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노무현 쇼크④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충신들



노 전 대통령 서거로 그와 고락 함께했던 측근들 재조명
상주 자청해 빈소 지키며 오열하고 현 정권에 쓴 소리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인 서거 이후 국민들의 슬픔이 날로 깊어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노무현의 사람들’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주체할 수 없는 비탄에 빠져 있다. 끝까지 노 전 대통령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한 나라의 대통령이었던 이를 죽음으로 몰고 간 현실에 대한 분노가 뒤섞인 슬픔이다. 노 전 대통령과 남다른 인연을 맺고 그의 삶과 죽음을 함께 해온 이들, 또 그의 퇴임과 함께 야인의 삶으로 돌아가거나 구속수감 등 불운을 함께 맞은 이들의 면면을 살펴봤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누구보다 애통해하는 사람 중 한 명은 그의 ‘영원한 후원자’를 자처했던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이다. 노 전 대통령으로 인해 구속 수감됐던 강 회장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죽음으로 인해 잠시나마 석방되어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했다.

노 전 대통령의 자살소식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오열했던 강 회장. 그와 노 전 대통령의 인연은 노 전 대통령이 종로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했을 당시였던 1998년이다.

‘영원한 후원자’ 강금원
서거 이후 눈물의 재회

이는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의 홈페이지 ‘사람 사는 세상’에 쓴 ‘강금원이라는 사람’이란 글에도 언급된다. 이 글에 따르면 당시 강 회장은 “나는 정치하는 사람한테 눈곱만큼도 신세질 일이 없는 사람입니다”라는 말과 함께 후원금을 내며 정치적 동반자의 길을 걷게 된다.

그랬던 강 회장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지난 2003년 12월이다. 당시 강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이 인수했던 생수업체의 빚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19억원을 제공한 것이 문제가 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이때부터 노 전 대통령은 강 회장에게 늘 ‘면목 없는 사람’이었다. 강 회장 아들의 결혼식 주례를 서면서 “내가 겪을 고초를 대신 겪은 사람”이라는 말로 그의 소개를 대신했던 노 전 대통령. 최근 강 회장이 구속된 후에는 강 회장에 대한 옹호와 애정을 담은 글을 홈페이지에 올려 두 사람의 깊은 관계를 엿보게 했다.

이처럼 오랫동안 정치적 동반자로 인생역정을 함께 한 두 사람은 결국 산 자와 죽은 자로 마지막 만남을 가졌다. 구속된 지 47일 만에 보석으로 풀려난 강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의 빈소로 한달음에 달려와 오열했다.

자신들의 관계에 끊임없이 의혹의 시선을 던졌던 세상은 노 전 대통령이 목숨을 끊은 후에야 강 회장의 진심에 귀를 기울였다.

강 회장은 빈소에서 “노 전 대통령이 무슨 잘못이 있느냐. 무슨 잘못이 있다고 이럴 수가 있느냐”고 말하며 흐느꼈다. 그는 또 “내가 잘못이 없다는 것을 검찰에 그렇게 얘기했건만 나를 잡아넣고…. 세상에 이런 일이 어떻게 있느냐”며 자신과 노 전 대통령의 억울함을 토로했다.

이처럼 정치가와 사업가 사이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던 아름다운 관계를 보여 준 두 사람의 얘기는 정치사에 오랫동안 회자될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리틀 노무현’으로 불렸던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역시 영원한 ‘노의 남자’다. 빈소에 오자마자 영정에 담배 한 대를 올리는 것으로 애도를 시작한 유 전 장관은 장례식의 모든 과정에 빠지지 않고 자신의 몫을 다했다.

대중들에게 ‘친노 아이콘’으로 불리며 단 한 번도 그에게 등을 돌린 적이 없는 유 전 장관. 그는 2002년 대선 당시 민주당 후단협 등 반노-비노 세력이 노 전 대통령의 후보사퇴를 종용하는 것을 보고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노무현의 정치적 경호실장’을 자임했을 만큼 그의 든든한 정치적 동반자였던 유 전 장관은 서거 이후 빈소에서 떠나지 않으며 상주 역할을 했다. 또 검찰과 언론 등 노 전 대통령을 압박했던 세력들에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지난달 27일에는 자신의 팬클럽 홈페이지 ‘시민광장’에 ‘넥타이를 고르며’란 글을 올렸다. 이 글에서 그는 노 전 대통령을 “정권과 검권과 언권에 서거당한 대통령”이라고 썼다. 또 지난달 29일 열린 영결식에 대해 “죄 없는 죽음을 공모한 자들이 조문을 명분 삼아 거짓 슬픔의 가면을 쓰고 지켜보는 영결식”이라고 표현하며 강한 비판을 했다.

