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특집 사건결산> 2014 최악의 살인사건10

사람 맞아? 인간의 탈 쓰고 짐승 짓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2014년 한 해의 키워드는 ‘생존’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살아 있으면 다행”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잔혹범죄의 경우 일일이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다. 그중에서도 특히나 치를 떨게 만들었던 살인사건들,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살인의 기억을 되짚어본다.

 
‘울산 전기톱 살인사건’. 지난 1월, 울산 남구에서 20대 남성이 전기톱으로 사촌동생을 무참히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울산 남부경찰서는 잔인한 살인을 저지른 혐의로 이모(24)씨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울산 전기톱 살인]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19일 오후 9시쯤 울산 남구의 한 아파트에서 고종사촌 동생인 김모(23)씨를 전기톱을 휘둘러 살해한 혐의를 받았다. 경찰은 이씨가 범행을 저지르고 난 뒤, 숨진 사촌동생의 사체와 함께 밤을 보내고 20일 낮 12시50분쯤 119로 전화를 걸어 “내가 사람을 죽였다”며 자수했다고 설명했다.
 
신고를 받은 119소방대와 경찰은 곧바로 현장으로 출동해 이씨의 집 안방에서 이씨를 검거했다. 당시 안방에는 사촌동생 김씨의 사체와 길이 50cm 가량인 전기톱이 있었다. 경찰은 “발견 당시 피해자의 목과 상반신이 크게 훼손된 상태였다”고 전했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평소 사촌동생이 나를 무시하는 말을 계속해 수면제를 먹이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숨진 김씨는 이씨의 전화를 받고 이씨의 집을 찾았다가 살해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숨진 김씨는 평소 이씨와 자주 연락하고 왕래하며 친구처럼 지내던 사이였다. 이씨는 범행을 위해 인근 약국에서 수면유도제 10정을 구입하고 인터넷을 통해 전기톱을 구매했다. 이어 함께 통닭을 먹자며 김씨를 자신의 집으로 유인해 수면유도제가 든 콜라를 마시게 한 뒤 피해자가 잠들자 살해했다. 이씨는 2010년 3월 군에 입대했지만 대인관계의 어려움, 불안, 우울 등의 증세를 호소해 국군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다 그해 9월 현역복무 부적합 처분을 받고 전역했다.
 
범행 이후 이뤄진 법무부 치료감호소의 정신감정에서도 이씨는 피해망상, 환청, 현실 판단력의 장애 증상을 보여 망상형 조현병(정신분열) 진단을 받았다. 이씨는 법정에서 “자신 속의 악마가 살인을 하라고 지시했다”고 진술하는 등 정신 이상 증세를 보였다. 8월12일 울산지법 제3형사부는 살인죄로 기소된 이씨에게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친모 죽이고 놀이공원행]
 
지난 4월, 집에 불을 질러 어머니를 살해하고 자살로 위장한 뒤 놀이공원에 간 20대 딸의 사연이 공개돼 충격을 안겨줬다. 최모(20·여)씨는 어머니 백모(48)씨를 계획적으로 살해했다. 최씨는 미리 준비한 수면제를 갈아서 백씨가 마실 물컵에 털어 섞었다. 이내 백씨는 잠들었고 최씨는 안방 침대 매트리스에 불을 붙인 뒤 집 밖으로 빠져나왔다.
 
최씨는 알리바이를 만들고자 백씨의 휴대폰을 챙기기도 했다. 그리고 그 휴대폰으로 외삼촌에게 ‘그동안 미안했다. 우리 딸 좀 잘 부탁할게’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내놓고 튤립축제가 한창이던 용인의 한 놀이공원으로 향했다. 최씨가 공원을 돌아다니는 사이 어머니 백씨는 불에 타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최씨는 알리바이를 제시하며 범행을 부인했지만 결국 모든 혐의가 드러났다. 남들이 보기에 최씨는 명문대 미대를 졸업한 미모의 어머니와 명문대 교수인 아버지를 둔 좋은 집안의 딸이었다. 하지만 최씨는 부모의 갑작스런 이혼과 입시 실패로 인해 내적 갈등을 안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 10월24일, 수원지법 형사11부는 존속살해, 현주건조물방화치사 혐의로 기소된 최씨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에서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9명의 배심원들은 전씨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판단하고 징역 10∼15년의 실형이 적정하다는 의견을 냈다.

