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유가족 가슴에 못질한 사람들 ③진도발 살생부 리스트

총리가 총대? "됐고! 대통령이 책임져야지"

[일요시사=사회팀] 강현석 기자 = 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이 비통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무능한 정부에 대한 불신 여론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정치권 안팎에선 박근혜정부가 출범 후 최대 위기를 맞았다는 것에 이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지방선거를 앞둔 여권에서는 "어느 정도 사태가 수습되면 내각이 총사퇴할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올 초부터 무성했던 개각설이 구체화된 모습이다. 그러나 "책임질 사람은 따로 있다"는 반론도 팽팽히 맞서고 있어 박근혜 대통령의 선택에 관심이 쏠린다. 그야말로 죽느냐 사느냐다.

"대한민국이 침몰하고 있다." 경기 안산에 살고 있는 한 공무원은 지난 24일 새벽 개인 신분으로 합동분향소에 조의를 표한 후 착잡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와 함께 조문에 나선 다른 공무원들도 100여개의 영정사진을 멍한 얼굴로 바라볼 뿐이었다. 몇몇은 눈시울을 붉히다 끝내 터진 울음을 참지 못했다. 이들은 한 목소리로 말했다. "누가 우리 아이들을 죽인 것일까.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공직사회 곳곳
정부 불신팽배

7급 이하 하위직 공무원들은 서울 곳곳에서 안산으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윗분'들에 대한 성토를 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부실로 일관한 재난구조시스템, 눈치 보기 급급한 중앙 정부부처 책임자들, 대안 없이 아랫사람에게 호통만 치는 청와대. 그들은 "이대로는 안 된다"고 의견을 모았다.

스스로 보수성향이라고 밝힌 한 공무원은 "그래도 지난 정권 당시 발생한 광우병 사태 때는 정부가 한 일에 비해 욕을 과하게 먹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번만큼은 정부가 잘한 게 하나도 없다"면서 "아무리 욕을 해도 응어리진 마음은 풀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무에 속박된 공무원들은 각자의 가슴에 침통함을 안고 이날 자리를 해산했다. 그 어느 때보다 마지막 인사가 무거웠다. 그들은 "우리(공무원)가 욕을 먹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서도 "퇴근하면 우리 역시 한 시민일 뿐인데 왜 할 말이 없겠냐. 그러니까 (우리가 못하니까) 너네(기자)들이 더 잘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안타까워했다. 무능한 정부에 대한 불신이 생각보다 깊어 보였다.

익명을 요구한 사정기관 관계자도 애써 슬픔을 감췄다. 그는 "사실 다수 언론의 보도 행태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이 말만은 꼭 해야겠다"면서 "(우리가) 부정부패를 잡으면 뭐하나. 죽은 아이들이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닌데. 유가족들이 이걸 원할까. 아니잖아. 그게 아니라 이런 식으로 할 거면 누님(박근혜 대통령)부터 솔선수범해서 책임을 지든 옷을 벗든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그는 "국민 전체가 죄의식을 갖고 있는 상황에 '모두가 죄인이다'는 식의 접근은 곤란하다"며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할 사람은 따로 있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누가 책임을 져야한다는 말일까.

실패한 내각
총사퇴 모락

박근혜정부 1기는 사실상 실패한 내각으로 정리되는 분위기다. 그간 윤창중 성추문 사태, 채동욱 찍어내기 의혹 등 공직자들의 윤리·준법문제가 끊이지 않았던 이번 정부는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국가위기대응시스템의 허점을 드러내며 무능력한 정부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정치권에서는 "스펙을 위주로 한 박사·고시 출신들이 장악한 관료집단의 한계가 이번 사고를 통해 명확해졌다"며 내각 총사퇴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흔히 '해피아'라고 하는 집단도 따지고 보면 행정고시 출신 공무원들이 서로의 이익을 대변하면서 성장한 것"이라며 "조직 내외적으로 봤을 때 대대적인 개혁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여권 관계자도 비슷한 의견이었다. 그는 "내각을 구성하고 있는 장관급 모두가 BH(청와대)에 사표를 던지고, 그중 일부를 수리하는 형태가 돼야 한다"면서 "사고 수습이 먼저냐 책임이 먼저냐를 놓고 의견이 엇갈리는 중이지만 아무래도 지방선거 전에 개각이 이뤄져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이고 있다"고 전했다.


국회에 출입하고 있는 한 정치부 기자 역시 당직자들의 말을 인용해 "이대로 가면 지방선거에서 필패할 거라는 위기감이 당 내에서 커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그는 "사건이 어느 정도 커졌을 때 미리 선을 긋는 것이 여권에 유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기서 복수 관계자가 공통으로 동의한 마지노선은 정홍원 국무총리의 사퇴였다.

