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14주년 특별기획<2>여의도 입성 14년차 국회의원 현주소

‘어리바리’새내기 지금은 여의도 ‘주물럭주물럭’


정계에는 올해로 14돌을 맞은 <일요시사>와 동년배인 중견 정치인들이 많다. 1996년 당시 15대 총선을 통해 생애 첫 금배지를 달고 국회에 입성한 이들이 그 주인공이다. 등장 당시 ‘조연’에 지나지 않았던 이들은 현재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정계의 ‘주연’으로 성장했다. 이제 여의도는 이들이 내뱉은 말 한마디에 술렁일 정도다. 지난 시간 굴곡진 삶을 견디고 거물급 인사로 성장한 정계 주요 인사들의 정치 여정을 되돌아봤다.


‘어르신’ 등에 업고 ‘조연’에서 ‘주연’ 고속성장
14년 정치인생… 말 한마디에 ‘웃다가 울다가’

    
15대 총선이 치러진 1996년은 여의도에 ‘새내기’ 의원들이 대거 등장한 때다. 90년대 ‘3김시대’로 대변됐던 정치권 세력은 15대 총선을 기준으로 세대교체 바람이 불면서 혈기 왕성한 신인들이 다량 수혈됐다. 실제 당선된 국회의원 299명 중 46%인 137명이 초선의원일 정도다.

‘파릇파릇’ 새내기
“의젓하게 자랐네”

 
하지만 이들의 등장이 ‘혈혈단신’ 이뤄진 것은 아니다. 당시 정치권 최대 영향력을 자랑했던 ‘3김(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김종필 전 총재)’의 든든한 후원이 성장의 밑거름으로 작용했다. 특히 YS(김영삼 전 대통령)와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러브콜은 신인 정치인들에게는 ‘핑크빛’ 미래에 대한 보장과 같았다. 15대 초선의원들 앞에 유독 ‘포스트 ○○○’, ‘○○○ 수제자’ 등의 수식어가 많은 까닭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1996년 정계 큰 어른들의 든든한 지원을 받고 성공적으로 국회에 자리매김한 대표 인사들은 누굴까. 최근 원내지휘봉을 잡게 된 김무성 한나라당 신임 원내대표가 그 중 하나다. 김 원내대표는 YS가 야당 총재이던 시절 그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한 후 15대 총선을 통해 국회에 첫 입성했다. YS의 ‘정치적 수제자’로 불린 김 원내대표는 이후 16·17대까지 내리 3선에 성공하며 당내 중진의원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그의 운세가 늘 상승곡선을 그린 것은 아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후보의 대책본부 조직총괄본부장을 맡아 ‘친박계 좌장’으로 꼽혔던 그는 이듬해 18대 총선에서 ‘보복공천’의 희생양이 됐다. 그는 당을 떠나 무소속 출마를 감행했다. YS는 김 원내대표의 후보 선거사무실을 직접 찾아 그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다.

YS는 이 자리에서 “전국적인 인물이 된 김 의원은 앞으로 대통령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결국 자신의 텃밭이었던 부산에서 4번째 금배지를 가슴에 매단 그는 당당히 한나라당으로 복귀했다. 김 원내대표의 정치적 역경은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당 원내대표직을 두고 3번이나 고배를 마셔야했다.

앞서 2006년 1월과 7월 두 차례 원내대표 경선에 도전했지만 이재오 의원과 김형오 의원에게 잇따라 패했다. 지난해 5월엔 친이계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원내대표직에 추대됐지만 박 전 대표의 반대로 무산됐다. 김 원내대표는 지난 4일, ‘3전4기’ 도전 끝에 당 의원 만장일치로 신임 원내대표에 선출되는 영광을 안게 됐다.

김 원내대표의 정치적 역경만큼이나 굴곡진 시간을 견뎌 낸 국회입문 ‘동기’가 있다.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이다. 홍 의원은 1993년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로 재직하면서부터 정치권의 끊임없는 러브콜을 받았다. 1995년 사직 후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던 그는 당시 14대 대통령이었던 YS의 권유를 받고 정치에 입문했다. 신한국당에 입당한 그는 15대 총선에 출마, 서울 송파구 갑에서 승리를 거두며 정치인생을 걷게 됐다.

