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주년 특집> ‘뿌리박힌’ 일제 잔재들 ①‘힘깨나 쓰는’ 친일파 후손들

각계각층 요직에 앉아 ‘떵떵’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윈스턴 처칠이 말했고, 단재 신채호 선생이 받은 이 문장처럼 역사는 그 민족의 청사진과 같은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는 매년 8월15일을 기점으로 사회 각계 인사들에 대한 친일 의혹이 터져 나온다. 국민들이 바라는 과거사 청산은 요원하기만 한 것일까. 광복 70주년을 맞이해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강타했던 친일파와 그 후손들에 대한 의혹을 <일요시사>가 정리했다.

친일파 의혹에 대해 말하기 전 한 가지 질문이 전제되어야 한다. 과연 친일파는 존재하는 것일까? ‘야권에서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는 말 아닐까’하는 데서 오는 의문이다. 마치 여권의 종북 프레임처럼 말이다. 실상 그렇게 악용되지 않았던가. ‘종북’처럼 ‘친일’도 명백한 기준이 없기는 매한가지다. 둘 다 대한민국이 청산해야 하는 과거사와 연결되어 있다는 측면에서도 유사하다.

친일파 청산
과거사 문제

그렇기 때문에 정치권은 물론 사학계에서도 지난 70년간 그 기준을 찾기 위해 고심해왔다. 이른바 ‘역사 바로잡기’라는 큰 줄기를 토대로 여러 프로젝트가 사회각계에서 진행됐다. 그러나 그 시작과 끝에는 친일의 기준이라는 문제가 발목을 잡아왔다.

사전적 의미로 친일과 친일파는 다르다. 친일이 행위를 기준으로 한다면 친일파는 집단을 기준으로 한다. 각각 제국주의 시절 일본을 옹호한다는 측면에서는 동일하나 일반적으로 친일이 과거와 현재를 아우른다면 친일파는 과거의 특정인물의 행적을 규정하는데 많이 쓰인다. 이를 근거로 한다면 과거 총리로 내정됐다가 낙마한 문창극 전 후보자의 경우 엄밀히 말해 친일을 한 것이지 친일파는 아니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 또한 사람에 따라 차이가 발생할 여지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민족문제연구소(이하 민문연)와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가 2009년 11월8일에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은 큰 의미를 지녔다. 민문연은 1991년 설립돼 사학계와 함께 과거사 연구에 몰두해왔다. 2001년부터는 120여명의 학자들로 구성된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를 발족시키고 사전 발간을 위한 연구에 들어갔다. 중간에 보수단체로부터 각종 소송과 발행금지 신청 등을 받긴 했지만 이를 이겨내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사전을 출간해 논란의 중심에 섰던 민문연도 친일파 후손에 대한 언급에는 신중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사전 출간을 연구했던 한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통화에서 “(친일인명)사전의 출간 목적은 과거에 친일을 한 사람을 가려내서 기록으로 남기자는 것”이라며 “연좌제처럼 자손에게 그 책임을 묻자는 목적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또한 그는 “민문연에서는 가계도 연구 등 친일파와 그 후손들을 연결 짓는 연구는 하지 않고 있다”고 확실히 했다.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8·15를 맞아 다시 한 번 친일 논란에 휩싸일 분위기다. 언론에서는 친일파와 그 후손들로 추정되는 인사들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가장 논란의 중심에 있는 인물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다. <한겨레>신문에서는 최근 『‘친일’ 김무성 아버지가 애국자로 둔갑하고 있다』는 제하의 칼럼을 통해 통렬히 꼬집었다.
 

칼럼에서 볼 수 있는 김 대표 부친의 친일 행적은 다음과 같다. 김 대표 선친의 이름은 김용주, 전 전남방직의 회장으로 일찍이 일제강점기 때 친일 행적을 보였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는 당시 일본의 조선인 징병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기 때문이다.

