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비자금 추적 '200억 건물' 미스터리

  • 김성수 kimss@ilyosisa.co.kr
  • 등록 2013.06.26 13:2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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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만 빌딩' 털면 '검은 돈' 나온다

[일요시사=경제1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 1672억원. 이를 회수하기 위해 검찰은 전담팀을 구성하고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국세청과 금감원도 힘을 보탠다. 국회에선 '전두환 추징법'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를 비웃듯 그의 가족들 재산은 2400억원이나 된다. 모두 은닉처로 의심된다. 그중 가장 구린내 나는 한곳을 털어봤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재산이 흘러간 것으로 의심되는 곳은 이른바 '전재만 빌딩'이다.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에 있다. 전 전 대통령의 3남 재만씨 소유의 '신원프라자'가 바로 그곳이다. 890㎡(약 270평) 대지면적에 지하 4층~지상 8층짜리 건물인 신원프라자의 공시지가는 80억원. 실거래가는 이를 훨씬 웃도는 100억∼200억원을 호가할 것이란 게 부동산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전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 1672억원 회수 문제가 만료 시효(10월)를 앞두고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른 가운데 도심 한복판에 있는 신원프라자가 은닉 재산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 빌딩을 둘러싼 의문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미스터리1]
건축자금 출처는?

우선 재만씨의 건물 취득 과정이 의문이다. 신원프라자의 부동산 등기부등본 상엔 1997년 1월 이후 상황만 기재돼 있다. 때문에 2002년 5월 재만씨의 매입 사실만 확인할 수 있다. 언론 등을 통해 세간에 알려진 내용도 이 시점부터다.

그러나 재만씨는 빌딩의 건축주였다. 건축물대장 확인 결과 재만씨가 직접 신원프라자를 지은 것으로 드러났다. 용산구청에서 건축허가를 받은 것은 1994년 6월. 재만씨의 명의로다. 1995년 7월 공사를 시작한 건물은 1996년 11월 완공됐다.

재만씨는 올해 42세(1971년생). 이를 감안하면 건축허가 당시 그의 나이는 23세란 계산이다. 재만씨는 1990년 경복고를 졸업하고 1992년 재수 끝에 연세대 경영학과에 합격했다. 그가 신원프라자를 짓겠다고 나선 게 대학교 2학년 때인 셈이다.


건물 취득에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대 초반 무슨 돈으로 건물을 지었냐는 것이다. 어린 나이로 어떻게 '큰돈'을 마련했는지 자금 출처가 불분명하다.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흘러들어간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지는 대목이다.

당시 신원프라자 부지의 공시지가(㎡당)는 161만원. 현재는 858만원으로 올랐다. 현지 부동산업계 관계자들은 이 일대의 토지 실거래가가 공시지가보다 수배∼수십배 비싼 가격으로 흥정된다고 입을 모은다. 재만씨는 부지 시세가 하루가 다르게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돈방석'에 앉았다.

3남 소유 한남동 신원프라자 의문투성이 
'구린내가 풀풀…'은닉재산 의혹 급부상

한 중개업자는 "신원프라자는 대한민국 부촌인 한남동, 그중에서도 노른자라 할 수 있는 고급주택가에 위치해 있다"며 "정확한 금액은 알 수 없지만, 이 같은 위치를 감안하면 빌딩값은 얼추 100억∼200억원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전 전 대통령 측은 2003년 5월 한 언론을 통해 재만씨가 신원프라자를 소유한 사실이 드러나자 "한남동 건물은 전 전 대통령과 전혀 상관이 없다. 재만씨의 장인이 재산분배 차원에서 미리 상속해 준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전 전 대통령 측의 해명은 뭔가 앞뒤가 맞지 않다. 오히려 의혹만 증폭시킨다. 재만씨가 건축허가를 받은 것은 결혼 1년 전이다. 그는 1995년 4월 동아원그룹 이희상 회장의 장녀 윤혜씨와 결혼했다. 재만씨는 25세 때인 연세대 3학년 재학 중이었고, 윤혜씨는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한 해였다.

재만씨의 한 측근은 "재만씨와 윤혜씨는 결혼 2년 전인 1993년 친지 소개로 처음 만나 1994년 가을 약혼식을 올렸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처갓집의 상속이 있었다면 시기상으론 충분히 가능하다. 다만 이 역시 결혼도 하지 않은 딸의 약혼자에게 건물을 통째로 줬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다.


사정기관 관계자는 "한남동 신원프라자 빌딩은 지금까지 재만씨가 30대에 매입한 것으로만 알려져 있었다"며 "만약 재만씨가 20대 초반에 건물을 지은 것이 사실이라면 자금 출처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유입을 의심할 만하다"고 말했다.

[미스터리2]
재매입 이유는?

신원프라자를 둘러싼 수상한 거래도 포착됐다. 재만씨의 수중으로 들어간 정황이 석연치 않다. 건축 자금의 출처가 '전두환 비자금'이 아니냐는 의문은 이 과정에서 더욱 커진다.

