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령1000호 특별기획 ③> ‘2034년 모습은?’ 미리 가 본 2000호 시대

“미래를 알아야 변화 주도한다”

[일요시사 경제팀] 한종해 기자 = 창간 19년 만에 지령 1000호를 맞은 <일요시사>가 오는 2034년이면 지령 2000호를 내게 된다. 지금으로부터 19년 뒤 2000호 시대 대한민국의 모습은 어떻게 변할까. 타임머신을 타고 상상이 현실이 되어 있는지를 살짝 들여다보고 왔다.

2034년 봄 부산 앞바다, 김종민씨의 저녁 퇴근길이다. 자가용에 오른 김씨는 목적지 설정 후 잠에 빠져든다. 자가용은 해저터널로 접어든다. 내장된 센서가 앞차와 뒷차와의 거리를 계산, 속도를 자동 조절한다.
 
해저터널을 거의 빠져나올 무렵, 교통체증이 발생한다. 앞에서 달리던 차량의 컴퓨터 프로그램 기능 오류가 발생했나 보다. 조금 짜증은 나지만 체증은 이내 풀린다. 프로그램 제조사에서 원격으로 기능 고장을 해결하기 때문. 부산항에서 20여km 떨어진 심해도시에 위치한 김씨의 집까지 걸린 퇴근 소요시간은 불과 20여분이다. 중국과 일본, 한국을 잇는 해저터널이 있어 출장은 대도시마다 있는 국제버스터미널을 통해 다녀온다. 
 
중국과 일본
버스로 왕래
 
김씨의 주거구역은 깊이 500m의 심해다. 안전에 대한 불안감은 않다. 거대한 3D 프린터로 건설되어 한치의 오차도 없다. 해면에 있는 거대 태양광 집약시설로 에너지를 충당하고 부족한 부문은 조수 간만의 차를 이용한 발전기가 채운다. 식수 걱정도 없다. 2020년 국내 연구진이 해수의 완벽한 담수화를 이뤄내 언제 어디서 수도꼭지를 돌리더라도 물을 얻을 수 있다. 오히려 육지의 물보다 미네랄과 무기영양염류가 풍부해 심해 1000m에서 채취한 물이 ‘먹는 심층수’라는 이름으로 팔릴 지경이다.
 

김씨는 10년 뒤 집을 팔고 ‘달 기지’로 떠날 예정이다. 인류가 살 수 있는 제2의 행성을 찾아 떠난다는 20년 전의 영화 <인터스텔라>의 실현이 눈앞에 와 있다. 전 세계 우주공학 선두 국가들이 모여 만든 협의체에 의해 뜨거운 열과 추위, 각종 우주 방사선, 운석 등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할 수 있는 집이 첫 삽을 뜬지 오래다. 
 
달보다 상대적으로 척박한 환경인 화성에도 정착촌이 건설 중이다. 지난 2015년 네덜란드 회사 ‘마스원’은 화성인 후보자 100명을 선발해 8년 동안 건설, 전기, 장비 수리, 의료 등 화성 기지 건설에 필요한 기술을 교육했다. 그리고 2022년 9월부터 2년 간격으로 10명씩 화성으로 보내졌다. 당시 미국 MIT 연구팀이 제기한 ▲질식 논란과 ▲우주 방사선으로 인한 암 발병 확률 증가 ▲DNA파괴 ▲시력 감퇴 ▲골 손실 등 논란은 신형 우주복 개발과 로봇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잦아들었다.
 
500m 심해도시서 해저터널 이용 출퇴근
3D프린터 이용…한치 오차도 없는 건축
 
로봇은 일상이 됐다. 사람을 닮은 로봇 휴머노이드는 인간이 하기 힘든 위험한 작업부터 인간의 전반적인 삶에 퍼져 있다. ‘로봇과 사랑에 빠진 인간’을 주제로 한 뉴스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워낙 고가인 탓에 서민들은 구매가 어렵다. ▲청소, 세탁, 설거지, 정리정돈, 심부름, 음식조리 등을 수행하는 도우미 로봇 ▲아이들과 놀아주며 필요한 지식을 전달하고, 운동 파트너가 되는 교육용 로봇 ▲노인들의 말상대가 되고 간단한 건강을 체크하는 간병 로봇 등  한가지 기능에 특화된 로봇만 겨우 구매 가능하다.
 
