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경제1팀] 현대산업개발과 거제시 간 커넥션 의혹이 제기됐다. 거제시가 관급 공사비 수십억원을 빼돌린 현대산업개발에 내린 행정조치를 경감한 정황이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다. 갑자기 면죄부를 준 이면엔 어떤 내막이 있는 것일까. 밀월 또는 빅딜이 의심되는 지난 8년간의 과정을 되짚어봤다.
현대산업개발과 거제시 간 커넥션 의혹의 발단은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대산업개발은 그해 4월 거제시가 발주한 162억원 규모의 장승포 옥포지구 하수관거정비사업 시공사로 선정, 2008년 4월 공사를 마쳤다. 이 사업은 장승포와 옥포지역 33.4㎞에 하수관로를 매설하는 공사다.
소송으로 시간 끌고
그러나 5개월 뒤 경남지방경찰청은 사업 과정에서 현대산업개발이 허위서류를 만드는 수법으로 공사비 수십억원을 부당 수령한 사실을 적발했다. 공사에 참여한 한 내부고발자의 제보가 있었다. 가설시설물을 설치하지 않고 공사를 진행했는데도 공사대금을 수령했다는 내용이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비리를 신고해 공사비를 환수하는데 기여한 제보자에게 3억7000만원의 보상금을 지급했다.
실제 경찰 조사결과 현대산업개발 등은 총 6.2㎞의 에이치파일 및 시트파일 가시설(하수관거 매설을 위한 도로면 절개 시 측면 붕괴를 막기 위한 가설시설물) 중 800m만 시공하고 기성금과 준공금으로 44억7000만원을 받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으로 10여명이 무더기 형사 처분을 받았다.
즉각 시민들에게 사과의 뜻을 밝힌 거제시는 2009년 9월 지방계약법에 따라 현대산업개발에 5개월 동안 국가기관 발주 공사 입찰제한 처분(부정당업자 제재)을 내렸다. 부정당업자 제재는 경쟁의 공정한 집행 또는 계약의 적정한 이행의무를 위반한 업체에 대해 일정기간 입찰에 참여할 수 없도록 하는 제도다.
관급공사비 44억 빼돌려 5개월 입찰 금지
돌연 1개월로 감경 결정…유착 의혹 제기
현대산업개발은 곧바로 거제시를 상대로 행정처분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또 거제시를 상대로 부정당업자 제재 처분에 대한 취소청구 소송도 제기했다. 이 소송은 일진일퇴의 공방을 주고받았다. 1심(창원지방법원)은 현대산업개발이 승소했고, 2심(부산고등법원)에선 거제시가 뒤집었다.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현대산업개발이 발끈한 이유는 당시 4대강 사업을 비롯해 각종 공공공사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관급공사 입찰제한이 영업에 치명타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5개월 행정처분이 확정될 경우 현대산업개발의 수주손실액은 1조2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됐다. 그나마 현대산업개발은 소송 제기로 지금까지 입찰 참가자격엔 아무런 제한이 없었다.
대법원 판결이 임박하자 현대산업개발은 다시 초조해지기 시작했고, 결국 '히든카드'를 뽑아들었다. 거제시에 입찰제한 기간을 줄여주면 그만큼 보상하겠다는 '빅딜'을 제안한 것.
일각서 심의위원 로비 의혹
정치권 입김 작용설도 돌아
현대산업개발은 지난 4월 거제시에 민원 재심의를 신청했다. 이어 거제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과문을 발표했다. 정순국 상무는 "부당하게 수령한 공사대금은 전액 반환했다. 비리 관련자들은 모두 형사처분을 받았다"며 "행정처분이 과중하다. 감당하기 어려운 피해가 우려된다. 처분기간을 1개월 또는 45일로 줄여 달라"고 읍소했다.
그러면서 '밑밥'을 깔았다. 현대산업개발은 "거제시 정책에 적극 협조하고 지역발전을 위한 노력과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며 "입찰제한이 최소 1개월 이상 줄어들면 거제시를 지원할 구체적인 계획을 공증절차를 거쳐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액션'도 빼놓지 않았다. 현대산업개발은 지난달 6일 거제시 장승포동 주민자치위원회와 지역발전 및 상호교류를 합의하는 자매결연을 맺었다. 회사 측은 지역발전과 주민들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복지시설 개선 및 확충, 새로운 관광개발 콘텐츠 개발 등 주민숙원사업을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거제시는 밑밥을 덥석 물었다. 거제시는 지난달 31일 시청 소회의실에서 계약심의위원회를 열고 현대산업개발의 재심의 신청을 받아들여 입찰제한을 당초 5개월에서 1개월(6월7일∼7월6일)로 감경했다. 심의위는 ▲현대산업개발이 부당 이득금 44억7000만원을 반환한 점 ▲하수관거 준공 이후 결함이 발생하지 않은 점 ▲장기간 입찰참여 제한에 따른 회사 손실과 협력업체의 어려움 ▲지역 사회발전에 기여 의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경감했다.
거제시 관계자는 "다방면으로 검토한 결과 재심의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에 따라 심의위를 열었다"며 "공식 절차를 밟은 만큼 심의위의 결정은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권민호 거제시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감경 조치는 대승적 차원에서 내린 결단"이라고 밝혔다.
현산 '밑밥'
거제 '덥석'
이쯤 되자 특혜·유착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대기업 봐주기'란 지적이다. 거제시가 공금 수십억원을 빼돌린 현대산업개발에 내린 행정조치를 대폭 경감하자 지역 시민단체들은 강력 반발하고 있다.
거제시민단체연대협의회는 "국민 세금을 떼먹은 기업을 봐줬다"며 "불법행위를 바로잡아야 할 거제시가 오히려 불법을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통영거제환경연합은 "심의위를 개최한 것 자체가 현대산업개발에 면죄부를 준 것"이라며 "스스로, 그것도 소송 중인 행정처분을 번복한 재심의는 현대산업개발의 들러리"라고 꼬집었다.
최종심 앞두고 읍소
일각에선 로비 의혹까지 불거지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현대산업개발이 사전에 심의위원 명단을 확보, 심의위원들을 상대로 은밀히 로비를 벌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한 위원은 "현대산업개발 측이 집까지 찾아다니며 자신들의 입장을 집요하게 전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뇌물을 건넨 사실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또 현대산업개발의 치밀한 물밑작업을 통해 부탁을 받은 정치권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았냐는 의혹도 일고 있다.
구린 냄새를 맡은 사정기관은 비밀리에 내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거제시가 현대산업개발의 입찰제한 기간을 감경한 배경과 심의위원들을 상대로 한 로비가 있었는지, 정치권의 압박 여부 등을 캔다고 한다. 만약 수사로 전환될 경우 이를 둘러싼 파장이 클 것으로 보인다.
김성수 기자 <kimss@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