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9주년 기획특집> 대한민국 교육 현주소 "아이들이 위험하다" ⑤알쏭달쏭 대학입시 변천사

자고나면 달라지는 대학문 "어른들도 몰라요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대학별 단독시험부터 대입 국가고사, 대입 예비고사, 학력고사,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까지…. 우리나라의 입시제도는 해방 이후 큰 틀에서 변한 것만 따져도 무려 16차례나 바뀌었다. 평균 4년에 한 번 꼴이다. 만약 세세한 변경 사안까지 따져본다면 매년 입시제도가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고나면 달라지는 입시에 우는 아이들의 실태를 살펴봤다.

우리나라에서 학벌은 절대적이다.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초등과정 6년과 중·고등과정 6년을 합쳐 총 12년을 오직 좋은 학벌을 가지기 위해 매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죽하면 수능시험 당일에는 직장인 출근 시간은 물론 비행기 이착륙 시간까지도 조정될 정도다.

이처럼 대부분의 청소년이 입시에 매달리다보니 대학 입시를 치르고 나면 이런 저런 뒷말이 무성하다. 수능이 너무 쉬우면 변별력이 없다고 비판을 하고, 너무 어려우면 난이도 시비에 휘말린다. 너도 나도 한 마디씩 하는 통에 해방 이후 우리나라의 입시제도는 큰 틀에서 변한 것만 따져도 무려 16차례나 바뀌었다. 만약 세세한 변경 사안까지 따져본다면 매년 입시제도가 바뀌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일회용 입시제도

해방 직후의 우리나라는 대학이 자율적으로 시험을 출제해 입학생을 선발했다. 당시 정부는 대학의 학생 선발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그러다 1954년 대학정원의 140%를 ‘국가연합고사’로 선발한 뒤 본고사를 치르는 ‘연합고사+본고사’의 시험형태가 도입됐다.

그러나 이 제도는 입시생들에게 이중의 부담을 지운다는 이유로 딱 한 번 실시된 후 중단됐고 1955년부터 1961년까지는 다시 본고사 단독체제를 유지하게 된다. 1962년부터 1963년까지는 ‘대학입학 자격고사’가 도입됐으나, 정원미달사태와 대학의 자율성 침해 논란에 휩싸이며 1964년부터 1968년까지는 다시 대학별 단독고사로 입시제도가 바뀌었다.

1968년에는 예비고사 커트라인을 통과한 수험생에게만 본고사를 치를 자격을 주는 ‘예비고사제’가 도입됐다. 이 제도는 본고사 폐지를 근간으로 하는 1980년 ‘730 교육개혁’ 때까지 지속됐다. 1981년에는 선발고사인 ‘학력고사’가 도입됐으나, 학생들에게 단순암기식이 교육을 강요하게 된다는 비판이 제기됨에 따라 1994학년도 입시부터는 수능이라고 불리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도입돼 지금까지 계속 시행되고 있다.

올해로 22주년을 맞이한 수능은 해방 이후 가장 오랫동안 유지된 입시제도다. 하지만 수능 역시 지금까지 많은 부침을 겪었다. 수능은 ‘대학 수학에 필요한 학업적성을 측정하기 위해 통합교과적으로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수준과 내용에 맞춰 고차적인 사고력을 측정’하고자 시행됐다. 수능은 첫해에는 8월과 11월 두 차례 시행됐지만 1차보다 2차 시험이 더 어렵게 나오는 등 난이도 조절에 실패해 이듬해부터는 연 1회 시행으로 바뀌었다. 또 계열에 관계없이 공통 문제로 시험 보던 것에서 인문, 자연, 예·체능 등 계열별로 문제가 달라졌다.

1999학년도부터는 수리·탐구 영역(Ⅱ)에서 선택 과목제가 도입되고 선택과목간 난이도 차이로 인한 유·불리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표준점수가 사용됐다. 제2외국어 영역은 2001학년도 수능에서 추가됐다. 2002학년도에는 9등급제가 도입됐다. 등급제는 수능 총점 소수점 이하 몇 자리에서 당락이 결정되던 기존의 수능 의존도를 줄이고 수능을 자격기준으로만 활용하게 하기 위해 도입됐다.