부작용도 있다. 피부와 외모, 목소리까지 완벽 구현할 수 있는 탓에 로봇을 이용한 변종 성매매가 등장했다. 얼마 전에는 로봇 수십기를 이용한 기업형 성매매가 적발돼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국회에서는 연일 ‘로봇 성매매 특별법’을 둘러싼 논란으로 부침을 겪고 있다.
 
전 세계가 협의해 로봇이나 무인 자동차가 악용되는 것을 막고 있지만 테러집단은 개의치 않는다. 해커들을 동원해 기초 기술을 해킹, 무기로 쓰고 있으며 일부 선진국들도 자금력을 동원해 비밀리에 군사용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전 세계 시민단체들은 로봇의 상용화를 반대하는 격한 시위를 이어오고 있다. 
 

첨단 기술로 인해 실업은 청년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택시, 버스, 트럭 등에 무인 기술이 접목되면서 운송업계는 생존권을 보장하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자동차 사고가 0% 가까이로 줄어들어 보험사들은 새로운 먹거리를 찾기 위해 분주하다. 교통경찰, 대리기사, 운전기사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직업군이 됐고 자동차 공장에는 그나마 남아 있던 직원들까지 모두 로봇으로 대체됐다. 
 
실업 갈등 극대
인간 대신 로봇
 
현대사박물관으로 향했다. 불과 10년전까지만 해도 필수품이었던 스마트폰이 ‘구시대 유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사람들은 대신 안경을 끼고 있거나 시계나 밴드를 차고 있다. 15년 전 이것저것 부품이 달려 거추장스러웠던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다. 가볍고 튼튼해 휴대가 용이하다. 뇌파를 인식해 전화를 걸고 받으며 생각만으로 문자를 확인하고 보낼 수 있다.
 
박물관 관람을 하던 한 남성이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주변 어느 곳을 둘러봐도 ‘119’에 도움을 청하는 이가 없다. 그런데도 구급대원들이 곧 등장했다. 쓰러진 남성이 손목에 차고 있던 ‘스마트 시계’덕분이다. 시계는 소지자의 건강상태를 체크해 이상이 생길 경우 즉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병원이나 경찰, 소방서에 신고를 접수한다. 
 
경찰서 조사실을 들여다봤다.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고 피의자로 보이는 한 남성이 의자에 앉아 헬멧을 쓰고 있다. 뇌의 기억정보를 읽어낼 수 있는 시스템이 탑재된 ‘브레인 스캔’이다. 브레인 스캔이 범죄현장의 목격자나 증인, 기억을 잃은 피해자 등에게 다양하게 쓰이면서 범죄율이 대폭 낮아졌다.
 
사람의 신체에 이식하는 바이오폰은 양산화를 앞두고 있다. 나노로봇을 뇌 속에 심어 사람의 생각과 기억을 인터넷 클라우드에 실시간 전송하고 여러 나노로봇이 몸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건강상태 등을 체크, 질병을 예방하고 나아가 치료까지 하는 기술이다. 
 
 
PC방은 ‘가상현실방’으로 이름을 바꿨다. 일렬로 늘어섰던 컴퓨터와 의자 대신 캡슐이 그 자리를 메꾸고 있다. 게임은 캡슐 속에서 이뤄진다. 헬멧을 착용하고 캡슐 안으로 들어가서 누우면 눈앞에 가상세계가 펼쳐진다. 가상세계 속 캐릭터는 내 모습을 그대로 닮았다. 약간의 ‘포샵’ 작업은 가능하지만 현실 모습을 기반으로 한다. 생각만으로 움직이고 타격을 입었을 경우 일정의 고통도 따른다.
 
