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기획특집 3>[MC몽 파문으로 본] 20대그룹 총수부자 ‘병역 X파일’ 총력추적

입영 피해 ‘요리조리’아프다던 로열패밀리… 지금은 멀쩡하다


해마다, 철마다 툭하면 터지는 유명인의 병역 비리. 이번엔 가수 MC몽이 말썽이다. 아직까지 의혹 수준이지만, 쏟아지는 여론 뭇매가 예사롭지 않다. 그만큼 국민들이 병역 문제에 민감하다는 방증이다. 그렇다면 재벌가는 어떨까. 전체적으로 요리조리 잘도 피한 모양새다. 국내 내로라하는 20대 그룹을 꼽아 그 총수와 아들들의 병역 여부를 따져봤다.


1∼2세대 걸쳐 석연찮은 면제 ‘신의 아들’ 수두룩
“이유도 가지가지” 국적, 질병, 비만 등 내세워 미필

<일요시사>가 만 19세부터 30세까지 병역의무 나이가 넘은 주요 그룹 총수와 자녀들의 병역 여부를 살펴본 결과 미필자를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1세대에서 2∼3세대에 걸쳐 두루 입대 면제를 받은 이른바 ‘신의 아들’들이 적지 않았다. 외국 국적, 질병, 체중 초과 등 면제 이유도 가지가지다. 이들은 각각의 그럴 만한 사유를 내세워 ‘소나기’를 피한 뒤 슬그머니 한 자리씩 꿰차고 있다.

‘소나기’ 피한 뒤
슬그머니 제자리

그룹들은 하나같이 “나름의 정당한 면제 사유가 있었기 때문에 고의적인 병역 기피는 절대 아니다”라고 강조했지만, 이유야 어찌됐든 재벌가의 병역 여부는 늘 뜨거운 감자일 수밖에 없다. 총수일가의 병역면제율이 일반인보다 훨씬 높은 탓이다. 실제 한 조사에 따르면 재벌 로열패밀리들의 평균 면제율은 33%인 반면 일반인은 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재벌가 사람들이 일반인에 비해 유독 입대 면제자가 많다는 점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며 “국민의 기본 의무를 저버린 사람들이 회사 지휘봉을 잡거나 잡을 거라면 과연 정상적인 경영이 가능할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은 이병으로 군대를 마쳤다. 사실상 면제나 다름없는 셈이다. 외아들 이재용 부사장은 허리디스크로 징병검사에서 제2국민역(5급) 판정을 받고 군복을 입지 않았다.

더 정확한 사유는 수핵탈출증이다. 제2국민역은 현역 또는 보충역 복무는 할 수 없으나 전시근로소집 등에 의한 군사지원업무는 감당할 수 있어 민방위 훈련만 받는다. 현대·기아차 정몽구 회장은 병장 출신이다. 재벌 총수 가운데 드물게 현역으로 제대했다. 그러나 외아들 정의선 부회장은 제2국민역으로 입대하지 않았다. 근본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담낭 절제가 문제가 됐다.

SK 최태원 회장은 체중 과다로 면제됐다. 최 회장은 1980년대 신체검사를 받을 당시 몸무게가 100㎏을 넘어 군대에 가지 않았다. 그는 2003년 수감생활과 운동 등 다이어트를 통해 15㎏가량 줄여 현재 85㎏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외아들 인근군은 올해 15세로 아직 중학생이다. LG 구본무 회장도 정 회장과 같이 육군 현역으로 입대해 보병으로 만기 제대했다.

1994년 어린 나이에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외아들 원모씨 대신 2004년 양자로 입적한 구광모 과장(LG전자·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외아들)은 현역병이 아닌 병역특례인 산업기능요원으로 병역을 마쳤다. 2003∼2005년 국내 IT 솔루션 회사에서 근무했다. 산업기능요원은 기술자격이나 면허소지자로서 국가가 지정한 특정업체에서 군복무를 대체할 수 있다.

롯데 신격호 회장의 병역 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10대 후반 일본으로 건너가 사업을 시작한 점을 감안하면 일본 국적을 취득해 면제됐을 가능성이 크다. 두 아들도 일본 국적 때문에 입영 대상에서 제외됐다. 장남 신동주 부회장(일본롯데)은 일본에서 태어나 현재 일본에서 살고 있는 ‘완전한’일본인이다. 당연히 한국에서 군대에 갈 필요가 없었다.

차남 신동빈 부회장(한국롯데)도 재일교포 신분으로 줄곧 일본에 살면서 군 면제를 받았다. 그는 한·일 양국의 호적에 오른 채 ‘이중국적’상태로 국내에서 활동하다 1996년 일본 국적을 정리하고 한국 국적을 회복했다. GS 허창수 회장은 일병으로 제대했다.

집안을 보살펴야 하는 등 개인 사정으로 예정보다 일찍 제대한 의가사제대인지, 현역 수행이 어려운 병에 걸려 복무기간이 짧아졌는지는 파악되지 않는다. 외아들 허윤홍 부장(GS건설)은 제2국민역으로 편입돼 ‘군문’을 무사통과했다. 징병 검사에서 건강상의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둘 다 ‘군문’ 통과
둘 다 병장 출신도

현대중공업 오너는 아니지만 대주주로 사실상 ‘주인’인 정몽준 의원(한나라당)은 장교 출신이다. 재벌가에서 보기 힘든 사례다. 정 의원은 ROTC 소위로 임관(13기)해 육군 중위로 만기 전역했다. 눈에 띄는 점은 정 의원의 아들 역시 장교 출신이란 사실이다. 장남 기선씨도 2005년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당시에도 사회지도층의 병역 기피 논란이 일어 ‘대 이은 ROTC’로 큰 화제가 됐었다.