YS·DJ 내민 손
거물급 성장 발판

하지만 기쁨도 잠시. 1999년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선고받고 의원직을 상실하는 고초를 겪었다. 이를 계기로 2000년 2월 탈당을 선언하기도 했던 그는 다행히 2001년 서울 동대문구 을 선거구 보궐선거를 통해 복귀, 건재함을 자랑했다. 이후 17·18대 국회의원에 연이어 당선된 홍 의원은 한나라당 클린정치위원회 위원장, 국회 환경노동위 위원장 등을 지냈고, 2008년엔 한나라당 원내대표직을 맡아 정치권의 ‘주연’으로 자리매김했다.

홍 의원은 이제 당 대표직에 도전하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하고 있다. 김영선 국회 정무위원장(한나라당)도 15대 총선 당시 YS의 공천장을 받아 정계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이들 중 한 사람이다. 김 위원장은 당시 이재오, 김문수, 홍준표, 이윤성, 맹형규 등과 함께 공천을 받아 국회 배지를 달았다. 일각에선 김 위원장의 등장을 두고 ‘YS의 아들인 현철씨의 추천을 받았다’, ‘추미애(당시 새천년민주당) 의원에 대한 반격 카드로 영입됐다’ 등의 설이 나왔다.

이유야 어찌됐든 당시 초선의원이었던 김 위원장은 14년의 지난 시간동안 당 안팎으로 화려한 기록을 줄줄이 남기며 중진의원으로 성장했다. 여의도 입성 이전 변호사와 시민사회활동을 거친 김 위원장은 과거 경험을 살린 적극적인 당정 활동으로 15대 국회 최우수 의원에 뽑히는 영예를 안았다. 이후에도 그는 한나라당 ‘여성 최초 대변인’이라는 타이틀을 얻었고, 2004년엔 최고위원에 선출되기도 했다.
 
DJ ‘러브콜’ 받고 ‘승승장구’ 추미애·천정배 
YS 발탁된 파워인사 김무성·김영선·홍준표


2006년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잔여 임기동안 당 대표를 지내기도 했다. 비록 24일간의 임시직이었지만 그는 이 기간 동안 적극적인 행보로 자신의 이름을 국민들에게 각인시키는데 성공했다. 또한 그는 대표직을 승계하자마자 곧바로 ‘정치적 스승’인 YS를 찾아 감사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이후 그는 6년간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을 맡았고, 최근에는 국회 정무위원장까지 역임하며 화려한 이력을 이어가고 있다.

4선의원인 김 위원장은 이제 국회에서도 한참 ‘고참’에 속한다. 그녀 위로는 6선의원인 홍사덕·정몽준 의원과 5선의원인 김형오·이상득 의원 등이 있을 뿐이다. 김 위원장이 YS의 후광을 입었다면 추미애 국회 환경노동위원장(민주당)은 DJ의 후광으로 성장한 대표 인사다. 판사 출신의 추 위원장은 1996년 DJ의 적극적인 권유로 정치에 입문했다. 정계에 여성정치인 영입 바람이 거세게 부는 와중에 DJ가 고심 끝에 내놓은 히든카드였던 것이다.

덕분에 대구 태생으로 경상도의 ‘딸’인 김 위원장이지만 민주당의 텃밭인 전라도에서도 높은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김 위원장은 15대 총선 당시부터 ‘포스트 DJ’로 불리며 성공가도를 달렸다. DJ 정부시절엔 행정자치부 장관 등 정부 요직인사에 수차례 노미네이트됐고,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부터는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대선 마지막 명동유세에서 “우리에게 정동영, 추미애가 있다”며 공개적으로 추 위원장을 대권주자로 지목했었다.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그에게도 시련은 찾아왔다. 노무현 정부 수립 후 당 분열에도 열린우리당이 아닌 민주당을 지켰던 그는 몇 달 뒤 ‘탄핵 역풍’을 맞았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낙선하고 만 것. 이후 미국 유학길에 올랐던 그는 2006년 8월말 귀국했다.

