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치가문’이 뜨고 있다. 우리나라 60여 년 헌정사에서도 대대로 국회의원, 장관 등을 배출해 낸 ‘정치 명가’를 꼽기란 매우 힘들다. 그러나 18대 국회에서 처음으로 ‘3대째 국회의원’이 나오는 등 그동안 쌓은 내공이 ‘가문’으로 이어지는 모습이 속속 눈에 띈다.
대통령, 법무장관, 상원의원 등을 배출한 미국의 유명한 정치명가 케네디가처럼 우리나라에도 대를 이어 정치를 하는 정치가문이 하나둘 새롭게 생겨나거나 그 역사를 더하고 있는 것. 아직 ‘정치 명가’라는 이름에 부족하지만 대를 이어 금배지를 단 이들의 활약은 ‘명가’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정치적 기반·인맥·정치력 대물림 ‘밀어주고 끌어주고’
정치인들의 가문, 대 이어가며 ‘정치명가’ 내공 쌓아
최근 세계 정치 명문가들이 연이은 집권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필리핀에서는 베니그노 노이노이 아키노 상원의원이 대통령에 당선되며 ‘모자 대통령’ 기록을 세웠고,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남편인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에 이어 대선에 출마, 세계 최초의 ‘직선 부부 대통령’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정치 DNA
핏줄타고 내리유전
미국에서는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이 41대 대통령을 지낸 데 이어 아들인 조지 W 부시가 43대 대통령이 됐다. 그러나 아버지 부시는 플로리다 주지사를 지낸 둘째 아들 젭 부시에 대해서도 “둘째 아들도 자격을 갖추고 있다”면서 “언젠가 그가 대통령이 되는 걸 보고 싶다”고 해 ‘3부자 대통령’의 꿈을 내비쳤다. 또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부인인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의 미 사상 첫 ‘부부 대통령’ 도전도 시선을 끌고 있다.
이 같은 대를 이은 집권에 대한 의지는 우리나라에서도 유효하다. 전직 대통령들의 자녀들이 정치에 뜻을 두고 있는 까닭이다. 정치인으로서 최고의 명예를 얻었던 전직 대통령들의 ‘정치가문’은 어떻게 이어지고 있을까.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는 1998년 한보 비리 관련 조세포탈 혐의, 2004년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두 차례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로 인해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28일 한나라당 싱크탱크인 여의도 연구소 부소장에 임명되며 여의도 정가로 복귀했다. 현철씨는 “마포대교를 건너면서 10년이라는 세월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더라. 왜 이렇게 여러 감정이 드는지 모르겠다”면서 “YS의 아들이 아니라 김현철로서 역량을 발휘하고 인정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집안도 정치를 가업으로 삼고 있다. 장남 김홍일 전 의원은 16, 17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차남 김홍업 전 의원은 지난 18대 총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고배를 마셨다. 그러나 계속해서 정계 복귀를 노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 전 대표는 대표적인 2세 정치인으로 꼽힌다. 한나라당 4선 의원인 박 전 대표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장녀로 부모님의 이름을 꼬리표처럼 달고 다녀야 했다.
그러나 2004년 17대 총선에서 탄핵역풍을 뚫고 박풍을 일으키며 ‘꼬리표’를 떼어내기 시작했다. 이후 한나라당 대표로 추락한 당 지지도를 50%대로 끌어올리고 유력 대선후보로 자리매김하며 ‘박근혜’라는 이름을 세웠다. 지난 대선에서는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대선후보 자리를 두고 치열한 승부를 벌였으며, 현재 여야 차기 대선주자 중 가장 앞서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형제’가 정치인이다.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은 그의 중요한 정치적 후원자다. 서울대 상대를 나와 코오롱에 입사, 후일 이 회사의 사장이 된 이 의원은 정치 입문도 이 대통령보다 빨랐다. 6선 의원이라는 정치적 기반을 가진 이 의원은 이 대통령이 1992년 정치에 입문할 때부터 서울시장과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되는 과정에서 발로 뛰며 그의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이 돼 주었다.
‘미스터 쓴소리’로 더 잘 알려진 조순형 자유선진당 의원은 유서 깊은 정치명문가 출신이다. 현역 최다선(7선)인 조 의원은 우익 독립운동가이자 3, 4대 국회의원, 1960년 민주당 대선후보를 지낸 유석(維石) 조병옥 선생의 3남2녀 중 막내다. 그는 1935년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고향은 충남 천안시 병천면으로 3·1운동 당시 유관순 열사가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벌였던 곳이다.