매년 제도 변해…학생·학부모 아우성
시간당 수백만원짜리 입시컨설팅 판쳐


수능 9등급제는 전체 수능 응시학생을 400점 만 점 변환표준점수를 기준으로 최상위 점수에서 최하위까지 9등급으로 나누고, 개별 학생이 속해 있는 해당 등급을 표시하는 방식으로 기재됐다. 예를 들어 상위 4%는 1등급, 다음 7%(누적 11%)는 2등급, 12%(누적 23%)는 3등급으로 분류했다. 2002학년도에는 기존 수리·탐구 영역(Ⅰ)이 수리 영역으로, 수리·탐구 영역(Ⅱ)이 사회탐구와 과학탐구로 각각 변경되기도 했다. 2005학년도에는 수능이 대전환기를 맞이했다. 인문, 자연, 예·체능 계열 구분이 사라지고, 모든 시험영역을 전부 또는 일부를 선택할 수 있는 ‘선택형 수능’이 도입됐다.

수리영역은 이과 수험생용인 ‘가’형과 문과 수험생용인 ‘나’형으로 구분됐다. 또 직업탐구영역이 신설됐다. 2012학년도에서는 사회·과학 탐구에서 선택 과목 수가 최대 4과목에서 3과목으로 줄었고, 영역별 만점자 비율이 1%가 나오도록 출제가 됐다. 이처럼 자고 나면 달라지는 입시제도 때문에 학생들은 큰 피해를 입었다. 일례로 입시 제도가 매해 바뀌다시피 하면서 불법 입시 컨설팅이 기승을 부리기도 한다.

지난 해에는 정시 모집을 앞두고 전략을 상담해 준다며 한두 시간에 수백만 원을 받는 떴다방식 컨설팅이 성행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 같은 컨설팅은 대개 최상위권 대학에 자녀를 입학시킨 경험이 있는 일부 학부모들, 속칭 ‘돼지엄마’를 통해 연결됐다. 매년 입시제도가 바뀌다시피 하면서 일반인들로서는 제대로 된 입시전략을 짜기가 어렵게 되자 고액 컨설팅에 매달리는 기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정부가 입시 정책을 바꿀 때 마다 내세운 명분은 언제나 학부모들의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고 공교육을 정상화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입시 제도가 바뀔 때마다 사교육 시장만 들썩거리고 학생과 학부모들의 부담은 커졌다. 오죽하면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정부의 정책이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 이것저것 다 가르쳐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렇게 어렵게 대학 입시에 성공한다고 해도 미래는 어둡기만 하다. 


지난해 대학 학력 이상 졸업자의 취업률이 외환위기 때보다 더 낮았던 것으로 조사됐기 때문이다. 한국교육개발원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대학과 대학원 등 고등교육기관 졸업자는 모두 66만7000여 명이었지만 취업률은 56%에 그쳤다. 이 같은 취업률은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겪던 1998년의 58%보다도 낮은 수치다.

혼란스러운 수험생

일각에선 너무 높은 대학진학률이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지난 2013년 기준으로 고교졸업생 수는 63만1835명이다. 그런데 국내 대학의 입학 정원은 55만9036명이나 됐다. 게다가 저출산 영향으로 학생 수는 계속 줄고 있어 현 입학 정원이 유지될 경우 2018년부터는 대학 정원이 고교 졸업생 수를 추월한다. 지금부터라도 대학 지상주의에서 벗어나 선진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마이스터고 제도 등을 적극적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마지막으로 한 교육전문가는 “교육을 흔히 ‘백년지대계’라고 하는데 그만큼 긴 안목으로 정책을 짜야 한다는 이야기”라며 “더이상 ‘1회용 대입제도’는 그만 만들고,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제대로 된, 오래 갈 수 있는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mi737@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2017년 또 달라지는 수능