1943년 10월3일에 발간된 <매일신보>를 보면 김 전 회장이 “징병제 실시에 보답하는 길은 일본 정신문화의 앙양으로 각 면에 신사(神社)와 신사(神祠)를 건립하여 경신숭조 보은감사의 참뜻을 유감없이 발휘하도록 하여야 하며 미영 격멸에 돌진할 것을 촉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기사가 존재한다. 또한 김용주는 경북도회 의원을 지냈으며 조선임전보국단 간부로서 ‘황군에게 위문편지를 보내자’는 운동을 펼쳤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다수의 언론은 최근 김 대표가 방미 일정 중 보여준 ‘큰절’ 등을 보면서 ‘과공비례’라고 지적했다. <한겨레> 신문은 이번 칼럼을 통해 미국을 향해 큰절한 김 대표와 일본을 향해 감사를 표한 김 전 회장과의 연결고리를 주장하고 있다.

박정희·박근혜 끊이지 않는 의혹
영원히 자를 수 없는 평생 꼬리표

역대 대통령 중 50∼70년대 활동했던 대통령은 친일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대표적으로 이승만과 박정희 전 대통령을 꼽을 수 잇다. 이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 된 후 정부를 구성하는데 있어 친일파를 중용하고(정부 수립이 용이하도록 기존 인물들을 그대로 썼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수 있다.) 반민특위를 해산시켰다는 측면에서 후대에 친일 행적을 의심받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의 친일 논쟁은 매년 이맘때 나오는 최고의 화두 중 하나다. 일부 언론에서는 칼럼을 쓸 때 ‘다카기 마사오’라는 박 전 대통령의 일본식 이름으로 게재되기도 한다. 공개석상에서는 2013년 7월경 당시 통합진보당 이정희 전 대표가 서울 시청광장에서 일본식 이름을 말해 논란이 된 바 있다. 이 전 대표는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을 제기하며 “친일 매국 세력, 다카기 마사오가 반공해야 한다면서 쿠데타로 정권잡고 유신독재 철권 휘둘렀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을 두고 친일파라고 말하는 사람은 그의 과거행적을 지적한다. 일제강점기 때 자발적으로 만주군관학교를 찾아간 것이 그 중 하나다. 당시 만주는 일본이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박 전 대통령의 행위를 두고 일본군에 자원입대한 것과 같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당시 발간된 신문에서는 박 전 대통령이 당시 일본을 찬양하는 듯 한 편지를 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1939년 3월31일자 <만주신문>에는 박 전 대통령이 직접 쓴 편지가 실려 있는데 내용에는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서 일사봉공의 굳건한 결심입니다”라고 적혀있다.

박 전 대통령의 영애가 현재 18대 대통령이라는 점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은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정치권에서는 이를 지속적으로 언급해왔다. 특히 친일 성향이 강한 인사들을 요직에 임명하는 것 아니냐며 야권으로부터 친일정부라는 비판까지 받았다.

박정희·박근혜
김용주·김무성

대표적인 예가 이인호 한국방송공사(이하 KBS) 이사장과 문창극 전 총리후보자의 친일 논란이다.

이인호 KBS 이사장은 지난 2014년 9월 내정 당시 “과거 일제시대 친일행위를 비호하거나 옹호하기 위한 인사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했다. 조부의 과거 친일 행적 때문이다. 조부인 이명세는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된 인물로 일제강점기 시절 징병제를 찬양하는 글을 발표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이사장은 조부의 행적에 대해 인정했다. 2014년 10월22일에 열렸던 KBS에 대한 국정감사 자리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이 이사장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 ‘조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질문하자, “조부의 행적이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중일전쟁 이후에 한국에서 직업을 가지고 산다는 것 자체가 오역이었다”며 “일본과 타협하고 체제에 안주했던 분”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오히려 이 이사장 본인의 발언이 구설에 올랐다. 대중의 정서와 괴리가 느껴지는 발언을 한 사실이 문제로 지적됐다. 이 이사장은 강연을 다니며 “백범 김구 선생은 건국 공로자가 아니다”라고 주장해 논란이 된 적 있다.

