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띠 졸라맨 서민들 고리대출에 ‘허덕’
서민들의 눈물겨운 빚 전쟁이 대한민국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여기저기에서 빚을 갚기 위해 고리대출을 받았다가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신음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는 통계로도 나타난다. 금융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사금융 시장 실태조사’에 따르면 현재 사금융시장 규모는 무려 10조원에 이른다. 통계에 의하면 전 국민의 5.4%인 1백89만명이 사금융을 이용하고 있고 절반인 49.9%가 등록 대부업체를, 17.6%가 무등록 대부업체를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10조원에 육박하는 사금융 시장
빚의 수렁에 빠지는 사람도 증가
사금융 대출의 이자율 평균은 연 72.2%로, 대부업법상 이자상한인 연 49%를 훌쩍 넘겼다. 상한선(연 49%)을 넘는 대출이 절반 가까운 48.1%나 됐다. 사금융 이용 계기는 가계 생활자금(47.4%)이 제일 많았고, 사금융 연체자의 월평균 가구소득은 1백66만원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위험한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고리대출을 받는 이들을 찾아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몇 가지 사례를 보자.
#1휴대폰으로 80만원 대출 받고
1천만원 요금 나온 A씨
신용상태가 나빴던 A씨는 작년 11월 울며 겨자 먹기로 휴대폰 대출을 받았다. 대출업체의 상담원이 지금의 신용상태에서는 일반대출을 받기 힘들다고 했고 하는 수 없이 LG텔레콤, KTF, SKT등의 통신사에서 무려 9대의 휴대폰에 가입했다. 그리고 A씨가 받은 돈은 80만원.
그러나 80만원을 받아 쓴 대가는 너무나 가혹했다. 휴대폰 9대에서 나오는 한 달 요금이 수 백만 원에 가까웠다. 대부분 060, 해외전화, 소액결제 등의 명목으로 빠져나간 요금이었다. 놀란 A씨는 휴대폰을 정지시켰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정지가 풀려 요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현재 A씨의 휴대폰 요금은 무려 1천만원.
임신 만삭인 탓에 여기저기 다니며 알아보는 것도 힘든 A씨는 오늘도 하루에도 몇 번씩 오는 통신사의 전화와 요금고지서 뭉치 앞에서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 지옥이라고 한다.
#2카드돌려막기로
가정 파탄난 B씨
50대의 B씨는 시부모의 병원비를 대기 위해 신용카드로 대출을 받았다. 그러나 병원비는 점차 늘어났고 결국 몇 개의 카드를 이용해 돌려 막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고 결국 전봇대에 붙은 전단지를 보고 사채업자를 찾았다.
시부모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던 B씨는 위험한 줄 알면서 대부업자에 급전 7백만원을 빌렸다. 그리고 이를 갚기 위해 다른 대부업체를 찾아 또 돈을 빌렸고 이런 식으로 3천만원의 돈을 상환했다.
그러나 B씨는 이렇게 큰돈을 갚을 능력이 없었고 결국 빚은 1억원으로 늘어났다. 도저히 빚을 갚을 수 있는 희망이 보이지 않자 남편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두 명의 자녀는 집을 나간 상태다. B씨는 오늘도 언제 사채업자가 찾아와 협박을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끼며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3 펀드투자하다
빚잔치만 남은 C씨.
직장인 C씨는 작년 9월 여유자금으로 펀드에 투자했다. 당시 과열된 펀드열풍으로 너도나도 펀드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C씨도 이 열풍에 동참하게 된 것. 시작은 좋았다. 수익률은 생각한 것보다 더 높았고 차츰차츰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 결국 C씨는 은행대출까지 받으면서 펀드에 투자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잘나가던 펀드는 주춤했고 급기야 손해를 보기에 이르렀다. 결국 은행대출금을 갚지 못할 위기에 처한 C씨는 사채업자에게 손을 벌릴 수밖에 없었고 빚은 천정부지로 올라 1억원에 가까운 빚이 그를 짓누르고 있다.
저마다의 이유로 사채업체에 발을 들인 사람들은 이처럼 대부분 눈덩이처럼 늘어나는 이자에 큰 고통을 겪고 있다. 또 불어나는 빚을 갚지 못하고 결국 개인파산신청을 하는 사람들도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계 부채 등으로 개인 파산을 신청하는 사람이 지난 3년 동안 10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조사된 것. 법원행정처가 낸 올해 사법 연감에 따르면 지난 2004년 만 2천건이던 개인 파산 신청 건수가 3년 만에 15만건으로 늘어났다.