정홍원 총리 이하 장관급 줄사퇴 예고
총체적 부실 "물러날 사람 따로 있다"

실제 정 총리는 지난 27일 오전 10시께 서울 세종로정부중앙청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사고 예방에서부터 사고 이후의 초동대응과 수습 과정에서 많은 문제들을 제 때 처리하지 못한 점에 대해 정부를 대표해 국민여러분께 사과드린다"며 사퇴의 뜻을 밝혔다. 그는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비통함에 몸부림치는 유가족들의 아픔과 국민여러분의 슬픔과 분노를 보며 국무총리로서 응당 모든 책임을 지기로 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 총리는 그간 박근혜정부의 공식 2인자로 자리했다. 그러나 그가 이번 정부의 실질적 2인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국무총리라는 막중한 지위에도 정 총리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청와대 지근에서는 "VIP(박근혜 대통령)가 워낙 권력을 틀어쥐고 흔드는 스타일이다 보니 정 총리 개인의 판단으로 행정 처리를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변명도 들린다.

다시 말하면 결재는 뒤에서 박 대통령이 하고 욕은 앞에서 정 총리가 먹는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박 대통령의 독단을 제어하거나 국정운영을 조정해야 할 위치에 있는 정 총리가 제구실을 했었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사고 수습과정에서 정 총리는 범정부사고대책본부(이하 범대본)를 꾸려 지난 18일부터 현장을 지휘했지만 사망자와 실종자 집계에서 착오를 하는 등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듣고 있다. 정 총리는 해양수산부와 해양경찰청 등 유관기관을 총괄 지휘하는데 미숙함을 드러냈으며, 부처 간 협조를 이끌어내는데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정 총리는 범대본 본부장이 됐다가 며칠 뒤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본부장 자리를 내주는 등 혼란을 자초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지난 24일 실종자 가족들은 진도군청에 임시 마련된 범대본 상황실을 방문해 "박 대통령이 직접 사고 수습을 총괄하라"며 항의하는 등 격양된 모습을 보였다.

이 자리에서 가족들은 이 장관을 만나 "정 총리에게 얘기해도 되는 게 없다”며 “총리가 시켰는데도 (현장 공무원들이) 안 하더라"고 화를 냈다. 또 가족들은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죽었는데 무슨 해양수산부 장관이 구조작업을 지휘하고 있냐"며 불신을 드러냈다. 박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기 전까지는 아무도 믿을 수 없다는 눈치였다.

숨은 박근혜
뒤에선 살생부

누구보다 여론의 동향에 민감한 청와대는 이 같은 분위기를 파악했다고 전해진다. 때문에 개각은 기정사실이며 그 수준과 방법, 시기를 놓고 청와대를 비롯한 여권 수뇌부가 고심했던 것으로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김한길‧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는 정 총리의 사의 표명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청와대를 강도 높게 비판하고 나섰다. 그들은 "가뜩이나 총체적인 난맥상에서 총리가 바뀌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겠냐"며 "지금 이 시점에서 지극히 무책임한 자세이며 비겁한 회피"라고 비난했다. 또 "이것이 국민에 대한 책임인가"라며 "총리 이하 내각은 우선 상황 수습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앞서 새정치민주연합은 정 총리 개인의 사퇴가 아닌 내각 총사퇴 카드로 여권을 압박했다. 최근 있었던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설훈 의원은 "모든 국무위원이 함께 물러남으로써 상황을 수습할 것을 대통령에게 건의해야 한다"고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말했다. 발언 전 설 의원은 "지금은 사고 수습 중이라 이런 말씀을 드리기 어렵지만"이라고 단서를 달았지만 파장은 컸다. 


그러나 현 부총리는 "지금은 실종자 수색과 구조가 최우선인 만큼 여기에 최대한 노력하겠다"며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혔다. 총리실 관계자 역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인들은 총리 사퇴 얘기를 할 수 있어도 아직 행정부에서는 그런 말이 나오는 분위기는 아니다"라며 "지금은 사고 수습이 우선이고 사퇴 얘기가 나오더라도 사고 수습 이후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정 총리가 사퇴하자 관가는 술렁이고 있다.

정 총리와 나란히 경질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는 이 장관이나 강병규 안전행정부 장관은 임명된 지 몇 달 지나지 않은 상황이라 청와대가 앞장서 옷을 벗기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고개를 들고 있다. 즉 이들 스스로가 책임을 지고 물러나지 않는 한 내각 총사퇴는 공염불에 불가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강 장관과 관련한 첩보를 모으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그 배경에 '찍어내기'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지피고 있다.