문창극 전 총리 후보자는 본인의 친일 발언이 구설수에 올랐다. KBS는 문 후보자가 내정된 직후 교회에서 ‘일제의 식민지배가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내용의 강연을 했다고 보도했다. 논란이 일파만파 퍼지자 위안부 할머니들과 시민단체는 총리 후보 사퇴를 촉구했고 결국 문 후보자는 청문회에 서지도 못하고 낙마했다.

문 후보자는 독립운동가의 자손으로 알려져 아이러니함을 자아냈다. 앞서 국가보훈처는 문창극 후보자의 할아버지와 건국훈장을 추서 받은 문남규 선생이 동일 인물로 보인다고 밝힌 바 있다. 문남규 선생은 지난 1921년 평안북도 삭주에서 일본군과 전투하다 전사한 대한독립단 소속 독립투사로 알려져 있다.

친일인명사전에 정치인 선친
자유롭지 못한 고위공직자도

전·현직 국회의원들도 자유롭지 못하다. 현직에서는 새정치연합 신기남·이미경 의원이, 전직 국회의원으로는 정동영·유시민 전 의원이 대표적이다. 신 의원은 아버지 신상묵은 일본 헌병을 지낸 이력이 있으며, 이 의원의 부친 이봉권은 황군 헌병오장으로 활동했다는 주장이 있다.

정 전 의원의 부친 정진철은 조선 농민들의 자금과 인력을 동원을 담당했던 금융조합에서 서기로 5년간 근무한 경력이 있다. 유 전 의원의 부친 유태우는 일제가 세운 전쟁으로 빼앗아 세운 만주국에서 역사 훈도로 재직했는데, 당시 역사 훈도는 일본 군국주의 역사를 찬양하는 내용을 교육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친의 친일 또는 본인의 행적을 공개적으로 사과한 사람도 있다. 신 의원은 지난 2005년 부친의 친일 행적을 사과하며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직을 사퇴하는 용단을 보였다. 신 의원은 당시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부친의 친일인사 명단 포함 여부와 관계없이 역사적 진실을 밝히고, 진정으로 화해하는 새로운 국민통합의 역사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친일 논란이 거짓으로 드러난 사례도 있다. 한민구 국방부장관은 과거 청문회 자리에서 조부가 친일파였다는 논란에 휩싸였으나, 사실과 다름을 밝혀냈다. 학계의 뒷받침이 결정적이었다. 한 장관 측은 “(아버지) 한봉수 의병장에 대한 행적은 이미 학계에서 검증됐고, 친일 행적은 없었다”고 일부 언론에서 주장하는 것과 사실이 다름을 알렸다.

신기남·이미경
정동영·유시민

이항녕 전 홍익대 총장은 살아생전 자신의 친일 행위를 반성한 몇 안 되는 인물이다. 그는 경남 하동초등학교 강당에 올라 “저는 하동군수로 1년, 창녕군수로 3년간 있었는데 그때는 징용·징병·학병을 보내기 위한 일을 했다”며 “그때 그렇게 집을 떠나야 했던 분들 가운데 목숨을 잃은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일본의 앞잡이로서 그런 일을 저질렀던 나쁜 죄인이었다”고 고백했다.

대중을 향해 고해성사를 한 이 전 총장은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적어도 당시 군수 이상의 관리는 친일파로 볼 수 있다.” 과연 이 전 총장의 말처럼 구분을 하면 친일파, 또 그의 후손들을 모두 골라낼 수 있을 것인가. 그 과정에서 자칫 무고한 피해자가 발생하는 건 아닐까. 후손들에 대한 책임 추궁은 연좌제가 아닐까. 아직까지 국민들이 바라는 수준의 과거사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이에 대한 논쟁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chm@ilyosisa.co.kr>



<광복 70주년 특별기고> 일본의 무사도는 짝퉁이다

무사도는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사랑하고 자랑으로 여기는 정신이다. 가히 일본의 국민정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 정신은 일본 고유의 정신이 아니라 서양의 기사도를 모방한 정신이라고 믿어진다.  일본역사에 있어 ‘무사도(사무라이 정신)’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니토베 이나조(新渡戶稻造)’에 의하여 1899년 <BUSHIDO -The Soul of Japan>이라는 책이 미국에서 영어로 출판하면서이다. 당시 니토베 이나조는 37세에 불과한 젊은이였다.

