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한 건' 한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북한이 무서워하는 불굴의 카리스마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남북 간 일촉즉발의 위기 속에서 극적 타협을 도출한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제대로 떴다. 박근혜정부 외교안보팀 좌장으로서 김 실장의 뚝심으로 이끌어낸 합의라는 평가다. 김 실 장은 남북관계의 막힌 곳을 속 시원하게 해결하고 컨트롤타워로써의 역할을 입증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남북 고위당국자 접촉은 대화 초반 ‘전쟁’ 발언까지 나오는 등 한때 험악한 분위기가 흘렀지만, 남북이 이번 사태를 평화적으로 풀어내야 한다는 양측의 강한 의지로 극적 합의가 가능했다.  한반도 정세가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닫는 가운데 무박 4일간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였다.
 
무박 4일간 공방 
피말린 샅바싸움
 
한국 측 수석대표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과 북측 대표인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은 협상장에서 강대강으로 맞받아치며 ‘전쟁’ 경고 발언까지 나왔다. 지난달 22일 오후 6시 반 판문점 평화의 집. 김 실장이 ‘목함지뢰’ 도발을 언급하며 사과가 우선이라는 뜻을 전하자 황 국장은 “잘 모르는 일”이라며 일관했다. 이어 김 실장은 “불과 한 달 전에 일어난 일, 이번 사태의 직접적 원인입니다. 젊은 사람의 일생이 걸린 문제이다”며 북측 사과를 촉구했다.
 
김 실장은 목함지뢰가 폭발한 장소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물에 쓸려 온 게 아니다. 누군가 와서 묻은 것이다”라며 황 국장을 압박했다. 그런데도 북한이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만 이야기하자 김 실장은 “나는 전군을 지휘했던 사람”이라고 호통을 쳤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또다시 도발한다면 ‘강력한 응징을 하겠다’는 뜻을 자신의 경력을 내세워 시위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 발언을 한 직후 순간 회담장에는 긴장감이 돌았다. 
 

김 실장의 강경한 입장에 북측은 “유감을 표명하면 어느 정도 해주면 되겠느냐”고 대화 가능성을 내비쳤다. 김 실장의 뚝심으로 대화를 이어갈 수 있게 됐다.
 
남북간 일촉즉발 위기속 극적타협 도출
현 정부 뚝심의 안보좌장…존재감 ‘쾅’
 
이 와중에도 북한에서는 잠수함 전력의 70% 규모에 달하는 50여척이 기지를 이탈해 수중으로 전개됐고, 스커드와 노동 미사일 기지의 움직임도 활발해졌다. 한미연합군은 이에 맞서 B-52 전략폭격기와 핵잠수함 등 전략자산 전개 시점을 협의하면서 한반도 정세를 둘러싼 긴장은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어쨌든 김 실장의 강경한 입장으로 북측과 협상은 급물살을 탔다. 하지만 재발방지책을 놓고 다시 교착상태에 빠졌다. 북한의 지뢰도발 사과·재발방지책 마련 등 핵심 쟁점을 놓고 대치하던 양측은 지난 24일 낮 한때 타결 직전까지 갔지만, 북측이 돌연 강경 입장으로 선회하면서 최종 합의에 난항을 겪었던 것으로도 알려졌다.
 
일각에선 박근혜 대통령이 같은 날 오전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북한의) 확실한 사과와 재발방지가 필요하다”며 사실상 협상의 마지노선을 제시한 것도 배경이 됐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이 때문에 자칫 막판에 협상이 뒤집힐 위기에도 놓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실장은 끝내 합의점을 찾아내는데 성공했다. 김 실장은 지난 25일 새벽 2시 청와대 춘추관에서 접촉결과를 브리핑하며 남북 공동 합의문을 발표했다. 
 
“나는 장군이었다”

회담 분위기 압도
 
이번 협상에 대해 여론은 김 실장이 북측으로부터 지뢰 폭발과 관련해 ‘사과’를 받아냈다는 점을 높이 사고 있다. 하지만 남북이 동시 발표한 고위급 접촉 남북 공동보도문을 보면 “북쪽은 남쪽 지역에서 발생한 지뢰폭발로 남쪽 군인들이 부상당한 것에 대하여 유감을 표명하였다”고 밝혔다. 정부에선 이를 사과라고 못 박았다. 
 
