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조종사 ‘귀족노조’ 논란

회사 사정 뻔히 알면서도 돈타령만…

[일요시사 취재1팀] 신상미 기자 = 연초부터 항공사들이 뒤숭숭하다. 아시아나가 희망퇴직과 인력재배치를 통해 500명의 인력을 구조조정하기로 한 데 이어 대한항공 조종사노조마저 37% 임금인상을 요구하면서 비난 여론이 일고 있다.

지난해 말 대한항공 일반노조는 사측과의 임금협상에서 1.9% 임금인상에 합의한 반면, 그 직후 이뤄진 조종사노조와의 임금협상에선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지난 19일 최종 결렬됐다. 이에 조종사노조는 단체행동권 행사 여부를 놓고 지난 12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실시하고 있다.

노사 힘겨루기
파업투표 결과는?

노조 홈페이지에 따르면 27일 현재, 조합원 1085명 중 960명이 투표에 참여해 88.48%의 높은 참여율을 보이고 있다. 조종사새노조(소수노조) 소속 조합원 65명도 투표에 참여해 힘을 보태고 있다.

일부 언론에선 해당 투표에 대해 파업 여부를 결정하는 ‘파업 찬반투표’라고 보도하고 있으나 쟁의행위엔 파업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기에 꼭 노조가 파업을 염두에 두고 투표를 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찬성 결과가 나올 경우 노조는 태업, 보이콧, 피케팅 등을 비롯해 ‘합법적인’ 파업이 가능해진다.

19일 조정이 최종 결렬되자, 다음날인 20일 승무원 및 사무직 등 20여개 직종 일반직들로 구성된 일반노조에서 조종사노조를 비판하는 성명을 내 눈길을 모았다. 일반노조는 성명서에서 “조종사노조의 주장은 절박한 생존권 요구가 아니다”라고 강조한 후 “조종사노조의 쟁의 관련 찬반투표는 자신들의 명분만을 내세운 것으로, 파업에 따른 피해를 동료에게 강요하는 행위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일반노조는 또 “2005년 조종사노조 파업으로 200편 이상 항공기 운항이 취소됐다”며 “조종사노조는 국민적 호응을 얻어내지 못한 '귀족노조'가 됐다. 당시 일반직들이 승객들의 항의를 받으며 직종 간 이질감이 커졌는데 이번에도 조종사노조가 객실, 정비, 운송, 예약, 판매 등 20여개 직종에 대한 배려 없이 파업을 준비한다”고 지적했다.

10여년 전인 2005년 당시 조종사노조가 파업하면서 나머지 직종들이 고객들의 거센 항의를 받는 등 피해와 부담을 떠안았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200편 이상의 항공기 운항이 취소되면서 조종사노조의 파업은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비난 여론만 들끓었다. 

일반노조 관계자는 <일요시사>에 “2005년 당시에 발권·운송직원들이 승객들에게 멱살을 잡히고 뺨을 맞는 등 불편을 많이 겪었다”며 “(성명 발표는) 당시 여파로 인해 단체행동권을 신중히 검토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다음날인 21일엔 조종사노조가 일반노조의 성명에 답했다. 조종사노조는 성명서를 내고 “외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온 대한항공 직원들의 글을 보면 회사가 써준 글(성명서)에 도장만 찍은 것 아니냐는 등 일반노조를 비판하는 내용이 다수 있다”며 “일반노조가 사측에 위임해 결정한 임금인상률 1.9%를 조종사노조에게 강요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조종사 예년 10배 넘는 연봉인상 요구
논란 일자 다른 노조와 분배 의사 밝혀

지난 25일엔 대한항공 내 소수 노조인 조종사새노조가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 앞에서 집회를 열어 “회사는 조종사를 무시하는 협상안을 즉각 철회하고 온당한 대우를 제시하라”며 임협에 성실히 임할 것을 촉구했다. 교섭대표 노조인 조종사노조가 진행하고 있는 임금협상에 힘을 실어 준 것으로 보였으나, 지난 26일 오후 새노조는 “찬반투표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선을 그었다.
 