2011년 성균관대 하이브리드컬처연구소가 제출한 용역보고서 내용도 현실화됐다. 한국인들은 첨단 디지털 기능이 추가된 스마트 의류를 일상적으로 입고 있으며 주변온도에 맞춰 스스로 변하는 지능성 방한복, 주변환경에 따라 색이 바뀌는 카멜레온 의류, 손상을 스스로 진단하고 회복시키는 지능형 소재로 된 의류 등은 제조업체에 따라 디자인만 다르다.
 
보호자와 일정거리 이상 떨어졌을 때 반응하는 미아방지용 의류와 각종 상황에 따라 기능을 변화하는 산업안전용 의복, 어지간한 폭발에도 안전한 소방복, 적으로부터 모습을 감추기 위한 스텔스 기능 전투복, 해충을 차단하는 살충용 의복, 스스로 오염을 정화하는 박테리아 제거 의복, 진흙탕에 넘어져도 더럽혀지지 않는 의복 등 기능도 다양하다.
 
주택의 스마트화도 이뤄져 내부환기, 온도·습도조절, 조명 밝기 등은 물론 거주자의 건강상태, 위험상황을 검사해 스스로 대응한다. 재택 근무가 증가하면서 주택은 현재의 잠만 자는 공간에서 업무와 휴식, 자녀교육 또는 가족의 생활공간 등을 모두 소화하는 곳으로 탈바꿈했다. 홈쇼핑이나 인터넷 쇼핑몰에서 물건을 샀다가 예상과 다른 상품이 도착해 교환 또는 환불하는 사태도 급감했다. 화면에 나오는 물건은 홀로그램 기술을 통해 집안에서 질감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화면 속 상품

직접 만져본다
 
학원은 사양산업이 됐다. 만국어 번역기 덕분이다. 외국의 교육 콘텐츠들이 우리말로 실시간 번역돼 공급되므로 굳이 외국에 유학을 갈 필요가 없다. 사이버 및 원격 교육 발달로 인해 학교에 가는 날이 대폭 줄어들었다. 
 
바쁜 한국인들은 아침으로 빵과 우유 대신 캡슐형 음식물을 섭취한다. 함유량에 따라 한끼용 하루용으로 나뉘며 맛도 다양하다. 추상적으로 노화 방지에 도움이 되는 식품이 아닌 실제로 노화를 더디게 하는 식품도 나온다. 줄기 세포를 이용해 손상된 장기를 되살리거나 인공 장기를 만드는 일이 쉬워지고 개인 유전자에 따른 맞춤 치료가 등장해 기대 수명이 크게 늘어났다. 암을 예방하는 신약이 출시되고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를 일으키는 인간 면역 결핍 바이러스(HIV)의 백신이 시판됐다. 
 
수명연장으로 노인 인구는 전체 인구의 40% 내외까지 치솟았다. 한국 인구 4000만명 중 1700만명이 노인이다. 신촌, 홍대, 강남 일대는 노인들로 북적거린다. 노인정에서는 70세가 막내다. 발 좀 뻗으려면 80세는 되어야 한다. ‘똥차를 보면 운이 좋다’는 말 대신 ‘아이를 보면 운이 좋다’는 말이 널리 쓰일 정도로 아이 보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노인 전용 사우나·미용실·결혼정보업체가 생겨나더니 각 스포츠 리그에는 70세 이상만 출전이 가능한 ‘실버리그’가 진행 중이다. 노인들의 성 욕구 배출을 위한 노인 전용 불법 성매매 업소도 암암리에 운영되고 있다.
 