2년의 시간을 와신상담한 그는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17대 대통령선거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으며 재기의 발판을 다졌고, 이듬해 18대 총선을 통해 민주당으로 복귀했다. 지난해 8월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에 선출된 김 위원장은 최근 ‘노동법 파문’ 등으로 당내 입지가 흔들리고 있지만 여전히 차기 대권의 유력 인물로 손꼽히고 있다.

민주당내 비주류로 분리되는 천정배 의원도 이 당시 정치권에 발을 들인 인물이다. 인권변호사 출신인 천 의원은 일찍부터 정치권의 러브콜을 받았다. 하지만 때를 기다렸던 천 의원은 국민회의 창당을 추진하던 DJ의 부름에 응해 15대 총선을 거쳐 국회에 입문했다. 천 의원은 이후 빠른 속도로 명성을 얻었다. 1997년 국민회의 정책위원회 부의장을 거쳐 2000년엔 민주당 수석원내부총무를 역임했다. 2002년 대선에서 노 전 대통령을 적극 지지했던 그는 대선 이후 열린우리당의 창당을 주도하기도 했다.

넘어지고 일어서고
역경 딛고 주연 ‘우뚝’

곧바로 2004년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자리를 꿰찬 천 의원은 이를 계기로 국회 ‘거물’ 인사로 우뚝 섰다. 그는 이듬해 6월 법무부 장관에 임명되면서 다시 한 번 세간에 명성을 넓혔다. 2007년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그는 18대 총선에서 다시 민주당 소속의원으로 출마, 4선의원이 됐다.

2009년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강행처리에 불만을 품고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기도 했던 그는 지난 1월 복귀한 뒤 당 내 비주류의 핵심으로 고속성장 중이다. 일각에선 천 의원이 지방선거 직후 치러질 차기 전당대회에서 당권 획득을 목표로 세를 모으고 있다는 해석이 대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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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특집 - 백운비의 천기누설> 병오년 국운 대예측