[윤 일병 구타 사건]
 
지난 4월, 경기 연천군에 있는 육군 28사단 977포병대대 의무대 내무반에서 일병을 가혹하게 구타해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선임병들의 구타로 인해 싸늘한 주검이 된 윤모(23) 일병은 지난해 2013년 12월 입대해 지난 2월, 28사단 포병연대 본부 포대 의무병으로 배치받았다.
 
선임병들은 윤 인병의 행동이 느리고 말투가 어눌하다는 점을 이유로 들면서 기마자세를 시킨 뒤 잠을 재우지 않는가 하면, 치약 한 통을 먹이거나 드러누운 얼굴에 물을 들이부었다. 뿐만 아니라 게 흉내를 내게 하며 우스갯거리로 만들고, 바닥에 가래침을 뱉어 핥아 먹게 강요하기도 했다. 선임병들은 윤 일병의 몸에 남아 있는 구타흔적을 지우기 위해 연고제인 안티푸라민을 바르면서 윤 일병의 성기까지 주물러 성적 수치심을 불렀다.
 
이렇게 가혹행위를 당하던 윤 일병은 냉동식품을 먹던 도중 선임병들에게 가슴, 정수리 등을 맞고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안타깝게도 뇌 손상으로 사망했다. 사건 직후 피의자들은 구속기소됐다. 3군사령부 보통군사법원은 지난 10월30일 이모(25) 병장에게 징역 45년, 하모(23) 병장 등 3명에게는 징역 25∼30년형을 선고했다. 또 폭행을 방조한 의무반 유모(23) 하사에게는 징역 15년형을, 이모(21) 일병에게는 징역 3월에 집행유예 6월을 선고했다. 현재 군 검찰과 가해자 전원이 1심 판결 직후 항소를 하면서 재판은 장기화될 전망이다.
 
의문의 고무통 열어보니 10년 된 남자 사체
여고생 끓는 물 붓고 보도블록으로 내리쳐
 
[채팅남 토막 살인]
 
지난 5월, 인천 남동공단에서 50대 남성의 토막시신이 담긴 가방이 발견됐다. 인천 남동경찰서는 성인사이트를 통해 만난 조모(50)씨를 토막살인하고 유기한 고모(36·여)씨를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고씨는 26일 오후 8시쯤 성인사이트에서 만난 조씨와 모텔에 들어가기 전 핸드백에 미리 흉기를 챙겼다. 고씨는 30cm 길이의 흉기로 조씨의 목과 가슴 등 30여 곳을 찔러 모텔을 피바다로 만들었다.
 
 
이후 고씨는 모텔을 나와 인근 상점에서 전기톱·비닐·세제 등을 구입, 욕실에서 조씨의 두 다리를 절단한 뒤 세제 등으로 모텔 내부를 깔끔하게 청소했다. 그리고 자신의 외제차에 시신을 실었다. 잘린 두 다리는 비닐봉지에 싸 파주시 농수로에, 몸통 부분은 여행용 가방에 담아 인천 남동공단의 도로변에 유기했다. 경찰 조사결과 고씨는 조씨를 살해한 뒤 조씨의 신용카드로 300만원 상당의 귀금속을 구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해 여고생 암매장]
 
