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경제팀] 양동주 기자 = 해마다 명절이 되면 소비자와 택배업계는 배송 문제로 몸살을 겪는다. 평소보다 물량이 대폭 늘어나면서 과부하가 걸리는 탓이다. 소비자들은 물건을 제 때 받을 수 있을지 걱정부터 앞선다. 늦게라도 도착하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택배로 인해 불거지는 각종 잡음은 그냥 지나치기 힘든 수준이다.
통상 한해 택배 물량의 절반 가량이 명절 전후를 기점으로 소화된다. 택배기사들은 명절 때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낸다. 물량이 늘어난 만큼 택배 사고 역시 명절 전후로 빈번해진다. 하지만 뾰족한 개선책은 여전히 요원하다. 이번 설 연휴 역시 마찬가지였다.
책임 입증 불가능
설 연휴가 지나자마자 택배로 인해 낭패를 봤다는 소비자들의 불만이 곳곳에서 쏟아졌다. 상품불량은 주로 농축수산물에서 발생했다. 과일상자를 주문했는데 썩고 문드러진 제품이 오는 경우가 흔했다. 명절 선물은 구입자가 직접 상태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맹점이 낳은 결과다. 과일은 판매자와 택배사간 불량의 책임을 미루다 보니 소비자들이 피해를 구제받기가 어렵다. 교묘하게 썩은 부분이나 흉터난 곳을 보이지 않도록 포장 판매하며 소비자를 기만하기도 했다.
택배 수하물 파손을 비롯해 배송 지연, 분실 등도 단골 메뉴다. 농수산물은 생물이라는 이유로 반품도 어렵다. 판매자는 배송 중 파손을 앞세우고 택배사는 불량 상품이라는 주장을 펼치곤 한다.
대형 온라인몰에서 구입한 상품의 배송 문제 관련 불만도 많이 제기됐다. 주문 후 배송이 어렵거나 물건이 확보되지 않았다며 주문을 강제로 취소하는 식이다. 설 연휴 전까지는 배송이 확실하다고 광고해 놓고 배송일자를 넘겨버린 채 책임을 회피하는 상황도 비일비재하다.
규정상 온라인몰에서는 상품을 지급하기 어려울 때 구입자에게 즉시 알려야 한다. 하지만 이를 알리지 않아 넉넉한 시간을 두고 구매한 선물세트를 받지 못해 급하게 오프라인 매장에서 재구매 하는 소비자들만 호되게 당하는 셈이다.
물론 설이라는 시기적 특성상 배송대란은 피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택배회사의 수익은 택배물량에 비례한다는 점에서 명절은 택배회사들에게 대목임에 분명하지만 올해는 폭설과 한파가 겹친 데다 물량이 급증하면서 배송여건이 예년보다 악화됐다. 주요 택배회사는 설 기간 물량이 평소보다 급격히 늘어날 것을 염려해 택배 예약접수를 제한하는 극약처방을 내리기까지 했다.
설 물량 급증에 배송사고 증가
상품 확인 어려워 보상받기 막막
설 연휴 기간 내내 비상운영을 실시했던 한진택배는 300대의 특별수송 차량을 추가로 운영하고 본사 임직원이 택배 현장을 지원했다. 현대로지스틱스는 설 특별수송에 나섰고 4000대의 택배차량과 700명의 본사직원이 두입돼 배송을 돕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택배 물량은 택배회사가 감당할 수준을 한참 넘어섰다.
우정사업본부 역시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우정사업본부는 설 명절 특별소통기간으로 정한 1월25일부터 2월6일까지 총 1300만개의 소포우편물을 배달했다. 8톤 트럭 1만8600대에 해당하는 역대 최고 물량이다. 택배업무에 차질을 빚지 않기 위해 4만2000여명의 직원과 2200명의 보조인력까지 투입해야만 했다. 13일 간 투입된 차량은 하루평균 2000대에 달한다.
김기덕 우정사업본부장은 “1월25일부터 2월2일 사이에 특히 물량이 집중됐다”며 “폭설, 한파 등으로 집배원들이 배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잘 마무리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배송이 이뤄지지 않아 발생하는 불편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된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한국소비자원이 지난해 접수한 택배 관련 상담 60건 가운데 51건(85%)는 명절 선물세트 피해였다. 설 연휴에 앞서 공정위가 소비자 피해주의보를 발령하고 주의를 강조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귀금속·보석의 경우 더욱 복잡해진다. 소비자분쟁해결에는 제품교환 또는 환급의 사유를 함량 및 중량미달, 치수 상이, 도금불량, 표시와 제품 내용의 상이, 조립불량으로만 규정하고 있다. 이 외의 사유로 사업자와 소비자 간의 분쟁이 발생한 경우 사업자에게 명확한 귀책사유가 있지 않으면 소비자가 교환 또는 환급을 주장하기 어렵다.
늘어난 물량에 비해 부실한 택배사의 소비자 응대는 여전히 부족함 투성이다. 현행 택배 표준약관에 의하면 포장 상태가 불량인 물품은 사업자가 운송을 거절할 수 있다. 사업자가 운송을 수락했고 지연돼 부패의 원인이 됐다면 당연히 손해 배상의 책임을 져야 한다.
특정 일시에 사용할 운송물의 인도예정일을 초과하는 경우 운송장 기재 운임액의 200%를 지급하도록 명시했더라도 구제받기란 쉽지 않다. 그나마 소비자원 등 소비자단체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소비자와 택배사 사이에서 원활한 실마리를 찾기란 그리 쉽지 않다.
게다가 이 시기에는 택배를 위장한 스미싱 범죄마저도 기승을 부린다. 얼핏 택배회사에서 보낸 듯한 문자의 상당수에는 스미싱 사기범의 불순한 의도가 깔려 있다. 문자와 함께 전달된 링크를 클릭하는 순간 악성코드가 설치되거나 가짜 인터넷뱅킹 사이트로 연결된다. 명절 연휴에 선물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노린 신종 사기 수법인 셈이다.
여건 탓하는 회사
택배업체 관계자는 “명절 시즌 앞뒤로 약 열흘 동안 처리하는 물량이 평소의 3배가 넘는다”며 “자연스럽게 택배 서비스에 대한 불만 접수가 많아지는데 사실여부 파악에서부터 이견이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djy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택배단가 추이
양적 성장을 거듭해 온 택배업계가 갈수록 낮아지는 개별단가 때문에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최근 한국통합물류협회는 지난해 택배 시장 규모가 4조3438억원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한 해 전 3조9800억원보다 9.2% 늘면서 처음으로 4조원대로 올라섰다. 운반량도 18억1596만상자로 11.8% 증가했다. 15세 이상 경제활동인구 1인당 평균 택배 이용 횟수는 연간 67.9회로 집계됐다. 올 시장 규모는 5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택배시장의 양적 성장은 온라인 및 모바일 쇼핑의 활성화에 힘입은 바가 크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10월 온라인 쇼핑 판매액은 43조6045억원으로 유통채널 중 1위에 올랐다. 오프라인 유통채널 중 가장 큰 대형마트(40조2801억원)를 넘어섰다. 마트에서 주로 사던 신선식품까지 온라인으로 사는 사람이 늘어난 결과다. 주요 온라인몰의 신선식품 매출은 한 해 전의 두 배 수준으로 불어났다.
택배 물량의 급격한 증가세와 달리 배달 단가는 낮아지는 추세다. 2001년 상자당 3190원이던 택배 단가는 지난해 2392원으로 떨어지는 등 15년 동안 33.3% 하락했다. 이는 해외 주요국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