대신 “다수노조(조종사노조)와 사측이 적극적으로 교섭에 임해 좋은 안건이 나올 수 있도록 중재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새노조 관계자는 “임금협상에 참여하지 못한 상태에서 (조종사노조가) 쟁의에 참여하자고 하니까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찬반투표에 참여하는 과정도 마음이 아팠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현 노동법에선 복수노조의 경우 교섭창구단일화를 강제하고 있기 때문에 760여명의 조합원이 소속된 새노조는 소수 노조로서 임협에 참여할 수 없다.

이렇듯 대한항공 내 타 노조들은 조종사노조의 단체행동권 행사에 찬성하지 않는 모양새다. 대한항공 조종사의 최근 3년간의 임금인상률은 2012년 4.0%, 2013년 동결, 2014년 3.2%다. 다수노조인 조종사노조는 예년의 10배가 넘는 인상률을 요구하고 있다. 대한항공 소속 조종사의 평균연봉은 1억4000만원대로 이는 근로소득자 상위 1%에 속한다. 전체 조종사 2500명(비조합원 포함) 1인당 평균 5200만원씩을 올려 달라는 요구다.

이런 가운데 조종사노조는 임금이 인상되면 인상분을 일반노조와 나누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사업장 내 타 노조와의 갈등을 없애고 사업장 밖에서도 귀족노조 지탄을 피하기 위해 ‘임금인상분 나누기’ 카드를 내놓은 것.

조종사노조 관계자는 “회사와 조정회의에서 만났을 때 조정관한테 그렇게 말했다”며 “만약 10%를 올려준다면 일반노조와도 다 같이 나누자, 다 같이 합쳐서 동일 조종하자고 제안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상분 나눈다
시큰둥한 직원들

그러나 일반노조의 입장은 사뭇 달랐다. 일반노조의 한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터무니없는 얘기”라며 “노조 수뇌부에서 그런 말을 했다고 들었다. 맞지 않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애초에 조종사노조의 ‘37%’ 임금인상안은 한 경제지의 오보로부터 시작했다. 지난해 대한항공 등 한진그룹 계열사들의 3분기 실적이 발표되자, 모 경제지가 조양호 회장의 급여인상률을 37%로 잘못 계산해 보도한 것. 이에 노조 측도 조 회장과 같은 수준의 급여인상을 요구하고 나섰으나 곧 오보임이 밝혀졌음에도 요구를 철회하지 않았다. 실제 조 회장의 임금인상률은 1.6%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조종사노조 관계자는 “죽을 만큼 어려운데 올려달라고 하는 건 아니다. 그 정도 상식은 있다. 회사가 하는 인사, 노무관리에 대한 신뢰가 많이 떨어져 있다. 회사는 노력을 한다고만 하고 보여주는 것이 없다”면서 “그동안 교섭에선 10% 안팎에서 요구하지만 실제 결과에선 2∼4%대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늘 갭이 있다. 조종사들뿐 아니라 일반직 처우에 대한 불만도 있고 저유가시대에 구조적 문제만 아니면 회사가 상당 부분 이윤을 돌려줄 수 있었다. 조종사 시세 형성도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오너들이 행하고 있는 부도덕상은 직원에게 돌리고 자기들은 가져가고 있다. 회사가 제시한 대로 안 받아도 된다. 처우나 인식에 대해 분개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렇다면 사측은 어떤 입장을 갖고 있을까. 사측은 언론과의 접촉에서 말을 아끼는 모습을 보였다. 사측 관계자는 “19일 결렬 이후에도 창구는 늘 열어 놓고 있지만 별다른 접촉은 없다”면서 “열린 자세로 대화를 계속하고 싶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기본급과 비행수당을 합해서 1.9% 이상은 어렵다는 것이 회사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파업 가능성에 대해선 “정상적인 운항에서 조금이라도 영향을 주면 미미하다고 할 수 없다”며 “부분파업을 해도 항상 피해가 발생한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앞서의 조종사노조 관계자 역시 “필수 공익사업장이기 때문에 파업은 금방 할 수 있는 사항은 아니다. 근무를 하면서 회사의 문제점을 지적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지난 2005년 대한항공 조종사 파업 이후 정부는 항공사를 필수 공익사업장으로 지정하고 국제선은 80% 이상, 국내선 중 제주는 70%, 나머지 지역은 50% 운항률을 유지하도록 법으로 정했다. 조종사노조가 파업을 결행하더라도 그 효과가 크지 않을 것으로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평균연봉 1억4000만원…근로자 상위 1%
“1인당 5200만원씩 올려달라” 주장 빈축