오는 2017년부터 수능이 달라진다. 우선 한국사가 필수 과목으로 지정된다. 한국사의 문항 수는 20개이고 만점은 50점이다. 성적은 절대등급으로 제공되며 1등급과 2등급의 분할 점수는 40점으로, 40점 이상∼50점이 1등급이다. 또한 2017학년도 수능부터 국어와 수학 영역에서 수준별 시험이 폐지되며 국어는 공통으로, 수학은 문·이과에 따라 나/가형으로 시험이 치러진다. 이에 따라 2014학년도에 처음 도입된 수준별 A/B형 시험은 완전히 폐지돼 수준별 시험이 도입되기 전인 2013학년도 체제로 돌아가게 된다.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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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전’ 친윤 대숙청 시나리오

‘대선 전’ 친윤 대숙청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는 당원들의 도움으로 대선후보 지위를 유지했다. 확실한 명분을 쥔 김 후보는 설령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당권 장악을 위한 투쟁을 이어가야 한다. 김 후보가 당내 주도권 다툼서 이기는 방법은 무엇일까?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는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원내대표 등 친윤(친 윤석열)계의 대선후보 교체 시도를 당원들의 반대로 진압한 후에야 선대위를 구성했다. 김 후보는 지난 11일 대선후보로 등록했고, 대선후보의 당무우선권을 발동해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을 같은 날 진행된 의원총회서 새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임명했다. 갑툭튀 위원장 권 전 비대위원장이 후보 교체 시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기 때문이었다. 일각에선 권 원내대표의 사퇴도 강하게 요구했지만, 김 후보는 권 원내대표를 유임했다. 이날 진행된 의원총회엔 의원 107명 중 50명만 참석했다. 후보 교체 시도에 가담한 친윤계 의원들은 대거 불참했다. 이어 지난 12일엔 국민의힘 비대위 회의가 개최됐다. 국민의힘은 이날 회의서 김용태·주호영·권성동·나경원·안철수·황우여·양향자 등 7인 공동 선대위원장 체제를 발표했다. 김 후보는 후보 교체 시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국민의힘 이양수 의원을 대신해 박대출 의원을 사무총장으로 임명했다. 박 의원은 선대위서도 총괄지원본부장을 맡았다. 이틀 동안 확정·발표된 인선 중 가장 주목받은 것은 김 비대위원장 임명이었다. 30대 중반 막내 초선 의원을 당 대표격 직책에 임명했기 때문이었다. 김 비대위원장은 비대위원으로서 후보 교체 시도에 강하게 반대했다. 김 비대위원장은 지난 2021년 전당대회서 청년 최고위원으로 당선돼 이준석 당시 대표가 이끌던 지도부에 참가했다. 이어 황우여 전 비상대책위원장 시절에도 비대위원으로 발탁됐던 경험이 있다. 이 전 대표 시절엔 소장파 ‘천아용인’ 중 1명으로 거론됐던 적이 있고, 이 전 대표가 탈당해 개혁신당을 창당한 이후에도 돈독한 친분을 이어가고 있다. 일각에선 김 비대위원장 발탁을 놓고 “개혁신당 이준석 대선후보와의 단일화를 대비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다만 김 비대위원장에 대해선 “소장파로서의 행보가 약하다”는 평가도 있다. 그래서 김 비대위원장이 적극적으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을지 회의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지난 12일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하이킥>서 “친윤계가 김 비대위원장을 화살받이·방패막이로 앞세워서 상황을 돌파하려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어 김 비대위원장의 역량을 인정하는 기준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와의 결별 및 출당을 제시했다. 함께 출연한 장윤선 정치 전문 기자는 “제일 고통스러운 사람은 김 비대위원장 자신일 것이란 얘기가 있다”며 “대선서 크게 패배하면, 그 책임을 김 후보가 아닌 김 비대위원장이 지는 방식으로 정리하기 위해 허수아비로 세워놓은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고 거들었다. 친윤계는 의원총회 불참으로써 김 비대위원장 지명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김 후보는 당원투표로써 친윤계의 후보 교체 시도를 진압했기 때문에 명분을 확보했다. 