노 전 대통령과 관련된 사건이 터질 때마다 발 벗고 나서 대변인을 자처했던 문재인 비서실장 역시 적극적으로 나서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을 지키고 있다.

대통령 재임 시 가장 신임했던 참모이자 친구였던 문 전 실장은 부산지역에서 시국사범 변론을 하면서 노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는다. 건강문제로 잠시 청와대를 떠났을 때를 제외하고는 5년 내내 노 전 대통령의 옆을 든든하게 지켰다.

그리고 위기에 빠질 때마다 노 전 대통령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은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고 말할 정도로 깊은 신뢰를 보내기도 했다.

퇴임 이후에도 노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 역할을 이어갔다. 노 전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받을 때도 어김없이 변호인으로 나섰다. 서거 이후에도 슬픔을 감추고 차분하고 냉정한 태도로 국민들에게 노 전 대통령이 숨진 정황을 설명하고 장례절차 등 모든 부분에 참여해 ‘영원한 비서실장’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각별한 인연의 끈
죽음으로 끊어져

노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신이 원하신 결과가 이겁니까”라며 분노를 유감없이 표출했던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도 정치인생의 시작과 마지막을 노 전 대통령과 함께한 인물이다. ‘좌희정’이란 별칭을 얻을 만큼 노 전 대통령과 각별한 사이였던 안 최고위원은 1997년 노 전 대통령이 운영하던 지방자치연구소에서 일을 하면서 그와 연을 맺었다.

이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 경선캠프의 사무국장, 비서실 정무팀장,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 참여정부평가포럼 상임집행위원장, 민주당 충남 논산·계룡·금산 지역위원장 등을 두루 거치면서 노 전 대통령의 측근 중의 측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노 전 대통령 역시 안 최고위원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안 최고위원의 홈페이지에 “안희정씨는 나한테 오늘이 있게 한 아주 결정적인 기여를 했던 정치적 동지”라며 “나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사람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다”라고 그를 소개하기도 했다.

법원의 구속집행정지 결정에 따라 일시 석방돼 빈소를 찾은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이광재 민주당 의원도 오열로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비통해했다. 박연차 리스트에 연루되어 나란히 구속되는 불운을 겪은 세 사람은 노 전 대통령의 허망한 서거에 안타까움을 감추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과 1987년부터 인연을 맺고 노 전 대통령과는 정치적 동지였던 이 전 수석은 “평생 동지이자 친구인 노 대통령을 생각하면 죽지 못하고 살아 있다는 게 부끄럽고 죄스럽다”며 오열했다.


또 “정치보복으로 인해 노 전 대통령이 참극을 당했다”며 정부와 검찰을 향해 비난을 퍼부었다. 그는 “이명박 정권과 검찰이 진정으로 반성해야만 화해가 될 수 있다”며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1970년 경남 김해의 한 암자에서 46년생 동갑내기로 노 전 대통령과 만난 정 전 비서관은 그때부터 오늘날까지 고락을 함께했다. 고향 친구인 두 사람의 관계가 새로운 국면을 맞은 것은 2003년 8월 정 전 비서관이 청와대로 입성하면서부터다. 당시 4급 공무원이었던 정 전 비서관은 총무비서관으로 임명돼 4년여 동안 청와대 안살림을 맡았다.

잠시나마 석방돼
마지막 길 동행

이처럼 40년이 넘도록 각별한 관계가 유지된 사실로 인해 두 사람은 비리의혹에 자주 휘말리기도 했다. 그리고 결국 구속수감에 이른 정 전 비서관은 노 전 대통령의 영정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터져 나오는 울음을 손으로 막고 자리를 뜬 것으로 알려졌다.

‘우광재’로 불렸던 최측근 이광재 의원도 뒤늦게 빈소를 찾아 침통한 마음을 전했다. 이 의원은 “제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켜드리지 못했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라며 “다만 권 여사님과 가족들은 제가 살면서 숨이 끊어지는 그날까지 함께 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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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