노사가 각자 입장만 내세우고 힘겨루기하면서 정작 그 틈바구니에서 피해는 고스란히 고객의 몫으로 돌려지게 된다. 오랫동안 사업장 내외부에서 줄곧 지적돼왔던 ‘조종사 수급 문제’도 점점 악화돼왔다. 이로 인해 단체협약에 위배되는 비행스케줄이 상시적으로 짜지면서 ‘안전문제’도 불거졌다.

실제로 대한항공의 한 직원은 “조종사 노조나 회사나 성실한 교섭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수차례 교섭을 해서 조율안이 나와야 하는데 서로 뜬구름만 잡고 있다. 그 사이에서 반사된 손해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대한항공의 조종사 퇴직자는 2013년 26명에서 2014년 27명, 지난해 140명으로 큰 폭으로 늘어났다. 46명이 중국계 항공사로 이직했고 94명이 저가항공사로 자리를 옮겼다.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퇴직자도 2013년 48명에서 2014년 60명으로 늘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성태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 간 국내에서 발생한 항공기 사고 48건 중 조사 중인 7건을 제외, 27건(65.9%)이 조종사 과실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적 항공기사고 원인의 3건 중 2건이 조종사 과실인 셈이다. 

국내 항공사는 한 해 평균 30여명의 조종사를 채용해왔으나 지난해 들어 대한항공은 105명을 채용했다. 늘어나는 이직자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조종사를 새로 뽑았다고 해서 당장 현업에 투입되는 것은 아니다.   

대한항공노조 관계자는 “채용 후에 제주훈련원에서 교육시킨 후 기종을 정해서 재훈련을 한다”며 “입사 후 1년 3개월은 지나야 현업에 투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안전문제 뒷전
피해는 승객 몫

결국 조종사가 이직하는 속도만큼 원활한 수급이 어려운 구조가 반복된다. 빠져나간 자리를 남은 조종사들이 메우면서 비행스케줄이 악화되면 이러한 피해는 고스란히 승객의 안전문제로 직결되고 안전문화가 자리 잡기 어렵다. 앞서 관계자는 “회사는 수급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단협을 위반한 비행 스케줄이 자주 발생한다”면서 “조종사 수급에 문제가 많다. 해결이 요원하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사측 관계자는 "이직 조종사 인원 이상으로 고경력 베테랑 조종사들을 신규 채용하고 있어 일부 우려와 같은 조종사 부족에 따른 우려는 없는 상황"이며 "전세계적인 조종사 이직 트렌드를 사전에 인지하여 수급에 차질이 없도록 채용채널을 다양화하는 등 오래전부터 철저하게 준비해 왔다"고 밝혔다.


<shi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외국인 조종사 연봉은?

현재 대한항공 내에는 객실·정비·운송·예약·판매 등 20여개 직종에 종사하는 일반노조(1만600여명)와 조종사노조(1085명), 조종사새노조(760명) 등 3개의 노조가 있다. 조종사 중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은 인원이 200명가량으로 파악되고, 이외에 약 500명 안팎의 외국인 조종사도 노조에 가입하지 않았다.

