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문화’ 독인가 약인가(2) 재계 쥐락펴락 개미들의 힘

재계에도 안티는 존재한다. 파면된 임직원이나 피해자들이 주류다. 당연히 상대는 기업. 잘나가는 회사라면 안티모임 하나쯤은 기본이다. 특히 굵직한 ‘사건’엔 항상 안티세력이 따라붙는다. 소비자 입장에선 신문고 역할이지만, 기업으로선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기업과 안티의 관계가 ‘공생이냐 기생이냐’하는 고민이 여기서 나온다. 그러나 기업 안티문화는 갈수록 힘과 빛을 잃어가는 모습이다. 왜일까.

S사는 자사를 비방하는 안티모임으로 수년째 몸살을 앓고 있다. 한때 다음, 네이버 등 인터넷포털에 안티사이트와 카페가 속속 개설, 10여개가 넘기도 했다. 현재는 전직 임직원들이 운영하고 있는 대표적인 한 모임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 안티모임은 S사와 관련한 소비자 피해 및 불만 사례를 수집해 허위·과장 광고, 직원 채용 부작용 등을 비판하고 있다. ‘안티 S’운영자는 “카페는 어떤 이윤을 챙기고자 하는 모임이 아니다”라며 “S사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교류하자는 취지일 뿐”이라고 말했다.

“같이 싸워봅시다”
곳곳 집단행동 감지


S사 측은 안티모임 카페를 수시로 모니터링 하는 등 신경을 곧추세우고 있다. 회사 이미지의 치명적인 손상을 우려해서다. 일부 직원들은 자체적으로 ‘안티 S’를 반대하는 또 다른 안티카페를 개설하는 맞불작전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사 관계자는 “안티회원은 목적자체가 회사의 나쁜 면만을 드러내는 데 있다”며 “소수의 의견을 전체로 확대하면 안 된다”고 경계했다.

D사도 사정은 마찬가지. 최근 안티로부터 ‘집단 린치’를 당할 위기에 처했다. D사로 인해 금전적,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모임을 만들어 집단행동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 각 언론사 제보와 소송까지 불사할 태세다.

이들이 개설한 카페엔 “악덕 업체를 고발합시다”, “같이 뭉쳐 싸워봅시다”등 D사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가득하다. D사 관계자는 “일부의 사례를 전체인양 확대해서 떠들고 있다”며 “그렇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전했다.

기업들이 안티모임의 잇단 공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회사의 제품 불매운동은 물론 일부 안티사이트의 경우 회사 내부문제도 여과 없이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는 이유에서다. 소비자 입장에선 안티 모임이 ‘신문고’역할과 같지만, 해당 업체는 ‘벙어리 냉가슴’앓는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각 포털사이트엔 적게는 수십명에서 많게는 수만명에 이르는 ‘개미 군단’이 커뮤니티를 비롯한 모임들을 만들어 활동 중이다. 타깃은 다종다양하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부터 중견그룹, 중소기업 등 가리지 않는다. 이들은 경제 분야에서 ‘소비자 권리 찾기’를 표방하고 있다. 한 안티모임 운영자는 “대부분의 기업 안티 모임은 영업방해의 목적으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특정업체에서 피해를 보거나 부적절한 인사로 퇴직한 사람들의 호소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기업 안티는 더 이상 온라인에 국한된 활동이 아닌 오프라인 활성화로 대형화되는 추세다. 피해자들이 해당 기업에 보상을 요구하는 집단·단체소송이 그것이다.

지난해 3월부터 시행된 집단분쟁조정제는 50명 이상의 소비자가 같은 제품이나 서비스로 피해를 입었을 때 이를 접수한 소비자단체나 지방자치단체, 정부 부처, 한국소비자원 등이 분쟁조정위에 피해 구제를 신청하는 제도다. 아파트 건설 관련 하자, 자동차·가전제품 품질 불량, 휴대폰 요금 과다 청구, 인터넷서비스 약관 피해, 종자 불량, 항공기 연착, 건강기능식품 과대 선전 등이 대상이다.

최근 벌어진 GS칼텍스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17일 김모씨 등 2천30여명은 “개인정보가 담긴 CD가 유출돼 피해를 입었다”며 GS칼텍스와 GS넥스테이션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김씨 등은 각각 1백만원씩 총 20억3천여만원의 손해배상금을 청구했다. 지난 10일에도 인터넷 카페를 통해 모인 임모씨 등 5백명이 1인당 1백만원씩 5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일각에선 이번 소송 보상 금액이 최대 4조원 이상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개인정보 유출로 확정판결을 받았던 리니지의 피해배상은 1인당 10만원이었고, 국민은행은 20만원, LG는 70만원에 달했다. 앞서 지난 13일 해상 유조선 충돌 사고로 기름 유출 피해를 본 충남 태안군 주민 6천8백64명은 15개월간 매달 20만원씩(총 2백5억원)의 생계비를 지급하라며 삼성중공업을 상대로 법원에 가처분신청을 내기도 했다.

지난 1월부터 시행된 단체소송제는 피해 소비자들을 대신해 소비자단체가 사업자를 대상으로 위법행위를 금지 또는 중지할 것을 요구하는 소송을 말한다. 소액의 피해를 입은 소비자가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 도입됐다. 소비자 안전과 직결되는 식품이나 완구제품들이 주된 피소 대상이다. 다만 금전적 손해배상은 배제된다.

그러나 눈에 띄는 점은 ‘안티 전성시대’가 갈수록 저물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 안티 문화의 최고 전성기였던 2000년 전후에 비해 이들의 카페나 모임, 사이트 등은 현격히 줄어들었다.