국민의힘의 주도권을 휘어잡을 기회를 얻었다고 볼 수도 있다. 30대 초선 비대위원장 총알받이? 방패막이? 김 후보가 대선후보 지위를 굳힌 후 먼저 교체한 사람이 이 전 사무총장이란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전 사무총장은 당 선거관리위원장 자격으로 김 후보 선출 취소 공고와 새 후보 등록 신청 공고를 발표했다. 후보 등록 신청 공고에 제시된 등록 신청 기간은 지난 10일 오전 3시부터 4시까지였고, 등록을 위해 준비해야 할 서류는 총 32종이었다. 등록 장소는 국회 본관 228호 비대위 회의실이었다. 이 황당한 상황은 한 편의 코미디로 남았다. 이날 오전 3시부터 4시 사이엔 공고를 본 후 국회를 방문해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등록하러 왔다”면서 국회 경비대에 “문을 열어달라”고 요구하는 조롱성 방송을 진행한 유튜버도 있었다. 이 전 사무총장은 소동이 끝난 후 의원 단톡방에 김 후보를 비판하고 권 전 비대위원장을 두둔하는 취지로 어느 정치평론가의 칼럼을 게재했다. 이어 친한(친 한동훈)계인 국민의힘 정성국 의원으로부터 “총장님 입맛에 맞는 정치평론가의 글을 단톡방서 읽을 이유는 없다”고 비판받았다. 김 후보로선 사태가 끝난 이후에도 후보 교체 시도를 정당화하는 이 전 총장을 유임시킬 이유가 없었다. 선거를 목전에 두고 있으므로 권 원내대표까지 교체해 파문을 확대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김 후보가 당의 주도권을 확실히 휘어잡을 기회를 잡은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선대위를 움직일 당 사무총장은 빨리 교체해야 했다. 김 후보는 권 원내대표를 유임시켜 ‘휴전’ 메시지를 보낸 후 친윤계와의 암묵적 합의를 거쳐 김 비대위원장을 임명했다. 이어 실권을 행사하는 사무총장을 신속하게 확보했다. 국민의힘 대선후보 교체 시도는 1991년 8월 발생한 소련 공산당 보수파의 쿠데타를 연상시킨다. 보수파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대통령을 몰아내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 쿠데타는 KGB 알파그룹과 전차부대 등이 동원돼 신속하게 진행된 군사작전이었다. 쿠데타는 실패했고, 소련은 해체됐다. 이처럼 정치적 기획을 군사작전처럼 몰아쳐 진행하는 성향이 있는 사람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윤 전 대통령은 이런 식으로 당 대표 2명과 비대위원장 1명을 쫓아낸 적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황정아 대변인은 지난 10일 “윤석열 지령, 국민의힘 연출로 시작된 대선 쿠데타”라고 주장했다. “행보가 약하다” 윤 전 대통령도 본의 아니게 자수 아닌 자수를 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11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 후보 지지를 호소하는 글을 올렸다. 그런데 이 게시글엔 “김 후보를 지지하셨던 분들도 이 과정을 겸허히 품고 서로의 손을 맞잡아야 한다”는 문장이 있었다. 김 후보의 패배를 기정사실로 한 게시글을 수정 없이 그대로 올렸다. 김 후보와 친윤계의 대결이 ‘휴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게시글이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등 친한계는 지도부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김 후보를 거들었다. 이 중 친한계 좌장 6선 조경태 의원은 김 후보와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단일화 논란이 분분했던 지난 9일에도 “무책임한 외부 인사 영입을 통해 대선을 치를 거라면, 경쟁력 있는 이재명 후보를 데리고 오는 게 빠른 거 아니냐”면서 김 후보를 두둔했다. 이를 두고 “당원투표서 김 후보 교체 시도가 부결됐던 이유 중 하나는 친한계 당원들의 반대 움직임”이라고 보는 일각의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김 후보와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및 탄핵 등 여러 사안서 의견이 엇갈렸다. 두 사람은 국민의힘이 대선서 패배하면 다시 진행될 가능성이 큰 당권 투쟁의 잠재적인 경쟁 상대다. 김 후보는 56.53%를 얻어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한 전 대표가 얻은 43.47%도 무시하긴 어려운 수치다. 