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문인화 대가 김민재

“먹을 통해 무한한 세계와 만나죠”

[일요시사 = 취재1팀] 강현석 기자 = 은은한 묵향과 함께 피어나는 매화를 닮은 한 사내의 그림은 잔잔한 감동을 관객에게 안긴다. 예술의 본고장인 전남 진도에서 태어난 문인화가 김민재 화백은 목포서 활동했던 10여년을 제외하고는 줄곧 진도를 떠나지 않았다.
 

그림과 문학에 남다른 소질이 있던 한 소년은 앓고 있던 소아마비 때문에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했다. 대신 그는 활동의 제약을 딛고, 먹을 통해 무한한 세계와 만났다.  

진도 토박이 

'문인화 대가' 김민재 화백은 교습본으로 독학을 시작한 뒤 금봉(金峰) 박행보 선생의 제자로 입문한 케이스다. 박행보 선생은 남종화의 대가인 의제(毅齋) 허백련 선생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명인 중에 명인. 그래서 한 언론 관계자는 김 화백에 대해 "허백련과 박행보의 화풍을 이어받은 선비"라고 극찬했다.

남종화는 당나라의 왕유로부터 시작된 그림의 한 분파로 화가(선비) 자신의 내면세계를 수묵과 담채로 표현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특히 남종화는 간일한 문법이 그 멋스러움을 더하는데 예로부터 남종화를 그리기 위해선 인격적인 도야를 먼저 해야 할 정도로 배움의 과정이 엄격했다고 한다.

허백련·박행보 화풍 이어
굵은 필선과 깊은 먹 특징


"문인화를 공부하다보니 그림의 여백과 선, 먹의 조화에 깊은 매력을 느끼게 됐습니다. 다른 그림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죠. 문인화는 그림이면서도 또 시를 써야 했기 때문에 그 작업과정은 끝없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었습니다. 하지만 하얀 화선지를 무릎 맡에 펴 놓고 먹을 갈 때 느끼는 그 희열, 빈 화선지 위에 고운 선을 수놓는다는 짜릿함이 생각날 때면 붓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앞서 밝혔듯 김 화백은 금봉의 제자다. 그래서인지 김 화백은 '가장 좋아하는 그림을 꼽아달라'는 말에 주저 없이 금봉의 그림을 꼽았다. 그는 "바람에 휘날리는 풍죽과 묵란은 내가 평생토록 그려야 할 숙제"라고 덧붙였다.
 

그런데 김 화백은 사군자 중에서 대나무와 난이 아닌 매화를 가장 많이 그린다고 했다. 매서운 추위를 이겨내고 눈 속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매화가 사군자 중에서 으뜸이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매화를 닮은 그의 성품처럼 김 화백은 강한 필선을 무기로 한다. 

"1985년과 1989년, 모두 2번의 개인전을 목포에서 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20대였는데 시쳇말로 겁이 없었죠. 그런데 그림의 의미를 알아갈수록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이 힘이 들어요. 몇 번이고 전시를 준비하지만 이제는 제 그림이 겁이 납니다. 또 지방에서 활동하다 보니 그림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적어서 아쉽기도 했어요. 요즘은 그나마 SNS가 있어서 다행이죠."

고향 진도서 꾸준한 작품 활동
"오히려 신체적인 장애가 도움"

하지만 SNS의 등장이 곧 미술 시장의 활성화로 직결되는 건 아니다. 김 화백은 "모든 예술가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가 바로 생계"라고 지적했다.

"80∼90년대만 해도 예술품 시장이 매우 활성화되고 거래나 매매도 활발했죠. 하지만 디지털미디어가 발전하면서 원본(예술품)에 대한 관심이 적어지는 추세죠. 저도 30년 넘게 그림을 그렸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워 몇 번이고 다른 길을 갈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묵묵히 먹을 가는 것처럼 인내의 시간을 보냈고, 오늘에 이르렀죠."


장애는 불편일 뿐

김 화백은 소아마비의 후유증으로 목발에 의지한 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신체적인 장애는 불편함일 뿐이지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는 데 장애가 되진 않는다"고 말했다.

"오히려 작품 활동을 하는데 신체적인 장애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만일 제가 장애를 갖지 않았다면 더욱 활동적인 직업을 선택했겠죠. 장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제 신체적인 조건에 맞는 일을 찾았을 뿐입니다. 장애를 극복했다는 거창한 얘기는 불편해요."

김 화백은 틈틈이 떠올렸던 시구를 모아 시집 발간도 준비 중이다. "서두르지 않고 차분하게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그의 말에서 숱한 인생의 역경을 넘어온 우직함이 느껴졌다.
 

<angeli@ilyosisa.co.kr>
 

[김민재 화백은?]

금봉(金峰) 박행보 선생 문인화 사사
 
대한민국미술대전 입선 및 특선
전라남도미술대전 입선 및 특선
광주광역시미술대전 입선 및 특선
전국무등미술대전 특선
예술대제전 추천작가
대한민국서화협회 추천작가
대한민국소치미술대전 운영위원 및 초대작가
남도예술은행선정작가
전라남도미술대전 추천작가
한국미술협회 회원  
전남미술협회 진도미술협회 회원
개인작품전(2회, 85·89년 목포) 
회원작품전(200회 출품)
전남문학상 수상, 전남문인협회, 진도문인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진도지부장 역임
한국예총진도지부 부지부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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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까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 초,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가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