지난 5월, 경남 김해에서 20대 남성들과 일부 여중생들이 가출한 여고생을 납치해 성매매를 강요하고 끓는 물을 몸에 붓는 것은 물론 휘발유와 시멘트를 이용해 시신을 훼손하고 암매장까지 한 사실이 드러나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창원지검은 지난 4월10일 김해지역 고교 1학년 윤모(15)양을 마구 때려 탈수와 쇼크로 인한 급성 심장정지로 숨지게 하고 시신까지 훼손해 사체를 유기한 A(15·중3)양, B(15·중3)양, C(14·중학 중퇴)양과 윤양을 유인해 성매매를 시키고 시신유기를 방조한 김모(24)씨를 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윤양과 1대1 싸움를 하거나 냉면 그릇에 소주를 부어 강제로 마시게 한 뒤 구토를 하면 토사물을 핥아 먹게 하고 그것도 모자라 끓는 물을 몸에 붓거나 보도블록으로 윤양을 내리치는 등 상식을 벗어난 잔혹행위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11월11일 창원지법 제4형사부는 구속기소 된 A양에게 징역 장기 9년 단기 6년, B, C양에게는 징역 장기 8년 단기 6년을 각각 선고했다. 또 성매매를 목적으로 미성년자인 이들을 유인해 구속기소된 김씨에 대해서는 징역 5년을 선고했다.

[포천 고무통 시신유기]
 
지난 7월, 경기 포천의 한 빌라 내 고무통 속에서 심하게 부패한 남자 시신 2구가 발견돼 충격을 줬다. 당시 이 장소에서는 8살 아이가 울고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어야 할 나이였지만 아이는 시체와 함께 방치돼 있었다. 경찰이 들어가 본 빌라 내부는 쓰레기장과 다름없을 정도로 온갖 살림살이가 널브러진 상태였다. 특히 고무통 안에서 썩은 시신 냄새가 진동했다.
 
부패한 시신이 담긴 고무통과 함께 지낸 8살 아이의 엄마이자 이 사건의 피의자 이모(49)씨는 남편 박모(51)씨와 내연남이자 직장동료인 A(49)씨를 살해하고 8살 아들을 두 달간 방치해 아동학대 혐의로 기소됐다. 이후 8월27일, 의정부지검 형사3부는 이씨가 2004년 가을쯤 남편에게 수면제와 고혈압 치료제를 먹여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또 검찰은 이씨는 지난해 5∼7월 무렵 내연남에게 수면제를 감기약이라 속인 뒤 복용시켜 스카프 등으로 양손을 묶고 목 졸라 살해했다고 밝혔다.
 
[살해 사체와 성관계]
 
지난 8월, 20대 남성이 노래방 여주인을 살해하고 사체와 성관계를 맺은 충격적인 사건이 밝혀졌다. 광주 북부경찰서에 따르면 노래방 여주인을 살해한 이모(25)씨는 지난 7월30일 새벽에 광주 북구 용봉동의 한 4층 건물 1층 화장실에서 노래방 여주인 A(73)씨를 목 졸라 살해했다.
  
경찰 조사결과 이씨는 노래방 건물 옥상에서 노숙 생활을 해왔다. 그러던 중 A씨가 “왜 건물을 마음대로 드나들면서 노래방에서 음료수를 훔쳐가느냐”고 따지면서 다툼이 벌어졌고 이에 흥분한 이씨가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는 A씨를 살해한 직후 시신을 2층 노래방 주방에 유기한 뒤 자신은 노래방 내부 안쪽 방 안에 숨어있었지만, 경찰의 출동으로 결국 덜미를 잡혔다.
 
그런데 경찰의 수사과정에서 믿을 수 없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씨의 팔에서 A씨가 긁은 상처가 발견된 것이다. 경찰은 이씨가 A씨를 살해한 뒤 성관계를 맺었다는 진술을 확보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건설업자 청부살인]
 
‘건설업자 청부살인사건’. 지난 10월, 한 건설업자가 5년간 소송을 벌인 상대를 조선족을 시켜 청부살해했다. 영화 <황해>를 떠올리게 하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경찰은 조선족 김모(50)씨와 S건설업체 사장 이모(54)씨, 브로커 이모(58)씨 등 3명을 구속했다. 당시 경찰에 따르면 조선족 김씨는 지난 3월20일 오후 7시20분쯤 서울 강서구 방화동의 한 건물 1층 계단에서 K건설업체 사장인 A(59)씨를 흉기로 마구 찔러 살해했다.
 
