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창걸의 영화로 본 세상> ④빨려 들어가는 슬픈 멜로 <연공>

쓸쓸한 가을, 마른감정이 원망스러우십니까?

일요시사 전창걸 칼럼니스트 = 개그맨, 영화인, 영화평론가 등 다양한 옷을 입고 한국 대중문화계를 맛깔나게 했던 전창걸이 돌아왔다. 한동안 대중 곁을 떠나 있었던 그가 <일요시사>의 새 코너 ‘전창걸의 영화로 본 세상’의 영화칼럼니스트로 대중 앞에 돌아온 것이다. 아직도 회자되는 MBC <출발! 비디오여행>의 ‘영화 대 영화’ 코너에서 전창걸식 유머와 속사포 말투로 화제를 모았던 그는 이번에는 말이 아닌 글로써 영화로 보는 세상이야기를 들려줄 예정이다. 그 네 번째 이야기는 사랑하고 싶게 만들고, 사랑의 의미도 다시 새기게 하는 영화 <연공>이다.

중년총각의 가을은 고통이다. 연휴 사흘 내내 어금니 통증을 진통제로 달래며 보냈다. 외로움은 서두름 없는 킬러다. 굳어가는 간처럼 버틸 만하게 스며들다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의 길목에서 휑한 가슴을 발견하게 한다.

예술의 궁극 ‘마음’

거울에 비친 사내의 얼굴에서 잔 표정이 사라지고, 굵고 흐리게 굳어가는 이방인의 모습을 발견하며 매번 놀라는 마음이 같잖아 허탈한 코웃음이 터진다. ‘그때가 청춘인 줄 알았겠냐?’고 회고하며. 그렇게 좋은 사람 없었는데… 그때는 사랑을 밀어내고, 사랑에게 도망치고, 왜 그렇게 못난 추억이 많은지. 추억은 연결 없이 조각난 필름으로 휑한 가슴을 지나는 가을바람의 차가운 톱날이 되어 때 없이 아픈 호흡이 터진다.

사내는 흔들린다. ‘아무나 만나 일단 외로움을 메우라’는 환청이 들린다. 세상은 ‘사랑을 버리고 타협하라’고 주문한다. ‘살다보면 다 똑같은데… 너만 유난 떤다’고 말한다. ‘사랑 별거 아니다’라고 발치의 깡통 차듯이 말한다.

사랑은 소설이나 드라마 노래가사 나영화 속에서 발견하는 위안이라고, 그 위안을 현실에서 이루려면 돈이 받쳐줘야 하고, 돈이 지름길이니 차라리 돈을 사랑하라는 잔인한 현실의 지뢰를 매설한다.


유혹의 수단이 꽤 있으니 연기력으로 누군가를 길들여 비워진 가슴을 채우라는 주문을 토하다가 고개를 획 저어 근사한 무게의 마음을 듣는다. 아픈 건 아프다. 그러나 ‘한번이며 영원한 사랑이 남았노라’ 뻔뻔하게 나이 먹어가는 사내의 마음이 대견하기도 하다. 비워지고 헐은 가슴이건만 순정했던 시절에 담긴 사랑의 풍경 그 아름다운 착각에 대한 열망은 남아 있다.

그리하여 다부진 마음으로 영화 목록을 뒤적이다가 일본영화 한 편을 찾아냈다. 나는 영화 보는 장르의 식성이 다양하다. 스토리 구성이 잘 짜이고 풍경을 섬세하게 연출한 작품은 장르를 불문하고 좋게 본다. 영화는 만든 이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고 믿는다. 같은 재료의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지만 어떤 그림은 헐값이고, 어떤 그림은 수십억 가치를 가지듯 예술의 궁극은 작품 속에 담긴 마음의 가치이며 영화도 똑같은 원리가 적용된다고 본다.