친한계 일원인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은 지난 12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한 전 대표의 선대위 참여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 전 대표는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비상계엄 및 탄핵 반대에 대한 사과 ▲윤 전 대통령 부부와의 절연 ▲한 전 총리와의 단일화 약속을 내걸고 후보로 선출된 것에 대한 사과 등 자신의 선대위 참여 조건을 제시했다. 김 전 최고위원은 이를 언급하면서 “김 후보가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렇듯 김 후보는 당내 유력 계파들인 친윤·친한과의 불씨를 두고 있다. 두 계파 모두 앙숙이기 때문에 김 후보로선 두 계파 모두를 포섭하기도 쉽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2026년엔 국회의원들의 ‘대목’이라고 볼 수 있는 지방선거가 진행된다. 불씨가 들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최소한 선거 상황에선 김 비대위원장이란 완충지대가 필요했을 가능성도 있다. 김 후보도 바보가 아닌 한 대선 승리 가능성이 크지 않단 것은 잘 알고 있다. 그 자신도 친윤계의 쿠데타로 인해 정당하게 선출된 후보직을 잃을 뻔했다. 대선 이후엔 곧바로 당권 투쟁이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 후보가 대선 이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잃지 않고 당을 장악하려면 당권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김 후보에게도 우군이 필요하다. 남겨놓은 갈등 불씨 김 후보는 지난 2020년 1월 국민의힘의 전신 자유한국당을 탈당한 이후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돈독한 친분을 유지했다. 같은 해 8월 발생한 사랑제일교회 코로나19 집단감염 사건 이후에도 경찰이 자가격리 조치를 어기고 집회에 참석한 사랑제일교회 일부 신자를 연행하려고 하자 이를 막는 등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당시 김 후보는 “내가 김문수인데, 왜 가자고 그러느냐”라거나 “내가 국회의원을 3번 했다”는 등 호통을 치는 등 경기도지사 재임 당시 119에 전화해 갑질했던 ‘도지삽니다’ 사건을 연상시키는 언행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전 목사는 후보 교체 시도를 격렬하게 비판했다. 전 목사가 주도하는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 국민운동본부(이하 대국본)는 지난 10일 국민의힘을 규탄하는 집회를 개최했다. 전 목사는 이날 “멀쩡하게 뽑아놓은 김문수를 아웃시키고, 한덕수를 영입했다”며 “국민의힘이 사기 치는 것 봤죠? 이건 완전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대국본도 같은 날 배포한 입장문서 “국민의힘은 종북 좌파와 맞서 싸우겠다는 애국 보수만 나타나면 알레르기 반응부터 보인다”고 비판했다. 김 후보는 지난 8일 관훈토론회 초청 토론회서 “광장 세력과도 함께 손잡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은 기독교의 교회 조직과 말씀 때문에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가 버티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전 목사 등 강경보수 성향 일부 교계를 극찬했다. 당내 지분이 전혀 없는 상황서 친윤·친한 모두와 경쟁해야 하는 김 후보로선 우군이 절실하다. 김 후보는 강경보수 세력 내부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와도 돈독한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김 후보는 지난 4월24일 전씨의 유튜브 채널 ‘전한길뉴스’에 출연했다. 전씨는 전 목사의 경쟁자로 통하는 손현보 세계로교회 목사와 연결돼있다. 전씨는 김 후보의 선거 전략을 분석하면서 “김 후보가 기득권 정치와 차별화된 이미지를 구축하고, 호남 지역 표심을 공략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TV 토론서 압도적 존재감을 발휘하고, 막판에 보수 우파가 단합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 목사와 전씨는 윤 전 대통령 탄핵 국면서 보수 진영 내부의 막강한 영향력을 확보했다. 두 사람의 영향력은 인원 동원 능력으로부터 비롯된다. 