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특집④> 대한민국 新권력지도-30대 재벌그룹 서열 판도


1996년 이후 30위내 대기업 가운데 50%만 생존
IMF 파고 결정적 계기 … 총수 비리 몰락 부채질

1996년 5월 <일요시사>가 창간된 이래 지난 13년 동안 재계엔 적잖은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외환위기(IMF)와 경영진의 비리로 무너지거나 휘청거린 기업이 있는가 하면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위기를 기회 삼아 급격히 사세를 불린 기업도 있다. 창간 13주년을 맞아 공기업을 제외한 자산총액 기준으로 13년 전과 현재의 재계 서열을 비교해 봤다.

1996년부터 지난해까지 지난 13년간 재계의 가장 큰 이슈는 단연 외환위기(IMF)다. 이는 1990년대 말을 전후해 재계 판도를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실제 이 시기를 겪으며 30대 재벌그룹 중 절반 정도가 ‘물갈이’된 상태다. 이 와중에 총수들의 비자금 조성 등 불법 행위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며 그룹의 처참한 몰락을 부채질하기도 했다.

2001년부터 삼성 선두
현대그룹 방계 명맥만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4월 현재 자산총액 기준으로 국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1위는 삼성그룹(174조9000억원)이다. 삼성그룹은 1996년만 해도 현대그룹에 이어 2위에 머물렀다. 1999년 대우그룹에까지 밀려 3위를 기록하기도 했지만, 2001년부터 지금까지 ‘선두’를 놓치지 않고 있다.

삼성그룹에서 분리된 범삼성계 기업들의 활약도 눈여겨 볼 만하다. 1991년과 1993년 독립경영을 선언한 신세계그룹과 CJ그룹은 꾸준히 몸집을 불려 각각 재계순위 19위(12조원)와 17위(12조3000억원)에 올라있다.

삼성그룹에 ‘톱’자리를 내준 현대그룹은 2001년 ‘왕회장’(고 정주영 창업주)이 세상을 뜬 직후 뿔뿔이 흩어졌다. 현대그룹은 1987년 공정위의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지정이 시작된 이후 단 한 번도 1위 자리를 놓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영원한 절대강자일 것 같았던 ‘현대 왕국’도 IMF 파고를 넘지 못했다. 현대그룹은 현대건설과 현대전자(현 하이닉스) 등 핵심계열사의 부채가 증가하면서 경영난이 심화됐고, 2000년 형제간 재산을 놓고 갈등이 불거진 이른바 ‘왕자의 난’등의 분란을 겪은 끝에 구조조정과 계열분리 수순을 밟았다.

다만 당시 떨어져나간 현대차그룹(2위·117조2000억원), 현대중공업그룹(6위·40조9000억원), 현대그룹(16위·12조6000억원), KCC그룹(29위·6조6000억원) 등 ‘현대’방계기업들이 30대 기업에 이름을 올려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나머지 현대백화점그룹(31위·5조9000억원), 현대산업개발(33위·5조7000억원) 등은 40위권에 랭크돼 있다.

삼성·현대그룹과 함께 재계 ‘빅4’로 꼽히는 LG그룹과 SK그룹은 큰 변화가 없었다. 1996년 각각 3위와 5위였던 이들 기업은 현재 자리만 바뀌어 SK그룹이 3위(85조9000억원), LG그룹이 4위(68조3000억원)를 기록하고 있다.

LG그룹은 2003년 LS그룹에 이어 2005년 GS그룹이 알짜 계열을 갖고 분할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두 기업은 분리 이후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둬 30위권에 안착하는 데 성공했다. GS그룹은 7위(39조원), LS그룹은 15위(12조8000억원)다.

SK그룹은 2003년 촉발된 SK글로벌 사태와 소버린의 경영권 위협 등 혹독한 시련을 겪었지만 13년 전에 비해 오히려 순위가 상승했다.

이처럼 약진이 두드러진 기업도 적지 않다. 금호아시아나그룹과 STX그룹, 대한전선그룹이 대표적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006년 대우건설, 지난해 대한통운 등 초대형 M&A를 성사시키면서 1996년 11위였던 재계 순위를 8위(37조6000억원)까지 끌어올렸다.

STX그룹은 2000년 창립 10년도 안 돼 12위에 이름을 올렸다. 성장 비결은 역시 M&A다. STX그룹은 2000년 STX중공업(옛 쌍용중공업)을 시작으로 2001년 STX조선(옛 대동조선), 2002년 STX에너지(옛 산단에너지), 2004년 STX팬오션(옛 범양상선) 등을 차례로 먹어치우면서 재계 판도를 바꿨다.