노래방 여주인 죽이고 사체오욕
꼬신 채팅남 다리 절단 뒤 유기
 
S건설업체 사장인 이씨는 브로커 이씨에게 A씨를 살해해 달라고 청탁했고, 브로커 이씨는 조선족 김씨에게 K건설업체 A씨를 살해하라고 사주했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조선족을 이용한 ‘이중청부’ 형태로 범행이 이뤄진 것으로 드러나 더욱 놀라움을 줬다. 조선족 김씨가 브로커 이씨의 주선으로 사장 이씨에게 받은 대가는 3100만원이다. 
 
 
사장 이씨는 2006년 K건설업체와 경기 수원의 아파트 신축공사와 관련해 70억원 규모의 토지매입 용역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매입을 다 하지 못해 결국 계약이 파기됐고, 재산상 손실을 입은 이씨는 A씨와 서로 보상을 요구하며 5년이나 각종 민형사상 소송을 이어오다 결국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게 됐다.

[울산 계모 학대]
 
‘울산계모 의붓딸 살해사건’. 지난 11월, 울산 중구에서 계모가 의붓딸을 학대해 살인한 사건이 세간에 알려졌다. 울산지방경찰청은 어머니 김모(46)씨를 수사한 결과 입양아 A(25개월·여)를 상습적으로 폭행하고 학대한 전모가 드러났다고 밝혔다.
 
당시 경찰청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 10월25일 오후 11시쯤 울산 중구 자신의 집에서 A양이 콘센트 부분을젓가락으로 장난을 치자 철제 옷걸이 지지대로 A양의 머리와 팔 다리 등을 30분간 때렸다. 또 매운 고추를 탄 물을 강제로 마시게 하고, 샤워기로 찬물을 틀어 얼굴과 온몸에 뿌렸다. A양은 김씨의 폭행을 피하려다가 문과 방바닥에 머리를 부딪혔다.
 
이튿날 오전 3시쯤 A양에게서 열이 나자 김씨는 좌약을 넣은 채 방치했고, 7시간 뒤 A양의 몸이 차가워지고 호흡이 고르지 못했지만, 스마트폰으로 멍을 지우는 방법을 검색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A양은 호흡곤란을 호소했고 26일 병원으로 급히 옮겨져 심폐소생술을 받았지만 결국 숨졌다. 박씨는 1심에서 상해치사죄를 적용, 징역 15년을 선고받았지만 부산고법은 항소심에서 살인의 고의성이 인정된다며 원심을 깨고 살인죄를 적용해 징역 18년을 선고했다.

[장기 없는 시신]
 
지난 12월4일, 경기 수원시 팔달산 등산로에서 비닐봉지에 든 장기 없는 토막시신이 발견돼 오원춘의 악몽을 떠올리게 했다. 경찰은 수사본부를 꾸리고 용의자와 시신의 다른 부분을 찾는 데 주력했다. 그리고 10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시신이 사준치가 지난 혈액형 A형 여성으로 추정된다는 결과를 내놨다. 하지만 피해자의 신원 등 용의자를 추정할 만한 단서는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 경찰은 최초 토막시신 발견 지점의 인근 지역에서 추가 비닐봉지를 발견했다. 이후 부동산중개업자인 제보자가 등장하면서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범인은 박춘봉(55·중국 국적)으로 밝혀졌다. 동거했던 김모(48·중국 국적)씨가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잔혹한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는 지난 11월26일 오후 1시30분쯤 모 마트에서 일하고 있던 김씨를 팔달구 매교동 전 주거지로 데려가 목 졸라 살해했다. 이어 시신을 훼손하기 위한 장소를 물색, 같은 날 오후 6시쯤 인근 부동산중개업소를 찾아 전 거주지에서 약 2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반지하방을 보증금 없이 선금 22만원에 가계약했다. 계약 당시 이름은 밝히지 않고 휴대폰 번호만 적었다.
 
