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남아공월드컵 기획특집2>대기업, 도 넘은 월드컵 마케팅 대해부



한국이 온통 붉게 물들었다. 월드컵 개막과 함께 붉은 악마들이 거리로 나서면서 붉은 파도가 일렁이는 듯한 장관이 연출되고 있는 것. 특히 지난 12일 그리스 전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그 열기가 한층 뜨거워졌다. 이와 함께 기업들은 앞 다퉈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월드컵과 맞물린 광고효과가 어마어마한 것이 그 이유다. 이 과정에서 ‘깜짝 행사’나 ‘이색 이벤트’ 등 유쾌한 홍보행사도 눈에 띈다. 하지만 지나치면 아니한 만 못한 법. 기업 간 마케팅 경쟁이 과열되면서 월드컵의 주인이어야 할 시민들은 뒷전에 밀려나는 일도 벌어졌다. 뿐만 아니라 불법 광고까지 공공연하게 등장하면서 세계인의 축제인 월드컵이 ‘기업들의 축제’로 변질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광고경쟁 과열에 시민들 발끈…“응원단 뿔났다”
불법옥외 광고도 버젓이…“벌금내면 되지 뭐!”

롯데백화점·롯데마트는 1등 당첨자에게 대표팀 한 골당 2000만원에 해당하는 상품권을 주는 경품 행사를 열었다. 1등 당첨자가 받을 수 있는 상품권은 4000만원. 12일 경기에서 대표팀이 두 골을 넣었기 때문이다.
현대백화점은 방문 고객 중 3명을 추첨해 ‘싼타페’ ‘YF쏘나타’ ‘아반떼 스페셜 에디션’ 한 대씩을 경품으로 제공한다.

롯데슈퍼는 4억원이 넘는 현금을 경품으로 내놨다. 대표팀이 16강에 진출하면 100명에게 현금 120만원씩을, 8강에 진출하면 추가로 30명에게 240만원씩을 준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처럼 4강에 진출할 경우 10명에게 2400만원씩을 추가로 증정할 계획이다.

‘남아공’ ‘심육강’ ‘한국승’
응원 이름 가진 사람에 경품

패션속옷 전문업체 ‘좋은사람들’은 보디가드, 예스 등 전국 300여개 전문점에서 구매고객들을 대상으로 대표팀이 1승할 때마다 구매금액의 10%를 포인트로 돌려주는 행사를 열고 있다.

‘깜짝행사’도 있었다. AK플라자 구로본점은 그리스전 승리에 따라 13일 하루 동안 아디다스,컨버스,피에르가르뎅,파코라반 등의 브랜드를 50% 할인된 가격에 판매했다. 갤러리아백화점 대전 동백점도 이날 오후 2시부터 커플 티셔츠와 축구화, 축구 유니폼을 추첨을 통해 방문객들에게 지급했다.


‘16강 기원 이벤트’도 속출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한국이 16강에 진출할 경우 이달 말까지 파브 3D TV를 구매한 고객 중 총 333명에게 100만원과 월드컵 공인구 ‘자블라니’를 증정하는 이벤트를 펼치고 있다. 이 회사는 월드컵 특수를 겨냥해 보상판매 및 24시간 바로배송 서비스도 진행 중이다.

금융권은 대표팀 성적에 따라 우대 금리를 지급하는 행사를 마련했다. 외환은행은 1승 때마다 0.1%포인트씩 최대 0.3%포인트의 이자를 높여주는 ‘월드컵 특판예금’을 내놨다. 신한은행은 16강에 진출할 때 300달러 이상 환전 고객을 대상으로 추첨을 통해 금 상품 ‘골드리슈’ 50g을 지급하는 행사를 30일까지 열 예정이다.

이색 이벤트도 눈에 띈다. GS샵은 월드컵을 맞아 독특한 이름을 가진 사람을 찾는 이벤트를 벌였다. 이름에 ‘남아공’ ‘심육강’ ‘한국승’ 등 한국팀을 응원하는 메시지가 담긴 사람이 기업 블로그인 ‘리얼쇼핑스토리(blog.gsshop.com)’에 응원 메시지를 남기면 된다. 응모자 가운데 10명을 추첨해 응모자의 이름을 새긴 붉은 색 티셔츠와 16강을 기원하는 찰떡 선물 세트를 준다. JW메리어트 호텔도 ‘남아공’이란 이름을 가진 손님에게 20만1000원짜리 패키지 상품 객실을 하루 숙박료 436만원짜리 프레지덴셜 스위트룸으로 바꿔준다. 260㎡(약 80평) 규모의 이 방은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 회장과 성악가 안드리아 보첼리가 묵었던 방으로 유명하다.

이처럼 월드컵 특수를 맞아 기업들의 마케팅이 줄을 잇고 있는 가운데 가장 큰 수혜를 거둔 것은 다름 아닌 현대·기아차다. 월드컵 공식후원을 하면서 광고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 것. 업계에 따르면 현대·기아차가 이번 월드컵을 통해 얻을 광고효과는 10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매 경기당 A보드를 통해 기업로고가 노출됨에 따라 현대·기아차의 로고는 평균 13분가량 경기장에 등장하게 되며, 이 로고는 전세계 앞에 노출된다.

이번 월드컵을 TV로 시청하는 사람은 연인원 약 400억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재방송이나 하이라이트방송을 통해서도 현대·기아차의 기업로고는 반복적으로 노출되고 있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그 광고효과가 막대하다는 분석이다.

현대차는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2006년 독일월드컵에 이어 3회 연속 FIFA를 공식후원하고 있다. 한·일 월드컵 때의 홍보효과는 6조원에 달했으며, 독일월드컵에서의 브랜드 노출효과는 7조원을 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메시, 호날두, 루니 등 스타들이 총출동해 초반 열기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이번 월드컵에서 현대·기아차는 홍보효과를 톡톡히 누릴 것이라는 관측이다.


