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80년대 사창가 공개한 사진작가 조문호

"홍등가도 윤락녀도 역사입니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서울 청량리 일대 집창촌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사진전이 인사동 아라아트 2층 전시관에서 열린다. 사진작가 조문호가 1983∼1988년까지 전농동 588번지 일대 홍등가를 담은 이번 전시는 '청량리 588'이란 제목으로 관객을 만난다.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 우리 사회에서 소외 당하고 멸시 받았던 윤락녀는 그들 역시 인간임을 말하고 있었다.

사진작가 조문호의 '청량리 588' 사진전이 오는 3월10일까지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 2층 전시실에서 열린다. 서울 동대문구 일대 집창촌의 모습을 담은 67점의 사진은 관객을 만난 뒤 사진집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그들도 똑같다"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어 온 조 작가는 당시 홍등가를 찍기 위해 현장에 기거했다. 건달들의 폭력과 성병 등 숱한 고난이 동반됐지만 조 작가는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매춘을 우리 사회의 필요악으로 보았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성매매는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생활고에 찌들려 몸을 팔았던 윤락녀는 시대적 희생양으로 부각됐다. 조 작가는 "가난한 것이 죄일 뿐 누가 그들의 얼굴에 침을 뱉을 수 있단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처음엔 냉대했던 그곳의 여성들은 서서히 조 작가에게 마음을 열었다. 조 작가가 카메라를 들었을 때 이들은 이미 서로를 누이동생으로 불렀다. 때문에 조 작가는 성매매 여성들의 생활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친근한 방식으로 기록할 수 있었다.

조 작가는 "그들도 똑같은 사람이며, 우리의 이웃이고 가족"이라고 강조했다. "그들을 바라보는 멸시 섞인 시선, 얼굴조차 마주보기 싫어하는 사람들의 천대가 윤락녀를 사회로부터 격리시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 작가는 편견을 바로잡기 위해 애썼다. 몸 파는 창녀가 아니라 하나의 직업인으로 봐달라며 5년을 공들였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높았다. 힘들게 찍은 사진을 모아 1990년 2월 전시회를 가졌으나 언론은 매춘이란 호기심에 무게를 두고 '선정적인 보도'로 일관했다. 조 작가와 생각을 같이하며 "사람대접 받게 해 달라"고 했던 사진의 주인공들은 전시회에 나타나지 않았다.

성난 조 작가는 필름을 창고에 처박았다. 사진집 출판 제의도 거절했다. 자신의 작품이 춘화와 같은 이야깃거리로 변질될 것이 두려웠고, 무엇보다 행여 잘 살고 있는 누이동생들의 삶이 망가질까봐 할 수 없었다.

시간이 흘러 조 작가는 먼지 쌓인 필름을 다시 꺼냈다. 그들의 목소리를 한 번 더 세상에 전하고 싶었다고 한다. 조 작가는 "사진에 찍힌 그때 그 사람들도 보고 싶고, 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도 듣고 싶다"며 "전시장에 찾아와 자신이 찍힌 사진을 찾아 갔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고 말했다.

'청량리 588' 사진전 전시
집창촌 직접 머물며 촬영
성매매 여성들 애환 담아

훌륭한 사회사적 기록물인 조 작가의 작품은 1985년 '동아미술제'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기쁨과 뿌듯함에 조 작가는 사진의 모델이 되어준 여성들을 상대로 남김없이 상금을 썼다고 한다. 전시 서문을 쓴 이광수 부산외대 교수는 “그들이 받은 것이니 그들에게 돌려줘야겠다는 심산이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조 작가의 사진은 기술적으로 뛰어난 사진이 아니다. 어찌 보면 촌스럽기까지 한 구성과 스타일은 오히려 그의 작업을 돋보이게 한다. 인간에 대한 한없는 애정과 애틋함이 녹아 있는 사진들을 보다 보면 1980년대의 정취가 눈시울을 자극한다. 엄혹한 군사독재 시대. 국가의 최우선 정화 대상이었던 이들은 한곳에 모여 아등바등 살고 있었다. 우리와 똑같이 살고 싶은 욕구에 충실한 생명이었던 것이다.

조 작가는 자신의 작가노트 마지막에 이렇게 썼다. "정숙아! 혜련아! 나의 연인이기도 동생이기도 했던 너희가 보고 싶다. 연락 한 번 주렴. 내가 소주 한 잔 살게. 그리고 부디 행복하게 살기 바란다."


사회사 기록

그간 아시안게임, 5일장, 강원도 동강, 인사동 등을 소재로 작업해 온 조 작가는 이번 전시로 한국 사진사의 큰 족적을 남겼다. 향수에 젖고 싶은 성인이라면 전시가 열리는 아라아트를 찾아보면 어떨까. 단 19세 미만은 관람불가다.

 

<angeli@ilyosisa.co.kr>

 

[조문호 작가는?]

조문호 작가는 1947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30여년간 사회 환경을 기록해 온 다큐멘터리 사진가다. 1985년 동아미술제에서 '홍등가'로 대상을 수상했다.

1986년 '아시안게임 기록사진 공모전' 대상과 2007년 강원다큐멘터리 사진가로 선정된 바 있다. 주요 전시로는 민주항쟁 기록전(1987), 전농동588번지 기록전(1990), 동강백성들 사진전(2001), 태풍 루사가 남긴 상처 사진전(2002), 두메산골 사람들 사진전(2004), 인사동 그 기억의 풍경전(2007) 등이 있다.

이외에도 수많은 기획·단체전에 참여했다. 저서로는 포토에세이집 <동강 백성들>, 천상병 사진집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등이 있고, <월간사진> 편집장과 한국환경사진가회 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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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까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 초,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가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