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비자금 추적 '200억 건물' 미스터리

  • 김성수 kimss@ilyosisa.co.kr
  • 등록 2013.06.26 13:27:47
  • 댓글 0개

'전재만 빌딩' 털면 '검은 돈' 나온다

[일요시사=경제1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 1672억원. 이를 회수하기 위해 검찰은 전담팀을 구성하고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국세청과 금감원도 힘을 보탠다. 국회에선 '전두환 추징법'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를 비웃듯 그의 가족들 재산은 2400억원이나 된다. 모두 은닉처로 의심된다. 그중 가장 구린내 나는 한곳을 털어봤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재산이 흘러간 것으로 의심되는 곳은 이른바 '전재만 빌딩'이다.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에 있다. 전 전 대통령의 3남 재만씨 소유의 '신원프라자'가 바로 그곳이다. 890㎡(약 270평) 대지면적에 지하 4층~지상 8층짜리 건물인 신원프라자의 공시지가는 80억원. 실거래가는 이를 훨씬 웃도는 100억∼200억원을 호가할 것이란 게 부동산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전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 1672억원 회수 문제가 만료 시효(10월)를 앞두고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른 가운데 도심 한복판에 있는 신원프라자가 은닉 재산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 빌딩을 둘러싼 의문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미스터리1]
건축자금 출처는?

우선 재만씨의 건물 취득 과정이 의문이다. 신원프라자의 부동산 등기부등본 상엔 1997년 1월 이후 상황만 기재돼 있다. 때문에 2002년 5월 재만씨의 매입 사실만 확인할 수 있다. 언론 등을 통해 세간에 알려진 내용도 이 시점부터다.

그러나 재만씨는 빌딩의 건축주였다. 건축물대장 확인 결과 재만씨가 직접 신원프라자를 지은 것으로 드러났다. 용산구청에서 건축허가를 받은 것은 1994년 6월. 재만씨의 명의로다. 1995년 7월 공사를 시작한 건물은 1996년 11월 완공됐다.

재만씨는 올해 42세(1971년생). 이를 감안하면 건축허가 당시 그의 나이는 23세란 계산이다. 재만씨는 1990년 경복고를 졸업하고 1992년 재수 끝에 연세대 경영학과에 합격했다. 그가 신원프라자를 짓겠다고 나선 게 대학교 2학년 때인 셈이다.


건물 취득에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대 초반 무슨 돈으로 건물을 지었냐는 것이다. 어린 나이로 어떻게 '큰돈'을 마련했는지 자금 출처가 불분명하다.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흘러들어간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지는 대목이다.

당시 신원프라자 부지의 공시지가(㎡당)는 161만원. 현재는 858만원으로 올랐다. 현지 부동산업계 관계자들은 이 일대의 토지 실거래가가 공시지가보다 수배∼수십배 비싼 가격으로 흥정된다고 입을 모은다. 재만씨는 부지 시세가 하루가 다르게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돈방석'에 앉았다.

3남 소유 한남동 신원프라자 의문투성이 
'구린내가 풀풀…'은닉재산 의혹 급부상

한 중개업자는 "신원프라자는 대한민국 부촌인 한남동, 그중에서도 노른자라 할 수 있는 고급주택가에 위치해 있다"며 "정확한 금액은 알 수 없지만, 이 같은 위치를 감안하면 빌딩값은 얼추 100억∼200억원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전 전 대통령 측은 2003년 5월 한 언론을 통해 재만씨가 신원프라자를 소유한 사실이 드러나자 "한남동 건물은 전 전 대통령과 전혀 상관이 없다. 재만씨의 장인이 재산분배 차원에서 미리 상속해 준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전 전 대통령 측의 해명은 뭔가 앞뒤가 맞지 않다. 오히려 의혹만 증폭시킨다. 재만씨가 건축허가를 받은 것은 결혼 1년 전이다. 그는 1995년 4월 동아원그룹 이희상 회장의 장녀 윤혜씨와 결혼했다. 재만씨는 25세 때인 연세대 3학년 재학 중이었고, 윤혜씨는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한 해였다.

재만씨의 한 측근은 "재만씨와 윤혜씨는 결혼 2년 전인 1993년 친지 소개로 처음 만나 1994년 가을 약혼식을 올렸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처갓집의 상속이 있었다면 시기상으론 충분히 가능하다. 다만 이 역시 결혼도 하지 않은 딸의 약혼자에게 건물을 통째로 줬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다.


사정기관 관계자는 "한남동 신원프라자 빌딩은 지금까지 재만씨가 30대에 매입한 것으로만 알려져 있었다"며 "만약 재만씨가 20대 초반에 건물을 지은 것이 사실이라면 자금 출처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유입을 의심할 만하다"고 말했다.

[미스터리2]
재매입 이유는?

신원프라자를 둘러싼 수상한 거래도 포착됐다. 재만씨의 수중으로 들어간 정황이 석연치 않다. 건축 자금의 출처가 '전두환 비자금'이 아니냐는 의문은 이 과정에서 더욱 커진다.