새노조는 2013년 설립돼 올해로 4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90% 이상이 군 출신자로 공군사관학교 출신이 다수를 차지한다. 다수노조인 조종사노조는 대부분 외국에서 훈련을 받은 뒤 자격증을 따고 경력을 쌓은 이들이다. 입사 후 제주비행훈련원에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군 출신자와 대비해 훈련원 출신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문제는 대한항공 측에서 군 출신 혹은 민간 출신 여부에 따라 인사와 승급체계에 차별을 둔다는 점이다. 군 출신자는 연봉이 더 높고, 기장 승급도 더 빠르다는 것. 전언에 따르면 이러한 차별로 인해 조종사 노조가 지난 2003년 2개의 노조로 분리됐다고 한다.

대한항공 내에선 입사 후 부기장을 거쳐서 기장이 될 때까지 평균 10∼14년 정도 걸린다. 요즘 조종사들의 이직률이 높은 것은 연봉 때문이기도 하지만 빨리 기장이 되고자 저가 항공사로 옮기는 조종사들도 있기 때문이다. 

이미 기장으로 승급한 조종사들은 좀 더 높은 연봉을 바라고 중국계 항공사로 이직하지만 부기장들은 저가항공사로 이직해 기장승급을 노린다. 임금은 약 85%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마찬가지로 약 500명 정도로 파악되는 외국인 조종사들은 비행시간은 한국인 조종사와 비슷한 반면, 임금 수준은 더 높다. 구체적인 각각의 연봉계약은 공개돼 있지 않으나 최근 한국인 조종사들이 불만을 품은 것도 같은 일을 하는데도 외국인에게 더 후한 연봉을 주는 회사의 차별이 한 몫 했다는 전언이다.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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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 충돌’ 검찰개혁 엇박자 막전막후

