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사화팀] 백승주 작가는 팬이 많다. 우리에게 친숙한 반려동물을 작업의 오브제로 쓰기 때문만은 아니다. 작고 여린 동물을 사랑할 줄 아는 그녀의 순수한 마음은 보드라운 흙에 담겨 예쁜 작품으로 다시 태어난다. 따스한 손길로 생명을 빚고 있는 백 작가를 홍대에서 만났다.
백승주 작가가 기른 강아지의 이름은 '아지'였다. 백 작가가 '아지'의 이름을 지었을 때 아지는 백 작가에게 와서 가족이 되었다. 그리고 잊히지 않는 하나의 추억이 되었다. 백 작가는 아지와 함께했던 일상의 순간들을 담아내기로 마음먹었다. 누군가에겐 사소한 일이겠지만 그 사소한 일마저 인간의 보편적인 감성, 연민으로 승화하는 작가의 솜씨가 놀랍다.
일상의 기록
"전 회화가 아닌 도예를 전공했는데요. 디자이너 일도 함께하다 보니까 정말 하고 싶은 작업에 대한 마음이 커지더라고요. 그래서 소재를 찾던 중에 키우던 강아지를 소재로 작업을 해보면 어떨까 했어요. 늘 미안한 마음이 있었거든요. 아지라고 하는데, 제가 아지를 한 번 떨어뜨리면서 아지가 머리를 다쳤어요. 그래서 사람으로 치면 치매가 왔는데요. 아지가 늙고 병들고 떠나는 과정을 슬픔으로 해석했어요. 그게 '푸른 기억'이라는 전시 테마가 됐죠."
백 작가는 흙으로 조형을 만들고 조형 위에 드로잉을 하여 가마로 굽는 독특한 작업 스타일을 갖고 있다. 공예와 드로잉이라는 두 가지 표현 기법을 완숙하게 조합한 작품에서 우러나는 감정은 더욱 깊어진다.
"전시를 앞두고 아지는 수명을 다해서 죽었어요. 그런데 전 아지가 죽을 걸 알면서도 살려보려고 링거를 맞히고 그랬거든요. 이게 저를 위한 거더라고요. 강아지 입장에선 고통인 거잖아요. 이렇듯 사랑에는 모순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집착해서 보호하려는 마음과 자유롭게 세상을 살게 해주려는 마음. 당시 전시했던 작품을 보면 사슴이랑 토끼도 있는데요. 사슴은 퀼트족 신화에서 영혼을 실어 나른대요. 또 토끼는 중국 신화에서 불로장생의 약을 만들고요. 전시를 준비할 때만 해도 아지가 살아있었는데요. 아지가 죽으면서 제 전시가 일종의 장례식이 됐어요."
동물 주제로 조형·드로잉 작업…생명에 애정
작품 1∼2달 정성 "사소한 감정도 끄집어내"
백 작가의 작업은 동물보호단체의 큰 호응을 얻었다. 백 작가는 자신이 동물 운동가는 아니지만 작업을 통해 많은 공부가 됐다고 했다. 그의 작업은 싱가포르까지 알려져 매년 초대를 받고 있다.
"싱가포르는 작업이 동화스럽다고 해서 어떻게 불려갔는데요. 현지 사람들과 동물을 오브제로 한 스크럽처(조각)를 만들어 봤어요. 그런데 이게 효과도 있고, 반응이 좋아서 매년 하기로 했어요. 얻은 수익은 싱가포르 동물보호단체에 기부하기로 했고요. 제 작품 중에선 '한 방울의 눈물'이라는 주제로 작업을 한 것들이 있어요. 동물이 (인간 때문에) 흘리는 눈물인데요."
"예를 들면 소는 우리가 다 쓰고 버리잖아요. 그럼 동물들의 영혼은 어디로 가나. 우리(인간)가 생명체를 함부로 할 자격이 있나. 또 실험용 동물들은 매일 배를 찢어서 약물을 넣고, 아물 때가 되면 다시 가르고 해요. 사육된 토끼들은 새로운 화장품이 나오면 눈 주위에 바르고 인체에 무해한지 시험한데요. 그래서 토끼 눈이 충혈되는지 보고…. 그래서 토끼가 흘리는 눈물을 표현한 작업을 해봤어요."
백 작가는 조형에 유약을 바르고 5번씩 가마를 떼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조형 안에 기포가 들어가면 가마 안에서 터지기 때문에 꼼꼼하게 몰드(틀)를 채운다. 한 작업에 1∼2개월씩 꼬박 정성을 쏟아 나온 결과물은 '진심'이 있어 더 아름답다.
"어려운 내용이 없으니까 아이들도 좋아해요. 여러 의미 있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보람을 느끼고요. 유화의 풍부한 색감을 좋아해서 이것저것 시도를 하는데, 앞으로 제 작업이 어떻게 변화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는 동물을 오브제로 했지만 동물만 다룰 수는 없고요. 생명과 자연에 대한 작업을 천천히 계획하고 있어요."
동물의 눈물
백 작가는 평범한 사람이 아침부터 일하면서 잊고 지내는 것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백 작가는 그래서 "우리가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감정을 끄집어내는 게 작가의 몫"이라고 말했다.
일본 유학생활 중 백 작가는 히구치씨라는 사람을 만났다. 히구치씨는 뇌는 멀쩡하지만 몸이 굳어가는 불치병에 걸린 이웃집 아저씨였다. 히구치씨를 위해 백 작가는 그가 좋아하는 고양이를 예쁘게 그려 선물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과거 그녀가 했던 전시를 보면 아지의 방과 나란히 마주한 히구치씨의 방을 볼 수 있다. 그녀의 전시 제목인 '같은 곳에 있어주기'처럼 백 작가는 온정이 필요한 생명 곁에서 사랑을 빚고 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백승주 작가는?]
▲2001 서울여대 공예학과 졸업
▲2009 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 도예과 졸업
▲'같은 곳에 있어주기'(목인갤러리, 2011) '한 방울의 눈물'(아트몽드, 2012) 등 개인전
▲한국공예문화진흥원, 경인미술관, 이앙갤러리, 롯데갤러리 등 그룹전 다수
▲2008 제27회 서울현대도예 공모전 조형부문 입선
▲2012 싱가포르 한국대사관 후원 ‘Korea Festival Singapore’ 참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