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돌아온 '친박' 서청원

  • 김성수 kimss@ilyosisa.co.kr
  • 등록 2013.04.19 14:4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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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다 살아난 '풍운아'…여당 접수하나

[일요시사=경제1팀] '친박원로'서청원이 돌아왔다. 5년 만이다. 상임고문으로 새누리당에 복귀했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란 말처럼 국민들 시야에서 사라졌던 왕년의 정계 거물이 보란 듯이 컴백했다. 수차례 고비를 넘긴 그의 롤러코스터 정치인생과 역할론을 짚어봤다.



'원조 친박계' 서청원 전 친박연대 대표가 새누리당 상임고문으로 위촉됐다. 새누리당은 지난 8일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이같이 의결했다. 18대 총선을 앞두고 탈당한 서 고문의 당 복귀는 5년 만이다.

당 들락날락
5년 만에 복귀

1943년 충남 천안에서 태어난 서 고문은 중앙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온 언론계 출신 정치인이다. 중앙대 총학생회장, 전국총학생연합회 위원장 출신으로 정치권의 대표적인 6·3 세대다. 6·3사태(1964년 6월3일 박정희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해 한일회담 반대시위를 진압한 사건) 주도 혐의로 100일간 투옥되기도 했다.

1969년 조선일보 기자로 입사한 서 고문은 1980년 광주항쟁 때 '광주사태 특파기자'로 활동했다. 당시 경험을 바탕으로 <5·18 특파원 리포트>란 단행본을 발간했다. 같은해 민주한국당 선전분과위 부위원장을 맡으면서 정계에 입문, 1981년 11대 총선(서울 동작구)에서 민한당 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12대 총선에서 낙마한 그는 같은 지역구 13·14·15·16대 총선에서 연거푸 승리했다. 이 과정에서 당적이 '민한당→통일민주당→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으로 바뀌었다.

1985년 민주화추진협의회 상임위원을 계기로 '상도동계'에 들어간 그는 민주당에서 대변인(1989년), 김영삼 총재 비서실장(1989년) 등을 지냈다. 신한국당 때엔 원내총무(1996년) 등을 맡으면서 1997년 대선후보 경선 당시 '반 이회창'기치를 내건 정치발전협의회를 주도, 이수성 전 총리를 지지했으나 야당이 된 뒤 이회창 후보와 YS와의 관계 정상화에 노력했다. 한나라당에 둥지를 틀고는 사무총장(1998년), 대표최고위원(2002년), 대선 중앙선거대책위원장(2002년) 등을 역임했다.

서 고문의 정치인생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한마디로 롤러코스터 같았다. 당도 들락날락했다.


서 고문은 2002년 한나라당 중앙선거대책위원장 당시 대선 직전 한화그룹과 썬앤문그룹에서 각각 10억원과 2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2004년 1월 구속됐다가 열흘 뒤 국회에서 석방요구 결의안이 통과돼 풀려났다.

두 달 뒤 국회 회기가 끝나 재수감된 서 고문은 "국민의 지탄 대상이 된 불법대선자금 문제에 대해 당의 대표였던 제가 그 모든 책임을 지고 떠나겠다"며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5개월 뒤 1심에서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 추징금 12억원을 선고받고 풀려난 서 고문은 재판 끝에 2005년 형이 확정됐지만 이듬해 8·15 특별사면을 통해 복권됐다.

탈당·복당 반복 '롤러코스터 정치인생'
'검은돈'받고 수감-사면-복권 기사회생

이후 잠시 여의도를 떠나 있었던 서 고문은 2007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경선후보와 손을 잡으면서 부활을 알렸다. '박근혜 캠프'에서 상임고문을 맡은 것. 그때부터 '친박계 어른'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박근혜 후보는 떨어졌고, 서 고문의 정치인생도 다시 중대 고비를 맞았다. 곧바로 이어진 2008년 18대 총선에서 친이계에 밀려 자신을 포함한 친박계 인사들이 줄줄이 낙천되자 또 다시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서 고문은 홍사덕, 이규택 등과 함께 친박연대를 출범시켜 대표를 맡았다. 영남권 위주로 후보를 낸 결과 14석(지역구6석+비례대표 8석)을 차지하는 돌풍을 일으켰다. 서 고문도 비례대표로 금배지를 차 6선이 됐다. 정치권에선 '역시 서청원'이란 말이 회자됐다.

이도 잠시. 위기는 계속됐다. 총선을 앞두고 김노식·양정례 전 의원에게 32억원의 공천헌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서 고문은 2009년 5월 대법원에서 1년6월의 실형이 확정돼 수감됐다. 물론 의원직도 잃었다. 서 고문은 "검찰 수사와 대법원 판결은 부당하다. 명백한 정치적 탄압과 잔인한 보복의 결과"라며 옥중단식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가 고초를 겪는 동안 친박연대 의원들은 대부분 복당했다. 한나라당은 친박연대를 비롯한 탈당한 친박계 인사들의 복당을 불허한다는 뜻을 밝혔지만 이명박-박근혜 회동 후 불허 방침을 철회했다. 물의를 일으킨 서 고문은 복당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렇게 꺼질 뻔한 서 고문의 정치인생에 서광이 비친 것은 2010년 8월. 청와대는 서 고문을 8·15 특별사면 대상자로 선정해 남은 형기 중 6개월을 감형키로 결정했다. 당시 서 고문은 건강 문제로 형집행정지 기간이었으나 재수감을 자청해 교소도로 들어갔다. 그전까지 건강상의 이유로 수형생활과 형집행정지를 반복했었다.