무사도라는 글자가 최초로 등장하는 문헌은 1585년의 <고요군칸>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책에서 무사도의 뜻은 무사의 용감한 행동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지 오늘날 같이 충성, 명예, 청빈 등 여러 가지의 뜻을 포함한 무사도개념(사무라이정신)과는 전혀 다른 의미였다. 글자의 모양은 같지만 그 뜻은 완전히 다른 글자인 것이다.

니토베 이나조는 일본 문헌에서 무사도라는 글자가 사용된 것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 뜻을 전혀 모른 채 무사도라는 글자를 스스로 만들어 냈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이전에 나오는 무사도라는 글자와 그의 무사도 글자는 모양만 일치할 뿐 뜻은 전혀 다른 글자가 된 것이다.

모양만 일치할 뿐 그 뜻은 전혀 다른 별개의 글자라는 면에서 니토베 이나조 이전에는 무사도라는 개념뿐 아니라 글자도 없었다고 하는 것이 타당하다 하겠다. 저자 니토베 이나조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에 유럽과 미국에서 유학하고, 미국인 여자와 결혼까지 한 서구 문화에 상당히 익숙한 젊은이였다. 반면 일본 역사에는 매우 어두워 당시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읽는 수필집 <쓰레즈레구사(徒然草)>조차도 몰랐다고 한다. 

그가 유학시절 유럽의 교수로부터 “일본은 학교에서 종교를 가르치지 않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학생들에게 도덕적 규범을 가르치며 일본의 도덕적 가치관은 무엇인가?” 하는 당혹스런 질문을 받았다. 이에 대한 답변이 궁색해 자존심이 상했던 그는 며칠을 생각해 보니, 그것은 무사도였다 라는 것을 겨우 생각하게 됐다고 책 서두에서 말하고 있다. 그가 여기서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는지 않지만, 서구 문화에 익숙해 있던 그는 여기서 기사도를 생각했던 것 같다.

옛날 서양의 기사들에게 있었던 ‘기사도’라고 하는 규범이, 오늘날 서구인들에게 신사도라고 하는 도덕적 규범의 모태가 되었듯이, 옛날 일본의 무사들에게도 나름대로 어떤 규범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규범을 인용해 오늘날 일본인의 도덕적 규범을 설명하면 서구인들에게 보다 쉽게 이해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일본인으로서의 자긍심도 내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작가 스스로 “서양의 기사도와 일본의 무사도처럼 비슷한 것도 없을 것”이라고까지 책에서 밝힌 것처럼, 일본 사무라이들의 행태를 서양 문화와 기사도에 비교하면서 설명하고 있으나, 책을 쓴 과정과 환경 등을 살펴보면 서양 문화와 기사도의 여러 행태에 일본 문화와 사무라이의 행태를 끼워 맞추어 쓴 것이라는 강한 의구심이 든다.

<전쟁터의 정신사(한글판: 무사도는 없다)>를 쓴 ‘사에키 신이치’도 “니토베 이나조는 무사도를 쓰면서 기사도를 뼈대로 하여 새로운 개념을 덧붙일 생각으로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깊이 있게 조사하고 분석하였다”고 씀으로써 무사도가 기사도의 모방임을 밝히고 있다. 

니토베 이나조는 무사도는 충(忠)·의(義)·용(勇)·인(仁)·예(禮)·성(誠)을 기본으로 하며, 이 무사도가 바로 일본 민족의 아름다운 이상이자 도덕적 규범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아무런 근거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상상력에 근거하여 저술한 창작품에 지나지 않는다.

영어로 출간된 이 책이 미국에서 유명해지자, 일본으로 역수입하게 되고 일본에서 또한 유명해지게 된다. 당시 침략을 준비하던 군국주의의 일본정부가 자국 군인과 국민들에게 충성심과 용맹성을 강조하는 교육을 시키기 위한 정신 교육용으로 이 책의 주 내용을 채택하게 된다.

