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7주년 특집> 윤창중 사태로 본 ‘변태천국’ 자화상④당하는 남자들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05.21 11:2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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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다 말도 못하고 '끙끙'

[일요시사=경제1팀] 30대 48%, 20대 32%, 40대 12%, 50대 1%. 연쇄성폭력범들이 범행을 저지를 당시의 연령을 분석한 것이다. 이들 중 65%는 미혼인 상태였으며 절반은 '무직'이었다. 직업도 나이도 모두 제각각이지만 교집합은 하나, 남성이라는 점이다. 여성 성범죄자들은 없는 걸까. 성범죄자 99%는 남성이다. 1%는 여성이라는 얘기다.


이제 막 직장생활을 시작한 김모(27·남)씨는 준수한 외모에 깔끔한 매너로 회사 안에서 인기가 높다. 남부러울 것이 없는 듯하지만 정작 김씨는 요즘 회사 출근이 두렵다. 미혼의 여성 상사 A씨 때문이다.

출근이 두렵다

A씨는 출근 첫날부터 김씨에게 "우리 막내 탱탱하네"하면서 엉덩이를 만지고 엘리베이터에서는 "운동해?"라며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김씨는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수치스러웠지만 '찍힐까봐' 아무렇지 않은 척 넘어갔다. 하지만 그 뒤에도 음담패설이나 노골적인 스킨십은 늘어만 갔고 그런 A씨의 행동을 제지하는 직원들은 없었다. 김씨는 요즘 퇴사를 고민하고 있다.

박씨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상습적으로 성관계를 강요받고 있다. 박씨에 따르면 1주일에 한두 번은 여사장과 잠자리를 같이 한다. 거부의사를 밝혀도 보고 경찰에 신고도 생각했지만 주위 시선이 부담스럽다. 주변인들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네가 좋아서 하는 일 아니냐" "나도 그 회사 들어가고 싶다" 등이 전부였다. 박씨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남자가 어떻게…'라는 시선으로 쳐다보는 것 같다고 한다.

직장인 4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40.5%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다. 성별로는 여성이 72.6%였으며 남성도 27.4%를 차지했다. 10명 중 4명이 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고 그 중 1명은 남성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남성 피해자들이 훨씬 많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성폭력상담소 관계자는 "술에 취한 여성 상사가 남자 부하직원의 허리를 껴안는가 하면 심지어 입맞춤까지 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다"며 "이처럼 남성 성폭력 피해자가 늘고 있는 것이 현실인데도 사회인식 때문에 남성들이 피해 사실을 숨기고 있다"고 말했다. 성폭력 자체에 대한 수치심보다 '여자에게 당했다'는 사실을 더 창피해 한다는 것이다.

법 제도도 문제다. 최근까지 여자가 남자를 강간하더라도 여자에게는 강간죄를 적용할 수 없었다. 강간죄는 형범 제297조에 따라 폭행 또는 협박을 수단으로 하여 '부녀'를 항거불능의 상태로 만든 뒤 간음을 함으로써 성립했다. 남성이 부녀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남자만이 여자를 강간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에 대해 강간죄 대상을 부녀로 한정한 것은 남자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침해한 것이라는 비판이 일었고 오는 6월19일부터는 강간의 객체를 부녀에서 사람으로 변경해 앞으로는 여자가 남자를 강간하는 것도 강간죄로 처벌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문제는 아직 남아있다. 바로 성폭력의 피해자는 항상 여자라는 사회적 통념이다.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 하듯 최근 상대방과 합의하에 성관계를 했음에도 성폭력 피해자인 것처럼 허위 고소하는 이른바 '꽃뱀'이 급증하고 있다. 성 범죄자로 낙인찍히는 것에 대한 남성들의 두려움을 악용하고 있는 것이다.

한 20대 여성의 경우, 인터넷 채팅에서 만난 남성들과 술을 마시고 성관계를 맺은 뒤 이들 남성들 강간 혐의로 고소했다가 지난 1월 구속 기소됐다. 또 학원을 운영하는 40대 여성은 9000만원을 빌렸다가 사기 혐의로 고소를 당하자 돈을 빌려준 남성을 유혹해 성관계를 가진 후 남성을 고소했지만 검찰 수사에서 무고로 밝혀졌다.