‘당정 충돌’ 검찰개혁 엇박자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추석 연휴 전에 검찰개혁을 진행하려던 더불어민주당이 신중한 입장에 들어갔다. 검찰개혁 초안을 발표하려던 당의 의견에, 주체이자 객체인 법무부의 수장 정성호 장관이 다른 의견을 내면서다. 정 장관의 의견에 대해 여권 관계자들은 공개적으로 비판까지 했다. 당정 간 불협화음으로 검찰개혁이 무너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왔다. 당 지도부와 정부는 뒷수습에 나섰지만, 완전히 진화될지 관심이 모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계속 강조해 온 ‘검찰개혁’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공언대로 ‘추석 전 검찰개혁 입법 마무리’를 목표로 속도전에 돌입한 가운데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민주당 지도부와 결이 다른 의견을 연일 내놓으며 당정 간 불협화음이 나타났다. 속도전 앞두고… 민주당 국민주권 검찰 정상화 특별위원회는 지난달 26일, 회의를 열고 검찰개혁의 대원칙인 수사권·기소권 분리 내용을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확정할 방침이었다. 민주당은 이번 개정안으로 수사권·기소권의 분리 대원칙을 실현하기 위해 검찰청을 폐지한다. 그리고 기존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이관하기 위해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설치할 예정이다. 공소청은 기존 검찰의 기소권을 이관받아 기소와 공소 유지, 영장 발부 등 검찰의 고유 업무를 도맡는다. 중수청의 경우, 검찰의 수사 대상이었던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의 수사를 담당한다. 이 외에도 국수위 설치 여부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국수위는 국무총리 산하 기관으로 경찰을 비롯해 중수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 국가 수사 기관 전체를 통솔하는 시스템이다. 이번 검찰 조직 재편으로 수사 기능을 갖게 될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와 법무부 중 어느 소속으로 할지 등의 쟁점 현안들도 정리돼 개정안에 담길 것으로 보인다. 현재 검찰을 제외한 수사기관은 경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있다. 이들은 각각 행안부와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소속돼있다. 이 같은 초안에 대해 당 안팎에선 우려를 제기했다. 특히 국수위의 권한이 자칫 과도해지면, 정부의 수사 통제와 외압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또 앞서 밝힌 것처럼 행안부 산하에 이미 경찰이라는 수사기관이 있는 상황에서 중수청까지 포함될 경우, 행안부의 수사 기능이 자칫 과도하게 커지는 것도 우려되는 지점이다. 공소청의 보완수사권에 대한 당과 정부의 이견도 걸림돌이다. 당은 수사와 기소 분리 대원칙 측면에서 공소청에 보완수사권을 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법무부는 경찰이 수사종결권을 가진 상황에서 원활한 사건 처리를 위해서는 공소청에 보완수사권 부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26일 초안 발표 예정이었지만 구체안 두고 특위·법무부 입장 차 지난달 25일 민주당 검찰정상화특위는 국회 의원회관에서 비공개 회의를 열었지만 최종안을 내지 않았다. 민형배 특위위원장은 지난 7일 비공개 당정대 협의 후 기자들과 만나 “속도 조절론은 없다”며 이날 회의를 최종안 확정을 위한 데드라인으로 예고했지만, 180도 달라졌다. 대신 이날 회의는 법안의 완결성에 집중했다고 한다. 특위 간사인 이용우 의원은 "초안이 사실상 나왔다고 보면 된다"면서도 "그야말로 특위안이고, 당정대 간의 논의 과정이라든지 국민적 공론화를 해 나가는 과정이라든지 이 과정이 여전히 많이 남아서 최종적으로 가다듬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의 속도조절 배경에는 개혁의 주체이자 객체인 법무부의 입장이 있던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25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민주당 송기헌 의원은 정 장관에게 ‘검찰개혁의 핵심이 수사와 기소의 분리냐’고 물었다. 이에 정 장관은 “그렇다”면서 “검찰이 수사를 개시하거나 인지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권한은 분리해낸다는 게 1차적인 목표”라고 답했다. 다만 정 장관은 “현재는 (검찰이) 보완수사 요구 또는 재수사를 할 수 있는데, (사건이) 핑퐁처럼 왔다 갔다 하다가 과거보다 사건 처리 기간이 2배 이상 늘었다”며 “이런 문제가 심화할 가능성이 있어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사건) 전건 송치를 할 것인지, 전건 송치를 하지 않는다면 수사지휘권을 줄 것인지, 송치된 사건에 대한 보완 수사 범위를 어느 정도로 할 것인지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문제”라고 부연했다. 정 장관은 민주당이 중수청을 행안부 산하에 두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도 사실상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경찰·국가수사본부·공수처·중대범죄수사청 4개 수사기관이 모두 행안부 밑에 들어가면 권한이 집중된다”고 우려했다. 