기선씨는 2년4개월의 ROTC를 마치고 2007년 중위로 전역했다. 늦둥이 차남 예선씨는 올해 14세로 군대 갈 나이가 안 됐다. ‘형제의 난’으로 금호아시아나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조만간 복귀가 가시화되고 있는 박삼구 명예회장은 병역 사항이 베일에 싸여 있다. 그룹 측도 “확인이 안 된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러나 박 명예회장의 이력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정황을 추정할 수 있다.

“국민 기본의무 저버린 사람들,
과연 정상적인 경영 가능할까”


그는 1963년 광주제일고와 1967년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자마자 그해 바로 금호타이어에 입사했다. 이후에도 그룹 요직을 두루 거치는 등 공백이 전혀 없었다. 아버지와 달리 외아들 박세창 상무(전략경영본부)는 제대로 병역을 마쳤다. 한진 조양호 회장은 미국 유학을 다녀와 현역으로 군대 생활을 마쳤다. 외아들 조원태 전무(여객사업본부)는 산업기능요원으로 병역을 대체했다.

두고두고 괴롭힐
평생 아킬레스건

의사 출신인 두산 박용현 회장은 군의관으로 복무한 것으로 전해진다. 세 아들 태원(두산건설 전무)·형원(두산인프라코어 상무)·인원(두산엔진 부장)도 정상적으로 병역을 끝냈다. 한화 김승연 회장은 뜻밖에도 미필자다.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다. ‘보스형 총수’로 불릴 만큼 평소 의리를 강조하는 터프한 이미지와 오버랩된다. 사유는 불분명하다.

일각에선 1981년 59세란 짧은 나이에 갑작스럽게 타계한 부친 고 김종희 창업주의 뒤를 이어 불과 29세의 ‘어린’나이로 그룹 회장에 오를 수밖에 없었던 김 회장의 다급했던 상황과 무관치 않을 것이란 의견이 나온다. 그룹 관계자도 “확실히 모르겠지만 당시 사정상 어쩔 수 없었을 것”이란 추측만 했다. 반면 세 아들은 충실히 병역을 완료했거나 이행하고 있다.

장남 김동관 차장(회장실)은 3년4개월간 공군 통역장교로 복무하고 지난해 말 중위로 전역했다. 차남 동원씨도 현재 공군 장교(소위)로 복무 중이며, 3남 동선씨는 2006년 카타르 도하 아시안게임 승마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해 군 면제를 받았다. 신세계 정재은 명예회장(이명희 회장 남편)은 시력이 나빠 입영 대상에서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외아들도 면제 사유만 다를 뿐 ‘신의 아들’이다.

정용진 부회장(신세계백화점·이마트)은 비만으로 입대하지 않았다. 신체검사 때 몸무게가 104㎏으로, 커트라인 103㎏에서 단 1㎏ 초과해 면제(제2국민역)돼 ‘고무줄 몸무게’란 의심을 샀다. 1987년 대학 시절 79㎏ 나가던 체중에서 갑자기 25㎏이 불어 1990년 신체검사에선 104㎏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정 부회장의 몸무게는 현재 90㎏ 안팎이다.

LS 구자홍 회장은 신체검사 결과 제2국민역 판정을 받아 병역이 면제됐다. 유학 중인 외아들 본웅씨는 현역으로 입소, 병장으로 전역을 신고했다. CJ 이재현 회장도 제2국민역 처분을 받아 군인이 되지 못했다. 외아들 선호군은 올해 20세로 군 입대를 앞두고 있다. 현대백화점 정몽근 명예회장은 건강상 이유로 면제(제2국민역)됐다. 두 아들 정지선 회장(현대백화점)과 정교선 사장(현대홈쇼핑)은 병장으로 만기 제대했다.

동부 김준기 회장과 외아들 남호씨 부자는 모두 현역 출신이다. 둘 다 강원도 최전방에서 사병으로 근무했다. 또 대학을 졸업하고 곧장 입대한 것도 공통점이다. STX 강덕수 회장도 병장으로 전역했다. 외아들은 현재 대학생으로 병역의무 기간이 지나지 않았다. 현대산업개발 정몽규 회장은 일병으로 군 생활을 마쳤다. 세 아들(준선·원선·운선)은 초·중·고등학생으로 아직 어리다.

코오롱 이웅열 회장은 대학을 휴학하고 현역으로 입대해 강원도 전방사단 수색대에서 근무했다. 외아들 규호씨는 올해 26세로 유학을 마치는 대로 입대할 계획이다. 이 회장은 공개석상에서 “아들도 당연히 병역의무를 이행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미래에셋 박현주 회장은 입대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확한 이유는 확인되지 않는다. 박 회장은 사석에서 군대 얘기만 나오면 화제를 전환하거나 아예 고개를 돌린다는 후문이다.

외아들 준범군은 10대로 군대를 가려면 아직 멀었다.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병역의 의무가 있다. 선택이 아닌 필수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란 비극적 현실은 누구나 당연한 기본으로 인식하게 한다. 국민들이 유독 군대 얘기만 나오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다. 특히 ‘인물’을 평가할 때 도덕성 잣대로 우선 병역이 거론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경영자도 마찬가지다. 이유가 어떻든 병역에 조금이라도 흠이 있다면 두고두고 괴롭힐 ‘아킬레스건’으로 남을 게 뻔하다. 병역 문제가 이슈화 될 때마다 ‘좋은 예’혹은 ‘나쁜 예’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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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