1996년 11월 신원프라자를 완공한 재만씨는 1998년 1월 김모씨에게 매각했다. 이후 2002년 5월 재만씨가 다시 건물을 매입했다. 자신이 지은 건물을 1년 만에 팔았다가 4년 뒤 다시 산 것이다. 수상한 거래가 아닐 수 없다.



토지도 마찬가지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거래가 이뤄졌다. 당초 신원프라자 부지의 소유주는 또 다른 김모씨였다. 건축허가 두달 뒤인 1994년 8월 이모씨에게 넘어갔다가 건물이 다 지어진 직후인 1997년 1월 대지권(대지사용권)으로 전환됐다.

대지권은 건물의 각층 또는 각호 소유자가 건물 부지를 나눠 갖는 권리다. 신원프라자의 경우 중소기업 등이 입주해 있는 집합건물로 지하 4개층과 지상 8개층 등 11개층이 각각 부동산으로 나눠져 모두 재만씨 소유로 등기돼 있다. 결국 건물뿐만 아니라 땅 주인도 재만씨란 얘기다.

그렇다면 재만씨는 왜 건물을 매각했다가 재매입한 것일까. 의문의 열쇠는 그의 부친 전 전 대통령에 꽂힌다.

1988년 2월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전 전 대통령은 광주민주화운동과 5공 비리로 책임 추궁을 당하다가 1988년 11월부터 1990년 12월까지 백담사에서 은둔생활을 했다. 군사반란 혐의 등으로 1995년 12월 구속, 사형을 구형받았다가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 및 추징금을 선고받았다. 이 사이 비밀리에 신원프라자가 지어졌다.

23세때 뭔 돈으로…건축비용 어디서?
검찰 나서자 '팔고' 사면 이후 '재매입'
차명보유…명의신탁?

문제는 그 이후다. 검찰은 대법원 판결 직후부터 전 전 대통령의 추징금을 회수하기 위해 비자금을 찾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재만씨가 건물을 조용히 처리한 시점(1998년 1월)과 맞물린다. 당시 검찰은 전 전 대통령은 물론 친인척 등 차명 재산을 뒤졌으나 신원프라자를 발견하지 못했다. 전 전 대통령은 1997년 12월 김영삼 정부의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추징금은 사면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리고 4년5개월 뒤인 2002년 5월 재만씨는 신원프라자를 다시 사들였다.

부동산 전문가는 "자신의 건물을 팔았다가 다시 사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돈이 오간 거래가 맞는지 확인이 필요하다"며 "일부의 경우 일시적으로 재산을 숨기기 위해 제3자의 명의를 빌려 차명으로 보유하다 되돌려 받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명의를 실소유자가 아닌 다른 사람 이름으로 해놓는 부동산 명의신탁이 의심된다"고 말했다.

실제 재만씨와 거래한 김씨의 배경을 살펴보면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김씨가 빌딩을 매입할 당시 등기부등본에 기재돼 있는 그의 주소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 ○○아파트. 아파트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청담동이지만, 김씨가 지금까지도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아파트는 전용면적 84㎡(약 25평)로 소형에 속하는 편이다. 게다가 ○○아파트 명의도 다른 사람이다.

한남동 8층짜리 건물을 매입한 재력가가 25평 아파트에 살고 있는 점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김씨가 재만씨에게 건물을 판 뒤에도 더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가지 않고 이 아파트에 계속 거주하는 점도 재만씨와 김씨의 관계를 의심케 한다.


재만씨가 재매입한 시점에 대해선 한 가지 의문이 더 생긴다. 왜 하필 2002년 5월이냐는 것이다. 정확한 날짜는 그해 5월14일.

우연일까. 당시는 한·일 월드컵(2002년 5월31일∼6월30일)을 앞두고 대한민국 전체가 들썩거렸다. 정치·사회적 이슈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국민들 함성 속에 묻혔다. 오로지 '축구'뿐이었다. 월드컵이 끝나고도 '4강 신화'로 한동안 붉은 물결이 계속됐다. 2002년 말엔 대선까지 치러 정신없는 한 해였다.

[미스터리3]
장인 개입했나?

전 전 대통령 비자금과 그의 가족들은 떼려야 뗄 수 없다. 재만씨도 여기저기서 제기하는 비자금 은닉 시나리오에 자주 등장한다. 재만씨에겐 뒤를 받쳐주는 재력가 집안이 있어 더욱 그렇다.

그의 장인인 이 회장은 한국제분, 동아원 등 20개 계열사(해외법인 제외)를 거느린 동아원그룹 오너. 이 회장은 검찰의 전 전 대통령 비자금 수사 때 조사를 받기도 했다. 자신의 딸과 결혼한 재만씨에게 축하금으로 건넨 160억원 상당의 채권이 수사선상에 올랐다. 검찰은 이 돈을 비자금으로 보고 압류했지만, "부친으로부터 증여받았다"는 이 회장의 주장에 다시 돌려줬다. 국세청이 이 회장에게 증여세 54억원을 과세하는데 그쳤다.

