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노무현 쇼크①‘참담한 순간’ 6대 미스터리

들릴 듯 말 듯…귓가에 맴도는‘봉화산 메아리’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영결식이 끝났지만 아직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들이 속 시원하게 풀리지 않고 있다. 경찰의 오락가락한 태도 탓이다. 경찰은 ‘이랬다 저랬다’를 반복하며 뒤엉킨 실타래를 제대로 풀지 못하고 있다. 그저 증언에 기대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도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이 틈새로 인터넷 등 세간에선 터무니없는 각종 ‘설’들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실정이다. 노 전 대통령 서거를 둘러싼 의혹들을 다시금 조목조목 짚어봤다.

정확한 사고 경위 등 풀리지 않은 의문들 여전히 ‘미궁’
경찰 수사 ‘오락가락’ 사이 터무니없는 ‘설’ 모락모락 


한국 정치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인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두고 말들이 많다. 서거 경위에 대한 경찰의 수사에 미심쩍은 부분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경찰은 당초 수사 내용을 모두 뒤집은 상태. 하지만 여러 의문점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의문1>‘이랬다 저랬다…’
경호원 진술 번복 왜?

경찰은 노 전 대통령이 산행에 동행한 이모 경호원에게 심부름을 시킨 뒤 투신한 것으로 잠정 결론 내렸다. 노 전 대통령이 경호원에게 “정토원에 선 법사(선진규 원장)가 계신지 보고 오라”고 지시한 뒤, 경호원이 정토원에 다녀온 3분 사이 봉화산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렸다는 것이다.
1차 조사 때 “부엉이바위에 도착해 투신할 때까지 노 전 대통령과 함께 있었다”는 경호원의 진술이 거짓으로 밝혀진 셈이다. 3차에 걸친 경찰의 수사 발표도 모두 제각각이다.
경찰은 “경호에 실패했다는 충격과 자책감, 흥분, 불안, 신분상 불이익 등 심리적 압박으로 허위 진술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지만, 언제 또 번복할지 모르는 경호원의 진술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다시 말해 상황에 따라 경호원의 진술이 바뀔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결국 경찰이 전면 재조사를 통해 확보한 객관적인 자료가 뒷받침돼야 경호원의 진술이 신빙성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전직 대통령이 서거한 사건인 만큼 철저하게 경위를 밝히기 위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의문이 풀릴 때까지 보강수사를 계속할 방침이다.

<의문2>‘30분간 무슨 일이…’
경호 기본원칙 무시 왜?

경호원의 아마추어 같은 행동에도 의문이 생긴다. 이 경호원은 1991년 경호원 공채로 채용돼 노 전 대통령을 취임 당시부터 경호했고, 2008년 퇴임과 함께 봉하마을에서 계속 경호 업무를 수행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경호원은 노 전 대통령을 줄곧 모신 베테랑 경호원답지 않게 경호수칙을 무시했다.
경찰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의 산행에 동행한 경호원은 단 한 명이다. 보통 VIP가 외부 활동시 최소 ‘2인1조’경호를 원칙으로 하는 점을 감안하면 허술한 경호가 아닐 수 없다.
경호 전문가들도 “전직 대통령이 산행을 하는데 경호관이 한 명밖에 수행하지 않은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이 벼랑 끝에서 몸을 던질 당시 경호원은 자리를 지키지 않았다. 아무리 심부름을 갔다 해도 경호 상대를 혼자 남겨뒀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경호원이 노 전 대통령의 지시로 자리를 뜬 시각이 오전 6시14분께, 그리고 산 밑에서 노 전 대통령을 발견해 동료에게 차를 대라고 전화한 시간이 오전 6시45분이므로 약 31분간 ‘경호 공백’상태였다.
‘경호 대상에서 눈을 떼지 말라’는 조항은 경호원의 기본수칙으로, 만약 불가피하게 자리를 떠야 하는 용건이 발생하면 무전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지원을 요청하는 게 원칙이다. 경찰은 경호 공백 31분 동안 경호관들의 행적에 수사를 집중하고 있다.

<의문3>‘119 코앞에 두고서…’
베테랑 어설픈 행동 왜?


경호원이 노 전 대통령을 발견하기까지 과정과 발견한 이후 수습도 논란거리다.
이 경호관은 노 전 대통령이 실종된 상황에서 휴대전화로 동료에게 연락했다고 진술했다. 항시 무전기를 차고 귀에 리시버를 꽂은 채 본부(노 전 대통령 자택)에 수시로 보고하는 경호원이 무슨 이유로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는지 의문이다.
또 노 전 대통령을 발견한 경호원의 초기 대처도 어설펐다. 경호원이 부엉이 바위 밑에서 누워 있는 노 전 대통령을 찾은 것은 6시45분, 노 전 대통령을 가장 먼저 살펴본 세영병원에 도착한 시각이 7시다. 병원 이송이 15분 걸렸다는 얘기다.
세영병원 측은 “병원에 도착 당시 의식불명 상태”란 답변만 되풀이하고 있다. 현재로선 노 전 대통령이 현장에서 즉사했는지, 이송 과정에서 숨을 거뒀는지 사망 시점이 명확치 않지만, 경호원이 빨리 발견해 응급 처치만 제대로 했으면 노 전 대통령이 회생할 수 있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응급의학계에 따르면 응급환자 발생시 초기 대응 5분이 생명을 좌우한다. 심폐소생술, 인공호흡 등 적절한 조치가 5분 안에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최초 목격자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뇌가 치명적으로 손상되거나 사망할 확률이 높아진다.
경호원은 이런 응급조치와 절차를 숙지하고 있다. 그러나 경호원은 노 전 대통령의 얼굴을 흔들고 목 부위 경동맥의 맥박만 확인한 뒤 우측 어깨에 메고 산을 내려와 공터에서 차를 기다리는 동안 그때서야 인공호흡을 실시했고, 곧바로 도착한 경호차에 노 전 대통령을 태우고 세영병원으로 후송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추락하면서 충격을 심하게 받은 노 전 대통령을 경호원이 무리하게 어깨에 메고 이동한 점, 응급차가 아닌 승용차로 이송한 점 등을 지적하고 있다. 도리어 부상을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경호원들이 119에 구조 연락을 하지 않는 점도 의혹을 더한다. 진영 119센터는 봉하마을 사저에서 불과 4.19㎞ 정도로 응급차로 5분 거리에 있었지만, 경호원들은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경찰은 “경호원이 다급한 상황에서 경황이 없어 일단 병원으로 옮겨야겠다는 생각에 우선 메고 갔다”고 전했다.