닷새 후엔 휴대폰 마저 해지했다. 경찰은 박씨가 살해를 목적으로 반지하방을 구한 것으로 보고 있다. 박씨는 훼손한 시신 가운데 몸통은 팔달산 등산로 배수로 옆에, 머리 등 일부 신체 부위는 수원시 오목천동 야산에 버렸다. 경찰은 살인과 시신유기 등의 혐의로 박씨를 구속하고 이번 사건을 검찰로 송치했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살인, 강도, 절도…’ 범죄 많은 도시는?
 
대검찰청 ‘2014년 범죄분석’ 통계자료에 따르면 성폭력, 살인, 폭행, 강도, 절도 등 5대 범죄에 대해 인구 10만명 당 범죄 발생 건수를 분석한 결과 제주는 절도, 살인, 성폭력에서 모두 상위 3위권에 포함됐다. 반면 용인, 광명, 파주, 남양주 등을 포함한 수도권 지역은 이들 범죄 발생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범죄 유형별 1위 도시를 보면 ▲성폭력=경산 ▲살인=논산 ▲강도=목포 ▲절도=제주 ▲폭행=원주 등으로 나타났다. 전국에서 가장 안전한 지역은 창원, 진해와 통합된 ‘마산’인 것으로 나타났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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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전’ 친윤 대숙청 시나리오