당시 재만씨의 한남동 빌딩도 도마에 올랐다. 검찰은 '전두환→이희상→전재만'으로 비자금이 흘러가 빌딩에 묻힌 것으로 확신했지만, "상속해준 것"이라고 반박한 이 회장은 유유히 법망을 빠져나갔다. 그런데 한남동 빌딩과 이 회장이 무관치 않아 보이는 정황도 드러났다.


등기부등본을 잘 살펴보면 수상한 인물이 등장한다. 재만씨와 돈거래를 한 이모씨다. 이씨는 2006년 12월 재만씨를 채무자로 신원프라자에 30억원의 근저당을 설정했다. 다시 말해 재만씨가 빌딩을 담보로 이씨에게 30억원을 빌린 것이다. 근저당은 2011년 9월 해지됐다.

문제는 이씨의 실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이씨는 현재 동아원 플랜트사업본부 전무로 재직 중이다. 이씨는 '이희상 가신'으로 추정된다. 특히 근저당 시기와 이씨의 행보는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장인 회사 임원과 돈거래 
환수 위기 처하자 대비용?

한국제분 전무이사를 맡고 있던 이씨는 30억원 근저당을 설정한 직후 '점령군'자격으로 동아원에 입성했다. 동아원그룹은 2007년 1월 동아원(당시 에스씨에프)을 인수했고, 3월 이씨를 감사로 선임했다. 이 회장이 2008년 3월 동아원 대표이사로 취임하자 이씨는 2009년 3월 등기임원에 올랐다. 관리총괄, 감사위원장, 생산본부장 등을 지낸 이씨는 2011년 3월 임기가 만료됐고, 3개월 뒤 근저당이 해지됐다. 동아원 상무(해외법인)로 재직 중인 재만씨도 이 기간 줄곧 임원으로 재직해 이씨와 모를 리 없다.

지난해 전무로 복귀한 이씨 또한 김씨와 마찬가지로 30억원의 재산을 갖고 있을 만한 여력이 의심된다. 이씨는 재만씨에게 돈을 빌려줄 당시 노원구 중계동 ○○○아파트에 거주했었다. 이 아파트는 전용면적 115㎡(약 35평)로, 현 시세는 5억∼6억원이다.

이씨는 30억원을 돌려받은 지금도 이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연 이씨가 그만한 재력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더구나 이씨는 은행에서 2400만원을 대출받는가 하면 구청에 세금이 밀려 집을 압류당하기도 했다. 경제적으로 그리 넉넉하지 않다는 방증이다.

검찰 관계자는 "이씨의 상황을 보면 재만씨에게 밀려준 30억원의 출처와 돌려받은 30억원이 어디로 갔는지 용처가 확실하지 않다"며 "한남동 건물이 비자금으로 지목돼 환수될 위기에 처하자 재만씨와 이 회장이 짜고 회사 임원을 내세워 돈 거래를 조작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전 전 대통령은 29만원밖에 없다고 주장하며 추징금 2205억원 중 1672억원을 납부하지 않고 있다. 이를 회수하기 위해 검찰은 전담팀을 구성하고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국세청과 금감원도 힘을 보탠다. 국회에선 '전두환 추징법'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를 비웃듯 그의 가족들 재산은 2400억원. 재만씨의 재산만 적게는 수백억원에서 많게는 1000억원대에 이른다. 모두 은닉처로 의심되는 만큼 샅샅이 뒤져야 한다는 게 국민들의 주문이다.


김성수 기자<kimss@ilyosisa.co.kr>

 

<'전재만 처가' 동아원그룹은?>

화려한 혼맥 '대통령 사돈기업'

동아원그룹은 고 이용구 창업주가 1952년 군산에 설립한 한국산업이 모태로 현재 제분(한국제분·동아원)과 사료(대산물산·카페), 식품(동아푸드·해가온), 와인(나라셀라·단하지앤비·단하유통·PDP와인), 수입차(FMK), 수입의류(모다리슨) 등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창립 56년 만에 이 창업주의 호를 딴 운산그룹에서 사명을 바꾼 동아원그룹의 2011년 계열사 전체 매출은 8137억원. 2015년까지 1조원이 목표다.

동아원그룹은 '대통령 사돈회사'로 유명하다. 1993년 이 창업주가 별세한 직후 경영일선에 뛰어든 이희상 회장은 세 딸이 있는데, 3명의 전·현직 대통령 가문과 직간접적으로 사돈관계다. 장녀 윤혜씨의 남편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3남 재만씨.

차녀 유경씨는 신동방그룹 신명수 회장의 동생 신영수씨의 아들 기철씨와 혼인했다. 신 회장 사위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였다. 신 회장의 장녀 정화씨와 재헌씨는 지난해 이혼했다.

3녀 미경씨는 효성그룹 조석래 회장의 장남 조현준 효성 사장과 결혼했다. 효성가는 조 회장 동생 조양래 한국타이어그룹 회장의 차남 조현범 한국타이어 사장을 통해 이명박 대통령과 사돈관계를 맺고 있다. 결국 동아원 일가도 이 대통령과 한다리 건너 사돈인 셈이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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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