그러면서 근거도 없이 저자가 상상을 하며 제멋대로 쓴 책의 주장을, 정훈교육 관점에서 홍보하고 교육시키면서 더욱 과장하고 미화시켰다. 그리고 한번 과장하고 미화하기 시작한 바람은 더욱 거세지면서 많은 어용학자들이 나서서 시시콜콜한 사무라이들의 이야기조차도 무슨 대단한 일인 양 부풀려 가면서 자국 국민들을 세뇌시켰다. 일본정부는 문단총동원(文壇總動員)령을 내려 문인들로 하여금 침략전쟁을 선동하고, 어용 논리를 만들어 주변국 침략을 정당화하면서 침략전쟁을 일본민족의 성전이라며 선동하고 참전 열풍을 일으켰다.

사무라이와 관련된 논문과 책이 대량으로 발행된 것도 이때였다. 이렇게 하여 정확한 역사 사실에 대한 조사도 없이, 단지 37세의 젊은이가 기사도를 모방하며 멋대로 쓴 엉터리 창작품 무사도가 오늘날 일본인들의 기본 정신인 양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사무라이 정신은 거짓이다> 저자 장성훈

 

*본 내용은 일요시사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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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전’ 친윤 대숙청 시나리오

‘대선 전’ 친윤 대숙청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는 당원들의 도움으로 대선후보 지위를 유지했다. 확실한 명분을 쥔 김 후보는 설령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당권 장악을 위한 투쟁을 이어가야 한다. 김 후보가 당내 주도권 다툼서 이기는 방법은 무엇일까?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는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원내대표 등 친윤(친 윤석열)계의 대선후보 교체 시도를 당원들의 반대로 진압한 후에야 선대위를 구성했다. 김 후보는 지난 11일 대선후보로 등록했고, 대선후보의 당무우선권을 발동해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을 같은 날 진행된 의원총회서 새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임명했다. 갑툭튀 위원장 권 전 비대위원장이 후보 교체 시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기 때문이었다. 일각에선 권 원내대표의 사퇴도 강하게 요구했지만, 김 후보는 권 원내대표를 유임했다. 이날 진행된 의원총회엔 의원 107명 중 50명만 참석했다. 후보 교체 시도에 가담한 친윤계 의원들은 대거 불참했다. 이어 지난 12일엔 국민의힘 비대위 회의가 개최됐다. 국민의힘은 이날 회의서 김용태·주호영·권성동·나경원·안철수·황우여·양향자 등 7인 공동 선대위원장 체제를 발표했다. 김 후보는 후보 교체 시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국민의힘 이양수 의원을 대신해 박대출 의원을 사무총장으로 임명했다. 박 의원은 선대위서도 총괄지원본부장을 맡았다. 이틀 동안 확정·발표된 인선 중 가장 주목받은 것은 김 비대위원장 임명이었다. 30대 중반 막내 초선 의원을 당 대표격 직책에 임명했기 때문이었다. 김 비대위원장은 비대위원으로서 후보 교체 시도에 강하게 반대했다. 김 비대위원장은 지난 2021년 전당대회서 청년 최고위원으로 당선돼 이준석 당시 대표가 이끌던 지도부에 참가했다. 이어 황우여 전 비상대책위원장 시절에도 비대위원으로 발탁됐던 경험이 있다. 이 전 대표 시절엔 소장파 ‘천아용인’ 중 1명으로 거론됐던 적이 있고, 이 전 대표가 탈당해 개혁신당을 창당한 이후에도 돈독한 친분을 이어가고 있다. 일각에선 김 비대위원장 발탁을 놓고 “개혁신당 이준석 대선후보와의 단일화를 대비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다만 김 비대위원장에 대해선 “소장파로서의 행보가 약하다”는 평가도 있다. 그래서 김 비대위원장이 적극적으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을지 회의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지난 12일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하이킥>서 “친윤계가 김 비대위원장을 화살받이·방패막이로 앞세워서 상황을 돌파하려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어 김 비대위원장의 역량을 인정하는 기준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와의 결별 및 출당을 제시했다. 함께 출연한 장윤선 정치 전문 기자는 “제일 고통스러운 사람은 김 비대위원장 자신일 것이란 얘기가 있다”며 “대선서 크게 패배하면, 그 책임을 김 후보가 아닌 김 비대위원장이 지는 방식으로 정리하기 위해 허수아비로 세워놓은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고 거들었다. 