‘대선 전’ 친윤 대숙청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는 당원들의 도움으로 대선후보 지위를 유지했다. 확실한 명분을 쥔 김 후보는 설령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당권 장악을 위한 투쟁을 이어가야 한다. 김 후보가 당내 주도권 다툼서 이기는 방법은 무엇일까?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는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원내대표 등 친윤(친 윤석열)계의 대선후보 교체 시도를 당원들의 반대로 진압한 후에야 선대위를 구성했다. 김 후보는 지난 11일 대선후보로 등록했고, 대선후보의 당무우선권을 발동해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을 같은 날 진행된 의원총회서 새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임명했다. 갑툭튀 위원장 권 전 비대위원장이 후보 교체 시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기 때문이었다. 일각에선 권 원내대표의 사퇴도 강하게 요구했지만, 김 후보는 권 원내대표를 유임했다. 이날 진행된 의원총회엔 의원 107명 중 50명만 참석했다. 후보 교체 시도에 가담한 친윤계 의원들은 대거 불참했다. 이어 지난 12일엔 국민의힘 비대위 회의가 개최됐다. 국민의힘은 이날 회의서 김용태·주호영·권성동·나경원·안철수·황우여·양향자 등 7인 공동 선대위원장 체제를 발표했다. 김 후보는 후보 교체 시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국민의힘 이양수 의원을 대신해 박대출 의원을 사무총장으로 임명했다. 박 의원은 선대위서도 총괄지원본부장을 맡았다. 이틀 동안 확정·발표된 인선 중 가장 주목받은 것은 김 비대위원장 임명이었다. 30대 중반 막내 초선 의원을 당 대표격 직책에 임명했기 때문이었다. 김 비대위원장은 비대위원으로서 후보 교체 시도에 강하게 반대했다. 김 비대위원장은 지난 2021년 전당대회서 청년 최고위원으로 당선돼 이준석 당시 대표가 이끌던 지도부에 참가했다. 이어 황우여 전 비상대책위원장 시절에도 비대위원으로 발탁됐던 경험이 있다. 이 전 대표 시절엔 소장파 ‘천아용인’ 중 1명으로 거론됐던 적이 있고, 이 전 대표가 탈당해 개혁신당을 창당한 이후에도 돈독한 친분을 이어가고 있다. 일각에선 김 비대위원장 발탁을 놓고 “개혁신당 이준석 대선후보와의 단일화를 대비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다만 김 비대위원장에 대해선 “소장파로서의 행보가 약하다”는 평가도 있다. 그래서 김 비대위원장이 적극적으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을지 회의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지난 12일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하이킥>서 “친윤계가 김 비대위원장을 화살받이·방패막이로 앞세워서 상황을 돌파하려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어 김 비대위원장의 역량을 인정하는 기준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와의 결별 및 출당을 제시했다. 함께 출연한 장윤선 정치 전문 기자는 “제일 고통스러운 사람은 김 비대위원장 자신일 것이란 얘기가 있다”며 “대선서 크게 패배하면, 그 책임을 김 후보가 아닌 김 비대위원장이 지는 방식으로 정리하기 위해 허수아비로 세워놓은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고 거들었다. 친윤계는 의원총회 불참으로써 김 비대위원장 지명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김 후보는 당원투표로써 친윤계의 후보 교체 시도를 진압했기 때문에 명분을 확보했다. 국민의힘의 주도권을 휘어잡을 기회를 얻었다고 볼 수도 있다. 30대 초선 비대위원장 총알받이? 방패막이? 김 후보가 대선후보 지위를 굳힌 후 먼저 교체한 사람이 이 전 사무총장이란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전 사무총장은 당 선거관리위원장 자격으로 김 후보 선출 취소 공고와 새 후보 등록 신청 공고를 발표했다. 후보 등록 신청 공고에 제시된 등록 신청 기간은 지난 10일 오전 3시부터 4시까지였고, 등록을 위해 준비해야 할 서류는 총 32종이었다. 등록 장소는 국회 본관 228호 비대위 회의실이었다. 이 황당한 상황은 한 편의 코미디로 남았다. 이날 오전 3시부터 4시 사이엔 공고를 본 후 국회를 방문해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등록하러 왔다”면서 국회 경비대에 “문을 열어달라”고 요구하는 조롱성 방송을 진행한 유튜버도 있었다. 이 전 사무총장은 소동이 끝난 후 의원 단톡방에 김 후보를 비판하고 권 전 비대위원장을 두둔하는 취지로 어느 정치평론가의 칼럼을 게재했다. 이어 친한(친 한동훈)계인 국민의힘 정성국 의원으로부터 “총장님 입맛에 맞는 정치평론가의 글을 단톡방서 읽을 이유는 없다”고 비판받았다. 김 후보로선 사태가 끝난 이후에도 후보 교체 시도를 정당화하는 이 전 총장을 유임시킬 이유가 없었다. 선거를 목전에 두고 있으므로 권 원내대표까지 교체해 파문을 확대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김 후보가 당의 주도권을 확실히 휘어잡을 기회를 잡은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선대위를 움직일 당 사무총장은 빨리 교체해야 했다. 김 후보는 권 원내대표를 유임시켜 ‘휴전’ 메시지를 보낸 후 친윤계와의 암묵적 합의를 거쳐 김 비대위원장을 임명했다. 이어 실권을 행사하는 사무총장을 신속하게 확보했다. 국민의힘 대선후보 교체 시도는 1991년 8월 발생한 소련 공산당 보수파의 쿠데타를 연상시킨다. 보수파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대통령을 몰아내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 쿠데타는 KGB 알파그룹과 전차부대 등이 동원돼 신속하게 진행된 군사작전이었다. 