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통령 사돈기업 흥망성쇠 비사

  • 김성수 kimss@ilyosisa.co.kr
  • 등록 2013.09.09 15: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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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권력 덕분에 '살고' 죽어 가는 권력 때문에 '죽고'

[일요시사=경제1팀] 효성그룹이 세무당국의 압박을 받고 있다. 그 강도가 너무 세서 검찰 수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예상이 딱 맞아떨어졌다. 효성그룹은 'MB 사돈기업'인 탓에 새 정부 차원에서 한번은 손볼 타깃으로 지목돼 왔다. 역대 대통령의 사돈기업들이 정권 바뀌고 모진 고초를 당한 전례대로다.



재벌가 혼맥은 거미줄처럼 얽히고설켜 있다. '한 두 다리만 건너면 사돈'이란 말이 통용될 정도로 '그들만의 성'은 갈수록 견고해지고 있다. 재벌가문은 정·관계 및 학계 쪽으로도 거대하고 강력한 연줄망을 형성하고 있다. 사세 확장을 위해 권력층과의 정략 결혼도 서슴지 않는다. 전략적 통혼을 통해 최고의 부와 명예, 권력을 한 손에 쥘 요량에서다.

사세용 정략 결혼
정경 혼테크 유행

재벌가문과 고위 권력층의 혼맥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세 확장을 꾀하는 기업인으로선 더 바랄 나위 없는 통혼이 아닐 수 없다. 최고 통치권자와 사돈을 맺은 재벌가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정경유착 고리로 비쳐져 오히려 화를 부른 경우가 많다. 주위의 따가운 시선은 경영의 운신이 제한되는 부담으로 이어지고, 대통령직 퇴임 후 절체절명의 위기가 따랐다. 이를 못 이기고 침몰한 재벌도 한둘이 아니다.

대통령과 사돈을 맺은 첫 재벌가문은 풍산그룹(당시 풍산금속)이다. 풍산일가는 고 박정희 전 대통령 가문과 1982년 인연을 맺었다. 고 류찬우 풍산그룹 창업주의 장남 류청씨와 박 전 대통령의 둘째딸 근령씨가 혼례를 올린 것. 이미 박 전 대통령이 세상을 뜬 이후였다.

하지만 결과는 득보다 실이 많았다. 이들은 결혼 생활이 순탄치 못해 결국 6개월 만에 파경을 맞았다. 류청씨는 현재 미국을 오가며 개인 사업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근령씨는 2008년 14세 연하인 신동욱 선경일보 사장과 재혼해 화제를 모았다.


박 전 대통령은 벽산그룹 일가와도 사돈지간이다. 박 전 대통령의 셋째 형인 박상희씨의 딸 설자씨와 고 김인득 벽산그룹 창업주의 차남 희용씨는 1972년 결혼했다. 설자씨는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의 처제이기도 하다.

벽산그룹은 1970년대 초반부터 승승장구했다. 당시 정부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새마을운동을 벌였는데 벽산그룹은 지붕 재료인 슬레이트를 독점 공급해 사세를 키웠다. 1974년엔 국영기업 대한종합식품을 인수하는 특혜도 누렸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면서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받는 곤욕을 치르더니 1998년 외환위기(IMF) 때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갔다가 구조조정을 통해 가까스로 위기를 극복했다.

대통령과 혼사 맺은 재벌들 '툭하면 의혹'
재퇴임시 각종 스캔들로 곤욕…운신폭 제한

간신히 부도 위기를 모면한 벽산그룹은 2008년 기업신용위험 평가 결과 부실징후기업으로 분류돼 또 다시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주력 계열사인 벽산건설의 경우 채권단으로부터 1000억원의 신규 자금을 지원받는 등 재무구조 개선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나, 매출이 2011년 6675억원에서 지난해 4183억원으로 줄었고 순손실도 870억원에서 3737억원으로 적자폭이 더 커지는 등 힘든 상황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도 사돈관계를 원만히 유지하지 못했다. 전 전 대통령의 차남 재용씨와 박 명예회장의 4녀 경아씨는 1988년 결혼했으나 성격 차이에 따른 불화로 2년5개월 만에 이혼했다. 당시 강원도 백담사에서 은둔생활을 하던 전 전 대통령은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이혼만은 안 된다"며 극구 반대했다고 한다.

두 가문은 이로 인해 급속도로 냉랭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재용씨는 경아씨와 이혼 후 1992년 두 번째 아내인 최모씨와 결혼 생활을 하다 2007년 또 다시 갈라섰다. 그는 같은 해 탤런트 박상아씨와 세 번째 결혼식을 올려 이목을 끌었다.

