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경제팀] 김설아 기자 = 세월호 침몰 사고로 해양수산부가 수술대에 올랐다. ‘해피아(해양수산부+마피아)’란 단어까지 생겨났다. 해수부 출신 퇴직 관료들이 해양 안전이나 운항을 담당하는 산하기관에 ‘낙하산’으로 내려가면서 선박관리 부실을 부채질했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이른바 ‘셀프 감독’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해피아의 실체를 추적해봤다.
해양수산부(해수부) 마피아들의 커넥션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해수부 출신 관료가 퇴직 후 관련 기관이나 해운 업체로 재취업하면서 해수부와 산하 기관, 해운업계로 이어지는 삼각 고리가 형성돼 있다는 것.
낙하산 천국
해수부 일을 위임받은 산하기관은 무수히 많다. 선박 안전점검을 수행하는 일을 위임받은 한국선급부터 선박 도면 승인과 같은 안전검사 업무를 맡은 선박안전기술공단, 해운사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승선자 명단 등을 확보하고 있어야 하는 해운조합 등 14곳에 이른다.
실제 이 중 10곳의 기관장이 해수부나 국토해양부 전직 관료들인 이른바 ‘해피아’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임기택 부산항만공사 사장은 1984년 사무관 특채로 공직에 입문해 해수부 홍보관리관, 안전관리관 등을 역임했다. 국토해양부에서는 해사안전정책관, 중앙해양안전심판원장 등을 맡은 뒤 2012년 국내 최대 항구인 부산항만공사 사장에 취임했다.
김춘선 인천항만공사 사장은 행정고시 21회 출신으로 인천지방해양수산청장, 국토해양부 물류항만실장 등을 역임했다. 2011년 인천항만공사 사장에 올랐다.
여수광양항만공사 수장 역시 해수부 감사관 출신의 선원표 사장이다. 선 사장은 1급인 중앙해양안전심판원장을 역임한 뒤 올해 사장에 취임했다. 울산항만공사는 행시 25회로 공직에 입문한 박종록 사장이 2011년부터 맡고 있다. 박 사장은 해수부에서 국제협력담당관, 해양환경기획단장 등을 역임했다.
박 사장과 행시 동기인 곽인섭 해양환경관리공단 이사장은 국토해양부에서 물류정책관, 물류항만실장 등을 거쳐 2011년부터 4년째 공단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부원찬 선박안전기술공단 이사장도 해수부 감사담당관, 여수지방해양항만청장 등을 역임했다.
해수부 산하 14곳 중 10곳 해수부 퇴직 관료
한국선급· 해운조합 등 민간기관까지 손뻗쳐
정형택 해양수산원장은 1985년 공무원 특채로 공직에 입문한 인물. 2001년 국제해사기구(IMO) 파견관, 2007년 중앙해양안전심판원 심판관을 거쳐 2010년부터 부산지방해양안전심판원 원장을 역임한 뒤 2012년 해양수산원장 직에 올랐다. 류영하 항로표지기술협회장은 해양수산부 총무팀장, 연안계획과장을 역임하고 2011년 이사장에 취임했다.
임광수 한국해양과학기술진흥원장, 방기혁 한국어촌어항협회장 등도 해수부와 농림수산식품부 등에서 1급을 역임한 해수부 고위공무원 출신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한국선급, 한국해운조합 등 해양 안전 및 운항을 담당하는 민간기관에도 해수부 출신이 진출해 있다. 이번 세월호 선박 검사를 위임받은 민간기관인 한국선급은 1960년 사단법인으로 출범한 이래 11명의 회장 가운데 8명이 해수부와 그 전신인 해무청, 항만청 출신이다. 한국해운조합 역시 대표적인 해수부 관료들의 재취업 자리다. 현직 주성호 이사장 등 1962년 이후 재직한 역대 이사장 12명 중 10명이 해수부 고위 관료 출신이었다.
정부를 대신해 선박 도면 승인 등의 안전 검사를 하는 선박안전기술공단도 해수부 감사담당관 등을 지낸 부원찬 전 여수지방해양항만청장이 이사장 자리를 맡고 있다.
이처럼 ‘해피아’들이 해양 안전이나 운항을 담당하는 산하기관에 낙하산으로 내려가는 유착고리가 형성되면서 관련 업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선박 수입부터 객실 증축, 안전검사, 운항 안전점검까지 온전한 데가 없었다는 지적이다.
실제 한국선급은 지난 2월 세월호의 구명정 46개 중 44개가 안전하다고 진단했지만, 사고 당시 정상적으로 펼쳐진 구명정은 단 1개에 불과했다. 이 기관이 실시한 세월호의 선미 증축 안전점검도 부실했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한국해운조합 역시 세월호가 인천항을 떠나기 전 승객명단이나 화물적재량을 제대로 점검치 않고 출항을 허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국회에서는 부실·비리를 부추기는 일명 ‘관료 낙하산’ 방지 법안을 마련 중이다.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은 “공직자의 퇴직 후 취업제한 대상을 현행 사기업이나 법무법인 등에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출자·출연·보조를 받는 기관·단체 및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업무를 위탁받아 수행하는 기관·단체(공직유관단체)로 확대 적용하는 공직자윤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마련, 발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 의원은 “세월호 출항 전 안전점검을 맡은 한국해운조합은 엉터리 허위보고서를 승인해 주었다”며 “18년 된 중고 배를 수입한 후 객실을 증축하여 배의 무게중심이 위로 올라가 안전에 위해요소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은데도, 선박 안전검사를 맡은 한국선급 역시 세월호를 버젓이 합격시킨 의혹이 있다”고 꼬집었다.
‘검은유착’ 정조준
현행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퇴직 전 소속부서 업무와 밀접한 업무관련성이 있는 사기업체나 법무법인 등에 한해서만 퇴직공직자의 취업을 제한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가까운 나라 일본은 특수법인이나 공공단체로의 낙하산 인사로 스캔들이 계속 발생해 90년대 말부터 사기업 외에 공익법인 등에 대한 취업제한 규정을 두고 있다”며 “프랑스도 취업제한대상에 공기업과 비영리법인을 포함하고 있고, 독일은 퇴직 후 모든 영리활동을 신고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나라 역시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이 시행돼 ‘공직유관단체’의 안전관리 등 위탁업무 수행에 있어 공정성과 책임성이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