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문화’ 독인가 약인가 (3)진화하는 ‘안티운동’의 세계

안티들의 세상이다. 이들은 각종 불합리한 사회현안에 제 목소리를 내며 사회를 움직이고 있다. 안티들의 행동도 점차 진화하고 있다. 안티사이트가 생성되던 초기의 안티들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무의미한 집단이었다면 지금의 안티는 보다 발전적인 방향을 향해 힘을 모으고 있다. 또 연예인들의 안티 등 흥미위주의 안티가 주를 이루던 몇 년 전과 달리 먹거리 문제부터 국민연금 등의 정책에 대한 반대까지 보다 현실적인 문제들을 다루는 안티가 급증하고 있다. 또 온라인에서 그치지 않고 오프라인에서까지 모임을 가지고 목소리를 내는 등 음지에서 활동하던 안티들이 조금씩 양지로 나오면서 힘을 발휘하는 방향으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안티가 목청 높이면 세상이‘들썩들썩’

‘안티’라고 하면 싫어하는 연예인에게 협박편지 등을 보내는 철부지 여고생의 이미지가 떠오르던 때가 있었다. 이는 안티문화가 생성되기 시작하던 초기의 현상으로, 특정 인물을 겨냥해 무조건적인 비난을 일삼던 것이 안티의 시초인 셈이다.

미스코리아
공중파에서 퇴출

때문에 당시의 안티는 ‘악플러’와도 일맥상통하며 인터넷의 무법자로 무참히 칼을 휘두르는 이들로 인식됐다. 이들은 익명성을 무기삼아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로 한 개인을 벼랑 끝까지 몰아세우기도 했다.
이처럼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던 안티는 인터넷과 네티즌의 성숙함과 발을 맞추며 조금씩 진화하고 있다. ‘비판을 위한 비판’을 일삼는 안티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이들보다는 발전적인 방향을 위해 딴죽을 거는 집단이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불합리한 사회현상에 맞서 당당히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서 사회를 바꾸는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의 인터넷공간인 안티사이트에는 계층이나 지역 등을 초월한 네티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자신의 논리를 펼치며 토론을 하고 있다. 이는 인터넷 시대의 새로운 시민운동으로 떠오르며 조금씩 사회를 움직이고 있다.
사회의 변화를 일으킨 안티사이트 중 하나로 ‘안티 미스코리아’를 들 수 있다. 안티 미스코리아는 여성의 성을 상품화하는 미스코리아 대회를 반대하는 단체로 1999년 생성됐다.
이 안티단체는 안티운동 중 가장 성공한 사례로 평가받기도 한다. 이곳에서 벌인 안티운동을 통해 더 이상 공중파TV에서 미스코리아 대회를 볼 수 없게 되기도 했다. 미스코리아 대회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2002년 케이블 TV로 자리를 옮겨 그 영향력이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적어진 것. 몇 년 전에 비해 지금의 미스코리아 대회 수상자들이 이렇다 할 활약을 펼치지 못하는 것도 안티 미스코리아가 거둔 성과라면 성과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미스코리아 대회에서 수영복 공개심사가 폐지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또 지난 2004년까지 개최된 ‘안티 미스코리아 페스티벌’에는 여성 장애인, 동성애자 등 우리 사회에서 약자로 불리는 사람들이 참가해 축제의 향연을 펼치기도 했다.
이 페스티벌에는 동성애 커밍아웃으로 따가운 시선을 받던 탤런트 홍석천씨가 사회자로 출연해 방송활동 복귀의 포문을 여는 기회를 맞기도 했다. 또 섹스비디오 파문으로 고통을 받던 가수 백지영도 행사에 참가해 대중 속으로 다시 얼굴을 비추는 계기가 됐다.
이처럼 각종 긍정적인 효과를 발생시키며 안티 미스코리아는 안티문화 확산과 안티운동의 대중화를 촉발시켰다.