그러나 북쪽의 황 국장은 돌아가 남측이 발표한 공동보도문과는 달리 ‘지뢰 폭발이 남쪽의 조작’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해 논란을 키웠다 황 국장은 이날 <조선중앙텔레비전>에 직접 출연해 “이번 긴급 접촉을 통해 남조선 당국은 근거 없는 사건을 만들어가지고 상대 쪽을 자극하는 행동을 벌이는 경우 군사적 충돌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는 심각한 교훈을 찾게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쪽 보수층에선 유감을 사과로 받아들여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한 것은 실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자유민주연구원은 이날 “공동보도문 어디에도 사과는 없다. 이를 아전인수 격으로 사과라고 해석한 김관진 실장과 홍용표 장관을 당장 해임시키고 공동보도문을 파기해야 한다”는 논평을 냈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상대방이 있는 관계에서 ‘사과’를 명시하기보다는 ‘유감’이라는 절충형 표현을 쓸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때문에 김 실장이 어느 정도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사실상 김 실장은 이번 마라톤협상에서 보인 강경적인 태도와 말 한마디로 크게 주목받고 있다. 특히 이번 협상을 이끌어낸 덕에 일각에서는 남북 대화의 물꼬는 앞으로 ‘김관진-황병서 라인’으로 통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김 실장은 이명박정부 시절엔 국방부장관을 지내고, 박근혜정부에 들어서까지 안보실장으로 지내고 있을 만큼 신뢰받고 있다. 국민적 호응이 그만큼 좋았던 인물이라는 의미다. 국방장관 시절의 그는 북한의 각종 도발상황에 강경한 입장을 취하며 ‘레이저 김’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레이저 김’
대통령 신임
 
김 실장은 1949년 8월27일 생으로 전북 출신이다. 1972년 육군사관학교 28기로 임관했다. 김 실장은 당시 수재로 통했다. 육군사관학교 생도 시절 학업 성적이 우수해 육사 기수 중 1명만 선발하는 서독 유학 시험에 합격했다. 한국에서 1학년을 마친 후 독일 육사에 유학을 가서 졸업까지 했다. 
 
1972년 육군 소위로 임관해 32사단 수색중대 소대장으로 시작해 주요 보직을 거쳤다. 제15보병사단 독수리연대에서 대대장을 보냈으며, 이후 수도기계화보병사단에서 여단장으로 복무했다. 이후 김 실장은 탄탄대로를 달렸다. 1999년 육군본부 전략기획참모부 처장에서 제36향토보병사단 사단장(소장)으로 진급했다. 2002년 육군 기획관리참모부장에서 제2군단 군단장(중장)으로 진급. 2003년 10월1일 열린 국군의 날 대통령으로부터 보국 훈장을 받았다. 
 
2004년 5월, 이라크 파병을 총괄하는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에 임명됐다. 상당히 중요한 보직이라 이때부터 언론에 노출되는 빈도가 꽤 높아졌다. 2004년 대한민국을 뒤흔든 김선일씨 사건 당시 이라크 파병과 부대 경계 회의 등에 참여했다. 반면 이라크에 주둔중인 자이툰 부대 근처에서 폭발물이 터지는 사고가 발생했지만, 일체의 브리핑을 하지 않아 논란도 있었다. 
 
뼛속까지 군인 ‘대북 강경파’

‘MB→GH’ 국방장관 최초로 유임
 
2005년 제3야전군사령관에 임명됐다. 이후 강원도 명예 도민으로 선정했다. 한편 2005년 5월, 노무현 대통령의 자이툰 방문을 다룬 ‘대통령님, 한번 안아보고 싶습니다’에 저자로 참여했는데, 기밀 유출이 아니냐는 비판이 있기도 했다. 또한 530GP 사건(연천 군부대 총기 사건) 이후 희생자 장례식에 참여했는데, 희생자의 모친이 “내 아들 살려내!”라고 하자 3분도 안 되어 자리를 떠나 논란이 일었다. 2006년 김 실장은 군 최고 서열인 합참의장에 내정됐다.
 