여상사가 만져도 찍힐까봐 침묵
성폭행 누명쓰고 인생 망치기도 
6월부터 여성도 강간죄로 처벌

이런 경우 남성들은 검찰수사 과정에서 결백이 드러나지만 사회적·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는다. 지난 7일 10대 소녀를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됐다 무혐의 처분으로 풀려난 30대 남성 B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1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소한 것이 대표적이다.


B씨는 일면식도 없는 16세 C양이 자신을 성폭행범으로 지목하면서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 B씨는 "C양을 전혀 알지 못하고 성폭행 장소라는 모텔에 가본 적도 없다"고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소용없었다. 체포 이틀 만에 구속영장이 발부됐고 경찰은 B씨를 기소의견으로 서울남부지검에 송치했다.

하지만 검찰수사 과정에서 B씨의 결백이 드러났다. 가출 뒤 친구들과 빈집털이를 한 혐의로 수배 중이던 C양이 임신을 하자 어머니의 추궁이 두려워 거짓말을 한 것. C양은 우연히 주운 휴대전화에 저장된 B씨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고, 이 통화내역과 전화번호를 근거로 B씨를 성폭행범으로 신고한 것이다.

결국 B씨는 혐의없음 처분을 받고 풀려났지만 이미 다니던 직장에서는 권고사직을 당했고 새 직장에도 출근하지 못해 합격이 취소됐다. 또 C양의 어머니로부터 합의금 요구에 시달리며 정신적 고통도 컸다. B씨는 지난해 1월 C양 모녀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C양의 진술이 비교적 구체적이었고, B양의 조사 과정에 참여한 아동행동진술분석전문가가 'C양 진술의 신빙성이 높아 보인다'고 보고했다"며 "B씨를 수사한 수사기관의 판단이 합리성을 긍정할 수 없는 정도의 행위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법원은 앞서 B씨가 C양 모녀를 상대로 낸 1억원의 손해배상 청구는 받아들였지만 C양 측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 손해배상금을 낼 능력이 안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물에 빠진 여성을 구한 남성이 성폭행범으로 몰린 사연, 성폭행 피해여성을 구하려다 피의자에게 상해를 입혀 거액의 합의금을 물어준 사연 등 '물에 빠진 놈 건져 놓았더니 내 봇짐 내라'는 격의 황당한 사연들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성폭행을 당하는 여성을 보더라도 절대 도와주면 안 된다"는 말까지 나돌 정도다.

무조건 피의자?

성폭력을 당한 남성, 억울하게 성폭행범으로 몰린 남성 등 남성 피해자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극히 제한적이다. 남성이 입소할 수 있는 피해자 보호시설은 한 곳도 없으며 성폭력 상담기관 또한 '여성을 위한 곳'이라는 이미지가 강해 남성이 도움을 청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그 사이 성폭력에 울고, 주위 시선에 울고,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해 또 우는 남성 성폭력 피해자들은 점점 늘어만 가고 있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성범죄 용어 정리]

[성폭력] 

성폭행, 성추행, 성희롱 등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 성의 매개로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이뤄지는 모든 가해행위.


[성폭행] 

성폭력 유형 중 하나. 강간과 강간미수를 의미. 3년 이상의 유기징역

[성추행] 

강제추행. 성욕의 자극, 흥분을 목적으로 일반인의 성적 수치, 혐오의 감정을 느끼게 하는 일체의 행위. 키스를 하거나 상대의 성기를 만지는 행위 등이 이에 해당.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형.

[성희롱] 

업무, 고용 기타관계에서 그 직위를 이용하거나 업무 등과 관련하여 성적 언어나 행동 등으로 성적 굴욕감을 느끼게 하거나 성적 언동 등을 조건으로 고용상 불이익을 주는 행위. 형사처벌 대상은 아니지만 피해자가 사업주에게 가해자에 대한 부서전환과 징계 등의 조치 요구 가능. 가해자를 대상으로 손해배상 청구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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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