만든 이의 마음이 잘 담긴 주옥같은 멜로
사랑을 발견하고, 하고 싶게 만드는 영화

그리고 내게 영화는 인연이다. 전혀 모르는 타인 같지만 영화는 때로 에너지를 주고 때론 추억으로 삶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잘 기억해 보자. 정말 감정이 풍부한 멜로영화에 몰입한 뒤 그 감정이 식기 전 누군가를 만났을 때 우린 영화 속 주인공처럼 멋진 감정을 전달하며 뭔가 대단하고 의미 있는 시간을 공유한 적이 있지 않았던가.

일상의 스트레스가 몰려올 때는 스펙터클한 액션을, 왠지 무기력할 때는 휴먼을, 함께 즐기고 싶다면 로맨틱 코미디를, 경계의 선을 염탐하는 재미는 잔혹 심리 스릴러를, 그리고 쓸쓸한 가을 마른 감정이 원망스러울 때는 멜로영화를 선택하게 된다.

사실 나도 비극적 설정의 멜로영화는 그다지 즐기는 편이 아니다. 비극적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의 스토리는 대부분 비슷하고 완성도가 모자란 작품이 많기 때문이다. 액션, 로맨틱 코미디의 평균에 비해 비극적 멜로의 완성도가 부족한 요인 중에는 관객에게 과도한 감성을 주입하려는 경우가 많다.

스토리에 빨려 들어가는 멜로영화를 찾기란 정말 쉬운 게 아니다. 좋은 스토리라도 실력 있는 감독, 배우, 스텝의 깊은 공감대로 영화를 구성하지 못하면 대번에 유치해지고 공감을 얻지 못한다(물론 보는 이의 감정 상태도 중요하다. 정말 재미없게 본 영화를 재밌게 보는 사람도 있다). 사실 멜로 영화만 뻔한 스토리는 아니다. 액션이건, 스릴러건, 판타지건 뻔한 스토리가 허다하다. 요는 뻔한 스토리에 ‘어떤 마음이 담겼는가’라는 얘기다.


자, 그럼 만든 이의 마음이 정말 잘 담겨있는 슬픈 멜로영화 한 편을 소개한다. ‘중년 총각이 이런 영화를 소개하다니, 그것도 교복을 입은 학원 멜로를… 아줌마 다 됐군’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런 평은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 영화를 소개한다. 어차피 보는 이는 보고, 느끼는 이는 느끼고 하는 것이니… 굳이 봐도 안 보이는 이들에게 권하는 영화는 아니다.

<연공>을 보고 많이 울었다. 사랑은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었는데…. 사랑 없이 나는 오늘을 무엇으로 괜찮은 척 버티고 사는지 모르겠다. 이 영화는 사랑을 발견하게 한다. 사랑하고 싶게 만든다. ‘아 나도 저랬었는데…’하며 적응에 충혈된 고단한 영혼을 한 순간 위로한다. 전화기 끄고 눈을 크게 뜨고 볼륨을 높여서 혼자 영화를 감상하길 바란다. 연인이 함께하면 더욱 좋을 듯싶다.

예상 뛰어 넘는 영화

스토리를 영화에 맡기고 보자. 예상하는 영화가 아니다. 속는 즐거움을 주는 마술을 보며 까만 천막 뒤의 의심을 버리자. 2005~2006년에 등장한 모바일 소설. 이 소설은 당대 일본 청춘들의 가슴을 뒤집고 일본 열도를 흔들 만큼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영화의 여주인공 이름과 똑같은 저자 ‘미카’가 모바일에 올린 소설 <연공>이었다. 그 반응은 여성감독 이마이 나츠키에 의해 2007년 영화로 개봉하며 일본 청춘의 마음을 연쇄 폭발시킨다. 여주인공 아라카키 유이의 오버 없는 담담한 연기가 너무 좋다.

말만한 사내를 훌쩍이게 만드는 이 영화의 풍경이 너무 좋다. 혹자는 볼품없이 진부한 이야기라 말하기도 하지만 나는 단언컨대 이 영화처럼 예쁘고 감성을 살리는 영화가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사랑을 다시 찾게 해 준 영화 <연공>에게 감사하다. 이 영화로 인해 사랑의 의미를 다시 새기는 분들 몇은 있으리라.

 

<www.전창걸.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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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