쿠데타는 실패했고, 소련은 해체됐다. 이처럼 정치적 기획을 군사작전처럼 몰아쳐 진행하는 성향이 있는 사람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윤 전 대통령은 이런 식으로 당 대표 2명과 비대위원장 1명을 쫓아낸 적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황정아 대변인은 지난 10일 “윤석열 지령, 국민의힘 연출로 시작된 대선 쿠데타”라고 주장했다. “행보가 약하다” 윤 전 대통령도 본의 아니게 자수 아닌 자수를 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11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 후보 지지를 호소하는 글을 올렸다. 그런데 이 게시글엔 “김 후보를 지지하셨던 분들도 이 과정을 겸허히 품고 서로의 손을 맞잡아야 한다”는 문장이 있었다. 김 후보의 패배를 기정사실로 한 게시글을 수정 없이 그대로 올렸다. 김 후보와 친윤계의 대결이 ‘휴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게시글이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등 친한계는 지도부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김 후보를 거들었다. 이 중 친한계 좌장 6선 조경태 의원은 김 후보와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단일화 논란이 분분했던 지난 9일에도 “무책임한 외부 인사 영입을 통해 대선을 치를 거라면, 경쟁력 있는 이재명 후보를 데리고 오는 게 빠른 거 아니냐”면서 김 후보를 두둔했다. 이를 두고 “당원투표서 김 후보 교체 시도가 부결됐던 이유 중 하나는 친한계 당원들의 반대 움직임”이라고 보는 일각의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김 후보와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및 탄핵 등 여러 사안서 의견이 엇갈렸다. 두 사람은 국민의힘이 대선서 패배하면 다시 진행될 가능성이 큰 당권 투쟁의 잠재적인 경쟁 상대다. 김 후보는 56.53%를 얻어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한 전 대표가 얻은 43.47%도 무시하긴 어려운 수치다. 친한계 일원인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은 지난 12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한 전 대표의 선대위 참여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 전 대표는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비상계엄 및 탄핵 반대에 대한 사과 ▲윤 전 대통령 부부와의 절연 ▲한 전 총리와의 단일화 약속을 내걸고 후보로 선출된 것에 대한 사과 등 자신의 선대위 참여 조건을 제시했다. 김 전 최고위원은 이를 언급하면서 “김 후보가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렇듯 김 후보는 당내 유력 계파들인 친윤·친한과의 불씨를 두고 있다. 두 계파 모두 앙숙이기 때문에 김 후보로선 두 계파 모두를 포섭하기도 쉽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2026년엔 국회의원들의 ‘대목’이라고 볼 수 있는 지방선거가 진행된다. 불씨가 들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최소한 선거 상황에선 김 비대위원장이란 완충지대가 필요했을 가능성도 있다. 김 후보도 바보가 아닌 한 대선 승리 가능성이 크지 않단 것은 잘 알고 있다. 그 자신도 친윤계의 쿠데타로 인해 정당하게 선출된 후보직을 잃을 뻔했다. 대선 이후엔 곧바로 당권 투쟁이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 후보가 대선 이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잃지 않고 당을 장악하려면 당권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김 후보에게도 우군이 필요하다. 남겨놓은 갈등 불씨 김 후보는 지난 2020년 1월 국민의힘의 전신 자유한국당을 탈당한 이후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돈독한 친분을 유지했다. 같은 해 8월 발생한 사랑제일교회 코로나19 집단감염 사건 이후에도 경찰이 자가격리 조치를 어기고 집회에 참석한 사랑제일교회 일부 신자를 연행하려고 하자 이를 막는 등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당시 김 후보는 “내가 김문수인데, 왜 가자고 그러느냐”라거나 “내가 국회의원을 3번 했다”는 등 호통을 치는 등 경기도지사 재임 당시 119에 전화해 갑질했던 ‘도지삽니다’ 사건을 연상시키는 언행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전 목사는 후보 교체 시도를 격렬하게 비판했다. 전 목사가 주도하는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 국민운동본부(이하 대국본)는 지난 10일 국민의힘을 규탄하는 집회를 개최했다. 전 목사는 이날 “멀쩡하게 뽑아놓은 김문수를 아웃시키고, 한덕수를 영입했다”며 “국민의힘이 사기 치는 것 봤죠? 이건 완전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대국본도 같은 날 배포한 입장문서 “국민의힘은 종북 좌파와 맞서 싸우겠다는 애국 보수만 나타나면 알레르기 반응부터 보인다”고 비판했다. 김 후보는 지난 8일 관훈토론회 초청 토론회서 “광장 세력과도 함께 손잡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은 기독교의 교회 조직과 말씀 때문에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가 버티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전 목사 등 강경보수 성향 일부 교계를 극찬했다. 