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기획> 재계 총수들 진짜 피서법

아무때나 가면 되지…피크 시즌엔 ‘방콕’

[일요시사=경제1팀] 한종해 기자 = 본격적인 여름휴가 시즌이 시작됐다. 이맘때면 궁금해지는 게 '돈 많은' 재벌총수들의 휴가 계획이다. 재벌그룹의 대답은 한결같다. "휴가가 뭐냐?"는 것. 총수들의 잇단 구속으로 인한 경영 공백, 건강 악화, 유동성 위기, 실적 부진 등 각종 악재로 뒤숭숭한 재계의 휴가 풍경을 들여다봤다.

"특별한 계획이 없다" "하반기 경영구상에 몰두한다" "자택에서 가족과 함께 보낸다" 총수들의 여름휴가를 묻는 질문에 각 그룹 홍보실들은 비슷비슷한 공식 답변을 내놨다. "휴가가 뭐냐?"고 반문하는 기업도 있었다.

재벌 총수들의 잇단 구속으로 인한 경영공백, 건강 악화, 경쟁력 약화에 따른 유동성 위기, 유례없는 글로벌 업황 악화로 인한 실적 부진 등 각종 악재가 덮친 대기업의 총수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별다른 휴가 계획을 잡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차이는 존재한다. 자진해서 '안 가는' 회장님이 있는 반면, 어쩔 수 없이 '못 가는' 회장님도 있다.

할일 태산인데
휴가는 무슨…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여름휴가 기간 자택에 머물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은 그간 현대·기아차 공장이 휴무에 돌입하는 때에 맞춰 공식적인 휴가 일정을 잡아왔다. 현대·기아차는 오는 8월4일부터 5일 동안 울산 등 전국의 공장·연구소 등 모든 사업장이 휴무한다. 정 회장은 이 기간 동안 회사로 출근해 업무를 볼 가능성도 있다.

현대차는 미국 시장과는 다르게 유럽 시장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자료를 보면 현대차는 지난 5월 유럽연합(EU)과 유럽자유무역연합(EFTA) 국가에서 3만5636대를 판매, 전년 동기보다 3.1% 감소한 수치를 기록했다. 정 회장이 지난해 10월과 지난 3월 유럽 현지를 찾는 등 유럽 시장에 대한 큰 관심을 보이는 것과 대립되는 구도다.

현대차는 유럽에서 2분기 신형 제네시스를 선보이고 있으며 하반기 신형 i20 출시로 실적 부진을 이겨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 회장은 현대차의 하반기 사업목표가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점검활동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7월 말부터 8월 초 사이 휴가 기간을 잡은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서울 용산구 한남동 자택에서 하반기 경영구상을 한다는 계획이다. 외부 일정은 지양한다.
 

LG그룹은 하반기 큰 이벤트가 예정되어 있다. 그룹 연구개발(R&D)센터로 '마곡 LG 사이언스 파크'가 착공에 들어간다. 이를 기반으로 LG그룹은 올 하반기 본격적인 성과 창출을 위해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 방침이다. 먼저 LG전자는 스마트TV, UHD(초고해상도) TV,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TV 등 전략 제품을 앞세워 세계 TV시장을 공략한다는 방침이다.

스마트폰사업에서는 G3 출시를 통해 프리미엄 시장을 공략하고 LG디스플레이는 TV와 스마트폰사업을 지원하기 위한 역량 강화에 집중할 예정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는 허창수 GS그룹 회장과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맡고 있는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은 휴가와 회사 일정을 맞물리게 잡았다.

허 회장은 7월23∼26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리조트에서 열리는 전경련 '최고경영자(CEO) 하계포럼'에 참석한 뒤 짧은 휴식을 취하며 하반기 경영 구상을 할 계획이다. 박 회장은 7월23일부터 3박4일간 제주 롯데호텔에서 열리는 대한상공회의소 제주포럼에 참석했다가 남은 기간은 자택에서 휴식을 취할 예정이다.