박 전 대통령의 무한 신뢰로 '영일·광양만의 기적'을 이룬 박 명예회장은 전 전 대통령의 '러브콜'을 받고 정치계에 입문했다. 우연일까. 박 명예회장은 3선 경력을 쌓고 1990년 집권여당의 민정당 대표까지 올랐지만, 김영삼 정권 출범 직후인 1993년 정치색 짙은 국세청 세무조사로 외국을 떠도는 야인 신세가 됐다.


국세청은 포항제철(현 포스코) 세무조사를 실시했고, 이는 곧바로 박 명예회장과 그의 가족, 친인척, 측근들에 대한 전방위 비자금 수사로 확대됐다. 박 명예회장은 김대중 정부 때인 2000년 총리로 발탁됐지만 조세 회피 목적의 부동산 명의신탁 의혹이 불거져 4개월 만에 불명예 퇴진했다. 이를 마지막으로 박 명예회장은 현실 정치에 등을 돌렸다.

전 전 대통령은 동아원그룹 일가와도 인연을 맺었다. 전 전 대통령의 3남 재만씨와 이희상 동아원그룹 회장의 장녀 윤혜씨가 1995년 혼례를 치른 것. 두 가문은 '모종의 거래설'로 여러 번 구설수에 올랐다.

모종의 거래설
여러번 구설수

실제 이 회장은 1995년 전 전 대통령이 내란 혐의로 수사를 받을 당시 검찰 조사를 받는 등 그간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관리한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이듬해 전 전 대통령의 채권 160억원을 차명으로 소유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이 돈을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의심했지만 끝내 밝혀내지 못했다.

그로부터 7년 후. 최근 이 회장이 전씨 일가의 재산 은닉에 협조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동아원그룹은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재만씨가 소유한 서울 용산구 한남동 100억원대 빌딩도 '전두환 비자금'이 유입된 의혹을 받고 있다. 재만씨는 이 빌딩을 이 회장으로부터 증여받은 것이라고 주장해 이 회장에 대한 수사가 불가피해 보인다.

이 회장은 전 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노태우-이명박 일가와 인연을 맺은 '대통령 사돈집안'으로 유명하다. 이 회장은 세 딸이 있는데, 3명의 전현직 대통령 가문과 직간접적으로 사돈관계다. 차녀 유경씨는 신명수 전 신동방그룹 회장의 동생 신영수씨의 아들 기철씨와 혼인했다. 신 전 회장 사위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였다.

집권 기간 내내 쏠쏠한 특혜
물러나면 모진 고초에 시달려

3녀 미경씨는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장남 조현준 효성 사장과 결혼했다. 효성가는 조 회장 동생 조양래 한국타이어그룹 회장의 차남 조현범 한국타이어 사장을 통해 이명박 전 대통령과 사돈관계를 맺고 있다. 결국 동아원 일가는 이 전 대통령과 한다리 건너 사돈인 셈이다.

SK그룹과 신동방그룹은 대통령 집안과 사돈관계를 형성했다가 곤욕을 치른 대표적인 케이스로 꼽힌다. 두 기업은 노태우 전 대통령과 재임 때 사돈이 됐으나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어려움에 빠졌다.

고 최종현 전 SK그룹 회장의 장남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의 장녀 소영씨와 1988년 백년가약을 맺었다. 당시 최 전 회장은 "대통령과 사돈을 맺는 것 자체가 정경유착이 아니라 부정한 방법으로 무슨 일을 도모할 때 비로소 정경유착이 되는 것"이라고 당당했다. "앞으로 지켜보라"고 큰소리쳤던 최 전 회장은 끝내 사돈 덕을 봤다는 소리를 들었다.

SK그룹은 이 혼사로 1992년 이동통신 사업권 획득, 1994년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 인수 등 사업 확장 때마다 온갖 루머에 시달렸고, 툭하면 정경유착에 따른 특혜 의혹이 제기됐다. 그 이후로도 사업을 확장할 때마다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

노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는 이동통신 솔루션업체 텔코웨어의 대주주로 있다가 2009년 주식을 매각해 수십억원의 차익을 얻기도 했다. 텔코웨어는 SK텔레콤 등에 소프트웨어를 납품하면서 성장했는데, SK가 노씨 일가의 사돈기업이란 점에서 말들이 많았다.