친윤계는 의원총회 불참으로써 김 비대위원장 지명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김 후보는 당원투표로써 친윤계의 후보 교체 시도를 진압했기 때문에 명분을 확보했다. 국민의힘의 주도권을 휘어잡을 기회를 얻었다고 볼 수도 있다. 30대 초선 비대위원장 총알받이? 방패막이? 김 후보가 대선후보 지위를 굳힌 후 먼저 교체한 사람이 이 전 사무총장이란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전 사무총장은 당 선거관리위원장 자격으로 김 후보 선출 취소 공고와 새 후보 등록 신청 공고를 발표했다. 후보 등록 신청 공고에 제시된 등록 신청 기간은 지난 10일 오전 3시부터 4시까지였고, 등록을 위해 준비해야 할 서류는 총 32종이었다. 등록 장소는 국회 본관 228호 비대위 회의실이었다. 이 황당한 상황은 한 편의 코미디로 남았다. 이날 오전 3시부터 4시 사이엔 공고를 본 후 국회를 방문해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등록하러 왔다”면서 국회 경비대에 “문을 열어달라”고 요구하는 조롱성 방송을 진행한 유튜버도 있었다. 이 전 사무총장은 소동이 끝난 후 의원 단톡방에 김 후보를 비판하고 권 전 비대위원장을 두둔하는 취지로 어느 정치평론가의 칼럼을 게재했다. 이어 친한(친 한동훈)계인 국민의힘 정성국 의원으로부터 “총장님 입맛에 맞는 정치평론가의 글을 단톡방서 읽을 이유는 없다”고 비판받았다. 김 후보로선 사태가 끝난 이후에도 후보 교체 시도를 정당화하는 이 전 총장을 유임시킬 이유가 없었다. 선거를 목전에 두고 있으므로 권 원내대표까지 교체해 파문을 확대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김 후보가 당의 주도권을 확실히 휘어잡을 기회를 잡은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선대위를 움직일 당 사무총장은 빨리 교체해야 했다. 김 후보는 권 원내대표를 유임시켜 ‘휴전’ 메시지를 보낸 후 친윤계와의 암묵적 합의를 거쳐 김 비대위원장을 임명했다. 이어 실권을 행사하는 사무총장을 신속하게 확보했다. 국민의힘 대선후보 교체 시도는 1991년 8월 발생한 소련 공산당 보수파의 쿠데타를 연상시킨다. 보수파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대통령을 몰아내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 쿠데타는 KGB 알파그룹과 전차부대 등이 동원돼 신속하게 진행된 군사작전이었다. 쿠데타는 실패했고, 소련은 해체됐다. 이처럼 정치적 기획을 군사작전처럼 몰아쳐 진행하는 성향이 있는 사람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윤 전 대통령은 이런 식으로 당 대표 2명과 비대위원장 1명을 쫓아낸 적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황정아 대변인은 지난 10일 “윤석열 지령, 국민의힘 연출로 시작된 대선 쿠데타”라고 주장했다. “행보가 약하다” 윤 전 대통령도 본의 아니게 자수 아닌 자수를 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11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 후보 지지를 호소하는 글을 올렸다. 그런데 이 게시글엔 “김 후보를 지지하셨던 분들도 이 과정을 겸허히 품고 서로의 손을 맞잡아야 한다”는 문장이 있었다. 김 후보의 패배를 기정사실로 한 게시글을 수정 없이 그대로 올렸다. 김 후보와 친윤계의 대결이 ‘휴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게시글이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등 친한계는 지도부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김 후보를 거들었다. 이 중 친한계 좌장 6선 조경태 의원은 김 후보와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단일화 논란이 분분했던 지난 9일에도 “무책임한 외부 인사 영입을 통해 대선을 치를 거라면, 경쟁력 있는 이재명 후보를 데리고 오는 게 빠른 거 아니냐”면서 김 후보를 두둔했다. 이를 두고 “당원투표서 김 후보 교체 시도가 부결됐던 이유 중 하나는 친한계 당원들의 반대 움직임”이라고 보는 일각의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김 후보와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및 탄핵 등 여러 사안서 의견이 엇갈렸다. 두 사람은 국민의힘이 대선서 패배하면 다시 진행될 가능성이 큰 당권 투쟁의 잠재적인 경쟁 상대다. 김 후보는 56.53%를 얻어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한 전 대표가 얻은 43.47%도 무시하긴 어려운 수치다. 