"별다른 일정 없다"는 대외용 홍보성 멘트
개인별장·출장 핑계로 해외서 '유유자적'

이재성 회장을 포함한 현대중공업 경영진은 아직 일정과 장소 등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올해도 마찬가지로 중동과 유럽 등 해외 공사현장과 현지법인을 방문해 현장 경영활동을 펼칠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중공업 경영진은 매년 해외를 찾아 현지 직원들을 격려하는 것으로 휴가를 대체해 왔다. 매년 명절 연휴에도 해외 사업장을 방문해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수 없는 직원들을 격려해왔다.

"휴가를 논하는 것조차 사치"라는 기업도 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이 대표적이다. 박 회장은 올해 휴가를 반납했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이다. 지난해에는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사고 수습에 전념하느라 휴가 갈 엄두를 못 냈다. 

올해 여름휴가 기간 박 회장은 금호타이어와 금호산업의 워크아웃 졸업을 목표로 휴가기간 회사 경영을 진두지휘할 것으로 보인다.

박 회장은 올해 초 금호건설 전략경영세미나에 참석해 "기필코 올해 워크아웃을 졸업하자"고 강조한 뒤 새로운 도약을 이뤄내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금호타이어와 금호산업은 2010년부터 5년째 워크아웃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에는 금호산업 구조 조정안을 놓고 진통을 겪기도 했다.

박 회장은 지주사인 금호산업의 대표이사를 직접 맡아 경영 정상화를 지휘해 왔다. 주말을 반납하고 그룹 임직원들과 산행을 하고 세미나 등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등 현장경영을 이어 왔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도 특별한 여름휴가 계획이 없다. 주력 계열사인 대한항공이 여름철 성수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순항 길에 접어든 한진해운 정상화도 현안이다. 휴가철에도 평상시처럼 정상 출근해 업무를 챙길 예정이다.

방에 콕 박혀
하반기 경영구상

조 회장은 지난 4월 한진해운을 품에 안으며 '부활'을 자신했다. 계열분리를 통해 독립경영을 꿈꾸던 최은영 한진해운 회장은 해운업 불황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한진해운의 핵심 사업을 시아주버니인 조 회장에게 완전히 넘겨줬다. 최 회장은 한진해운 일부 사업만 떼어내 독립했고, 핵심 사업은 한진그룹으로 편입됐다.

지난 5월 한진해운 대표로 선임된 조 회장은 흑자 전환까지는 월급도 받지 않겠다며 한진해운 정상화를 목전 과제로 내건 상황이다.
 

수감된 최태원 SK회장을 대신해 SK그룹을 이끌고 있는 김창근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은 아예 휴가를 고려하지 않는다.

SK그룹은 매월 한차례씩 계열사 CEO들이 모이는 수펙스추구협의회를 통해 집단 경영을 하고 있다. 최 회장이 지난 2월 말 대법원 유죄 판결을 받으며 경영 일선에서 떠났고 그룹 경영에서 수펙스추구협의회의 비중이 커진 상태다. 지난달 27∼28일에는 경기 용인의 'SK아카데미'에서 비공개 워크숍을 열고 '끝장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CEO들이 대거 참여해 이틀간 합숙토론 행사를 벌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룹 전체를 휩쓸고 있는 위기감이 그 어느 때보다 큰 지금 상황에 그룹 CEO의 휴가 거론은 어불성설이다.

뒤숭숭한 재계
"휴가가 뭐냐?"

2008년 이후 휴가 없는 여름을 보내고 있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도 올해 역시 별다른 휴가 계획이 없다. 현 회장은 해마다 8월4일 고 정몽헌 회장 기일 때마다 강원도 금강산에서 열리는 추모식을 휴가를 겸해 다녀왔다. 하지만 2008년 이후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어 그룹이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여름휴가를 떠나지 않았다.