대법원이 발행한 ‘2008년판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법인파산이나 개인파산 등 도산사건은 36만1천1백89건으로, 전년에 비해 15.7% 증가했다. 이 중 개인파산의 경우 지난해 15만4천39건을 기록, 전년 12만3천6백91건에 비해 3만3백48건이나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
개인파산 신청자도 급증
빚 못갚아 목숨 끊는 이도
일부 서민들은 빚을 갚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있기도 하다. 최근에는 등록금을 조달하기 위해 휴대폰 소액대출을 받았다 갚지 못해 목숨을 끊은 대학생의 사건이 알려져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1일 전주의 한 대학교 실습실에서 이 대학에 다니는 2학년 양모(22)씨가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이 대학생은 “가정형편이 어려워 등록금을 내지 못해 먼저 간다”며 “여자친구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되어 등록금 문제로 고민하다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숨진 양씨는 담당 교수와의 상담 끝에 휴학을 결심했으며 학자금 대출을 받으려고 수차례 은행을 찾았지만 매번 거절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양씨의 유가족들은 양씨가 휴대폰 대출을 받았다가 늘어나는 빚을 감당하지 못해 목숨을 끊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가족에 따르면 양씨는 두 달 전 휴대폰 대출로 50만원을 빌렸는데 한 달만에 양씨의 명의로 된 휴대폰 15대에서 통화요금 7백50만원이 청구됐고 고민하다 결국 자살을 택했다는 것.
이처럼 휴대폰 대출은 직장이나 담보가 없는 20대 젊은이들도 쉽게 받을 수 있어 최근 그 피해가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기도 하다. 이 때문에 ‘경제민주화를 위한 민생연대’등의 시민단체들은 휴대폰 대출로 인한 피해를 사전에 막기 위한 방법 등을 알려주며 더 많은 피해자가 생겨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지난 3월에는 펀드투자 실패로 고민하던 30대 임신부가 자신의 차에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 3월7일 오전 부산 남천동 횡령산 청소년수련원 인근 교회 주차장에서 이모(32·여)씨가 자신의 그랜저 승용차에서 숨져 있었다. 출산예정일을 며칠 남겨두지 않았던 이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펀드투자 실패에 따른 빚을 청산하기 못해서였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은행대출을 받고 전세를 월세로 돌리는 등의 방법으로 3억원을 펀드에 투자했으나 펀드수익률이 떨어지면서 은행으로부터 대출금 상환 요구에 시달렸다. 카드빚도 점차 불어나고 있었고 압박감을 견디지 못해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
얼마 전 자살한 서울 장안동 유흥업소 업주 역시 수억원의 빚을 갚지 못하는 상황에서 경찰의 집중 단속으로 인해 영업마저 할 수 없게 되자 생활고가 계속 이어졌고 이를 비관해 자살을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어쩔 수 없이 사채업자들에게 도움을 구했다가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서민들이 늘고 그에 따르는 범죄와 자살율 등도 덩달아 늘고 있어 심각한 사회문제로 비화되고 있다.
신용회복기금 설치해 진화 나서
실질적 효과 있을지는 미지수
이 같은 문제들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신용회복기금을 설치했다. 이는 금융 소외자에 대한 정부의 신용회복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대부업체에 진 빚에 대한 연체이자를 탕감받을 수 있는 정책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일 신용회복기금 출범과 관련해 “신용회복기금은 채무 불이행과 고금리에 따른 서민들의 고통을 줄이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하고 있다”며 “하지만 빚을 탕감해 주는 일방적인 시혜정책이 아니라 원금을 분할해서 상환하도록 하고 높은 금리를 낮춰서 생활의 숨통부터 트이게 하는 채무조정의 방식”이라고 말하며 신용회복기금의 의의를 설명했다.
이에 따라 올해 말까지는 1천만원 이하 빚이 있는 사람만, 내년부터는 3천만원 이하 채무자가 신용회복기금을 통해 지원받을 수 있다. 그러나 대부업자들이 반발하는 등 시행초기부터 잡음이 새나오고 있어 실질적으로 빚에 쪼들리는 서민들에게 얼마만큼의 도움이 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오늘도 많은 서민들은 빌린 돈을 갚으라는 대출업자의 협박에 시달리며 조마조마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드라마보다 더욱 무서운 현실 속 ‘쩐의 전쟁’은 서민들의 목을 조이며 방영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