인터넷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포털사이트에서 활동하는 제대로 된 안티 카페는 50여개에 불과하다. 기업 안티사이트는 10여개. 기업 안티 집단은 2000년만해도 1백개가 넘었다. 당시엔 안티 언론과 안티 통합사이트까지 등장했었다. 한 포털 관계자는 “소비자들의 피해와 불만을 토로하는 공간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며 “그나마 상당수는 방문자가 거의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무분별·일방적 비방
안티활동 퇴조 초래


그렇다면 기업 안티모임이 사라지는 이유가 뭘까. 우선 전문가들은 안티 스스로 제 무덤을 팠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소비자 권리 찾기’의 취지와는 달리 욕설과 협박 등 무분별하고 일방적인 비방이 기업 안티활동의 퇴조를 부르고 있다는 진단이다.

실제 2004년 2월 모 기업체의 안티사이트를 운영하다가 사이트 폐쇄를 조건으로 돈을 뜯으려한 한 남성이 경찰에 구속되기도 했다. 이 남성은 기업 안티사이트를 개설한 뒤 비방하는 글을 올리다 사이트를 폐쇄할 테니 3천만원을 달라고 협박했다. 또 안티사이트를 등록한 뒤 비싼 값에 되팔려고 시도한 운영자들이 줄줄이 철창행 신세를 지기도 했다.

한 중견기업 민원 담당자는 “특정인에 의해 악용되고 있는 일부 안티 모임이 심심찮게 발견된다”며 “이들은 어떤 목적을 갖고 특정 기업을 무작정 비방하거나 특정 제품에 흠집을 내고 있다”고 귀띔했다.

결국 안티에 시달린 기업들은 소송이란 카드를 꺼내들었다. 일방적으로 당했던 기업들이 비방·폭로행위에 대해 법적으로 대응한 것.

 


안티세력의 영업 방해를 참다못한 W사는 2003년 안티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W사는 안티사이트가 범람하자 카페 운영자를 ‘허위사실로 인한 명예훼손’으로 고발하는 한편 사이트 폐쇄를 요청하는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냈다. 회사 관계자는 “불매운동도 명확한 명분과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무조건 회사와 경영진을 비난하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사실을 왜곡하거나 과장해 회사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어 법적 소송을 제기했다”고 말했다.

법원은 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허위이거나 과장된 글의 삭제를 넘어 아예 사이트 자체를 폐쇄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회사 측의 계속되는 삭제 요구에도 사적 목적으로 위해 회사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는 글들을 삭제하지 않고 있다”며 “즉시 해당 사이트를 폐쇄하지 않으면 회사의 명예와 신용 등이 추가로 훼손될 염려가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사이트 등록 말소를 강제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나아가 기업들은 2000년 이후 안티 원천봉쇄 작업에 나서기도 했다. 안티 공간을 없애기 위해 자사의 안티 도메인을 무더기로 선점하는 꼼수를 동원한 것. 소비자 불만과 비판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다.

국내 주요 재벌그룹들은 이미 사명에 ‘anti’나 ‘no’ 또는 ‘안티’ ‘반대’등이 들어간 도메인의 소유권을 쥐고 있다. 재계 서열 1위인 삼성그룹은 ‘antisamsung.com’, ‘antisamsung.net’, ‘antisamsung.org’, ‘antisamsung.name’, ‘antisamsung.biz’, ‘antisamsung.info’, ‘antisamsung.cn’등 대표적인 영문 안티사이트를 싹쓸이한 상태다.

이들 도메인은 모두 삼성 계열사인 삼성네트웍스로 등록돼 있다. 삼성은 또 ‘samsunganti.com’,‘outsamsung.com’, ‘nosamsung.org’,‘stopsamsung.com’ 등 나머지 안티 도메인 수십개도 사들였으며 ‘안티삼성.com’, ‘삼성반대.com’같은 한글 도메인도 갖고 있다.
LG그룹도 ‘안티엘지.kr’, ‘안티엘지카드.kr’, ‘안티엘지전자.kr’등 한글로 된 안티 사이트를 확보했으며 ‘안티구본무.kr’와 같은 오너 반대 사이트도 관리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역시 ‘안티 정몽구.kr’, ‘안티 정주영.kr’, ‘안티 현대.kr’, ‘안티 현대차.kr’등의 한글 주소를 선점했다. SK, 롯데, 한화그룹 등도 ‘안티’, ‘반대’ 등이 들어간 한글 안티 사이트를 1∼2개씩 갖고 있다.

이런 와중에 정부까지 ‘안티 몰이’에 가세했다. 2001년 4월과 2005년 6월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정치인이나 연예인, 기업 등을 비방하거나 인신공격하는 안티사이트에 대해 일제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인터넷상의 명예훼손이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다.

‘안티와의 전쟁’ 선포
도메인 무더기 선점


윤리위는 명예훼손 혐의가 명백한 사이트는 내용의 삭제를 명령하거나 일정기간 이용을 정지시키고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불건전한 내용을 담고 있는 사이트를 경찰에 고발했다. 이를 두고 “표현의 자유를 말살하는 사실상 ‘검열행위’”란 지적이 쏟아지기도 했다.

이쯤 되자 안티문화의 위축으로 건전한 기업 감시 활동마저 사라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높다. 소비자단체 관계자는 “안티문화는 부정적인 역기능도 있지만 분명 긍정적인 순기능도 있다”며 “기업 발전의 꾀하는 올바른 안티문화 정립을 위해선 맹목적 비난보다는 건전한 비판이 확립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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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