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신문고-억울한 사람들> (18)쫓겨나는 빵집아저씨

때가 어느 때인데…쌍팔년도식 강제철거

[일요시사 사회2팀] 박창민 기자 = <일요시사>가 연속기획으로 ‘신문고’ 지면을 신설합니다. 매주 억울한 사람들을 찾아,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담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좋습니다. <일요시사>는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겁니다. 열여덟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임대차 계약 기간이 남았고, 아직 보상에 관한 협의도 이루어지지 않았는데도 건설사의 강제철거 추진에 고통 받고 있는 빵집주인 박경배씨입니다.

지난 17일 오후 3시 서울 영등포구 한강성심병원 앞.

길 가던 행인들이 한 상가 건물을 보며 눈살을 찌푸린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걸까’라는 표정이다. 상가는 폭격을 당했는지 당장에라도 무너질 것같다. 차양막과 아크릴 간판은 박박 찢겨 너저분하게 매달려있고, 그 위에는 새빨간 락카로 덧칠해 ‘철거’라고 쓰인 이상모를 낙서가 있다.

전기계량기 떼가

반쯤 닫힌 샷도어와 입구를 막아 놓은 그물 천 틈 사이로 보이는 빈 상가의 모습은 바로 옆 파리바게트와 대조를 이룬다. 파리바게트를 운영하고 있는 박경배씨는 “경동건설산업이 신축 때문에 철거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아직 계약기간이 남은 상가 임차인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며 “상가 일대를 흉가처럼 만들어놔 영업하는 데 지장이 아주 크다”고 말했다.

최근 사회적으로 임차인을 보호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어쩌다 이렇게까지 한 것일까. 박씨는 “경동건설산업이 임차인들과 협상이 잘되지 않자, 보복한 것이다”고 성토했다. 박씨는 애초 경동건설산업이 신축할 건물에 평당 2900만원으로 약 21평을 분양받기로 했다.

박씨는 “계약기간이 남아 보상의 일환으로 경동건설산업에서 일반 분양가보다 임차인들에게 싸게 분양해주겠다고 했다”며 “평당 3900만원으로 분양해주겠다고 하다가 얼마 후 3100만원, 또 다시 2900만원으로 낮춰서 제시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계약서에 사인하기 전 변호사에게 계약이 문제가 없는지 자문했다. 그런데 변호사는 이 계약서가 박씨에게 한참 불리한 계약이라고 알렸다. 애초에 전용면적 21평을 분양 받기로 했는데, 공용면적이 무려 23평이나 됐던 것. 이 공용면적 화장실과 복도 등을 제외하더라도 박씨가 한 발짝도 안 쓰는 공용면적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도 이 계약에서는 박씨가 공용면적까지 모두 제 값에 분양 받기로 돼 있다.

임차인 상대 사기 의혹도
승인 받지 않고 사전분양

이 계약은 박씨에게 철저히 불리했다. 박씨는 “공용면적을 어느 정도 분양 받아야 되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내가 쓰지 않은 공용면적까지 똑같은 가격으로 산다는 게 큰 손실이다”라고 주장했다. 만일 박씨가 계약서대로 공용면적을 분양 받는다면 관리비와 취득세, 등기비 등을 기존 상가보다 배로 지출하게 된다.
이런 탓에 박씨는 경동건설산업과 계약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자 경동건설산업의 행동이 돌변했다.
 

영업하는 상가 폐허 만들어 지난달 말 몇몇 임차인들이 상가를 떠나자마자, 용역 업체 직원들이 철거한다며, 빈 상가를 때려 부수기 시작한 것. 박씨가 바로 옆에서 영업 중인데도 불구하고 용역 업체 직원들은 망치로 벽을 두드렸다.

당시 가게를 보고 있던 박씨의 아내는 “건물이 흔들려 깜짝 놀랐다. 손님들도 놀라서 나가버렸다”고 말했다. 당시 박씨 아내는 용역 업체 직원들과 심한 말다툼을 했다. 박씨는 이때 놀란 가슴에 그날 밤 응급실까지 다녀왔다.