3·1운동 때 유관순 열사와 함께 아우네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한 조인원씨가 그의 조부이며 6선(5·6·7·8·13·14대) 의원이었던 고 조윤형 전 국회부의장을 형으로 두고 있다. 조 의원은 1981년 정치규제에 묶인 형 조 전 부의장을 대신해 출마하면서 정계에 입문했으며 14대 때는 형제가 나란히 등원하기도 했다.
유서깊은 정치가문
대 이어 ‘기반’ 물려줘
3대를 잇는 정치가문으로 정대철 민주당 상임고문의 집안도 빼 놓을 수 없다. 부친인 정일형 전 외무부 장관에서 정 고문, 아들인 정호준 민주당 서울 중구 지역위원장으로 이어지는 3대 정치를 하고 있는 것. 신민당 부총재와 대표권한 대행을 지낸 정 전 장관은 1950년 서울 중구에서 당선된 뒤 내리 8선을 했으며 정 고문이 지역구를 이어받아 5선을 했다.
청와대 행정관으로 정계에 발을 내딛은 정 위원장은 17대 총선에서 지역구 승계에 나섰으나 낙선했다. 이후 18대 총선에는 지역구를 정범구 전 의원에게 양보하고 민주당 비례대표를 신청했으나 결국 출마를 포기했다. 현재 민주당 서울 중구 지역위원장으로 활동하며 19대 총선을 노리고 있다. 이 외에도 대를 이어 정치를 가업으로 삼고 있는 집안이 상당하다.
남경필 의원은 남평우 전 의원(14·15대)이 임기 중 별세하자 부친의 지역구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내리 4선을 해 당 내 중진으로 자리를 잡았다. 정진석 의원의 부친은 내무부 장관을 지낸 정석모 전 의원(6선)이며, 친박계 ‘책사’로 불리는 유승민 의원은 13,14대 의원을 지낸 유수호 전 의원의 차남이다. 김태환 의원의 부친은 고 김동석 전 의원(4대), 형은 작고한 허주(虛舟) 김윤환 전 신한국당 대표(5선)다.
김 의원은 형의 지역구인 경북 구미을에 출마해 당선됐다. 유일호 의원은 민한당 총재를 지낸 고 유치송 전 의원(5선)의 장남이며 장제원 의원은 장성만 전 국회부의장(11·12대)의 차남, 이종구 의원은 지난해 세상을 떠난 이중재 전 의원(6선)의 아들이다. 18대 국회 지역구 최연소 의원인 김세연 의원은 무소속으로 출마, 당선됐다.
대통령의 자녀들 활발한 정치행보, 대권까지 겨냥
정치가문 사람들, 부자·부녀 대통령 진기록 세울까?
젊은 사업가로 별다른 정치 이력은 없었지만 부산 금정구에서 5선(11·13·14·15·16대)을 지낸 부친 고 김진재 전 의원과 장인 한승수(13·15·16대) 전 국무총리의 ‘정치력’을 물려받았다. 민주당 김성곤 의원은 선친 고 김상영(8·9대) 전 의원의 지역구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정몽준 전 대표는 14대 의원이자 대선후보로 나섰던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6남이다.
그는 1988년 13대 총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후 내리 6선을 한 중진 의원으로 부친보다 먼저 정치에 입문했다. 지난 대선에서 오랜 무소속 생활을 접고 한나라당에 입당, 최고위원에 선출되고 당대표직을 맡으며 당내 입지를 다졌다. 하지만 지난 6월 지방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당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지난 18대 총선에서 친박연대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김을동 의원의 부친은 3,6대 의원을 지낸 김두한 전 의원이다.
정우택 전 충북지사도 작고한 부친 정운갑 전 의원(5선)을 이어 정계로 들어선 2세 정치인이다. 정 전 지사의 부친인 정 전 의원은 농림부장관과 5선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이 때문에 정 전 지사는 “정치는 고향처럼 친숙한 세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형제 정치인’들도 눈에 띈다. 김효재 의원은 15대 의원을 지낸 김의재 전 의원의 동생이다. 며느리가 ‘정치가문’을 잇기도 했다.
정치 가풍은 유전
‘이름값’은 제 할 나름
이혜훈 의원은 시아버지 고 김태호 전 의원에게서 정치를 배웠으며 18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 소장은 정치인들이 대를 이어 정치권에 뛰어드는 것에 대해 “가풍이 유전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정치력이나 정치적 감각이 발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를 이어 정치를 하고 있다고 해도 ‘명가’라는 이름은 함부로 붙지 않는다. 위로부터 이어져 온 가풍과 튼튼한 인맥이 정치적 자산이 되고 ‘존경’을 받을 수 있게 되어서야 ‘명가’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