친한계 일원인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은 지난 12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한 전 대표의 선대위 참여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 전 대표는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비상계엄 및 탄핵 반대에 대한 사과 ▲윤 전 대통령 부부와의 절연 ▲한 전 총리와의 단일화 약속을 내걸고 후보로 선출된 것에 대한 사과 등 자신의 선대위 참여 조건을 제시했다. 김 전 최고위원은 이를 언급하면서 “김 후보가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렇듯 김 후보는 당내 유력 계파들인 친윤·친한과의 불씨를 두고 있다. 두 계파 모두 앙숙이기 때문에 김 후보로선 두 계파 모두를 포섭하기도 쉽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2026년엔 국회의원들의 ‘대목’이라고 볼 수 있는 지방선거가 진행된다. 불씨가 들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최소한 선거 상황에선 김 비대위원장이란 완충지대가 필요했을 가능성도 있다. 김 후보도 바보가 아닌 한 대선 승리 가능성이 크지 않단 것은 잘 알고 있다. 그 자신도 친윤계의 쿠데타로 인해 정당하게 선출된 후보직을 잃을 뻔했다. 대선 이후엔 곧바로 당권 투쟁이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 후보가 대선 이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잃지 않고 당을 장악하려면 당권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김 후보에게도 우군이 필요하다. 남겨놓은 갈등 불씨 김 후보는 지난 2020년 1월 국민의힘의 전신 자유한국당을 탈당한 이후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돈독한 친분을 유지했다. 같은 해 8월 발생한 사랑제일교회 코로나19 집단감염 사건 이후에도 경찰이 자가격리 조치를 어기고 집회에 참석한 사랑제일교회 일부 신자를 연행하려고 하자 이를 막는 등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당시 김 후보는 “내가 김문수인데, 왜 가자고 그러느냐”라거나 “내가 국회의원을 3번 했다”는 등 호통을 치는 등 경기도지사 재임 당시 119에 전화해 갑질했던 ‘도지삽니다’ 사건을 연상시키는 언행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전 목사는 후보 교체 시도를 격렬하게 비판했다. 전 목사가 주도하는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 국민운동본부(이하 대국본)는 지난 10일 국민의힘을 규탄하는 집회를 개최했다. 전 목사는 이날 “멀쩡하게 뽑아놓은 김문수를 아웃시키고, 한덕수를 영입했다”며 “국민의힘이 사기 치는 것 봤죠? 이건 완전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대국본도 같은 날 배포한 입장문서 “국민의힘은 종북 좌파와 맞서 싸우겠다는 애국 보수만 나타나면 알레르기 반응부터 보인다”고 비판했다. 김 후보는 지난 8일 관훈토론회 초청 토론회서 “광장 세력과도 함께 손잡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은 기독교의 교회 조직과 말씀 때문에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가 버티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전 목사 등 강경보수 성향 일부 교계를 극찬했다. 당내 지분이 전혀 없는 상황서 친윤·친한 모두와 경쟁해야 하는 김 후보로선 우군이 절실하다. 김 후보는 강경보수 세력 내부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와도 돈독한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김 후보는 지난 4월24일 전씨의 유튜브 채널 ‘전한길뉴스’에 출연했다. 전씨는 전 목사의 경쟁자로 통하는 손현보 세계로교회 목사와 연결돼있다. 전씨는 김 후보의 선거 전략을 분석하면서 “김 후보가 기득권 정치와 차별화된 이미지를 구축하고, 호남 지역 표심을 공략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TV 토론서 압도적 존재감을 발휘하고, 막판에 보수 우파가 단합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 목사와 전씨는 윤 전 대통령 탄핵 국면서 보수 진영 내부의 막강한 영향력을 확보했다. 두 사람의 영향력은 인원 동원 능력으로부터 비롯된다. 