구자열 LS그룹 회장도 2012년 11월 취임한 이후 한 번도 휴가를 간 적이 없다. 올해도 구 회장은 여름휴가를 미뤘다. 지난해 원전 케이블 품질 문제로 바닥을 치는 회사 이미지를 살리기 위한 경영에 몰입하고 있다. 사실상 휴가 계획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올해 초 경주 마우나 리조트 붕괴 사고로 풍파를 겪고 있는 이웅렬 코오롱 그룹 회장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통상 2∼3일 정도 휴가를 보냈지만 올해는 휴가를 안 갈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회사 사정과는 무관하게 순전히 개인 사정으로 휴가를 '못 가는' 총수들도 있다. 와병 중인 총수들이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올 여름 자택에 머물며 치료에 전념할 계획이다. 2012년 8월 배임·횡령 혐의로 구속된 김 회장은 지난 2월 파기환송심을 통해 징역 3년에 집행유례 5년, 벌금 51억원, 사회봉사 300시간을 선고받으면서 족쇄가 풀렸다. 하지만 구속기간 동안 건강은 악화됐다. 김 회장은 만성 폐질환으로 인한 호흡공란, 당뇨, 우울증, 섬망 등의 증세가 겹쳐 서울대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아왔다. 김 회장은 지난 3월과 5월 신병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향하기도 했다.

회사 어려워 못가고
몸이 아파서 못가고
구속 처지라 못가고

재계 1위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에버랜드 패션사업부문 사장 등 오너 일가 모두는 이건희 회장이 한 달 넘게 입원해 있는 상황이라 자리를 비우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지난 5월10일 서울 한남동 자택에서 호흡곤란 증상을 호소, 자택 인근 순천향대학병원 응급실로 긴급 이송돼 심폐소생술(CPR) 등 응급조치를 받았다.

이후 삼성서울병원 심장외과 중환자실로 옮겨진 이 회장은 혈관 확장술인 ‘스텐트 삽입 시술’을 받고 같은 달 13일부터 뇌와 간 등 장기의 손상을 막기 위해 진정치료를 받았다. 입원 9일 만인 5월19일에는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최근에는 8∼9시간 정도 눈을 뜨고 손발을 움직이는 것은 물론 상대와 눈을 맞추는 등 외부자극에 대해 점차 강한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은 간 이식 수술을 받기 위해 대기 중이다. 2011년 간암 3기 판정을 받은 이 전 회장은 서울아산병원에 입원 중이다.

'쇠고랑'을 차고 있는 총수들도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의정부교도소에서 징역살이를 하고 있다. 최 회장은 회삿돈 수백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4년형을 확정 판결 받고 1년6개월째 수감 생활을 하고 있다. 최 회장은 독방을 쓰며 하루 1시간 정도 바깥 운동을 하며 독서에 열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영 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완전히 손을 뗀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면회 온 임원을 통해 '옥중메모'를 전달하고 "위기를 잘 극복해달라"고 임직원들에게 당부하기도 했다.

지난달 27일 열린 SK그룹 연례 워크숍에서 공개된 최 회장의 옥중메모에는 "경영 환경이 매우 어려운 가운데 열심히 뛰어 준 경영진과 구성원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며 "SK의 역사가 위기 극복을 통해 성장해온 만큼 이번 위기도 잘 극복해 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또 "수펙스추구협의회와 김창근 의장을 중심으로 '한마음 한뜻'으로 단결해 현 어려움에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가고 싶어도
못가는 이유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은 6500억대 분식회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효성은 박근혜 정부의 타깃이었다. 새정부 출범 직후 국세청에서 효성그룹에 대해 대규모 특별세무조사를 벌였고 검찰은 그룹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를 전개했다. 검찰은 98년 외환위기 직후 종합상사의 부실을 10여년 이상 분식회계 했다면서 조 회장에 대해 배임·횡령·탈세혐의로 기소했다. 현재 세 번째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1657억원의 탈세·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4년에 벌금 260억원을 선고받은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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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