신동방그룹(당시 동방유량)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신명수 전 신동방그룹 회장은 1990년 외동딸인 정화 씨를 노 전 대통령의 외아들 재헌씨와 결혼시켰다. 신동방그룹은 노 전 대통령 집권 때 숙원이던 증권업에 진출했지만 특혜 의혹을 받았다. 1992년 홍콩페레그린증권과 합작해 동방페레그린증권사 설립을 추진했다. 당시 신동방그룹은 설립 요건을 갖추지 못했지만 결국 증권사를 세웠고 줄곧 특혜 시비에 시달렸다.


게다가 1996년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파문 당시 검찰의 타깃이 된 신 전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빌딩을 매입하고 주가조작으로 수백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해표식용유로 유명했던 신동방그룹은 이런 시련을 겪은 뒤 IMF 전후 자금난을 견디지 못해 워크아웃을 신청한데 이어 2004년 CJ그룹에 매각됐다.

'세풍'에 휘청 
'검풍'에 침몰

신 전 회장과 노 전 대통령은 이미 남남이다. 정화씨와 재헌씨는 2011년 각각 한국과 홍콩에서 이혼 소송을 냈고, 지난 5월 결혼 23년 만에 이혼이 확정됐다. 그래도 악연은 계속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비자금의 일부를 신 전 회장에게 맡겼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지난해 6월 검찰에 제출했다. 노 전 대통령은 비자금을 돌려 달라고 신 전 회장에게 요구했고, 버티던 신 전 회장은 최근 노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 80억원을 대납하기로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돈기업도 최근 각종 시비에 휘말려 있다. 바로 효성그룹이다.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은 지난 5월 효성그룹에 대한 특별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국세청은 조사 과정에서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차명 재산과 분식회계를 통한 탈세 혐의를 포착해 조세범칙조사로 전환하면서 조 회장 등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내렸다.

조세범칙조사는 일반 세무조사와 달리 조사기관의 탈루 혐의가 드러났을 때 진행하는 사법적 성격의 세무조사다. 추후 결과에 따라 형사처벌이 이뤄질 수 있다. 효성 측은 "출금은 단순히 조사에서 필요에 의해 내려진 조치일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업계에선 'MB 기업' 손보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이 뒤따르고 있다.

조 회장은 동생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의 아들 조현범 한국타이어 사장을 통해 이 전 대통령과 사돈 관계를 맺고 있다. 조 사장은 2001년 이 전 대통령의 3녀 수연씨와 결혼했다.


득이냐 실이냐
정해진 운명?

상황이 이렇자 이 전 대통령의 또 다른 '재벌 사돈'에 세간의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은 형 이상득 전 의원을 통하면 LG가와도 사돈이 된다. 이 전 의원의 딸 성은씨는 2000년 LG그룹에서 계열 분리된 LB인베스트먼트(구 LG벤처투자) 구자두 회장의 장남 구본천 LB인베스트먼트 사장과 결혼했다.


김성수 기자<kims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노무현·김대중·김영삼 사돈은?

"재벌사돈 없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노무현·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은 재벌가와 직접적으로 혼맥을 갖고 있지 않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모는 평생 농사를 지은 농부였다. 형인 건평 씨 또한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1973년 권양숙 여사와 결혼했는데, 처가 집안도 마찬가지로 부호는 없다.

그의 아들 건호씨는 2002년 연세대 후배인 배정민씨와 화촉을 밝혔다. 건호씨의 장인 배병렬씨는 농협에서 은퇴한 후 노 전 대통령과 같은 고향인 김해에서 살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딸 정연씨는 2003년 곽상언 변호사와 결혼했다. 곽 변호사는 부친이 일찍 세상을 떠나 가정형편이 넉넉지 않았다.

대부분 평범한 가문과 인연
형편 넉넉지 않은 집안도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돈들도 평범한 집안이다. 장남 홍일씨는 1974년 충칭 임시정부에서 광복군 활동을 했던 윤경빈씨의 딸 혜라씨와 결혼했다. 차남 홍업씨는 1984년 5공화국에서 감사원 감사위원을 지낸 신현수씨의 딸 선련씨와, 3남 홍걸씨는 1990년 부산에서 자영업을 하는 임정상씨의 딸 미경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2남3녀를 뒀는데, 대부분 재벌가와 거리가 멀다. 장남 은철씨는 황경미씨를, 차남 현철씨는 김정현씨를 부인으로 두고 있다. 이중 황씨 집안은 부유하다. 그의 친정어머니는 아트그룹 시우터(구 서울미술관)의 실소유주다. 황씨는 경기 일원에서 대형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다.

장녀 혜영씨는 재미사업가 이창해씨와, 차녀 혜경씨는 재미동포 송영석씨와, 3녀 혜숙씨는 재미변호사 이병로씨와 결혼해 모두 미국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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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