화성 정착·달기지 <인터스텔라> 현실화
로봇 수십기 이용해 기업형 성매매 적발
 

시선을 외국으로 돌렸다. 세계 경제는 미국이 아닌 중국과 인도가 주도하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아프리카 콩고 정글이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고 보르네오섬의 열대우림은 소멸됐다. 최대 풍속이 초속 67m 이상인 슈퍼태풍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빈도도 잦아져 미국 휴스턴, 뉴올리언스 등 해안가 도시는 ‘출입금지’ 구역이 됐다. 적도, 지중해, 아랍지방 일부에서는 폭염으로 인해 피부가 탈 정도다. 지구온난화 대비에 뒤처진 국가들은 비상이 걸렸다. 한국 정부가 아랍에미리트의 수도 아부다비에 위치한 ‘마스다르 시티’의 기술 도입을 서두르는 이유다.
 
한국인 연구진들은 마스다르 시티에 대한 기술 전수를 받고 있다. 한국 정부는 10년 전 완공되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아온 마스다르 시티의 국내 도입을 추진 중이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강대국들은 이미 마스다르 시티를 도입했다. 
 
마스다르 시티에 없는 것은 단 세가지다. 탄소, 자동차, 쓰레기다. 여의도 면적의 4분의 3정도 크기로 세계 최초로 신재생에너지만을 사용한다. 어마어마한 넓이의 태양광 발전소를 통해 석유와 가스 같은 화석연료 대신 태양열에너지를 도시에 공급하고 자율주행 무인자동차와 경전철이 사람들의 발이 된다. 이 둘 모두 태양광으로 만들어진 전기와 자기장으로 움직여 탄소배출은 ‘0’다. 쓰레기도 소중한 자원이 된다. 생물학적 쓰레기는 분해해 비료로, 기타 쓰레기는 소각을 통해 연료로 사용하고 있다.
 
노인 전체 40%
실버리그 도입
 
<일요시사>가 바라본 미래 전망은 모두 맞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번 미래 예측은 <2040 유엔미래보고서>와 ‘성균관대 하이브리드컬처연구소 용역보고서’, 국가과학기술위원회와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의 ‘제4회 과학기술 예측조사 결과’, 통계청의 ‘2013∼2040년 장래인구추계’ 등 각종 자료를 토대로 하고 있는 만큼 어느 정도의 신빙성은 있다. 미래는 아는 것이 더 중요해지는 시대다. 박영숙 유엔미래포럼 한국 대표가 “변화할 미래의 모습을 알아야 대비는 물론, 우리 삶의 변화를 주도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이유다.
 
 
<han10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3000호 시대’ 2053년 모습은?
투명망토 입고 텔레포트 한다
 
2053년, 전 세계 최고 격전지는 남극이다. 2048년 남극조약 만료로 인해 세계 강대국들이 남극을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한국은 열 번째로 큰 영유권을 보유하고 있다. 1위는 첫 번째로 남극 전진기지를 세운 미국, 2위는 러시아 그 뒤는 중국, 영국, 프랑스, 칠레, 아르헨티나, 호주, 인도 등이다.
 
병원에는 ‘동면 주사실’이 생겼다. 10년 전 ‘동면’에 들어갔던 사람들은 신체 나이는 늘지 않은 채 잠에서 깨어나고 있으며 더 나은 미래를 보기 위한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죽은 사람은 홀로그램으로 만나볼 수 있다. 사망한 가족은 디지털 형태로 유지되면서 마음만 먹으면 불러 내 대화할 수 있다. 배우, 음악가, 과학자, 정치인 등 사망한 유명 인사나 과거 역사적 인물들도 마음만 먹으면 직접 마주할 수 있다. 
 
부모는 태어날 아이의 성별은 물론이고, 신장, 피부, 머리카락과 눈 색깔 등 수백개 특성을 직접 결정한다. 배아가 형성되면 인공 자궁에서 성장하고 아이의 지능과 행동, 성격까지 부모 의견에 따라 만들어진다. 해당 기술은 수많은 보수 종교 단체로부터 인체 상용화라는 비난을 받고 있지만 부모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판타지 소설 <해리포터>에 나왔던 ‘투명망토’와 ‘텔레포트’라고 불리는 원격이동의 실현도 눈앞에 와 있다. <해>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