또 기존 검찰청을 공소청으로 바꾸는 것에 대해서도 “검찰은 헌법상 검찰총장 임명 관련 규정들과 검사 관련 규정들도 있기 때문에 위헌 문제를 제기하는 분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정 장관의 다른 의견 국수위에 대해서는 “지금 나와 있는 안에 의하면 국수위가 경찰의 불송치 사건에 대한 이행을 담당하게 돼있는데 최근 통계에 4만건 이상 된다”며 “독립된 행정위원회가 4만건 이상 사건을 다룬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지난 26일 예결위 전체회의에서도 국민의힘 정점식 의원이 ‘검찰 조직을 폐지하는 것이 적절하냐’고 묻자 정 장관은 “검찰을 해체한다고 표현하지만 저는 검찰이 수행해오던 기능을 재분배하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에 대해 “민주당의 당론은 아직 아니”라며 “1차 수사기관, 특히 경찰의 부실·봐주기 수사를 보완할 제도적 장치는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의원이 ‘검찰청 폐지로 검찰의 전문 수사 역량이 약화될 우려가 있다’는 취지로 질문하자 정 장관은 “굉장히 중요한 과제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주가조작 등 자본시장을 교란하는 금융 범죄 또는 조세 사건은 굉장히 난이도가 높아 고도의 수사 기법이 필요하고 법리적 쟁점들이 많다”며 “이런 전문 수사 역량을 중수청에 어떻게 이어갈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정 장관은 회의 당일 페이스북을 통해 “검찰의 수사개시권과 인지수사권은 완전히 배제돼야 한다”면서도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고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검찰개혁의 본질은 잊지 말아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견설 진상은? 그러면서 “수사기관과 공소기관 사이의 ‘핑퐁’ 등 책임 떠넘기기, 수사 지연, 부실 수사로 인해 국민이 피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현실적이고 촘촘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며 “개혁은 구호가 아니라 현실에서 작동할 때 비로소 성공한다”고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정 장관의 발언 이후 당 안팎에서는 정 장관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다. 민주당 검찰개혁 특위 위원장인 민형배 의원은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검찰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를 재논의해야 한다는 정 장관의 입장에 관한 질문에 “당 지도부는 장관께서 좀 너무 나가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민 의원은 “특위안에는 그런 내용이 없고, 당정에서 합의됐거나 의논해서 한 건 아니”라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 의견을 말씀한 것 같다”고 언급했다. 정 장관이 행안부 산하 중수청 설치 방안에 우려를 밝힌 데 대해서도 “당에서 입장을 내지 않았는데 그렇게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 장관 본분에 충실한 건가, 이런 우려가 좀 있다”면서 “(장관이) 저희 특위 초안을 모르는 상태 같다”고 지적했다. 당 지도부의 의견을 내세워 정 장관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한 것이다. 이른바 ‘검찰개혁 4법’을 발의하고 관련 논의를 주도해 온 김용민 의원 역시 이날 페이스북에서 “바꾼다고 모든 것이 개혁은 아니다”라며 “개혁을 왜 하려고 하는지 출발점을 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지도부·정부 나서 진화 “당 결정대로 따라갈 것” 민주당과 정 장관의 의견이 갈리면서 ‘당정이견’설이 분출한 가운데, 당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28일 오후 인천 파라다이스시티 호텔에서 열린 국회의원 워크숍 지도부 인사말에서 “개혁의 작업은 한 치의 오차·흔들림·불협화음 없이 우리가 완수해야 할 시대적 과제”라며 “이 과정에서 당정대는 원팀 원보이스로 굳게 단결해서 함께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김병기 원내대표도 “국민주권정부의 실질적 성과는 당정대 원팀 정신이 그 중심에 있다”며 “다음 주부터 우리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첫 정기국회가 시작된다. 이재명정부 국정 기조와 국정 과제의 실천을 (당이) 더 확실하게 뒷받침해야 한다”고 당정 일치 기조를 강조했다. 정부와 대통령실에서도 수습·진화에 나섰다. 이날 워크숍 현장에 방문한 정 법무부 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이견은 없다”며 “어쨌든 입법의 주도권은 정부가 아니라 당이 갖고 있다. 당에서 잘 결정되는 대로 잘 논의해서 따라갈 것”이라고 한발 물러났다.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도 당과 법무부 사이 이견에 대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며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 만찬에서 전체적인 로드맵을 합의했다. 정부와 당이 각자 검찰개혁안에 대한 여러 가지 각론에 대한 의견들을 제기하기도 하고 수렴하기도 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 수석은 “당과 정부의 의견만 다른 게 아니라 당 내부에도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런 각각의 의견들이 다 도출되는 과정이라고 본다. 말하자면 일종의 공론화 과정에 이제 들어간 것이다. 대통령실은 이 내용들을 지켜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 수석은 “다만 바라건대 내용 자체의 토론에 좀 집중했으면 좋겠다”며 “특정인과 좀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사람에 대한 공격 같은 건 하지 말고 이렇게 내용 토론으로 좀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갖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법조계 의견은? 한편 법조계에선 정 장관이 민주당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평소 소신과 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검사장 출신 한 법조인은 “정 장관은 외골수처럼 직진하기보다 남의 편을 설득하고 내 편을 혼내가면서 합의점을 찾는 정치를 해온 사람”이라면서 “강성 개혁에 집착하기보다는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변화를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