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 안티 적색경보가 발령됐다. 여-야, 여-여, 야-야, 의원-보좌관 등 다양한 각도에서 안티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굵직한 현안 등엔 항상 여·야간의 의견 충돌로 일부의원들은 ‘안티족’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정치인들은 독제를 막기 위한 ‘견제’ 역할이라고 하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눈엣가시’다. ‘견제’가 아닌 ‘안티’에 불과하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에서는 안티문화가 힘을 받고 있는 분위기다. 그 내막을 캐봤다.
정치권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변수가 발생했다. 현재 정치권은 이명박 정부에 반란표를 던져, 강력한 안티문화가 속속 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티문화가 점차적으로 활성화된 것은 쇠고기 정국. 서울시청앞 광장을 가득 매운 국민들이 ‘이명박 탄핵’을 외치면서부터다. 여기에다 정치권의 안티문화도 갈수록 힘을 받고 있다. 여당, 야당, 국민 등이 그 중심에 서 있다. 뿐만 아니라 각 정당 인사들 간의 권력암투까지 진행되고 있다.
민주당 ‘견제’ 위한 ‘안티’
차기 대권 장악 노림수도
안티문화 뿌리가 가장 먼저 박히기 시작한 것은 여-야간의 신경전. 한나라당이 ‘잃어버린 10년’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민주당이 반한나라당 전선, 이른바 안티세력을 구축하고 있었던 것. 이들이 안티세력을 구축하고 있는 주된 이유는 이명박 정부의 견제역할을 충실히 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나라당 한 의원은 “정치권에서 견제 세력이 있어야지만 ‘독재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면서도 “지나친 견제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견제세력으로 확실히 기반을 잡으면 국가 발전에 큰 기여를 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심리가 내재해 있다. 대신 단서조항이 붙는다. 지나친 견제로 인해 ‘안티문화’가 형성된다면 국가 발전에 ‘독’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렇다면 민주당이 안티문화를 형성하려는 진짜 명분은 무엇일까. 그 첫 번째가 이명박 정부 독주체제 발목 잡기(?). 갖가지 민영화 사업 등으로 인해 나라 전체가 큰 위기를 맞고 있는 만큼 이를 사전에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민주당이 국민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정당으로 거듭나겠다는 복안이다.
민주당 안티문화 형성의 또 다른 명분은 차기대권. 이명박 정부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며 ‘잃어버린 10년’이 아닌 ‘잃게 된 5년’이라는 것을 증명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민주당은 미국 금융위기와 맞물려 이명박 정부 경제팀에 대한 경질을 촉구했다. 게다가 이명박 대통령이 신공안정국을 조성함으로 인해 국민들과의 ‘소통 정치’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따끔하게 지적하기도 했다.
민주당 한 의원은 “이명박 정부는 이미 야당과의 신뢰관계가 깨진 상태다. 이 같은 상황이 계속될 경우 국가 발전에 큰 위기를 자처할 것”이라며 “견제역할을 착실히 할 경우 민주당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도 점차 높아질 것이고 이로 인해 ‘차기 대권’도 잡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민주당의 지나친 안티문화가 또 다른 화를 나을 수 있다는 게 정치권의 지적이다. 안티문화의 본래 취지인 ‘견제’가 자칫 ‘실속 챙기기’로 비쳐질 수 있다는 것. 즉 ‘약’이 아닌 ‘독’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문제점 등을 지적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지지율은 올라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심지어 당 정체성 문제 등으로 민주당 내 ‘불화설’이 비일비재하다. 민주당 내부의 악재를 감춘 채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방만 일삼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민주당의 안티 문화가 ‘독’이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제기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처럼 여-야간의 안티문화가 ‘독인지 약인지’ 구분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안티문화가 또 다른 문제를 야기 시키고 있다. ‘권력암투’가 바로 그것이다. 특히 여-야 구분이 없이 의원들 간의 비방전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을 정도다.
현재 안티문화로 인해 권력암투로 변질된 케이스는 간략하게 두 갈래다. 여-여, 야-야간의 ‘집안싸움’이 대표적인 사례다.
우선 한나라당의 경우 소장파-이상득 의원, MB계-박근혜계 간의 권력 암투로 인해 서로간의 헐뜯는 안티문화가 활성화되고 있다.