서남수 교육부장관도 여당발 살생부에 이름을 올릴 것으로 관측되고 있지만 정권의 신임이 비교적 두터운 상황이라 경질될지는 미지수다. 다른 장관급 인사와의 형평성을 고려해야 하는 까닭이다.

박근혜정부 최대 위기…MB 광우병 때 흡사
정치권 지방선거 앞두고 내각 총사퇴 요구

물론 상식적으로 봤을 때 경질의 빌미는 충분하다. 서 장관은 실종자 가족들이 오열하고 있는 진도체육관에서 의전용 의자에 앉아 컵라면을 먹는 모습이 포착돼 공분을 샀다. 그러나 청와대는 "라면에 계란을 넣어 먹은 것도 아니고 쭈그려 앉아 먹은 것"이라며 서 장관을 두둔했다고 한다. 여러 정황상 청와대는 서 장관의 해명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역시 "재난 컨트롤타워는 청와대가 아니다"라는 식의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다. 정부 매뉴얼상 국가적인 사고나 무력에 의한 테러가 발생하면 국가안보실이 이를 대통령에게 보고토록 돼 있다. 하지만 김 실장은 이번 세월호 참사가 '재난' 상황이므로 청와대의 책임이 없다는 취지의 해명을 했다.


그러나 시민단체인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는 해양수산부의 해양사고 매뉴얼을 공개하며 김 실장의 발언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국가안보실은 재난이 발생했을 때 꾸려지는 중앙사고본부를 비롯해 수색구조본부, 국방부, 환경부 등 유관기관보다 상위 보고체계에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관계기관으로부터 모든 정보를 보고 받고, 다시 지시를 내리는 '컨트롤타워'인 것이다. 김 실장 책임론이 불거지는 이유다.

 

책임회피 급급
윤리의식 마비

그렇지만 이번 개각 리스트에 김 실장이 포함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김 실장을 징계하는 건 청와대의 사고 책임을 인정하는 것과 다름없는 까닭이다. 구조 과정에서 미흡함을 보인 김석균 해양경찰청장 역시 같은 이유로 살생부에서 배제될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청와대발 살생부는 각 부처 장관들은 있지만 청와대 핵심참모는 없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를 두고 청와대 지근에서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란 비난 여론이 만만치 않다. 한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는 "청와대 내 정보 보고체계가 매끄럽지 않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이번 사태 전개를 보니 그런 의심이 더 든다"며 "사고가 터진 직후 청와대가 잘못된 보고를 받고 낙관론을 펼친 것도 그렇고, 대통령의 상황 파악이 현장 상황과 시간차를 보였던 것도 그렇고, 어쩌면 '그분'을 너무 의식해서 중간 전달이 왜곡된 건 아닌지 잘 살펴야 한다"고 조언했다.

즉 잘못된 상황 판단으로 초기 대응이 늦어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번 참사를 계기로 청와대 내 보고체계를 뒤틀고 있는 '제3의 인물'이 드러날지 관심이 모아진다.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청와대 이상기류 '박지만 라인' 몰락?

조응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최근 사표를 제출해 수리 절차를 진행 중이라고 지난 22일 청와대가 밝혔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가진 브리핑을 통해 "조 비서관은 본인 인생의 다른 길을 걷기 원해 사표를 제출했다"며 이같이 알렸다. 조 비서관은 사표를 제출하기 1주일 전부터 출근하지 않고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조 비서관은 박근혜정부 출범 당시 민정수석실 소속 공직기강비서관에 임명됐으며, 지난 1년여간 고위공직자 인사검증 등의 업무를 수행했다. 그러나 조 비서관이 급작스러운 사의를 표명한 것과 관련해 사임 배경으로 정권과 관련한 정보를 외부로 표출시킨 것에 대한 문책이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되고 있다.

또 그는 최근 비위사실이 있는 청와대 행정관들의 원대복귀 논란과 관련해 감찰 내용을 외부로 유출했다는 소문에 시달리고 있다. 아울러 조 비서관은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씨와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조 비서관의 사임을 청와대 내 '박지만 라인'의 몰락으로 연결시켜 보는 시각도 있다.

한편 국군사이버사령부 정치 관련 댓글 관여 의혹을 받아온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 연제욱 국방비서관은 지난 21일 군 장성 정기인사에서 교육사령부 부사령관으로 보직 변경됐다. 그는 청와대 파견 전인 지난 2011년부터 2012년까지 국군사이버사령관으로 근무했으며, 군 사이버사 정치 댓글 사건의 몸통으로 의심돼왔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본인의 요청에 따라 인사를 한 것"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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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