역경 이긴 오뚝이?
물 흐린 미꾸라지?

정치권에선 가석방을 노린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현행법상 전체 형기의 3분의 1 이상만 복역하면 가석방이 가능하지만 법무부가 형기의 70% 이상 복역하지 않으면 가석방이 어렵다는 내규를 내세웠기 때문이다. 서 고문은 이미 수형생활을 한 5개월과 감형된 형기를 제외하고 7개월 형기가 남은 상태였다. 이에 따라 조만간 가석방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예상은 적중했다. 서 고문은 2010년 말 성탄절특사 가석방 명단에 이름이 올라 '자유의 몸'이 됐다. 이명박-박근혜 '화해무드'가 유효했다는 평이다. 서 고문의 세 번째 정계 복귀 가능성이 점쳐졌지만 쉽게 나서지 않았다. 감형 직후 "(앞으로) 정치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가석방으로 풀려나고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정계 복귀에 관심이 없다"고 했다.

그랬던 그의 움직임이 포착된 것은 지난 대선 때다. 전면에 나서지 않았지만 외곽에서 '박근혜 지원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비마다 '해결사'였다고 한다. 특히 박근혜 캠프의 동서화합과 대탕평 회심작이었던 호남인사 영입과정 등에서 대활약했다는 후문이다.

서 고문은 때를 기다린 듯이 여의도에 재입성했다. 대선이 그의 의도대로 끝나고, 지난 1월 MB정부 마지막 사면의 혜택을 받아 복권됐다. 그리고 이번에 상임고문으로 새누리당에 복귀했다.

오래전부터 박근혜 정치멘토
향후 행보는?…역할론 부상

정치권에선 서 고문이 향후 어떤 정치행보를 보일지 주목하고 있다. 새누리당 내에서 서 고문의 역할론이 부상하고 있는 것.

새누리당 당헌·당규에 따르면 상임고문직은 최고위원회 자문 기능을 가진다. 또 주요 현안에 관한 여론 전달 및 의견 개진도 할 수 있다. 상임고문 회의는 대표최고위원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 또는 상임고문 3분의 1 이상의 요구가 있을 때 소집된다. 서 고문까지 새누리당 상임고문은 모두 36명이다.



액면상으론 그 역할이 한정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면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각 당의 상임고문은 막후에서 '숨은 조력자'노릇을 한다는 점에서 영향력이 상당할 수 있다.

친박계는 서 고문의 복당을 환영하는 분위기. 박근혜 대통령 '수족'들의 입각으로 약해진 친박계 내부의 결속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들은 서 고문이 흔들리고 있는 친박계의 중심 역할을 해 줄 것을 기대하는 눈치다. 만약 4·24 재보선 부산 영도에 출마한 '친박계 좌장'김무성 후보까지 가세한다면 친박계 파워는 더욱 강해질 수 있다. 서 고문과 김 후보는 당내 권력지형의 변수로 분석된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으로선 든든한 우군이 생긴 셈이다. 서 고문은 박 대통령에게 오래전부터 정치적 조언을 해온 많지 않은 측근 중 1명으로 꼽힌다. 6선에 당대표까지 지낸 정치적 역량과 경륜 등을 들어 서 고문이 어떤 형태로든 박 대통령 노선에 도움을 주지 않겠냐는 관측이 대체적이다.


새누리당과 청와대는 새정부 출범 초부터 청문회 등을 두고 엇박자가 나는 상태. 서 고문이 중간에서 이를 다잡는 역할도 배제할 수 없다. 당-청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서 고문이 친박계 뿐만 아니라 평소 가깝게 지내는 중진 의원들까지 결집해 영향력을 키울지도 관심거리다.

친박 결속력 강화?
'막후 조력자'노릇?
당청 연결고리 역할?

정치권 한 관계자는 "서 고문은 절대로 뒷짐 지고 구경만 할 스타일이 아니다"라며 "어떤 형태로든 당에서 할 일이 있지 않겠냐. 아마 없어도 만들어서 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다른 관계자는 "당장 서 고문의 역할론을 얘기하긴 이르지만 박 대통령에겐 도움이 될 게 확실하다"고 전했다.

서 고문은 '독오른'여론을 의식해선지 일단 박 대통령과 거리를 두는 자세를 취했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의 인사에 대해 "내가 봐도 좀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상임고문으로서 역할에 대해선 "뭐를 드러내 놓고 할 생각은 없다. 단지 후배 의원들에게 필요하면 정치적 조언을 해주려 한다"고 선을 그었다.

야당은 서 고문 컴백에 모종의 의도가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총선을 전후해 당명까지 바꾸며 공천개혁을 약속했던 새누리당의 쇄신이 결국 선거를 앞두고 국민을 눈속임하기 위한 것이었음이 판명난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서 고문이 박 대통령에게 정치적 조언을 하는 친박 핵심 인사란 점에서 대통령을 의식한 재입당 의결이 아닌지 의심했다.


김무성 가세하면…
야 "모종의 의도"

민주당은 "최근 대통령의 인사난맥상에 대해 새누리당에서도 질타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서 고문의) 귀환이 당을 친박실세 체제로 전환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면 이는 매우 유감스럽다"며 "가뜩이나 대통령의 권위에 눌려있는 새누리당이 더욱 식물정당화돼 18대 국회 때처럼 거수기정당으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김성수 기자 <kimss@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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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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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