[설 특집 - 백운비의 천기누설] 병오년 국운 대예측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다사다난한 한 해가 지나고 2026년 새해가 밝았다. 병오년(丙午年), 불의 기운을 가진 말띠의 해다. 불처럼 열정적이고 도전적인 에너지가 강한 해라는 의미다. 그러나 치솟는 불길이 되레 화가 될 모양이다. 올해를 둘러싼 경제 전망이 밝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대한민국은 또 하나의 고비를 넘는 중이다. 과연 국민들은 이 보릿고개를 넘을 수 있을까? <일요시사>가 백운비 역리원장을 만나 병오년 대한민국 국운의 흐름을 들어봤다. 대한민국의 공기는 무겁다. 정치·경제·사회 어느 한 분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반적인 흐름이 동시에 눌린 듯한 느낌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이어진 장기화된 경기침체와 고환율·고물가 상황은 국민들의 일상을 짓누르고 있다. “이보다 더 나빠질 수 있느냐”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일터에서는 “버티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체념 섞인 반응이 늘어났다. 나빠지다… 치솟는 불길 백운비 원장은 최근 몇 년간 국민들이 체감하는 삶의 무게가 급격히 달라졌다고 봤다. 그는 불과 10년 전 국운이 비교적 안정돼 있을 때만 해도 대체로 먹고사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당시에는 동네 구멍가게조차 유지가 가능하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통용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표현이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후 약 9년간 국운이 점진적으로 나빠지는 흐름이 이어졌다고 봤다. 역리학적으로 보면 2026년은 ‘양화(陽火)’의 기운이 강하게 작용하는 해다. 불의 기운은 본래 위로 치솟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상황이 열려 있을 때는 성장과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막힌 상태에서 불기운만 강해질 경우 화(禍)로 작용하기 쉽다. 백 원장은 “양화가 득세하면 좋은 것도 함께 올라가야 길한데, 지금은 차단된 상태에서 불만 위로 치솟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는 분노와 충돌, 사회적 마찰이 빈번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불교에서 말하는 화마(火魔)와 비슷한 형국”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사회 곳곳에서 갈등과 충돌이 잦아지고, 사소한 문제도 쉽게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백 원장은 “열은 많은데 출구가 없을 때 가장 위험하다”며 “2026년은 바로 그런 해”라고 진단했다. 그는 2026년 국운을 ‘사통팔달(四通八達)’이 막힌 상태’에 비유했다. 사통팔달은 사방으로 통하고 여덟 갈래로 길이 열려 있다는 뜻이다. 예부터 역리에서는 운이 좋을 때를 사통팔달에 비유해 왔다. 길이 열려야 사람이 움직이고, 움직여야 살 길이 생긴다는 논리다. 반대로 사통팔달이 막혔다는 것은, 아무리 애를 써도 빠져나갈 통로가 없다는 의미다. 백 원장은 “전쟁이 나면 피난을 가야 하는데, 산도 물가도 사람 속도 안전하지 않은 형국”이라며 “움직일수록 위험하고, 가만히 있어도 불안한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는 “운이라는 것은 원래 사통팔달이 돼야 한다”고 했다. 사방이 열려야 길이 나고, 여러 가지가 순환하며 성취가 생긴다는 뜻이다. 그러나 올해는 “사방이 막혀 있다”고 봤다. 그래서 “갈 곳이 없다. 헤맨다”고 표현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정감록에 등장하는 ‘인근불·산근불·수근불’이라는 구절을 언급했다. 사람 속으로 가도 안 되고, 산으로 가도 안 되며, 물가로 가도 안 된다는 뜻으로, 결국 도망칠 곳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백 원장은 이를 오늘의 국운에 빗대어 출구 자체가 막혀 있는 구조로 해석했다. 이 막힘이 가장 먼저 드러나는 곳이 경기라고 했다. 백 원장은 현재의 경제 상황을 두고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돈이 돌지 않는 구조”라고 말했다. 경제의 본질은 순환인데, 지금은 그 순환 고리가 곳곳에서 끊어졌다는 것이다. “에너지·부동산·건설이 유일한 해법” “뛰어난 인재 등용으로 위기 관리해야” 불안이 커질수록 소비가 줄고, 소비가 줄면 기업은 투자를 멈춘다. 이 과정이 반복되며 경제 전체가 점점 움츠러드는 악순환에 빠졌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경제 지표만 놓고 보면 아직 버틸 여지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외환보유액은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수출 역시 완전히 꺾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국민들이 느끼는 현실은 다르다. 자영업자들은 하루하루 버티는 데 급급하고, 직장인들은 월급날이 와도 통장이 스쳐 지나갈 뿐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청년층 역시 미래 계획보다 당장의 생존을 먼저 고민하는 상황이다. 