김 실장은 2010년 12월4일 제43대 국방부 장관에 임명됐다.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2013년 3월22일 대한민국 헌정상 전 정부의 국방부 장관으로서는 최초로 유임된 진기록을 남겼다. 이후 2014년 6월1일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의 후임으로 박근혜정부 제2대 국가안보실장으로 지명됐다.   
 
 
하지만 김 실장이 국방부 장관으로 있는 동안 굵직굵직한 사건이 터지면서 논란도 많았다. 2011년 6월초에는 군 비리, 횡령을 고발한 영관급 장교를 오히려 징계하려는 행동으로 인해 비난을 받았다. 이 뿐만 아니라 2011 해병대 총기난사 사건, 북한군 노크귀순 사건, 대한민국 국방부 사이버사령부의 대선개입 논란, 북한 무인기 추락사건, 제22보병사단 총기난사 사건 등이 일어났지만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아 공분을 샀다. 
 
굵직굵직한 사건
논란도 많았다 
 

해병대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나자 병영문화 개선 등을 약속했으나 군 밖에서 느껴질만 한 성과는 나오지 않았다. 2005년에 일어난 530GP 사건으로 당시 윤광웅 국방부 장관은 사건 발생 3일 만에 사임 의사를 표명했다. 비록 후속조치를 위해 대통령이 유임시켰기 때문에 실제로 사임하진 않았지만,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국군 통수권의 2인자이자 국방부의 수장이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주었던 전례와는 큰 차이를 보인 것이다. 길 실장은 이런 사건으로 헌정 사상 유일하게 재임기간 중 총기난사 사건이 두 번 일어난 국방부 장관이라는 오명을 안기도 했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관진과 호흡’ 홍용표 누구?
 
이번 타협에 홍용표 통일부 장관을 빼놓으면 섭하다. 외교·통일 전문가인 홍 장관의 브레인과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의 뚝심이 콤비를 이뤄 빛을 발휘했다는 평가다. 
 
당초 홍 장관은 남북 대화 경험이 없고, 비교적 온화해 카운터 파트인 노회한 김양건 노동당 중앙위 비서를 상대할 수 있을지 우려가 있었다. 정부 소식통은 “달변인 홍 장관이 논리적으로 북측의 부당함을 추궁하자 북측 대표단이 당혹스러워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홍 장관은 1964년 4월15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희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나와 1989년 석사장교로 입대해 1990년 6개월 복무 뒤 소위로 제대했다. 그후 영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해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미국 오리건대 교환교수, 한양대 정치외교학전공 교수를 지냈다.

2012년 새누리당 대선캠프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외교통일추진단 위원으로 참여하며 정치와 연을 맺었다. 2013년 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외교국방통일분과 실무위원으로 활동하고 박근혜정부 출범 때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 통일비서관으로 발탁됐다. 2015년 3월 통일부 장관에 취임했다.
 
2013년 박근혜 당선인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외교국방통일분과 실무위원으로 활동한 뒤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비서관실 통일비서관에 임명됐다. 현직 청와대비서관(1급)에서 차관급을 거치지 않고 바로 장관으로 지명돼 파격인사라는 말을 들었다.
 
개각 발표 당일 아침까지 통일부 장관에 김규현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이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정작 청와대는 홍용표를 통일부 장관 후보자로 발표해 혼선을 빚는 일이 있었다.
 
홍 장관 부친은 한국일보 이사와 코리아타임스 편집국장을 지낸 홍순일씨다. 부친은 한국일보 특파원으로 1974년 응우옌반티에우 베트남 대통령을 인터뷰하고 장기집권하는 베트남 독재정권을 비판하는 기사를 써 박정희 유신정권의 탄압을 받았다. 이 사건은 10·24 자유언론 실천운동을 촉발했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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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