1996년 11월 신원프라자를 완공한 재만씨는 1998년 1월 김모씨에게 매각했다. 이후 2002년 5월 재만씨가 다시 건물을 매입했다. 자신이 지은 건물을 1년 만에 팔았다가 4년 뒤 다시 산 것이다. 수상한 거래가 아닐 수 없다.



토지도 마찬가지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거래가 이뤄졌다. 당초 신원프라자 부지의 소유주는 또 다른 김모씨였다. 건축허가 두달 뒤인 1994년 8월 이모씨에게 넘어갔다가 건물이 다 지어진 직후인 1997년 1월 대지권(대지사용권)으로 전환됐다.

대지권은 건물의 각층 또는 각호 소유자가 건물 부지를 나눠 갖는 권리다. 신원프라자의 경우 중소기업 등이 입주해 있는 집합건물로 지하 4개층과 지상 8개층 등 11개층이 각각 부동산으로 나눠져 모두 재만씨 소유로 등기돼 있다. 결국 건물뿐만 아니라 땅 주인도 재만씨란 얘기다.

그렇다면 재만씨는 왜 건물을 매각했다가 재매입한 것일까. 의문의 열쇠는 그의 부친 전 전 대통령에 꽂힌다.

1988년 2월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전 전 대통령은 광주민주화운동과 5공 비리로 책임 추궁을 당하다가 1988년 11월부터 1990년 12월까지 백담사에서 은둔생활을 했다. 군사반란 혐의 등으로 1995년 12월 구속, 사형을 구형받았다가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 및 추징금을 선고받았다. 이 사이 비밀리에 신원프라자가 지어졌다.

23세때 뭔 돈으로…건축비용 어디서?
검찰 나서자 '팔고' 사면 이후 '재매입'
차명보유…명의신탁?

문제는 그 이후다. 검찰은 대법원 판결 직후부터 전 전 대통령의 추징금을 회수하기 위해 비자금을 찾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재만씨가 건물을 조용히 처리한 시점(1998년 1월)과 맞물린다. 당시 검찰은 전 전 대통령은 물론 친인척 등 차명 재산을 뒤졌으나 신원프라자를 발견하지 못했다. 전 전 대통령은 1997년 12월 김영삼 정부의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추징금은 사면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리고 4년5개월 뒤인 2002년 5월 재만씨는 신원프라자를 다시 사들였다.

부동산 전문가는 "자신의 건물을 팔았다가 다시 사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돈이 오간 거래가 맞는지 확인이 필요하다"며 "일부의 경우 일시적으로 재산을 숨기기 위해 제3자의 명의를 빌려 차명으로 보유하다 되돌려 받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명의를 실소유자가 아닌 다른 사람 이름으로 해놓는 부동산 명의신탁이 의심된다"고 말했다.

실제 재만씨와 거래한 김씨의 배경을 살펴보면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김씨가 빌딩을 매입할 당시 등기부등본에 기재돼 있는 그의 주소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 ○○아파트. 아파트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청담동이지만, 김씨가 지금까지도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아파트는 전용면적 84㎡(약 25평)로 소형에 속하는 편이다. 게다가 ○○아파트 명의도 다른 사람이다.

한남동 8층짜리 건물을 매입한 재력가가 25평 아파트에 살고 있는 점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김씨가 재만씨에게 건물을 판 뒤에도 더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가지 않고 이 아파트에 계속 거주하는 점도 재만씨와 김씨의 관계를 의심케 한다.


재만씨가 재매입한 시점에 대해선 한 가지 의문이 더 생긴다. 왜 하필 2002년 5월이냐는 것이다. 정확한 날짜는 그해 5월14일.

우연일까. 당시는 한·일 월드컵(2002년 5월31일∼6월30일)을 앞두고 대한민국 전체가 들썩거렸다. 정치·사회적 이슈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국민들 함성 속에 묻혔다. 오로지 '축구'뿐이었다. 월드컵이 끝나고도 '4강 신화'로 한동안 붉은 물결이 계속됐다. 2002년 말엔 대선까지 치러 정신없는 한 해였다.

[미스터리3]
장인 개입했나?

전 전 대통령 비자금과 그의 가족들은 떼려야 뗄 수 없다. 재만씨도 여기저기서 제기하는 비자금 은닉 시나리오에 자주 등장한다. 재만씨에겐 뒤를 받쳐주는 재력가 집안이 있어 더욱 그렇다.

그의 장인인 이 회장은 한국제분, 동아원 등 20개 계열사(해외법인 제외)를 거느린 동아원그룹 오너. 이 회장은 검찰의 전 전 대통령 비자금 수사 때 조사를 받기도 했다. 자신의 딸과 결혼한 재만씨에게 축하금으로 건넨 160억원 상당의 채권이 수사선상에 올랐다. 검찰은 이 돈을 비자금으로 보고 압류했지만, "부친으로부터 증여받았다"는 이 회장의 주장에 다시 돌려줬다. 국세청이 이 회장에게 증여세 54억원을 과세하는데 그쳤다.