백 원장은 이런 체감경기가 쫓기고 쫓는 구조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빚을 갚아야 하는 쪽은 쫓기고, 물건을 팔아야 하는 쪽도 쫓기며, 소비자는 사기 위해 애쓰고 사업자는 버티기 위해 애쓴다. 몸과 마음을 다 써도 역부족을 느끼는 사람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다만 그는 2026년을 ‘마지막 고비’라고 표현했다. 고비가 있다는 말은 넘어설 구간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넘는 방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백 원장이 올해를 ‘양화’로 설명한 부분도 같은 맥락이다. 음화가 따뜻한 햇볕이나 곁불에 가까운 성격이라면, 양화는 활활 타오르는 불처럼 강도가 크다는 것이다. 불기운은 본래 위로 치솟는 성질이 있어, 표면적으로는 ‘올라가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경제가 올라가고 산업이 살아나고 활력이 돌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백 원장은 지금의 국운이 이미 ‘차단’돼있다는 점을 문제로 들었다. 즉, 불이 치솟는데 출구가 막혀 있으면 그 불은 성장의 동력이 아니라 ‘화마’처럼 작동할 수 있다는 경고다. 그는 “화기가 중천한다”는 표현을 쓰며, 이 기운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사회 전반에 과열과 충돌, 갈등이 함께 치솟을 수 있다고 봤다. 그렇다면 해법은 없는걸까? 백 원장은 “답이 없는 해는 없다”며 화와 상생하는 것이 바로 토(土)와 목(木)이라고 설명했다. 백 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방침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방침은 곧 정책이다. 그는 답을 세 갈래로 정리했다. 에너지, 부동산, 건설이다. 백 원장은 “이 세 가지가 유일한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가장 강조한 해법 중 하나는 에너지 정책이다. 국내외 산업과 수출입 구조에서 에너지 비용과 수급이 흔들리면 경제 전체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는 “에너지 정책을 중심에 두고 전략적으로 관리해야 국가 경제의 체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사통팔달 생존 급급 부동산에 대해서는 규제로 묶어두는 접근을 경계했다. 자금이 회전하지 않으면 내수가 얼어붙고 체감경기는 더 악화된다는 이유에서다. 그가 말한 부동산은 단순한 주택 거래에 국한되지 않았다. 농지, 임야, 전답 등 토지 전반과 농업 관련 규제, 지역 단위 개발과 거래 규제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 같은 규제가 완화돼야 농업과 지역 경제가 살아나고, 내수 회복의 여지가 생긴다는 논리다. 부작용이 따르더라도 순기능이 더 크다면 이를 관리하면서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건설 분야 역시 중요한 고리로 제시됐다. 백 원장은 오행의 상생 논리를 들어 불기운이 강해지는 해에는 ‘목(木)’이 연동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건설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행위가 아니라 자재, 설비, 인력, 금융 등 연쇄 산업이 함께 움직이는 분야다. 부동산과 건설을 동시에 움직이게 하면 파급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백 원장은 자산 형성의 사다리가 막히면 젊은 층의 기대가 꺾이고 사회 전반의 활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정책의 방향만큼이나 이를 실행할 ‘사람’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재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같은 정책도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백 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의 개인 운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개인의 운만으로 국운을 뒤집을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 때문에 그는 2026년을 두고 “성군(聖君)이 나오기 어려운 해”라고 단언했다. 국운이 나쁜 시기에는 누구든 성과를 내기 어렵고, 성군이 나오기 힘든 구조라고도 했다. 연산군과 광해군을 예로 들며, 국운이 기울어진 시기에 즉위한 지도자에게는 선택지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구조에서는 누가 자리에 앉아도 비판을 받기 쉬운 환경이 형성된다고 봤다. 정치권 전반에 대해서는 국운의 분산이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힘이 한 곳에 모이지 못하면 작은 사안도 쉽게 정치적 충돌로 번지고, 여야를 넘어 같은 진영 내부에서도 분열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상황을 두고 “양분과 분열의 해”라고 표현했다. 양분(兩分)은 둘로 나뉜다는 뜻이지만, 현실에서는 둘로 끝나지 않는다. 둘로 갈라진 뒤 다시 갈라지고, 결국 여러 갈래로 흩어진다. 백 원장은 “이럴 때 정치권은 합치자는 말은 많아도, 실제로는 더 쪼개지는 흐름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2026년 정치 지형에 대해선 “높이 쌓아 올린 알이 언제 깨질지 모르는 형국”이라고 비유했다. 겉으로는 안정돼 보일 수 있지만, 작은 충격에도 균열이 날 수 있다는 의미다. 