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조각가 김한기는 자신의 작품이 직관적으로 해석되길 원하고 있다. 파랑색이든 붉은색이든 작품을 보는 관객들은 작가가 준비한 조형에서 특정한 영향을 받는다. 김 작가는 그것을 '물들었다'라고 표현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여러 환경이 본인을 물들였듯이 그 또한 작품을 통해 상대를 물들였으면 한다는 바램이다.
서울 삼청로에 있는 갤러리도스가 상반기 기획공모전 '가감유희'를 관객에게 선보인다. 조각가 김한기는 '뜻하지 않은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이번 공모전에 선정됐다. 오는 20일까지 김 작가는 조각과 컴퓨터그래픽을 접목한 이미지 작품을 전시할 계획이다.
더페이즈망 기법
김 작가는 '낯섦'을 토대로 상반된 두 가지의 이미지를 한 작품에 담았다. 이는 초현실주의의 표현 방법인 데페이즈망 기법이다. 전위·전치법이라고도 불리는 이 기법은 특정한 목적을 지니는 물체를 전혀 관계가 없는 곳에 놓거나 상반된 두 오브제를 한 공간 안에 배치해 형식화된 관념을 깨뜨리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현실에 존재하는 생물과 사물은 뜻밖의 공간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김 작가는 초현실주의가 유행하던 1930∼40년대보다 진일보한 도구(컴퓨터)를 이용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이를테면 파괴와 폭력의 대표적 이미지인 전투기나 탱크는 평화로운 자연 속에 떠 있다. 무시무시한 살상무기는 빨강·노랑·파랑색 등 화려한 원색으로 포장됐다. 언뜻 서로 어울릴 수 없는 요소들은 김 작가의 작품 안에서 긴밀히 연결되며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여기에 김 작가는 데칼코마니라는 또 다른 초현실주의 기법을 가미했다. 데칼코마니 기법은 물감을 찍어 나타내는 비정형 이미지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상상력을 자극한다. 데페이즈망과 데칼코마니의 조합은 '뜻하지 않은 이야기'란 김 작가의 주제의식과 부합한다. 이것은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의도하지 않은 혹은 뜻하지 않은 일들로 삶이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갤러리도스서 '뜻하지 않은 이야기'
조각에 그래픽 접목한 화려한 이미지
전쟁을 모티브로 한 작품들은 일반 관객도 인지하기 쉬운 직관성을 띤 오브제로 구성됐다. 김 작가는 원래의 오브제가 가지고 있는 기능을 상실하지 않아야 데페이즈망 효과가 나타난다고 생각했다. 나아가 김 작가는 관객들 각자의 상상력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작품이 해석되길 바라고 있다. 참고로 김 작가는 전쟁, 폭력, 권력, 힘, 정치 등이 자신의 삶을 변화시킨 요소라고 설명했다.
김 작가의 작업은 '우연'이 가진 힘을 드러내는 것에 관심이 있다. 우리는 자신이 의도한 대로 하루를 보내길 바라지만 모든 일들이 뜻대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외부의 상황과 요구에 맞춰 저항하기도 하고 때로는 순응하며 살아간다. 매우 낯설게 느껴졌던 요소들도 주변인을 통해 혹은 미디어를 통해 자주 접하면 어느새 친숙하게 여겨진다. 어쩌면 의도치 않은 '우연의 연속'이 개인의 삶을 통제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김 작가는 합리주의의 발달이 인간의 내재된 욕망을 억압한다고 여겼다. 초현실주의 기법과 조각의 접목을 오래 전부터 고민한 이유다. 최근 들어선 입체적인 조각에 국한하지 않고 포토몽타주를 활용한 평면 작업에 더 큰 흥미를 보이고 있다. 앞으로의 작업에서도 무의식을 포착하려는 작가의 열망은 평면에 담길 가능성이 높다.
거대한 숨은 그림
김미향 갤러리도스 관장은 '뜻하지 않은 이야기'에 대해 "세계 자체가 거대한 숨은 그림인 것처럼 표현했다"고 했다. '데칼코마니-사람들'이란 작품에서 울긋불긋한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포즈를 취하고 매달려있다. 이 작품은 서로가 가진 색이 상대에게 전이되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원 모양의 패턴은 인간의 세포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다양한 감정을 표현한 것 같기도 하다. 작가가 숨겨 놓은 '그림'을 발견하는 것은 우리 관객의 몫이다.
[김한기 작가는?]
▲서울시립대 환경조각학과 졸업 및 동대학원 졸업
▲홍익대 일반대학원 박사과정 미술학과 조소전공
▲크라운 해태, 남서울대 이앙갤러리, 이천시 민주화공원 등 작품소장
▲시립조각회원 및 서울시립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