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동양적인 미덕 갖춘 서양화가 김서연

"삶의 의미 비우고 지우니…"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순백의 캔버스가 작은 조각으로 무수히 나눠졌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서양화와 판화를 전공한 김서연 작가는 캔버스 천을 칼로 자르는(혹은 파내는) 형태의 작업을 하고 있다. 작가는 캔버스를 조각하는 일에 대해 "빈집을 두드리는 것 같은 무모한 시도일지 모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김 작가의 작업은 '비움으로써 더욱 채워지는' 동양적인 미덕을 갖췄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도'로 평가될 수 있다.

지난 10일부터 서울 삼청로 갤러리도스에서는 김서연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전시 제목은 '무의미로의 회귀'다. 김 작가는 자신의 작업노트에서 "의미를 담기보다는 더 의미 있는 것들을 찾아 나서기 위해 의미를 비우고, 지우는 시간과도 같았다"고 지난날을 회상했다. 나아가 그는 "무의미는 의미 없음이 아니라 오히려 의미를 견고하게 만드는 이면"이라고 부연했다.

무의미의 이면을 찾아서

김 작가는 몇 해 전부터 캔버스에 색을 더하는 붓질을 내려놓고, 화면을 잘라 패턴을 만드는 조각 작업에 몰입했다. 원근법 등을 활용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방식의 작업은 어느새 고전이 됐다. 현대미술에서 캔버스는 단순히 물감을 칠하는 바탕재의 역할이 아닌 작품을 완성시키기 위한 재료 이상의 가치로 인정받게 됐다.

'김서연의 캔버스'는 오려지고 뚫어지는 과정을 거쳐 현실을 오롯이 드러낸다. 2차원이 가진 평면의 한계를 벗어나 다양한 표현의 가능성도 제시했다. 김 작가는 캔버스를 반복해서 조각하는 무의미한 순간 속에서 감춰진 삶의 의미를 찾고자 했다. 천을 한 조각씩 떼어낼 때마다 많은 잡념이 조각에 달라붙었다. 내면에서 소용돌이마냥 휘몰아쳤던 감정들은 캔버스의 파편과 함께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역설적이게도 무의미한 시간 덕분에 의미 있는 '중심'이 들어앉을 토대가 구축됐다.

사각의 캔버스를 '현실'이라는 벽으로 가정해보자. 작가는 "캔버스 너머를 꿈꾸기 위해 삶에서 멈춤이 필요했다"고 했다. 견고한 벽에선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이 "침묵 이전의 소리를 듣기 위한 귀기울임의 시간이었다"고 자평했다. 또 "낮 동안의 모든 일들을 덮어주고 보듬어주는, 이런 밤과 같은 시간이 있었기에 어쩌면 나는 위로 받을 수 있었고, 다시 삶으로 돌아갈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갤러리도스서 '무의미로의 회귀' 전시
순백의 캔버스 천 칼로 잘라 형태 완성

갤러리도스는 김 작가의 작업 중 평면에 칼을 댄 행위에 주목했다. 기존 회회가 보여주던 공간의 물리적 개념이 오려냄을 통해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탈바꿈했다는 해석이다. 또 오리는 행위만큼 오려내고 남은 빈 공간에 중요한 감상점이 있다고 소개했다. 김 작가의 작업은 비어있는 공간을 회화의 주요 요소로 인식한 결과물이며, 이는 작가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 가운데 하나다. 잘라짐 틈을 통해 작가는 '비워냄의 철학'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모든 존재가 태생적으로 안고 있는 본질에 가까운 불안이다. 이 같은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인간은 끊임없이 내 안의 '캔버스'로 무언가를 채워 넣는다. 그렇다고 불안이 해소되진 않는다.

갤러리도스는 '무의미'에 대해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며 절대적으로 인정해야 할 존재"라고 규정했다. "무의미한 것으로부터 의미를 찾는 과정은 관객 스스로가 자신을 새로이 인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해설이다.

비움의 철학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분홍빛 레이스를 연상시키는 패턴물과 흰 종이에 몽돌을 올려놓은 편지 등으로 서정미를 높였다. 작가의 표현처럼 밤을 헤치며 칼로 오려내는 고된 시간. 그 끝자락에서 캔버스의 조각들은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캔버스는 아름다운 레이스가 되었다. 지난밤 꿈속에서 누군가 건넨 예쁜 레이스처럼.

 

<angeli@ilyosisa.co.kr>

 


[김서연 작가는?]


▲이화여대 서양학과 및 동 대학원 회화·판화 전공
▲개인전 Uncanny Encounter 낯선 만남(스페이스 선, 2012) 무의미로의 회귀(갤러리도스, 2014)
▲그룹전 HOAST(뉴욕, 2007) Being&Nothing-ness(런던, 2009) YOOFESTA(서울, 2011) Home sweet home(청주, 2013) 등 다수
▲미술세계 대상전(1998) 수상
▲SBS드라마 <야왕> 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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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까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 초,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가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