<의문4>‘일부러 벗기도 힘든데…’
등산화·상의 탈의 왜?

노 전 대통령의 양복 상의와 등산화가 엉뚱한 곳에 떨어진 이유에 대해서도 경찰의 과학적인 설명이 부족하다.
노 전 대통령의 상의는 낙하지점에서 11m 떨어진 곳에서, 등산화 한 쪽은 벗겨진 상태로 시신 주변에서 발견됐다. 상의도 그렇지만 특히 등산화의 경우 보통 신발과 달리 신고 벗기가 쉽지 않다. 네티즌 사이에서 ‘타살설’등이 퍼지는 배경이다.
경찰은 노 전 대통령의 상의와 등산화가 각각 추락하는 도중과 옮기는 과정에서 벗겨졌다고 일축했다.
경찰은 “등산화는 노 전 대통령이 아래로 추락해 굴러 떨어지면서 (목이 없는) 등산화가 벗겨진 것 같다”며 “상의는 혈흔이 많이 묻은 점으로 미뤄 경호관이 투신한 노 전 대통령을 업고 옮기는 과정에서 떨어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사건 현장에 혈흔이 없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서거 당일 경찰이 수거한 상의와 등산화에 노 전 대통령의 피가 묻어있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수그러들었다.

<의문5>‘누군가 봤을 만한데…’
 사건 목격자 전무 왜?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순간을 지켜본 목격자의 존재 여부에도 시선이 쏠리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경호를 받지 않았던 31분 동안 행적을 판단할 만한 목격자는 공식적으로 아직 없다.
경찰은 “사건 당일 목격자를 상대로 재조사에 들어가는 등 탐문수사를 확대하고 있다”며 “노 전 대통령이 부엉이바위에서 떨어지는 장면을 본 사람 등 또 다른 목격자를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5시47분께 사저를 나와 등산로 입구 마늘밭에서 일하는 동네주민을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이 만난 사람이나 노 전 대통령을 본 사람이 없다.
하지만 최근 노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 목격 진술이 속속 나오고 있다. 일부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종합하면 마을 주민과 사저 경비 초소 대원 등이 노 전 대통령이 추락할 당시 소리를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마을 한 주민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노 전 대통령의 사저에서 불과 5분 거리에 있는 고추밭에서 일하던 중 제법 큰 물체가 땅바닥에 부딪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며 “새벽이라 소리는 굉장히 크게 들렸지만 비명소리는 듣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또 경호관이 투신한 노 전 대통령을 부둥켜안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증언이 나오기도 했다. 이들 증언은 등산객 유무와 수색작업 여부 등 경찰의 발표와 조금씩 차이를 보여 앞으로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의문6>‘평소 글과 다른데…’
단문식 메모 유서 왜?

노 전 대통령이 남긴 유서엔 ‘그동안 너무 힘들었다… 많은 이들을 힘들게 했다… 원망하지 마라… 삶과 죽음은 하나… 화장해 달라… 동네에 작은 비석 하나 세워 달라’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경찰은 “유서는 사저 박아무개 비서관이 발견했고, 유족 측 정재성 변호사를 통해 경찰에서 입수했다”며 “유서 파일을 유족 측의 동의 하에 디지털 증거분석한 결과 작성 시간과 저장시간 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사망 당일 오전 5시21분에 서재 겸 거실에 있는 컴퓨터로 유서 작성을 시작해 5시26분 1차 저장을 했다가 5시44분 최종 저장한 뒤 5시47분께 사저를 나왔다.
하지만 이 유서를 놓고 진위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우선 유서는 노 전 대통령의 육필이 아니다. 서명이나 사인도 없다. 따라서 유서를 다른 사람이 작성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경찰은 노 전 대통령이 남긴 유서가 14줄이라고 밝혔으나 실제론 더 많은 분량이 있지 않겠냐는 추측도 있다. 노 전 대통령의 평소 집필 습관을 감안하면 극히 평범하고 단문 형태의 짧은 유서가 미심쩍다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직설적인 화법과 과감한 성격상 파격적이고 충격적인 또 다른 메시지를 남기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도 있다. 노 전 대통령은 빙빙 돌리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내뱉고 보는 스타일로 말솜씨가 좋은 달변가로 유명했다. 핵심이 명확하고 과격한 글로도 정평이 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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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