당내 지분이 전혀 없는 상황서 친윤·친한 모두와 경쟁해야 하는 김 후보로선 우군이 절실하다. 김 후보는 강경보수 세력 내부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와도 돈독한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김 후보는 지난 4월24일 전씨의 유튜브 채널 ‘전한길뉴스’에 출연했다. 전씨는 전 목사의 경쟁자로 통하는 손현보 세계로교회 목사와 연결돼있다. 전씨는 김 후보의 선거 전략을 분석하면서 “김 후보가 기득권 정치와 차별화된 이미지를 구축하고, 호남 지역 표심을 공략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TV 토론서 압도적 존재감을 발휘하고, 막판에 보수 우파가 단합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 목사와 전씨는 윤 전 대통령 탄핵 국면서 보수 진영 내부의 막강한 영향력을 확보했다. 두 사람의 영향력은 인원 동원 능력으로부터 비롯된다. 이들을 국민의힘 내부에 유입시켜 전당대회서 승부를 본다면, 김 후보가 국민의힘을 장악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지방선거서 급한 일은 의원들의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에 개입하는 일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역구 국회의원의 영향력 아래서 손발 노릇을 하는 기초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장악하면, 의원들의 손발을 묶어둘 수 있다. 후보 교체 시도 5적 지역구서 공천 전쟁? 김 후보와 충돌할 가능성이 큰 의원은 ▲권 전 비대위원장 ▲권 원내대표 ▲이 전 총장 ▲성일종·박수영 의원이다. 이 중 이 전 총장을 제외한 4명에 대해선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 게시글서 ‘4적’이라고 주장했던 적이 있다. 홍 전 시장은 “경선을 혼미하게 한 책임을 지고, 의원직 사퇴·정계 은퇴하라”고 주장했다. 이들 중 지도부였던 ▲권 전 비대위원장 ▲권 원내대표 ▲이 전 총장은 후보 교체 시도를 직접 진두지휘했다. 성 의원은 김 후보와 한 전 총리의 단일화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박 의원은 김 후보의 캠프에 참여했지만, 김 후보가 단일화와 관련해 신경전을 이어가자 “김 후보 주변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한 전 총리는 가라앉고, 김 후보가 단일후보가 될 것’이라는 식의 논리를 퍼뜨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김 후보를 일컬어 “전형적인 좌파식 조직 탈취 시도를 하고 있다”는 비난도 이어갔다. 김 후보는 대선후보 자격이 취소됐던 지난 10일 기자회견을 개최해 스스로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김문수”라면서 지도부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어 캠프 내 측근들과 함께 국민의힘 중앙당사를 방문해 대통령 후보실을 점거했다. 이를 놓고 일각에선 “왕년의 투사 김문수가 돌아온 것이냐”고 반응했다. 이날 김 후보의 대응을 돌아보면, 대선 이후 당권 투쟁서 물러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독자 영역을 구축한 친윤·친한과 달리 김 후보는 외부 세력을 당내에 유입시키기 위한 명분부터 구축해야 한다.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의미 있는 득표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홍 전 시장은 자유한국당 후보로서 대선에 출마했지만, 보수 정당이 분열됐던 여파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래서 불과 785만여표(약 24%) 득표에 그쳤다. 이는 역대 대선 직선제 2위 후보 중 당선자와 최다 표차 낙선과 보수 정당 최저 득표율이었다. 홍 전 시장은 대선 패배 이후 약 3주 동안 미국을 방문한 후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로 당선됐다. 예나 지금이나 당내 세력이 미약한 홍 전 시장은 당의 하락세를 막지 못했고, 지난 2018년 지방선거 패배 책임 차원으로 당대표직서 물러났다. 대선서 많은 득표를 하지 못했던 것도 홍 전 시장의 지도력에 힘이 붙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였다. 따라서 김 후보로선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당을 장악하기 위해선 패배하더라도 최대한 많은 득표를 해서 명분을 쥐는 것이 중요하다. 이 후보와의 단일화 시도를 완전히 접지 않은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하한선 35% 무너지나 YTN이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 11~12일 이틀간 무선 100% 전화 면접 방식으로 진행했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김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보다 13% 뒤처진 33%의 지지를 얻었다. 김 후보가 설령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국민의힘을 장악하려면 40% 이상의 독자 지지율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최저 하한선은 35%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 후보에겐 승패 여하를 떠나 많은 것이 달린 대선일 수밖에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