각종 피해자들 모여
피해확산 방지 대책

또 이전에는 피해를 당하고도 가슴앓이만 했던 사람들이 안티사이트를 만들어 아픔을 나누고 더 이상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경종을 울리기도 한다. 이들 중 하나는 다단계회사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모임인 ‘안티피라미드 운동본부(이하 안티피라미드)’사이트다.
지난 2000년 1월 만들어진 안티피라미드는 초기에는 다단계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하며 고통을 나누는 사이트였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인터넷과 전화를 통해 다단계 피해에 관한 상담 활동을 벌이는 등 보다 적극적으로 다단계로 인한 피해를 줄이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또 악덕다단계업체들의 정보를 제공하고 그 업체들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례 등을 공개함으로써 앞으로 생길지 모를 다단계피해자들의 증가를 사전에 방지하는 데도 일조하고 있다.
이들은 온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활약하며 시민들에게 다단계 피라미드 회사의 위험성을 환기시키기도 했다. 각종 거리캠페인을 펼쳐 다단계에 대해 잘 모르는 시민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수행한 것.
그러는 동안 회원수도 크게 늘었다. 현재 안티피라미드는 회원 1만5천여 명이 가입한 큰 조직으로 성장해 불법다단계업체를 상대로 싸움을 벌이고 있다.
피해자들이 만든 안티사이트는 또 있다. 성형부작용으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이 만든 ‘안티성형’카페가 그것. 이 카페는 5만여 명의 회원을 거느린 안티사이트로 피해보상조차 받기 힘든 성형부작용에 관한 피해사례들을 나누고 있다.
이들 카페회원들은 성공적인 성형수술로 인해 인생이 바뀌었다는 사람들로 가득한 TV프로그램으로 인해 성형공화국이란 오명을 떨치지 못하는 지금의 세태를 비판하며 이면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또 성형수술로 인한 부작용에 시달리게 만들고도 자신에게 잘못이 없다고 우기는 등 파렴치한 행각을 벌이는 병원을 공개해 성형수술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좋은 정보가 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성형부작용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법적으로 구제받을 수 있도록 상담코너를 만들어 놓고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이 밖에도 안티메디컬, 안티라식 등의 사이트들에서 피해자들이 모여 고충을 나누고 해결책을 나누고 있다.
최근 사회현안에 맞서기 위해 생긴 안티사이트 중 지대한 영향력을 과시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대규모 촛불집회를 이끌어 낸 ‘광우병국민대책회의’다.
이들은 ‘안티메드카우’란 도메인으로 안티사이트를 만들고 미국쇠고기수입 반대운동을 펼쳤다. 물론 광우병 촛불집회가 온전히 이들의 작품은 아니지만 수많은 시민들을 광화문으로 나오게 만든 데는 이들의 영향력이 컸다.
1백일이 넘는 기간 동안 촛불이 꺼질 날이 없었던 촛불집회는 현재 소강상태로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불씨는 남아있다. 또 천주교, 불교 등 종교계까지 침묵을 깨고 목소리를 냈다는 점 등 여러 가지 의미를 남기기도 했다.
그리고 광우병국민대책회의와 촛불집회는 또 다른 형태의 안티단체를 양산해냈다. 그 중 하나는 ‘안티조중동’이란 이름의 안티단체로 보수적인 언론에 맞서 올바른 보도를 해 줄 것을 요구하는 단체다.
이들은 인터넷에서 보수언론들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광고중단운동으로 네티즌의 힘을 과시했다. 조선, 중앙, 동아일보에 광고를 하고 있는 기업들에게 전화를 걸어 광고를 중단하라고 요구하고, 그러지 않으면 불매운동을 펼치겠다고 하는 등의 행동은 실제로 효과를 거둬 광고수입감소로 이어지기도 했다.
결국 이 같은 운동을 전개한 네티즌들은 사법처리를 당했다. 서울중앙지검 인터넷 신뢰저해사범 전담수사팀은 포털 사이트 다음 카페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 개설자 이모씨와 운영진 양모씨 등 2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또 이 카페의 게시판지기 중 법원 직원 김모씨 등 14명을 불구속기소하고, 혐의가 비교적 경미하다고 판단된 카페 회원 8명은 3백~5백만 원의 벌금형으로 약식기소하는 등 초기 카페운영진 전원을 사법처리했다.
이 같은 광고중단운동으로 된서리를 맞은 기업은 농심이다. 조중동에 광고를 싣지 말라는 네티즌들의 요구에 농심의 전화 상담원이 “<조선일보>는 계속 번창할 것”이란 이메일을 보냈다는 것이 일파만파 번지면서 네티즌들을 자극시켰고 농심 불매운동으로 번진 것.
이로 인해 ‘쥐우깡 파동’으로 창사 이래 가장 큰 위기를 맞았던 농심은 사면초가에 놓이기도 했다. 이를 진화시키기 위해 농심의 손욱 회장이 나서 사과를 하고 공장견학을 시키는 등의 조치를 취했지만 안티의 힘을 꺾을 수는 없었다.
농심 불매운동과 안티조중동 운동으로 가장 큰 수혜를 입은 업체는 삼양라면이었다. 당시 삼양라면에서는 금속성 너트가 검출되어 소비자들의 원성을 샀다. 그런데 조선일보가 이 사건을 크게 보도했고 네티즌들은 “자사에 광고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기사를 실은 것”이라고 단정 짓고 삼양라면 구매운동을 펼친 것.
개그우먼 ‘정선희’ 안티도 촛불집회로 인해 생긴 것 중 하나다. 촛불집회가 한창일 당시 정선희가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에 대해 쓴 소리를 했고 이것이 네티즌들을 자극시킨 것. 이로 인해 네티즌들은 정선희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광고를 하는 기업에 전화를 걸어 광고중단을 요구하고 정선희가 런칭한 화장품의 불매운동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미국쇠고기 안티 사이트
또 다른 안티 양산

이처럼 지금의 안티운동은 보다 국민들의 살에 와 닿는 현안을 중심으로 네티즌들의 힘을 끌어 모아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때로는 이들의 운동이 건드리지 않아도 될 벌집을 쑤셔놓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수면 아래에서 곪고 썩다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맞는 것 보다는 사전에 문제점을 건드려 환부를 도려내는 것이 더욱 합리적이라는 것에는 많은 이들이 동의하고 있다.
이제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는 안티운동. 보다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방향으로의 안티운동이 무엇인지를 고민해 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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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