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사회팀] "가방을 만든다. 그 전에 가방을 만들기 위한 원단부터 만들어야겠다. (원단에) 색을 입히고 문양을 더한다. 원단의 형태를 변형시키기도 한다. 때론 다른 재료와 결합을 해본다." 섬유공예가 조영주 작가의 작업노트를 보면 그의 작업은 무척 담백하게 묘사돼 있다. 그러나 원단을 염색하고, 프린팅하고, 바느질하는 과정, 그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은 모두 형용할 수 없는 가치를 담고 있다. 틀에 구애받지 않는 다양한 작업을 통해 오늘도 세상과 소통하고 있는 조 작가. 아이디어 넘치는 그의 작품은 우리에게 행복을 전하고 있다.
섬유공예가 조영주 작가는 스마트폰을 쓰지 않고 있다. 독일 유학파 출신으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젊은 작가’지만 그의 생활은 다분히 아날로그적이다. 크레파스로 해맑게 웃는 아버지의 모습을 그렸던 소녀. 어른이 되면서 반대도 많았지만 그는 결국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선택했다. "앞으로도 쭉 즐거운 작업을 하고 싶다"고 말한 조 작가. 그가 수놓고 있는 세상은 디지털화된 차가움과 한 발짝 빗겨서있다.
'행복전도사'
"부모님 뜻에 따라 어학을 전공했는데 제가 하고 싶은 건 공예였어요. 또래에 비해서 늦었지만 섬유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죠. 대학시험을 다시 준비하면서 공예에 필요한 인쇄법 같은 걸 틈틈이 익혔어요. 그런데 배울 게 엄청 많은 거예요. 독일로 유학을 갔는데 지금 생각하면 우리나라에서 아카데믹 과정을 밟지 않은 게 작업에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조 작가의 작업은 섬유부터 가죽, 말총에 이르기까지 여러 장르를 넘나든다. 그러나 다양한 작업을 아우르는 공통적인 요소가 있다. 바로 한글. 조 작가는 "학교 사람들은 저를 (아티스트가 아닌) 문화상품 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한글을 차용해서 그런지 구매대상은 또 외국인"이라며 웃음을 지었다.
"어릴 때부터 독일을 왔다 갔다 했는데요. 그곳 사람들은 한국을 잘 몰랐어요. 마지막으로 유학을 갔던 시기가 2007년인데 그때는 월드컵 이후라 남한과 북한을 구별하더라고요.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물어봤어요."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서양에서 배운 걸 토대로 동양적인 느낌을 접목하려다 보니까 한글을 쓴 것 같기도 해요. 또 같은 동양권이라도 중국은 색감이 화려해요. 그런데 전 부담 없는 톤으로 조절하려 노력했죠. 결과적으로 교수님은 한국적인 걸 더 좋게 평가했어요. 제가 배운 공예는 꼭 한 가지 정답만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다고 봐요."
국내에서 섬유작가는 다소 모호한 경계에 놓여 있다. 금속 작업을 한다고 하면 자연스레 반지를 떠올리고, 도자 작업을 한다고 하면 그릇을 떠올리기 쉽다. 그렇지만 섬유 작업을 한다고 하면 연상이 쉽지 않다. 더구나 섬유 공예는 의상디자인의 하위 범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 오는 안타까움을 조 작가에게 물었다.
아이디어 넘치는 작품 눈길
가죽·말총 등 다양한 소재
한글 차용한 디자인 특색
"흔히 사람들은 섬유 작품을 비싸다고 생각해요. 가령 에르메스와 똑같은 원료를 써서 가방을 만들면 가죽 값만 100만원 이상이거든요. 그런데 제값을 받기 쉽지 않아요. 작가가 만들었다는 인식이 부족한 거죠. 저 같은 경우는 좋은 원단을 쓰려고 노력해요. 국내에 없는 염료도 독일에서 공수해 오고요. 그렇지만 인식의 문제만은 아니에요."
"작가들 중에도 '상품'과 '작품'을 구분하지 못하는 분들을 종종 봬요. 상품화하겠다고 기획했으면 거기에 맞는 객관화된 가격을 매겨야겠죠. 실은 저도 예술가와 공예가 사이에서 늘 고민이에요. 얼마 전에는 제 작품을 대량생산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이 왔어요. 그렇지만 전 원단 단가를 낮춘다고 하기에 안 된다고 했죠. 공예라 하더라도 한땀한땀 정성을 들이는 건 순수예술과 같아요."
앞서 가방이나 스카프 등 실용성을 강조한 작품을 공개했던 그는 최근 EW갤러리서 입체 액자를 선보이는 등 작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예술성과 쓰임새의 조화, 생활 속의 공예를 슬로건으로 내건 ASOA는 조 작가의 버팀목 중 하나다. ASOA를 비롯한 동료 작가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고 싶다고 말한 조 작가. 봄의 향기를 한껏 머금은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잊고 있던 따스함이 가슴을 적시는 듯하다.
한땀한땀 정성
"너무 반듯하고 새것 같은 건 제 취향이 아니더라고요. 시간이 쌓이면서 자연스레 오는 변화. 고풍스러운 멋을 담고 있는 작품이 좋아요. 우리 중 누군가는 한정된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고급스러움을 선호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다가올 수 있는 공예품을 만들고 싶어요. 가령 가방을 만든다고 하면 금속작가와 협업을 해서 더 좋은 상품을 만들 수 있잖아요. 이런 관계 맺기 속에서 제 작업이 더 발전하지 않을까요?"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조영주 작가는?]
▲ 성균관대 일반대학원 써피스디자인 석사학위 및 동대학원 박사과정
▲ 독일 Reutlingen University 디자인대학원 섬유디자인 석사학위
▲ 개인전 4회 및 Craft Trend Fair(Coex) 기획부스전
▲ ASOA 그룹 상품전 외 다수 단체전
▲ 대학강사, 텍스타일 디자이너, Klarawerk(design studio)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