IMF 때 무너진 기업
받아먹고 몸집 불려


대한전선그룹(23위·8조6000억원)도 2002년 무주리조트, 2004년 쌍방울(현 트라이밴즈), 지난해 남광토건, 대경기계 등을 잇달아 인수하며 재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이외에 ▲롯데그룹(10위→5위·48조9000억원) ▲한진그룹(7위→9위·29조1000억원) ▲두산그룹(12위→10위·27조3000억원) ▲한화그룹(9위→11위·24조5000억원) ▲동부그룹(23위→18위·12조3000억원) ▲대림그룹(13위→20위·11조원) ▲효성그룹(17위→24위·8조4000억원) ▲코오롱그룹(20위→30위·5조9000억원) ▲동국제강그룹(18위→26위·8조1000억원) 등은 1996년이나 지금이나 30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화려한 시절을 보내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재벌그룹도 한둘이 아니다. 13년 전과 현재의 30대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현황을 살펴보면 30개 기업 중 무려 15개 기업이 붕괴되거나 명단에서 제외됐다.

1996년 4위에 오른 대우그룹은 1999년 잠시 삼성그룹을 제치고 2위에 등극했지만, 복잡한 채무관계로 결국 그해를 넘기지 못하고 공중분해됐다.

당시 6위까지 올라갔던 쌍용그룹도 무리하게 자동차산업에 진출했다가 빚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경영난에 빠져 계열사들을 팔아치우다 마지막 남은 모기업인 쌍용양회마저 무너지면서 몰락했다.

1998년 현대차그룹으로 흡수된 기아그룹은 1996년 8위까지 올랐으나 부실 경영으로 이듬해 30대 기업에서 빠졌으며, 22위였던 한솔그룹도 이동통신 등 무리한 신규사업을 진행한 탓에 뼈를 깎는 경영정상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IMF 이후 순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또 ▲한보그룹(14위) ▲동아건설(15위) ▲한라그룹(16위) ▲진로그룹(19위) ▲고합그룹(24위) ▲해태그룹(25위) ▲삼미그룹(26위) ▲한일그룹(27위) ▲극동건설(28위) ▲뉴코아그룹(29위) ▲벽산그룹(30위) 등도 1996년 한창 주목받다가 무리한 차입경영의 부담을 이기지 못한 채 줄줄이 쓰러졌다.

승승장구하다 불과 2∼3년 만에 주저앉은 이들 기업의 총수들은 대부분 횡령이나 배임·분식회계, 비자금 조성, 사기 대출 등 부도덕한 행태가 탄로나 한국 경제를 망친 장본인으로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형편이다.

눈에 띄는 점은 지난해부터 계속되고 있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조만간 한차례 더 재계의 지각변동이 예상된다는 점이다. 재벌그룹들은 ‘부실기업 척출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금융권의 구조조정 압박에 시달리고 있지만 쉽게 자산을 내놓지 않을 기세다. 나아가 ‘위기는 곧 기회’란 신념으로 공격적인 투자도 불사할 태세까지 엿보인다.

글로벌 금융위기 뒤
재계 지각변동 예고

이대로 국가 경제가 무너지지 않는다면 지금과 같은 불황기만 한 투자 시점이 없다는 얘기다. 이명박 정부가 입이 닳도록 재계에 주문하는 내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아무리 금융위기 돌파 비책으로 ‘안전빵’이 급선무라지만, 언제까지 허리띠만 졸라 맬 순 없는 노릇. 결국 현금창고를 채우려면 수익창구를 두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 방’에 뛰어오를 수 있는 M&A시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단숨에 재계 판도를 바꿀 수 있는 매머드급 매물들이 즐비한 탓이다. 현재 M&A시장엔 대우조선해양(13위·16조7000억원), 하이닉스(14위·13조4000억원), 현대건설(21위·9조3000억원) 등 재계 서열을 들썩이게 할 굵직굵직한 기업들이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각 기업은 리스크를 감안해 조심스럽지만 금융위기 먹구름이 거치는 대로 속속 M&A에 뛰어들 것으로 보인다”며 “일부 기업은 대형 매물들을 상대로 이미 물밑작업을 진행하고 있어 재계 서열의 재편이 예고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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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