이들을 국민의힘 내부에 유입시켜 전당대회서 승부를 본다면, 김 후보가 국민의힘을 장악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지방선거서 급한 일은 의원들의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에 개입하는 일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역구 국회의원의 영향력 아래서 손발 노릇을 하는 기초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장악하면, 의원들의 손발을 묶어둘 수 있다. 후보 교체 시도 5적 지역구서 공천 전쟁? 김 후보와 충돌할 가능성이 큰 의원은 ▲권 전 비대위원장 ▲권 원내대표 ▲이 전 총장 ▲성일종·박수영 의원이다. 이 중 이 전 총장을 제외한 4명에 대해선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 게시글서 ‘4적’이라고 주장했던 적이 있다. 홍 전 시장은 “경선을 혼미하게 한 책임을 지고, 의원직 사퇴·정계 은퇴하라”고 주장했다. 이들 중 지도부였던 ▲권 전 비대위원장 ▲권 원내대표 ▲이 전 총장은 후보 교체 시도를 직접 진두지휘했다. 성 의원은 김 후보와 한 전 총리의 단일화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박 의원은 김 후보의 캠프에 참여했지만, 김 후보가 단일화와 관련해 신경전을 이어가자 “김 후보 주변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한 전 총리는 가라앉고, 김 후보가 단일후보가 될 것’이라는 식의 논리를 퍼뜨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김 후보를 일컬어 “전형적인 좌파식 조직 탈취 시도를 하고 있다”는 비난도 이어갔다. 김 후보는 대선후보 자격이 취소됐던 지난 10일 기자회견을 개최해 스스로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김문수”라면서 지도부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어 캠프 내 측근들과 함께 국민의힘 중앙당사를 방문해 대통령 후보실을 점거했다. 이를 놓고 일각에선 “왕년의 투사 김문수가 돌아온 것이냐”고 반응했다. 이날 김 후보의 대응을 돌아보면, 대선 이후 당권 투쟁서 물러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독자 영역을 구축한 친윤·친한과 달리 김 후보는 외부 세력을 당내에 유입시키기 위한 명분부터 구축해야 한다.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의미 있는 득표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홍 전 시장은 자유한국당 후보로서 대선에 출마했지만, 보수 정당이 분열됐던 여파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래서 불과 785만여표(약 24%) 득표에 그쳤다. 이는 역대 대선 직선제 2위 후보 중 당선자와 최다 표차 낙선과 보수 정당 최저 득표율이었다. 홍 전 시장은 대선 패배 이후 약 3주 동안 미국을 방문한 후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로 당선됐다. 예나 지금이나 당내 세력이 미약한 홍 전 시장은 당의 하락세를 막지 못했고, 지난 2018년 지방선거 패배 책임 차원으로 당대표직서 물러났다. 대선서 많은 득표를 하지 못했던 것도 홍 전 시장의 지도력에 힘이 붙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였다. 따라서 김 후보로선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당을 장악하기 위해선 패배하더라도 최대한 많은 득표를 해서 명분을 쥐는 것이 중요하다. 이 후보와의 단일화 시도를 완전히 접지 않은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하한선 35% 무너지나 YTN이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 11~12일 이틀간 무선 100% 전화 면접 방식으로 진행했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김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보다 13% 뒤처진 33%의 지지를 얻었다. 김 후보가 설령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국민의힘을 장악하려면 40% 이상의 독자 지지율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최저 하한선은 35%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 후보에겐 승패 여하를 떠나 많은 것이 달린 대선일 수밖에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