이들을 국민의힘 내부에 유입시켜 전당대회서 승부를 본다면, 김 후보가 국민의힘을 장악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지방선거서 급한 일은 의원들의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에 개입하는 일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역구 국회의원의 영향력 아래서 손발 노릇을 하는 기초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장악하면, 의원들의 손발을 묶어둘 수 있다. 후보 교체 시도 5적 지역구서 공천 전쟁? 김 후보와 충돌할 가능성이 큰 의원은 ▲권 전 비대위원장 ▲권 원내대표 ▲이 전 총장 ▲성일종·박수영 의원이다. 이 중 이 전 총장을 제외한 4명에 대해선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 게시글서 ‘4적’이라고 주장했던 적이 있다. 홍 전 시장은 “경선을 혼미하게 한 책임을 지고, 의원직 사퇴·정계 은퇴하라”고 주장했다. 이들 중 지도부였던 ▲권 전 비대위원장 ▲권 원내대표 ▲이 전 총장은 후보 교체 시도를 직접 진두지휘했다. 성 의원은 김 후보와 한 전 총리의 단일화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박 의원은 김 후보의 캠프에 참여했지만, 김 후보가 단일화와 관련해 신경전을 이어가자 “김 후보 주변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한 전 총리는 가라앉고, 김 후보가 단일후보가 될 것’이라는 식의 논리를 퍼뜨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김 후보를 일컬어 “전형적인 좌파식 조직 탈취 시도를 하고 있다”는 비난도 이어갔다. 김 후보는 대선후보 자격이 취소됐던 지난 10일 기자회견을 개최해 스스로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김문수”라면서 지도부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어 캠프 내 측근들과 함께 국민의힘 중앙당사를 방문해 대통령 후보실을 점거했다. 이를 놓고 일각에선 “왕년의 투사 김문수가 돌아온 것이냐”고 반응했다. 이날 김 후보의 대응을 돌아보면, 대선 이후 당권 투쟁서 물러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독자 영역을 구축한 친윤·친한과 달리 김 후보는 외부 세력을 당내에 유입시키기 위한 명분부터 구축해야 한다.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의미 있는 득표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홍 전 시장은 자유한국당 후보로서 대선에 출마했지만, 보수 정당이 분열됐던 여파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래서 불과 785만여표(약 24%) 득표에 그쳤다. 이는 역대 대선 직선제 2위 후보 중 당선자와 최다 표차 낙선과 보수 정당 최저 득표율이었다. 홍 전 시장은 대선 패배 이후 약 3주 동안 미국을 방문한 후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로 당선됐다. 예나 지금이나 당내 세력이 미약한 홍 전 시장은 당의 하락세를 막지 못했고, 지난 2018년 지방선거 패배 책임 차원으로 당대표직서 물러났다. 대선서 많은 득표를 하지 못했던 것도 홍 전 시장의 지도력에 힘이 붙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였다. 따라서 김 후보로선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당을 장악하기 위해선 패배하더라도 최대한 많은 득표를 해서 명분을 쥐는 것이 중요하다. 이 후보와의 단일화 시도를 완전히 접지 않은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하한선 35% 무너지나 YTN이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 11~12일 이틀간 무선 100% 전화 면접 방식으로 진행했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김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보다 13% 뒤처진 33%의 지지를 얻었다. 김 후보가 설령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국민의힘을 장악하려면 40% 이상의 독자 지지율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최저 하한선은 35%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 후보에겐 승패 여하를 떠나 많은 것이 달린 대선일 수밖에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