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특집> ③'수상한' 초고가 선물 백태

회삿돈으로 억대 선물 꾸러미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추석을 앞두고 물류업계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서울 강남 고급아파트단지 야외주차장은 북새통을 이룬다. 인근 호텔 로비에선 수천만원대 명절 선물을 판매한다. 한우, 굴비는 물론 와인, 꼬냑, 미술품까지 망라됐다. 불황이라지만 초고가 선물에 대한 수요는 여전하다. 골프장 회원권, 자동차 할인 혜택도 단골 레퍼토리다.

 

에피소드 하나, 10여년 전 대기업 직원 김모씨(가명)는 A회장의 호출을 받고 집무실을 찾았다. 급작스런 부름에 놀랐지만 김씨는 집무실로 통하는 문을 조심스레 노크했다. 김씨를 반긴 것은 '회장님'의 비서였다. 비서는 김씨를 부른 이유와 간단한 의전 절차를 설명했다.

'의관을 정제'한 김씨는 집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A회장을 만난 김씨는 깍듯이 인사했다. A회장은 아무 말 없이 소파에 놓인 쇼핑백을 턱으로 가리켰다. 김씨는 비서와의 약속대로 쇼핑백을 하나 집어 들고는 집무실을 나섰다. 소파에는 어림잡아 수십개의 쇼핑백이 저마다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쇼핑백에 담긴 '두둑한 현금'은 A회장이 준비한 '명절 선물'이었다.

쇼핑백이 가득

추석이 다가오면서 현금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14일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남녀 직장인 269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직장인들이 가장 받고 싶어 하는 선물'은 현금이었다. 응답자 가운데 55.9%(복수응답 가능)가 '현금을 받고 싶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거액'의 현금과는 거리가 먼 직군이 존재한다. 공무원이다. 지난 13일 인사혁신처는 공직자가 100만원 이상의 금품 또는 향응을 제공받는 경우 파면이나 해임토록 하는 '공무원 징계령 시행규칙'을 입법 예고했다. 선량한 사회상규상 100만원 이상의 고가 선물은 주고받는 서로에게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지난 3월 국회를 통과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금지에 관한 법'에서도 개인 간 선물 한도를 '100만원'으로 제한했다. 일명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이 법은 동일인으로부터 1회 100만원 또는 연간 3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받는 경우 형사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삽입했다. 법 적용 대상에는 공직자와 함께 언론인, 사립학교 교원 등이 포함됐다.

김영란법은 1년6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쳐 내년 하반기 시행될 예정이다. 사실상 올 추석이 마지막 '대목'인 셈이다. 명절을 앞둔 물류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CJ대한통운과 한진택배는 지난 14일부터 비상근무 체제에 돌입했다. 현대로지스틱스 역시 지난 1일부터 한시적으로 '추석 특별 수송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 업체는 각각 전년 대비 추석 운송물량이 10∼30%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상대적으로 고가품을 다루는 백화점 예약 판매실적도 같은 기간 대비 증가세(20∼50%가량)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의원회관은 물론이고, 서울 강남 고급아파트단지 야외주차장은 넘쳐나는 선물박스로 '표정관리'에 한창이다. 국회 한 보좌진은 "예전 명절 선물 가운데 현금이 있어 그대로 밀봉해 반송한 경우가 있다"라고 했다. 예외적인 사례를 제외하고 대다수 사람들은 서로 '선의'가 담긴 선물을 주고받는다. 김씨처럼 '두둑한 현금'을 봉투째 챙기는 경우는 드물다.

술·골프채에 미술품·자동차까지
수천만원이 마음? "사실상 뇌물"

잡코리아 설문조사에서 '받고 싶은 선물' 2위로 꼽힌 품목은 한우세트(47.6%)였다. 햄·참치 등 가공식품류와 샴푸·비누·치약 등 생활용품세트보다 상대적으로 고가인 한우세트는 추석을 대표하는 인기 상품으로 불린다.