권토중래 전복후괴 백 원장은 “군계일학(群鷄一鶴)”을 꺼냈다. 무리 속에서 돋보이는 한 사람, 즉 뛰어난 인재를 등용해 위기를 관리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해일수록 백 원장이 가장 강조한 것은 ‘인사(人事)’다. 국운이 나쁠 때는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판단이 흐려지기 쉽기 때문이다. 이럴수록 사람의 선택이 결과를 좌우하게 된다. 백 원장은 이 대통령에게 올해가 불안정한 만큼 ‘아첨하는 사람’이 늘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운이 나쁜 시기에는 이상하게도 권력자나 부자에게 빌붙어 아첨하는 행동이 늘어나고, 그 과정에서 배신과 척을 지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 정세에 대한 전망도 같은 결로 이어졌다. 백 원장은 특징으로 ‘분산(分散)’을 들었다. 힘이 한 곳으로 모여야 외부 압력을 버틸 수 있는데, 올해는 국운이 흩어져 힘을 제대로 쓰기 어렵다는 진단이다. 분산되면 허점이 드러나고, 허점이 드러나면 외부 공격이 들어온다는 논리다. 그는 이를 복싱에 비유했다. 복싱 선수가 가드를 올리면 상대가 쉽게 치지 못한다. 그런데 가드를 내리면 약점이 보이고 공격이 들어온다. 백 원장은 “우리가 튼튼하면 공격이 안 오는데 이번에는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공격은 군사적 충돌만을 뜻하지 않고, 외교적 압박과 경제적 공세, 국제 갈등의 심화까지 포괄하는 의미로 읽힌다. 그는 “외교 혼동과 시행착오로 갈등이 심화되고 외부의 압력과 공격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국제 분야에서의 대응책은 무엇이냐고 묻자, 백 원장은 다시 ‘사람’으로 돌아왔다. ‘철저한 방어 준비’가 필요하며, 그 방어를 위해 ‘인적 자원 파견’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해외로 사람을 내보내고, 현장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협상과 조율을 담당할 인재를 배치해 허점을 줄여야 한다는 취지다. 그는 “이번 해는 어느 해보다 인재 발굴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국운이 바닥난 것이 아니므로 “틈새가 있다”고 했고, 그 틈새를 메우고 넓히는 것이 인재라는 뜻이다. “6월 지선 대대적 물갈이” “아첨하는 사람 조심해야” 오는 6월에 시행되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키워드는 권토중래(捲土重來)다. 권토중래는 “실패했던 사람, 포기했던 사람이 다시 분기해 세력을 찾는다”는 뜻이라고 풀었다. 다시 일어서고, 다시 판이 바뀌는 사례가 늘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번에 공천 못 받고 밀려났던 사람이 다시 부활하는 케이스’를 예로 들면서 “물갈이가 다 되는 건 아니지만 물갈이가 많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백 원장은 이 대통령에게 “전복후계(前覆後戒)”의 태도를 강조했다. 앞사람의 실패를 거울삼아 뒤의 사람이 경계한다는 뜻이다. 그는 이를 “전임 대통령의 실수를 경계 삼아야 한다”는 식으로 풀었다. 이는 이 대통령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장관·부처·기관·기업 대표 등 ‘조직의 책임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덕목이라고 했다. 즉, 불리한 국운의 해에는 새 일을 무리하게 벌이기보다, 전임의 실수와 실패를 분석해 같은 구멍에 다시 빠지지 않는 것이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국민들의 삶도 우려했다. 백 원장은 지난 몇 년간 국민 갈등이 극심했다는 문제의식에 동의하며, 2026년에는 그 갈등이 더하다고 했다. 그는 “운이 나쁜 해에는 인심이 각박해지며 배려와 용서가 줄고, 민감하고 예민해진 사회 분위기가 형성된다”며 “친했던 사람끼리도 견제 대상이 되고, 이해관계에 따라 적이 되는 일이 많아질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이를 ‘각자도생(各自圖生)’이라는 말로 표현하며, 각자도생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백 원장은 의지하는 대상이 있더라도, 무너질 수 있는 해이기 때문에 결국 자기 책임 의식을 더 가져야 한다는 취지다. 가족이나 가까운 관계조차도 현실의 무게 앞에서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이혼과 결별, 인간관계 단절이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며 “경제적 불안과 심리적 피로가 겹치면 사회 문제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울감이나 분노 조절 문제 등 정신적 부담이 커질 수 있다”며 “2026년은 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치는 해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부익부빈익빈(富益富貧益貧),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자는 더 못 살게 된다”고도 전했다. “마지막 고비다” 2027년에는 회복기로 들어선다. 백 원장은 “27년부터 회복기로 들어간다”는 취지로 말하면서도, 곧바로 후유증을 언급했다. 병이 나아도 후유증이 남듯이, 회복이 시작되더라도 이전의 고통이 흔적으로 남아 일정 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뜻이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