같은 상가에서 안경점을 운영하는 윤응순씨도 경동건설산업과 계약서에 사인까지 했다가 박씨와 똑같은 문제로 계약을 취소했다. 그러자 지난 6일 오전, 경동건설산업은 윤씨 상가의 전기계량기를 떼갔다. 윤씨는 즉각 경찰과 한국전력에 신고했다.

경동건설산업은 “앞서 윤씨와 계약하면서 작성한 합의서에 10월30일까지 나가지 않으면 단수 및 전력 차단을 한다고 밝힌 바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윤씨와 경동건설산업의 계약은 파기됐으며, 그 합의서도 효력이 없다는 게 법조인들 설명이다.


한 변호사는 “임차인에게 사용권이 있는 전기계량기를 떼간 행위는 명백한 업무방해죄와 재물손괴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며 “그 강제성은 명도소송을 통해 법 집행으로만 가능하다. 임대인이라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씨가 운영하는 안경점은 갑작스러운 단전으로 인해 기계가 고장났을 뿐만 아니라 일주일간 영업도 제대로 못했다.

박씨 또한 마찬가지였다. 두 차례에 걸쳐 용역 업체들이 빈 상가에 들어가 상가 유리를 깨부수거나, 해머로 벽 곳곳을 때려댔다. 상가일대는 흉물스럽게 변했고, 이런 탓에 손님들이 가게로 들어오는 발걸음은 뚝 끊겼다. 박씨는 “미관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부수기만 했다”며 “셔터만 내리면 될 것을 상가 자체를 공사장으로 만들어버렸다. 명백한 영업방해다”고 말했다.

불리한 계약 들통나자 돌변
영업하는 상가 폐허 만들어

박씨는 지난 5년 동안 이 가게를 위해 모든 재산을 쏟았다. 박씨는 파리바게트를 열기 위해 3억2000만원을 대출받았으며, 전세로 살던 아파트도 가게 근처로 이사 오기 위해 월세로 전환했다. 박씨에게는 이 가게가 전 재산이나 다름없다.

박씨는 “경동건설산업은 인심 쓰듯이 분양받으면 보상금으로 1억4500만원을 준다고 했는데, 설사 그 돈을 받는다고 해도 우리가 그 상가를 분양 받으면 무조건 손실”이라며 “제대로 된 보상을 하지 않은 채 소상공인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동건설산업은 임차인들을 상대로 분양사기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먼저 분양 승인이 아직 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임차인을 상대로 분양가를 고무줄처럼 늘렸다는 점이다. 실제로 경동건설산업은 처음 협상할 당시 임차인들에게 3900만원을 제시했다.
 

하지만 박씨와 윤씨가 “말도 안 된다”며 손사래 치자 이들은 평당 2900만원까지 낮췄다. 박씨는 “그래 놓고 경동건설산업은 ‘안경집 사장님(윤씨)한테는 이 가격에 했다고 말하지 마세요’라는 식으로 말했다”고 밝혔다. 윤씨 역시도 계약 직전 당시 경동건설산업으로부터 비슷한 말을 들었다.

영등포 일대 인근 부동산중개소 관계자는 “보통 분양업자들이 많이 쓰는 수법”이라며 “초반부터 분양가를 높게 불러 일부러 깍게 만들어 생색내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동포구청에 확인한 결과 경동건설산업은 아직 분양승인을 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담당 주무관은 “분양승인을 받지 않고 사전 분양을 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잘라말했다. 주택법상 ‘입주자공개모집 및 분양승인’ 절차 요건에 따라 사전 분양은 ‘등록말소’ 혹은 ‘6개월 이상의 영업정지’ 등 행정처분을 받을 수 있다.

“곧 단수” 으름장

한편 경동건설산업은 이번 일에 대해 “임차인들을 최대한 배려해 시세보다 훨씬 싼 가격에 분양하려고 했다. 이미 더 비싼 가격에 분양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줄섰다”며 “임차인들이 계약하려고 했던 당시, 그 금액이 맞다고 판단해서 사인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결국은 임차인들이 돈을 더 받으려고 그렇게 오기를 부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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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