때문에 한우를 기르는 일부 축산업자, 관련 이해단체는 지난 4일 정부세종청사 인근에서 집회를 갖고 "농수축산물에 대한 김영란법 적용에 반대한다"며 한목소리를 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지난 14일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농어촌의 현실을 반영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날 새누리당 김광림 의원은 "추석 명절에 한우는 연매출의 4분의1, 과일은 평시보다 2∼2.5배, 수산물은 연매출의 5분의1이 팔린다"라며 "농축수산물은 제외하든 금액을 현실화하든 해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승남 의원 역시 지난 10일 "농축수산물은 명절 선물로 활용되고 있는 데 금품수수 대상에 포함시키면 가뜩이나 어려운 농어촌에 미칠 충격이 매우 크다"라고 말했다.

한우세트는 등급과 부위, 용량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롯데백화점을 예로 들면 최상급 소고기를 인기 부위별로 구성한 'L-No.9세트'는 138만원에 거래된다. 반면 한우사골, 우족, 꼬리 등으로 구성된 한우보신세트는 8만원대에 불과(?)하다. 롯데마트에서는 최저 9만8000원부터 최고 49만원까지의 가격에 한우세트를 팔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현대명품한우특' 제품이 100만원, 신세계백화점은 '명품목장한우특호'가 110만원에 팔렸다. 업계는 주로 판매되는 상품이 30만∼40만원선이며, 예약판매에서는 16만원짜리 세트가 인기를 끌었다고 설명했다. 100만원이 넘는 한우세트는 일반적인 선물이 아닌 셈이다.

고가 선물 가운데 '프리미엄 굴비세트'가 눈에 띈다. 각 백화점 별로 최고가 200만∼360만원 사이에 가격이 형성됐다. 가장 저렴한 굴비세트는 7만5000원∼13만원 사이에 거래되고 있다.

와인세트는 백화점별로 3만원대부터 1000만원대까지 가격과 품목이 다양하다. 롯데백화점에서 판매 중인 '르로이 6병 세트'는 3300만원에 가격이 책정됐다. 앞서 롯데호텔서울은 지난 설까지 프랑스 와인 '샤토 무통 로칠드 1945년산'을 5900만원에 판매했다. 현재 롯데호텔서울은 '루이 13세 제로보암'이란 코냑을 4500만원에 팔고 있다.

서울 웨스턴조선호텔에 나온 추석 선물 가운데는 3500만원짜리 그림이 있다. 미술계 관계자는 "이모 화백의 명성을 고려할 때 비싼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판화는 150점이 제작됐으며 한 점당 100만원이다. 호텔신라가 준비한 '유기농 황금차 세트'도 130만원이란 가격표가 붙었다.

이처럼 국내 특급호텔의 추석 선물 가운데는 100만원이 넘는 상품이 있다. 그렇지만 꼭 100만원 이상의 상품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 대부분의 상품은 100만원 이하에 거래된다. '양갈비 세트' '문어·장어 세트' '추석 차례상' '호텔 상품권' 등 100만원 이하로 구입 가능한 ‘대체재’는 얼마든지 존재한다.

등산, 캠핑 등 레저용품에 비해 골프용품은 오해받기 쉬운 선물로 꼽힌다. 고가라는 인식이 강한데다 골프장 회원권 등과 연계해 접대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자동차 할인 혜택도 초고가 선물 제공의 단골 레퍼토리다. 지난해 한 공무원은 차량을 구입하면서 45%의 할인 혜택을 받아 자체 감사에 적발되기도 했다. 언론 종사자 역시 차량 할인을 받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최근에는 '골드바'가 상류층 사이에 유행하면서 추석 선물로 각광받고 있다는 후문이다. 골드바는 1kg당 가격이 수천만원을 호가한다.

기준은 100만원

지난 11일 새정치민주연합 진선미 의원이 언론에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한전산업개발은 2009∼2014년 명절선물 구입 명목으로 1억8237만원을 대리결제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제를 요구한 기관은 회사 대주주인 자유총연맹이다.

이는 자유총연맹만의 문제는 아니다. 추석 선물을 고가로 매입할 수 있는 개인은 극소수다. 대부분은 법인 자금으로 결제된다는 것이 업계의 상식이다. 기업 협력관인 P씨는 "아무래도 관(정부)을 상대하다 보면 돈 들어갈 일이 많아 사비로는 어렵다"라며 "프로젝트를 앞두고 선물하면 걸린다. 미리미리 성의를 보이는 것이고, 명절만큼 구실이 좋은 때가 또 있겠느냐"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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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