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사회팀] 서른넷. 평범한 사람이라면 새로운 도전을 주저할 나이. 하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한 소녀는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섬유공예가 이람 작가는 누구보다 자신의 삶에 치열했다. 현실이란 높은 담이 그를 에워싸고 있을 때에도 이 작가는 담 너머에 있는 세상을 그렸다. 인생이란 무한한 천에 자신의 꿈을 수놓고 있는 이 작가. 자연의 아름다움을 고귀한 손으로 옮기고 있는 이 작가를 <일요시사>가 만났다.
섬유 공예는 일반인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종류가 많다. 자수나 직조(위빙), 편물(니트), 홀치기염(천의 일부를 실로 묶은 뒤 염료를 묻혀 문양을 나타내는 방법) 등 각각의 공예법마다 구현 가능한 시각 효과는 천차만별이다.
두 번째 일본유학
이람 작가는 이중 양모(양털)를 원료로 한 펠트(섬유를 가공한 원단의 일종, 부직물) 공예를 선보이고 있다. 대다수 펠트공예가 알록달록한 색에 초점을 맞춰 염색에 공을 들이는 것과 달리 이 작가는 가급적 염색을 배제하고 천연 그대로의 양모를 조합하여 색을 만드는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저는 양모를 원료로 한 작품을 많이 했는데요. 큰 타피스트리로 벽면을 메꾼다든가 펠팅 처리된 원단으로 조형을 만드는 작업을 했어요. '한 가지 작업만 해야지' 그런 건 아니어서 앞으로의 작업 방향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고 있는데, 작지만 존재감이 큰 그런 작품을 하고 싶어요. 액자처럼 벽에 걸 수도 있고, 정원에 있는 나무 옆에 둘 수도 있고, 바닥에 깔 수도 있는 그런 작품, 그래서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그런 작품 있잖아요. 제 말이 너무 막연한가요?(웃음)"
이 작가는 예술가가 작품을 만든다는 것에 대해 "돈이 아닌 가치를 만드는 일"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그릇이나 옷장, 방석 같은 생활용품에도 인간이 지켜온 '공예의 가치'가 반영될 수 있다고 믿었다.
"우리가 마트 갈 때 들고 다니는 가방 있잖아요. 그걸 그림 같은 가방으로 만들면 어떨까요? 아니면 아이들 턱받이도 장난감 형태로 만들면 아이들이 재미있어 할 거고요. 또 가족사진처럼 벽면에 거는 걸개, 철사로 만든 화분을 생각할 수 있죠. 제 경우는 뜨개질을 활용해 브로치나 목걸이를 소일거리 삼아 만들고 있는데요. 여럿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예술이 많아졌으면 해요."
양모 원료로 천연 펠트
대형 타피스트리·조형 눈길
"강요 아닌 꿈 주는 사람 많아야"
이 작가는 동년배 작가보다 뒤늦게 작업을 시작했다. 어려운 가정형편과 뜻밖의 불행은 몇 번이고 그의 작업 의지를 시험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이 작가는 운명처럼 예술의 길로 돌아왔다. "돈이 안 되니 하지 말라"는 주위 만류에도 이 작가는 꿈이란 끈을 결코 놓을 수 없었다.
"저희 집 사정상 예대를 갈 수 없었어요. 하지만 '내가 뭘 위해 사는 걸까'하는 고민이 늘 있었죠. 대학생이 되니까 '이제는 정말 하고 싶은 걸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공장에 다니면서 유학자금을 모았고 일본으로 어학연수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하고 싶은 걸 했죠."
"동경예대를 준비하면서 도시락 가게 아르바이트를 했는데요. 가게 점장님이 정말 친엄마처럼 챙주셔서 지금도 생각나요. 재료비나 생활비를 대주시면서 '이 마을에 정말 멋진 건물이 있는데 나중에 거기서 네가 전시를 하면 좋겠어. 그땐 나도 꼭 불러주렴' 이렇게 말했어요. 한국에 있을 때는 저한테 현실을 강요하는 사람들뿐이었는데 일본에서는 제게 꿈을 주는 사람들을 참 많이 만났던 것 같아요."
그러나 이 작가는 남동생이 뜻밖의 사고를 당하면서 유학생활을 단념했다. 한 대기업 건설사에 통역 직군으로 취업한 이 작가는 자신의 꿈을 뒤로 한 채 부모님을 모셨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엔 예술에 대한 간절함과 애틋함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여름휴가를 늘 기다렸어요. 밀렸던 작업을 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러던 중 한국에서 열린 전시회를 갔어요. 그리고 그곳에서 한 일본인 교수님과 만났죠. 그 교수님이 제게 늦지 않았으니 이제라도 우리 학교로 와서 공부해라. 이렇게 권했어요. 하지만 현실을 생각하면 갈 수 없었고, 포기하고 있었는데 이메일이 온 거죠. '네가 만든 작품 사진을 꼭 보고 싶다'는 내용이었어요. 용기를 냈고, 부모님께 말씀드린 뒤 일본으로 떠났습니다. 참 힘든 시기였고, 울기도 많이 울었는데 운이 참 좋았던 것 같아요."
드라마틱한 인생
이 작가는 결혼과 함께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일본 유명 공예전에서 대상까지 수상했던 그지만 양육이란 문제 앞에 현실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작품에 대한 열정은 아직 그대로"라고 했다. 짧게는 3개월에서 길게는 6개월까지 이 작가는 작품 하나하나마다 온 힘을 부딪혀가며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
"저는 순백의 양모가 아니라 진흙이나 톱밥이 뒤엉켜 있는 원단이 더 좋고 꽃씨가 섞여 있는 양모가 좋아요. 어찌 보면 버려지고, 지나치기 쉬운 것들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일. 이게 제 일인 것 같아요. 그리고 자연적인 소재를 쓰면 변색도 없거든요. 이처럼 영원토록 변치 않는 마음으로 더 나은 작업을 하고 싶은 게 제 희망입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이람 작가는?]
▲2006년 일본 카나자와 미술공예대학 대학원 염직공예과
▲2007년 일본 이시카와현 현대공예작품전 대상
▲2007년 일본 Maroniye Gallery(교토) 1회 개인전
▲2009년 일본 카나자와 미술공예대학 대학원 박사과정 이수
▲2009년 한국 청주국제공예 비엔날레 미래의 공예상
▲2009년 일본 Ponte Gallery(카나자와) 2회 개인전
▲2012년 한국 카카오트리 3회 개인전 'wire & plants'
▲Asahi Sinbun Craft(일, 2007), 21세기 미술관(일, 2008) 등 단체전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