당시 재만씨의 한남동 빌딩도 도마에 올랐다. 검찰은 '전두환→이희상→전재만'으로 비자금이 흘러가 빌딩에 묻힌 것으로 확신했지만, "상속해준 것"이라고 반박한 이 회장은 유유히 법망을 빠져나갔다. 그런데 한남동 빌딩과 이 회장이 무관치 않아 보이는 정황도 드러났다.


등기부등본을 잘 살펴보면 수상한 인물이 등장한다. 재만씨와 돈거래를 한 이모씨다. 이씨는 2006년 12월 재만씨를 채무자로 신원프라자에 30억원의 근저당을 설정했다. 다시 말해 재만씨가 빌딩을 담보로 이씨에게 30억원을 빌린 것이다. 근저당은 2011년 9월 해지됐다.

문제는 이씨의 실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이씨는 현재 동아원 플랜트사업본부 전무로 재직 중이다. 이씨는 '이희상 가신'으로 추정된다. 특히 근저당 시기와 이씨의 행보는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장인 회사 임원과 돈거래 
환수 위기 처하자 대비용?

한국제분 전무이사를 맡고 있던 이씨는 30억원 근저당을 설정한 직후 '점령군'자격으로 동아원에 입성했다. 동아원그룹은 2007년 1월 동아원(당시 에스씨에프)을 인수했고, 3월 이씨를 감사로 선임했다. 이 회장이 2008년 3월 동아원 대표이사로 취임하자 이씨는 2009년 3월 등기임원에 올랐다. 관리총괄, 감사위원장, 생산본부장 등을 지낸 이씨는 2011년 3월 임기가 만료됐고, 3개월 뒤 근저당이 해지됐다. 동아원 상무(해외법인)로 재직 중인 재만씨도 이 기간 줄곧 임원으로 재직해 이씨와 모를 리 없다.

지난해 전무로 복귀한 이씨 또한 김씨와 마찬가지로 30억원의 재산을 갖고 있을 만한 여력이 의심된다. 이씨는 재만씨에게 돈을 빌려줄 당시 노원구 중계동 ○○○아파트에 거주했었다. 이 아파트는 전용면적 115㎡(약 35평)로, 현 시세는 5억∼6억원이다.

이씨는 30억원을 돌려받은 지금도 이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연 이씨가 그만한 재력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더구나 이씨는 은행에서 2400만원을 대출받는가 하면 구청에 세금이 밀려 집을 압류당하기도 했다. 경제적으로 그리 넉넉하지 않다는 방증이다.

검찰 관계자는 "이씨의 상황을 보면 재만씨에게 밀려준 30억원의 출처와 돌려받은 30억원이 어디로 갔는지 용처가 확실하지 않다"며 "한남동 건물이 비자금으로 지목돼 환수될 위기에 처하자 재만씨와 이 회장이 짜고 회사 임원을 내세워 돈 거래를 조작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전 전 대통령은 29만원밖에 없다고 주장하며 추징금 2205억원 중 1672억원을 납부하지 않고 있다. 이를 회수하기 위해 검찰은 전담팀을 구성하고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국세청과 금감원도 힘을 보탠다. 국회에선 '전두환 추징법'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를 비웃듯 그의 가족들 재산은 2400억원. 재만씨의 재산만 적게는 수백억원에서 많게는 1000억원대에 이른다. 모두 은닉처로 의심되는 만큼 샅샅이 뒤져야 한다는 게 국민들의 주문이다.


김성수 기자<kimss@ilyosisa.co.kr>

 

<'전재만 처가' 동아원그룹은?>

화려한 혼맥 '대통령 사돈기업'

동아원그룹은 고 이용구 창업주가 1952년 군산에 설립한 한국산업이 모태로 현재 제분(한국제분·동아원)과 사료(대산물산·카페), 식품(동아푸드·해가온), 와인(나라셀라·단하지앤비·단하유통·PDP와인), 수입차(FMK), 수입의류(모다리슨) 등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창립 56년 만에 이 창업주의 호를 딴 운산그룹에서 사명을 바꾼 동아원그룹의 2011년 계열사 전체 매출은 8137억원. 2015년까지 1조원이 목표다.

동아원그룹은 '대통령 사돈회사'로 유명하다. 1993년 이 창업주가 별세한 직후 경영일선에 뛰어든 이희상 회장은 세 딸이 있는데, 3명의 전·현직 대통령 가문과 직간접적으로 사돈관계다. 장녀 윤혜씨의 남편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3남 재만씨.

차녀 유경씨는 신동방그룹 신명수 회장의 동생 신영수씨의 아들 기철씨와 혼인했다. 신 회장 사위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였다. 신 회장의 장녀 정화씨와 재헌씨는 지난해 이혼했다.

3녀 미경씨는 효성그룹 조석래 회장의 장남 조현준 효성 사장과 결혼했다. 효성가는 조 회장 동생 조양래 한국타이어그룹 회장의 차남 조현범 한국타이어 사장을 통해 이명박 대통령과 사돈관계를 맺고 있다. 결국 동아원 일가도 이 대통령과 한다리 건너 사돈인 셈이다. <수>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