤이 부장품과 함께 실제 크기와 모습으로 전시된다. 박물관 뒤쪽에 자리 잡은 옥전 고분군도 산책하기 좋게 조성되어 옛 가야국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껴볼 수 있다.

------------------------여행 정보------------------------

당일 코스
합천 영암사지→황매산→합천영상테마파크→정양늪생태공원→귀가

1박 2일 코스
첫째 날: 대장경테마파크→해인사→해인사 소리길→합천박물관→숙박 
둘째 날: 정양늪생태공원→합천영상테마파크→합천 영암사지→황매산 기적길→귀가

관련 웹사이트
· 합천 문화관광 http://culture.hc.go.kr/main
· 합천영상테마파크 http://culture.hc.go.kr/sub/02_01_01_01.jsp
· 대장경테마파크 http://culture.hc.go.kr/sub/02_02_01_01.jsp
· 합천박물관 http://mus.hc.go.kr/main

문의 전화
· 합천군청 관광진흥과 055-930-4666
· 합천박물관 055-930-4882
· 합천영상테마파크 055-930-3744
· 대장경테마파크 055-930-4801

대중교통(버스)
서울-합천: 서울남부터미널에서 하루 6회(08:00∼18:40) 운행, 약 4시간 소요.
*서울남부터미널 1688-0540, 버스타고 1644-2992, 합천시외버스터미널 1688-4460

숙박
· 묵와고가: 묘산면 화양안성길, 055-932-6403
· 삼가관광농원(연꽃인연): 삼가면 소오길, 055-934-4488
· 황매산오토캠핑장: 가회면 황매산로, 055-932-5880
· 오도산자연휴양림: 봉산면 오도산휴양로, 055-930-3733


식당
· 합천사누키우동: 사누키우동, 용주면 합천호수로, 055-931-1019
· 적사부: 탕수육, 합천읍 동서로, 055-931-5033
· 황대감약도라지백숙: 약도라지백숙, 가회면 서부로, 055-931-1870

주변 볼거리
이주홍어린이문학관, 합천댐물문화관, 정양늪생태공원, 가야산, 해인사, 해인사 소리길, 청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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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