특히 이 의원은 ‘안티세력’으로 불리는 소장파 인사들로부터 ‘폭탄테러’를 당했다. 이 의원이 안티세력의 ‘주 타깃’이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으로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의원은 박희태-홍준표 체제를 구축하는 데 한 몫(?)했다는 후문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의 거취 문제를 놓고 ‘이상득·박근혜계 vs 소장파·이재오계’간의 힘겨루기도 이 의원을 견제하기 위한 연장전이라는 게 정치권의 관측이다.
권력암투=안티세력
겉과 속이 다르다
이를 입증하듯 이상득·박근혜계에서는 홍 원내대표를 대신할 만한 인물이 없다는 점에서 유임론을 강조하고 나섰다. 반면 소장파·이재오계에서는 “홍 원내대표로는 국회를 힘 있게 끌고 갈 수 없으므로 사퇴론을 제기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의 이러한 권력암투는 이 대통령을 위한 ‘안티세력’이라는 명분하에 당내 주도권을 잡기 위한 술책 중 하나라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상대에게 ‘독’을 먹이려다 스스로 ‘독’을 삼키게 될 수도 있는 상황인 셈이다.
민주당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친노세력, 구민주계, 386계 사이의 권력암투로 인해 서로간의 헐뜯는 안티문화가 활성화되고 있다는 말도 들리지만 아직 명확하지는 않다. 대신 내부에서 계파간의 신경전이 곪을 대로 곪아있다는 게 민주당 한 관계자의 전언이다.
실제로 민주당 내 김근태 전 의원계인 민주평화연대(민평련), 천정배 의원의 민생정치모임(민생모),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의 평화와경제포럼 등 진보개혁그룹이 ‘민주연대(가칭)’를 발족할 예정이다.
특히 민주당의 잘못된 점을 따끔하게 지적하는 세력으로 거듭나겠다는 게 이들의 복안이다. 즉 ‘안티세력’으로도 얼마든지 활동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문제는 정작 다른 곳에 있다. 민주당 발전을 위한 견제세력으로만 발전할 경우에야 ‘특효약’이 될 수 있지만, 그 수위를 지키지 못할 때에는 ‘독’이 될 수 있다는 것.
민주당 한 관계자는 “이들은 독이 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이 당 발전을 위해 화합을 추구해야 하지만, 정치 지형상 얼마든지 ‘분당론’을 강조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며 “명백한 안티세력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경계했다.
이 뿐만 아니다. 각 정당 인사들은 ‘한 배’를 탔음에도 불구하고 사석이 되면 서로를 비방하는 목소리가 드세다. “A의원은 B의원 앞에서는 꼼짝도 못한다”, “C의원이 D의원에게 직설적 면박을 준다” 등이 불만의 주된 골자다. 이 때문에 정치권 인사들은 사석이 되면 ‘안티세력’이 더더욱 활성화되고 있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그렇다면 악어와 악어새 관계인 의원과 보좌관들의 안티문화는 어떠할까. A의원실 한 보좌관의 말이 많은 점을 시사한다.
“A의원은 무섭다. 돌아가면서 보좌진들의 잘못된 점을 지적한다. 그 곳에 있을 당시에는 기분이 좋지 않다. 그러나 뒤를 되돌아보면 나의 발전을 위해 ‘보약’이 되는 것 같다.”
실제 의원과 보좌관들 간의 ‘안티 문화’도 적잖게 나타나고 있다는 게 사실이라고 입을 모은다. 의원과 보좌관들 간 불화로 보좌관들이 사표를 쓰기도 한다는 것.
그러나 쓴소리를 들을 당시에는 ‘독’인 것처럼 생각되지만 막상 ‘약’이 되는 경우가 태반이라는 게 보좌관들의 한결같은 반응이다. 이 때문에 ‘비난’이 아닌 ‘비판’적인 안티문화는 이미 의원과 보좌관들에서는 ‘독’이 아닌 ‘약’으로 자리매김한 상태다.
새로운 안티문화
“독이 아닌 약이다”
이처럼 정치권에서는 안티문화가 갈수록 활성화되고 있다. 비록 정치인들은 ‘견제세력’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안티문화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그 이면에는 또 다른 목적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게 정치권의 지적이다. 따라서 정치권의 안티문화가 ‘도’를 넘을 경우 ‘약’이 아닌 ‘독’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이구동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