현대·기아차가 이번 월드컵에 얼마를 투자했는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약 3000억∼5000억원 선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대·기아차로서는 이번 월드컵을 통해 투자금의 20배에 달하는 광고효과를 누리게 되는 셈.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물론 전세계적으로 월드컵 열기가 고조되고 있어서 고무적”이라며 “이번 월드컵을 통해 현대·기아차의 브랜드인지도가 크게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SBS 역시 최대수혜주 중에 하나다. 독점중계 논란으로 뭇매를 맞고 있음에도 입가엔 미소가 번져있다. 과거 월드컵에 비해 광고료가 많이 뛴 것이 그 이유다.

현대차 광고효과 10조
SBS 광고매출 1200억

한 증권사의 미디어 담당 애널리스트는 “방송 3사가 중계했던 2002년 월드컵과 비교하면 한국 경기의 광고료가 세 배 정도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SBS가 이번 월드컵 중계를 위해 쓴 돈은 1086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반면 광고 판매 등 매출액은 한국이 16강 진출에 실패하더라도 최소 1200여 억원에 이를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그럼에도 대기업들 대부분은 “과거보다 비싸긴 하지만 광고 효과를 생각하면 못 낼 액수는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그만큼 광고효과가 뛰어나단 소리다.

강명수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연구원은 “기업마다 차이가 있지만 월드컵 마케팅 효과는 투자비의 3배 수준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월드컵 응원 특수를 노리는 기업체들의 ‘샅바싸움’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자사 브랜드를 부각시키기 위해 신사협정을 위배하는가 하면 경쟁업체의 광고효과를 반감시키기 위해 무리수를 두는 경우도 허다하다. 기업체들의 경쟁 속에 정작 월드컵 축제의 주인이어야 할 시민들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월드컵 응원의 메카인 서울광장을 둘러싼 기업들의 각축전이 대표적이다. 서울광장 행사는 당초 서울시가 조례에 따라 ‘기업 브랜드와 슬로건을 노출시키지 않는다’는 원칙 아래 진행될 예정이었다.

응원행사의 주관사인 현대자동차와 후원사인 SKT는 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당장 응원가 지정 문제부터 불협화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일부 응원가가 경쟁 통신업체를 연상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 것. 결국 특정 기업을 연상시키는 대표곡들을 응원가에서 배제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뒤늦게 접한 붉은악마는 “마음 놓고 불러야 할 응원가조차 기업이 통제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마케팅이 중심에 있는 서울광장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며 응원장소를 강남 코엑스와 봉은사 근처로 변경하는 등 웃지 못 할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심지어 불법광고물이 공공연히 등장하기도 했다. SK텔레콤은 중구 을지로2가 본사 외벽 유리창에 박지성 선수를 모델로 한 대형 광고물을 부착했다. 건물을 감쌀 정도로 커서 이른바 ‘래핑(Wrapping)’이라 불리는 광고물이다.


이는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과 시행령에 저촉된다. 옥외광고물법 등에 따르면 광고 현수막은 구청에서 지정한 게시대에만 걸어야 한다. 백화점, 대형마트 건물 등은 유통산업법에 따라 외벽에 광고현수막을 걸 수 있으나 그 외 건물에 광고현수막을 걸면 옥외광고물법 위반이다.

이 밖에도 교보생명은 광화문 본사 사옥에 가로 90m, 세로 20m 크기의 래핑광고를 부착하고 ‘한국 대표팀의 승리를 기원하는 초대형 래핑을 설치했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하기도 했지만 이 역시 불법이었다.

불법광고물 단속권한은 각 구청에 있다. 그러나 구청의 능력으로는 소형 현수막이나 불법 전단 정도를 단속할 수 있을 뿐 기업의 래핑광고나 초대형 광고현수막은 사실상 단속이 불가능하다.

서초구청 관계자는 “래핑이나 대형 현수막을 철거하려면 사다리차를 이용하거나 건물 옥상에서 줄을 타고 내려와야 한다”며 “그런 장비도 없거니와 있다 한들 공무원이 줄을 타고 내려오는 등의 전문 기술을 어떻게 익히겠냐”며 단속 상의 어려움을 털어놨다.

결국 구청이 취할 수 있는 조치는 과태료 또는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최대 500만원까지 밖에 부과할 수 없다.

이에 최근 서울 중구청은 해당 기업에 “이 광고물을 철거하지 않으면 최대 500만원의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겠다”며 계고장을 발부했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콧방귀만 뀔 따름이다. 래핑광고의 엄청난 효과에 비하면 벌금은 무시해도 될 만한 액수이기 때문이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광고효과에 비해 과태료나 이행강제금이 터무니없이 적은 점을 기업이 악용하고 있다”며 “이를 막으려면 법을 개정해 광고효과에 버금가는 금액을 부담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업 응원가로 아웅다웅
‘시민들 뿔났다’

반면 기업 관계자들은 월드컵이나 올림픽 같은 국가적 축제가 있을 때 설치하는 대형 광고물은 비록 불법이라도 공익적 효과가 적지 않다고 항변하고 나섰다.

구청에서 래핑광고를 철거하라는 통보를 받은 한 기업의 담당자는 “월드컵 분위기를 띄우고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 특정 상품을 홍보하는 것도 아닌 만큼 대승적 차원에서 이해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종로구청 담당자는 “건물에 래핑을 하거나 현수막을 걸어도 광고물이 아니라면 단속대상이 아니다. 공익을 강조하고 싶다면 로고나 상호, 기업을 연상하게 하는 문구를 빼면 된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기업은 한 곳도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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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